< 78. 기다림의 보답 (3) >
"···아, 네. 구단에도 전할까요?"
-괜찮아요. 그이가 진료받고 나오는 대로 제가 전화할게요.
"알겠습니다. 음, 걱정되네요··· 몸조리 잘하라고 전해주세요."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뭘요. 어쩔 수 없는 거였잖아요."
로드는 인사까지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옆에서 자신의 통화를 지켜보고 있던 테디에게 말했다.
"그냥 다른 훈련 해야겠다. 미할리스 못 온대."
"갑자기 왜? 어디 아프대?"
"일어나자마자 갑자기 열나고 설사도 해서 지금 병원이래. 방금 미할리스의 부인분이랑 통화했어."
"아···."
지금은 팀 훈련 한 시간 전이다.
로드와 테디는 원래 미할리스와 함께 공중볼 몸싸움 연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미할리스가 갑작스럽게 빠지게 된 것이었다.
"둘이서 뭐 하지. 애매해졌네."
그때, 뒤에서 조깅하던 알버트가 다가왔다.
"내가 도와줄까? 몸싸움 연습하려던 거 맞지?"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알버트는 바로 핵심을 찔렀다. 로드는 얼떨떨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그래 주면 고맙죠."
"바로 할래? 너희 몸은 다 풀었지?"
"알버트는요?"
알버트도 방금까지 러닝을 하고 있었으니 개인 훈련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알버트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일찍 와서 다 했어. 남은 한 시간은 아무거나 해도 괜찮아."
"···늘 고마워요."
"하하하, 뭘 이런 거 가지고. 다음 시즌에 내가 알렉스 밑에서 죽어가는 것 같으면 커피나 한잔 사줘."
"당연하죠!"
로드와 테디는 알버트 덕에 무사히 계획대로 훈련할 수 있었다.
로드는 자기 훈련처럼 전력을 다해주는 알버트가 정말 고마웠다. 그러다 문득··· 알버트는 늘 이랬다는 걸 깨달았다.
알버트뿐만이 아니었다. 훈련장에 있으면 감자 머리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을 도와주는 걸 자주 볼 수 있었다. 그건 일상이었다.
지금처럼 훈련을 돕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선수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조언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축구라는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옆의 테디도 여자친구랑 싸웠다가 도날드에게 위로받았던 적이 있었다. 로드가 아는 것만 해도 꽤 많은 일이 있었다.
로드는 지금에서야 그런 점이 와닿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시간을 남을 위해 쓰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스스로가 정말 한심했다.
생각해볼수록 감자 머리 선수들은 대단했다.
그들은 로테이션이나 후보로 불규칙하게 경기에 나서도 늘 평균 이상의 활약을 보여줬다. 불규칙하게 경기에 나서게 되면 컨디션 관리가 어려운데도 감자 머리 선수들은 코치진에 2군 친선경기를 따로 잡아달라고 부탁해서까지 몸을 관리할 정도로 열심이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로드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을 때 저들처럼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정말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로드는 감자 머리 선수들의 은퇴식을 성대하게 열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구단에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수들끼리 파티를 열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드, 집중해. 아까부터 무슨 생각 하는 거야? 정신이 다른 데로 가 있는 것 같아."
"죄송해요."
로드는 알버트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다른 생각을 하면서 훈련을 하니 잔 실수가 나왔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고, 매주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있으니 감자 머리 선수들의 은퇴에 대한 생각은 조금 뒤에 해도 괜찮을 것이다. 아직 감자 머리 선수들과 함께 경기장에 나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지금은 거기에만 집중하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당장 이번 주 경기도 있었다. 아주 중요한 경기가.
로드는 알버트에게 물었다.
"알버트, 이번 주에 제 첫 번째 프리미어리그 우승컵 들게 해 줄 수 있죠?"
앞으로 남은 경기는 6경기. 노팅엄은 로테이션을 돌렸음에도 4연승을 달렸고, 지난 경기에서 무승부를 한 2위 뉴캐슬과의 승점은 17점 차이였다.
그래서 단 한 경기만 이기면 우승이었다.
이번 주에 열리는 경기에 FA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져올 거라고 한다. 트로피에 우승팀 이름을 새기는 전문가도 함께.
그래서 뉴캐슬이 비기거나 지면, 또는 노팅엄이 이기면 바로 트로피 세레머니를 할 수 있었다.
구단 직원들이 최근에 트로피 세레머니를 준비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는 걸 로드는 잘 알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멈칫했던 알버트는 미소를 지으며 능청맞게 대답했다.
"우승 인터뷰 준비해야 할 거야."
"오, 기대할게요."
자신이 출전할 수 있을지는 몰랐지만 알버트가 그렇게 해 준다니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로드는 씩 웃었다.
*
삐익!
<노팅엄! 노팅엄! 노팅엄! 와아아아아!>
주심의 힘찬 휘슬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었다.
오늘 상대는 빨간 줄무늬 유니폼의 사우스햄튼.
늘 중위권에 머물렀으나 이번 시즌에는 강등 위기에 직면한 팀이었다.
"워우···."
킥오프를 마친 알버트는 사우스햄튼의 진영, 정확히 말해서 사우스햄튼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예상대로네요."
"그렇네."
알버트는 오늘 선발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라이언과 공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고 있는데 사우스햄튼의 선수들은 압박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진짜 버스를 세워버렸네."
잭슨은 경기 전 사우스햄튼이 작정하고 수비만 할 것이라고 했다. 정말이었다. 사우스햄튼은 공격수 두 명마저 중앙선을 넘어오지 않았다. 골을 못 넣더라도 리그 무패 팀이자 1위 팀인 노팅엄에게 승점 1점이라도 벌겠다는 의지였다.
알버트는 라이언에게 공을 넘기며 말했다.
"감독님이 시킨 대로 하면 되겠네."
"부탁드릴게요."
알버트는 라이언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달리기 시작했다.
알버트는 자신을 포함한 감자 머리 선수들의 개인 기량으로는 작정하고 수비하는 프리미어리그 팀을 뚫을 수 없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4연승을 할 수 있었던 건 자신들의 기량을 정확히 알고 이길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주전 선수들의 장점을 살려줄 수 있는 플레이를 하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자존심 때문에 꺼려졌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팀의 승리만이 알버트가 원하는 가장 큰 가치였다. 다른 감자 머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잭슨의 전술 지시 또한 그런 방향이었다. 잭슨은 감자 머리들이 경기를 이기게 해 주기보다는 주전 네 명의 장점을 살리는 전술을 지시했다.
오늘 주전은 킹, 테디, 루앙, 라이언이 출전했다.
알버트의 오늘 임무는 최전방에서 중앙까지 끊임없이 움직여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끌어 루앙과 라이언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연계를 도와주는 거였다.
알버트는 오직 그것만 생각하며 경기를 치르기 시작했다. 오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할지도 몰랐지만 알버트는 전혀 들뜨지 않으려 애쓰며 침착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다른 감자 머리들도 마찬가지였다.
팀을 위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주전 선수들의 장점을 두 배는 살려주고 있었다.
도날드는 오른쪽에서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며 큰 키를 이용해 측면 타겟터 역할을 해 최전방 우측에서 볼 소유권을 지키며 루앙이 공간을 넓게 쓰도록 도왔다.
윌리엄과 로버트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라이언 아래에서 끊임없이 뛰며 라이언이 패스할 수 있는 길을 여러 개 만들어주고, 라이언이 커버해야 할 수비공간까지 커버했다. 테디와 루앙을 돕기도 했다.
왼쪽 풀백으로 출전한 피터는 루앙이 편안하게 공격할 수 있도록 패스를 받지 못하더라도 왼쪽 측면라인을 따라 오버래핑을 하거나 뒤에서 패스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생각하며 움직였다.
중앙수비수로 출전한 사무엘은 킹의 약점인 생각 속도가 느리다는 걸 메꿔주기 위해 더 집중하며 적극적으로 킹에게 움직임을 지시했다.
이렇게 감자 머리들은 전반전 내내, 그리고 후반전 20분까지 헌신했다.
<루앙! 루앙! 루앙!>
덕분에 많은 공간을 확보한 루앙이 라이언의 패스를 이어받아 득점하는 데 성공했다.
골이 들어가자마자 잭슨은 교체 사인을 보냈다.
중앙 미드필더 윌리엄과 로버트 듀오는 워낙 많이 뛰는 바람에 방전되기 직전이었고, 루카, 바비와 교체됐다.
"이제 저한테 맡겨요!"
공격수 알버트도 할리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벤치로 돌아왔다.
"자요. 수고 많으셨어요."
벤치에 있던 로드가 알버트를 반기며 이온 음료와 수건을 내밀었다.
로드 옆에 앉은 알버트는 수건으로 땀을 닦고, 이온 음료를 마시며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주전 셋이 더 투입된 노팅엄이 지친 사우스햄튼을 더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팅엄은 순식간에 두 골을 더 넣었다.
3-0이 됐다.
루카-라이언-바비의 환상적인 삼각패스를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 있던 할리가 멋진 침투로 이어받아 가볍게 골을 넣었다. 알버트는 후반전 85분에 팀의 세 번째 골을 넣은 할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은 참 대단해. 축구를 참 쉽게 한다니까?"
"알버트가 전반전에 수비수들 체력을 빼준 덕이죠. 할리 쟤 전반부터 뛰었으면 엄청나게 헤맸을걸요?"
로드의 단호한 말에 알버트는 피식 웃으며 말을 돌렸다.
"노팅엄의 첫 우승까지 추가시간 합쳐서 8분 정도 남았네."
"그러게요. 생각보다 막 두근거리고 그러지는 않네요."
그때였다.
할리의 세 번째 골에 환호하던 홈 서포터즈가 환호를 멈추고 자리에서 전부 일어났다. 그리고 노팅엄 FC가 적힌 녹색 줄무늬 머플러를 양손으로 펼쳐 들었다.
"응?"
홈 서포터즈 석에 모여 있는 서포터즈들이 처음 듣는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에 벤치에 있는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후이! 후이! 두 골까진 봐 줄게. 넌 멋진 선방을 자주 보여줬으니까!>
로드는 홈 서포터즈 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어? 후이 응원가가 새로 생겼나 보네요."
"근데 왜 지금 부르지? 후이는 오늘 출전도 안 했는데?"
벤치 구석에 앉아있던 후이도 영문을 모르겠는지 당황스러운 얼굴로 홈 서포터즈 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자기 응원가라 그런지 미소를 짓고 있긴 했다.
알버트는 서포터즈들이 뜬금없이 응원가를 부르는 이유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이상하게도 서포터즈 석뿐만 아니라 경기장 전체의 관중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경기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서로 웅성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서포터즈들처럼 각자 들고 있는 노팅엄에 관련된 물건을 번쩍 들며 자리에서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알버트가 더 혼란스러워하는 찰나 벤치 뒤에 있는 좌석에서 한 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확정이다! 뉴캐슬이랑 리버풀이 비겼대! 너희들이 최고다!"
코치들의 손이 바빠졌다. 코치들 주변으로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들이 모였다. 코치들은 스마트폰으로 뉴캐슬과 리버풀의 경기 결과를 확인했고, 세자르의 골로 둘이 비겼다는 걸 알게 됐다.
"우와, 우와, 우와아아."
아까까지만 해도 생각보다 안 두근거린다던 로드가 입을 크게 벌린 채로 어찌할 줄 몰라했다. 노팅엄의 우승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부 퍼진 건지 어느새 경기장 관중 전체가 일어나 있었다. 원정 온 사우스햄튼의 팬들만 빼고.
<노팅엄의 개구쟁이! 사냥꾼 새의 아버지! 우리의 아들 할리가 돌아왔다!>
관중 모두가 서포터즈들이 주도해 부르는 응원가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알버트는 서포터즈가 뭘 하려는지 깨달았다.
리그 우승을 기념해서 선수들의 응원가를 전부 불러주려는 거였다.
모든 관중이 노팅엄의 상징물들을 들고, 대부분 노팅엄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에 경기장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숲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장관이었다.
<라이언은 우리의 작고 친절한 친구지. 하지만! 그는 역겨운 노츠 녀석들에게는 무서운 사자가 된다네!>
이제 경기장 위의 선수들도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들 어수선해 보였다.
"이 자식들아! 끝까지 집중해!"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을 달성한 잭슨이 선수들에게 외쳤다. 물론, 그렇게 외치는 잭슨마저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와아아아아!>
테디의 응원가와 함성이 뒤섞여 들렸다.
알버트는 고개를 들어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대형 전광판에는 응원가가 불리고 있는 선수의 단독 샷이 나오고 있었다. 테디가 그걸 눈치채고 카메라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기에 관중이 환호한 거였다.
테디의 응원가가 끝나니 이번에는 로드의 응원가가 시작됐다.
<로드 테일러에겐 아빠가 있지! 아빠가 있지! 알렉산더!>
방금까지도 어쩔 줄 몰라하던 로드가 눈을 찌푸리며 뚱한 얼굴을 했다.
"···왜 나만 응원가가 이래. 다른 것도 있으면서."
<하하하하하!>
그 뾰로통한 표정이 대형 전광판에 나왔기에 이번에는 응원가와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몇몇 선수의 응원가는 새로 쓴 건지 처음 듣는 곡이 몇 개 있었다. 그래도 응원가답게 따라부르기 쉬워 온 관중이 선수들의 응원가를 노래했다.
알버트는 우승도 기뻤지만, 자신의 응원가가 슬슬 기대되기 시작했다. 아직 응원가가 불리지 않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인지 우승을 축하하면서도 홈 서포터즈 석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경기 종료 휘슬도 잘 안 들릴 정도의 응원가가 이어졌다.
심판이 경기가 끝났다고 손을 열심히 휘적이고, 대형 전광판에 경기가 끝났다는 표시가 나온 후에야 알버트와 벤치의 사람들은 경기장으로 뛰쳐나갔다.
"수고했다!"
"우리는 최고야!"
뉴캐슬에서 했던 우승과는 기분이 달랐다. 그곳에서나 여기에서나 후보 선수인 건 다를 바 없었지만, 훨씬 더 벅차올랐다.
이제 경기가 끝나서 그런지 선수들은 자기의 응원가가 불리면 손을 흔들어주거나 귀족처럼 인사하거나 절을 하는 등 팬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동시에 뉴캐슬과 FA의 직원들이 우승 세레머니를 할 조립형 무대를 설치하고 있었다. 경기장 터널 앞에서는 실시간으로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에 노팅엄 FC의 이름이 새겨지고 있었다.
"알버트, 우리 응원가는 언제 나올까?"
"누가 먼저 나오는지 내기할래?"
"난 사무엘한테 한 표."
"나는 알버트한테 한 표."
어느새 알버트의 주위로 감자 머리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홈 서포터즈는 아직 이들의 응원가를 불러주지 않았다.
서포터즈들이 자신들의 응원가를 빼먹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감자 머리 선수들은 잔뜩 기대한 채로 자기 응원가를 기다렸다.
서포터즈들은 쉽게 감자 머리들의 응원가를 불러주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시즌에 열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유소년 레오의 응원가가 먼저 나왔다.
"우리 응원가는 무대 위에서 듣겠네."
무대가 완성되어 직원들이 선수들을 모았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레오의 응원가를 들으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어서 직원들이 노팅엄 FC라는 클럽명이 새겨진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그들에게 가져왔다.
로드가 막 트로피를 받아들자, 레오의 응원가가 끝났다.
알버트는 감자 머리 선수 중 일부의 응원가는 세레머니가 끝난 후에 불릴 거라고 생각했다.
세레머니 때 한 선수의 응원가를 불러주는 건 좀 그러니까.
우리 여섯 중 누구의 응원가가 먼저 나올까, 그렇게 생각하며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는데 감자 머리 선수 여섯 전부가 대형 전광판에 띄워졌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초점을 잘못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대형 전광판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그대로 감자 머리 선수 전원을 잡고 있었다.
이어서, 처음 듣는 응원가가 들려왔다.
다른 선수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응원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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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 알고 있어
너희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알버트가 수비수들을 끌고 돌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맨유를 상대로 이길 수 있었을까?
도날드가 헤딩을 13번이나 따내지 못했다면 리버풀에게 졌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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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는 이번 시즌 자신이 활약했던 맨유와의 경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도날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둘 다 MOM 같은 것도 받지 못했고, 평점도 애매했지만 팀을 위해 헌신했던 경기들이었다.
일반 관중은 '너희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어.'라는 후렴 부분만 따라불렀고, 서포터즈들은 목소리를 더 키워 계속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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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로버트는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세 포지션을 뛰었어!
윌리엄은 첼시와의 경기에서 14km나 뛰었다고!
너희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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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주전 두 명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로버트는 중앙 미드필더에서 시작해 왼쪽 풀백, 중앙수비수까지 뛰었었다.
윌리엄은 첼시와의 경기에서 바비가 퇴장당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훨씬 많은 공간을 커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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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피터는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진흙투성이가 됐어.
사무엘이 로드와 킹을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뉴캐슬의 괴물을 막지 못했을 거야!
너희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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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는 아스날과의 경기에서 상대 팀의 에이스인 오른쪽 윙을 막기 위해 비가 내리는 경기에서 끊임없이 몸을 던졌다.
사무엘은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3백으로 나와 두 주전 중앙수비수를 도와 지난 시즌 득점왕인 니콜라스를 멋지게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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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너희들이 뭘 했는지 다 보고 있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다 알고 있어
감자 머리들! 우리가 너희들을 사랑하는걸
너희는 다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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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버트와 감자 머리 선수들은 로드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컵을 들고 있었는데도 그곳을 바라보지 않았다. 각자 눈물을 흘리며 자신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포터즈들은 눈에 띄지 않는 자신들이 헌신을 알아봐 주었다. 그게 프리미어리그 우승보다 더 기뻐서 감자 머리 선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얼굴들을 대형 전광판으로 본 관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아아아아!>
쏟아지는 함성 속에서 트로피를 안고 있는 로드가 고개를 돌린 채로 말했다.
"아저씨들이 울면 흉해요. 자, 지금은 웃어야 할 때라고요."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트로피를 그들에게 보여줬다.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에는 [노팅엄 FC]라고 적혀있었다.
"우리도 알버트, 도날드, 로버트, 윌리엄, 피터, 사무엘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아요. 여러분이 없었다면 이 트로피는 여기 없었을 거예요. 한 18연승쯤 하다가 고꾸라졌겠죠. FA컵이나 챔피언스리그에서 떨어졌을지도 몰라요."
로드의 말을 들은 선수들, 코치들, 감독, 직원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속에는 활짝 웃고 있는 김도운과 제임스도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리가 함께 만든 우승을 기뻐하자고요."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앞을 향했다. 트로피를 아래로 내리며 몸을 숙이고 흔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노팅엄의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동시에 소리를 냈다.
"오오오오-"
알버트와 감자 머리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팬들도 그들이 하는 걸 따라 발을 구르며 기를 모으는 듯한 소리를 냈다.
<오오오오->
그리고, 로드가 트로피를 번쩍 들어 올렸다.
펑! 하고 경기장 천장 쪽에서 폭죽 소리가 들렸고, 하늘에서 녹색과 흰색 종이 가루가 경기장 전체에 흩뿌려졌다.
동시에 무대 위에 있는 노팅엄의 사람들과 관중석에 있는 노팅엄의 사람들이 외쳤다.
《예에에에에!》
멋진 트로피 세레머니를 한 로드가 몸을 다시 돌려 감자 머리들에게 말했다.
"빨리 앞으로 와요. 세레머니 해야죠."
"어? 우리가?"
"네네, 빨리 오세요."
로드는 그렇게 말하며 트로피를 알버트에게 넘기고 뒤로 물러났다. 감자 머리 선수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밀려 맨 앞으로 나왔다.
<와아아아아!>
팬들이 환호했다.
"이거 진짜야?"
"와··· 와··· 와···."
감자 머리 선수들은 이제야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했다는 걸 실감했다. 이 트로피는 2~3부 리그의 그저 그런 선수였던 이들이 프리미어리그 최고 팀에 소속된 선수라는 증거였다.
"빨리 들어요! 순서 기다리는 사람이 몇인데!"
할리의 장난스러운 재촉에 감자 머리들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목표인 무패우승까지는 앞으로 몇 경기가 더 남았지만, 이들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알버트를 중심으로 모두가 트로피를 잡았고, 다 함께 하늘을 향해 트로피를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아!》
< 78. 기다림의 보답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