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아직 한 발 남았다.
‘아쉽군. 선발투수였으면 포인트가 더 쌓였을 텐데.’
강송구가 무덤덤한 표정 속으로 아쉬움을 드러내며 자신이 모은 포인트를 가만히 바라봤다.
[현재 포인트는 2,370포인트입니다.]
[스킬카드과 특성카드을 뽑을 수 있는 ‘MLB 카드 뽑기’를 사용하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브론즈 카드 - 500포인트]
[실버 카드 - 1,000포인트]
[골드 카드 - 3,000포인트]
[사파이어 카드 - 15,000포인트]
[루비 카드 - 15,000포인트]
[다이아 카드 - 50,000포인트]
[HoF 에디션 카드 - 100,000포인트]
그 모습을 보며 우효가 혀를 찼다.
-지금도 매우 빠르다. 벌써 사파이어나 루비 카드를 노릴 정도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런데 사파이어랑 루비 카드의 차이는 뭐지? 둘 다 포인트가 비슷한데 말이야.’
-사파이어는 타자와 관련된 특성과 스킬이 나오고, 루비는 투수와 관련된 게 나오는 카드지.
우효의 설명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도착했습니다.”
“자! 오늘 모두 수고했다. 오늘 진수가 한우를 쏜다고 했으니까. 많이들 먹어라.”
황태석 감독의 말에 선수들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박진수를 신처럼 바라봤다.
급히 발을 옮기는 선수들의 눈에 테이블에 쫙 깔린 아름다운 소고기가 눈에 들어왔다. 경기가 끝나고 바로 예약했는지 바로 먹을 준비가 되었다.
“자자! 먹읍시다!”
박진수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강송구도 그들 사이에 쏙 들어가 젓가락을 열심히 움직이며 잘 구워진 소고기를 흡입했다.
-너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냐?
진공청소기처럼 소고기를 흡입하는 강송구를 보며 우효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지. 고기는 먹어둘 수 있을 때 배가 터질 정도로 먹어둬야 한다고.’
-네 아버지를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아주 훌륭한 명언이네. 아주 훌륭한 명언이야!
우효가 혀를 차며 비아냥거렸다.
‘아버지는 지금 만날 수 없다.’
강송구의 진지한 대답에 순간 우효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고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안하다. 그…. 내가 말이 헛나왔어.
‘갑자기 왜 사과를 하지?
-아니…. 그 아버지를 못 만난다면서?
‘당연하지. 하와이에 있는 사람을 어찌 만날 수 있겠어? 나중에 내가 메이저리거가 되면 만날 수 있겠군.’
-...
우효의 두 눈이 순간 칼보다 날카로워졌다.
속으로 ‘저놈을 가시로 찔러버릴까?’라며 고민했다.
그때 누군가 강송구에게 다가왔다.
“오늘 경기 좋았어.”
오늘 그의 공을 받아준 박진수였다.
강송구는 그런 박진수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그의 눈빛을 본 박진수가 씩 웃었다.
무뚝뚝해서 조금은 싹수없어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이 어린 후배는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마음은 진실하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아직 체력이 완벽히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4~5이닝씩 소화하고 있잖아.”
“그건 상대에게 제 정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제가 던지는 구종을 일찍이 알았다면 저는 쉽게 승부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더 성장해야 한다.
강송구의 두 눈에는 확신이 어렸다.
박진수는 그런 후배가 마음에 들었다.
충분히 자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저 듬직한 후배는 단단한 거목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먼 곳을 바라본다.
“그런데 등심을 더 시켜도 됩니까?”
“아! 그래! 더 시켜.”
박진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강송구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이모! 여기 소고기 등심 9인분이요.”
순간 박진수의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조금은 자신의 지갑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 *
청천 야구단의 교류전은 계속 이어졌다. 대전 호크스 2군과 3경기를 더 치른 그들의 성적은 전패였다.
덕분에 청천 야구단 선수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최악이군.’
황태석 감독이 한숨을 내뱉었다.
박진수와 강송구.
둘을 제외한 선수들이 모두 죽을 쒓다.
첫 경기에서 1⅔이닝 7실점을 기록한 이동진은 대전 호크스 2군과의 마지막 경기에 출전해서 3이닝 6실점을 기록하며 다시금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를 상기시켰다.
‘그래도 너무 힘없이 무너지고 있다.’
적어도 한 경기는 잡아야 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프로라는 벽에 잡아먹히며 해볼 만한 경기에서도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다음 상대는 서울 더블스타즈 2군.
좋은 유망주로 꽉 찬 대전 호크스의 2군과 다르게 조금은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절대 못 이긴다.’
아무리 독립 야구단이 선수들의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그렇다고 승리를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계속되는 연패를 끊어줄 필요가 있는 상황.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이틀 뒤에 있는 더블스타즈 경기.”
“아…. 선발이 고민이시군요.”
“동진이는 선발로 뛰기에 너무 단순해.”
“그렇죠. 딱히 특별한 무기도 없고요.”
이동진은 제외.
그렇다면 남은 투수 중에서 이번 더블스타즈전 선발을 맡아줄 수 있는 투수가 있을까?
“강송구 어떻습니까?”
“송구?”
“네, 4-5이닝을 던져도 체력적으로 크게 문제도 없었고, 진수의 말을 들어보면 선발로 뛰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녀석이라고 칭찬을 하더군요.”
“진수가 그랬단 말이지….”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그 녀석 저번 경기에서도 4이닝 이상을 소화했고, 트라이아웃에서도 선발로 나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었지?’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리고 이동진을 제외하면 긴 이닝을 소화해줄 선수로 강송구만한 선수도 없었다.
“좋아, 이틀 뒤에 있을 더블스타즈와 경기에서 강송구를 선발로 내보내지. 투코가 미리 연락해서 준비할 수 있게 해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청천 야구단에 입단한 처음으로 강송구의 선발 데뷔가 확정되었다.
* * *
1월도 절반이 지나갔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 스포츠란은 그 어느 시기보다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FA로 풀린 선수들의 협상이 지지부진한 스토브리그 막바지였기에 더 시끌벅적했다.
거기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온 포수 최대어인 박진수는 전 구단의 골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강송구에 대한 작은 기사가 스포츠란 구석에서 작게 올라와 있었다.
[사라졌던 코리안 비스트, 독립 야구단에서 다시 프로의 꿈을 꾸기 시작하다!]
많은 야구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코리안 비스트.
대전청일고의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복귀했다.
지난 대전 호크스 2군과 청천 야구단의 교류전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한 강송구는 4⅓이닝을 무실점으로 소화하면서 다시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비스트가 아니었다.
100마일에 가까운 패스트볼을 던지던 파이어볼러는 이제 겨우 평균 127km/h의 구속을 가진 느린 볼 투수가 되었다.
(중략)….
많은 팀이 이번 시즌에도 부족한 투수진에 고민이 많은 상황에서 강송구의 존재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과연 강송구 선수의 거취는 어떻게 될지 심히 궁금하다.
---
그리고 기사는 각 야구 관련 커뮤니티에 퍼졌고.
관련 커뮤니티의 댓글창에 여러 댓글이 달렸다.
-와…. 코리안 비스트 개 오랜만에 보네.
-진짜 아쉬웠지.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엄청난 관심을 보인 투수였는데…. 저렇게 훅 가버렸으니까.
-그래도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아름답긴 개뿔ㅋㅋㅋ 그냥 퇴물이지.
-위엣분 말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ㅋㅋㅋㅋ 퇴물인 건 사실이잖아. 100마일도 못 던지는데 이제 코리안 비스트보다 코리안 지토라고 불러도 될 듯ㅋㅋㅋ
-아 지톸ㅋㅋㅋㅋㅋㅋ
-지톸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지토처럼 커브가 좋다던데?
-아무튼, 잘 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선행을 하다가 다친 선수인데…. 다시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음.
많은 팬이 그런 강송구의 복귀를 반겼다.
하지만 심보가 뒤틀린 이들은 느려진 구속을 가진 강송구를 조롱하며 비웃었다.
-멍청한 놈들이군. 소시민은 항상 도전하는 자를 비웃는다지만…. 이건 정말 추잡스럽군.
우효가 그런 댓글들은 보며 혀를 찼다.
도전하는 것 자체를 비웃는다니.
“...”
-확 다 고소해버리자.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신경 쓰지 않는다.”
-뭐?
“저런 말에 흔들릴 생각 없다. 오늘 오후에 있을 더블스타즈전을 머리에 담아놓기 바쁘다.”
그러고는 강송구가 다시금 더블스타즈 2군의 자료를 살피며 어떤 식으로 공을 던져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투수진은 형편없다.’
더블스타즈의 투수진은 정말 형편없었다.
그건 1군은 물론이고 2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높은 타율과 뛰어난 수비를 중심으로 빠른 발을 가진 타자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더블스타즈의 타선은 2군임에도 우습게 볼 수 없는 전력이었다.
‘지금 가진 무기로는 5이닝을 겨우 버티는 정도.’
하지만 이걸로 만족할 수 없었다.
2군을 상대로 한번은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송구는 생각했다.
-어떻게 할 생각인데?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개를 들었다.
“브론즈 카드를 뽑는다.”
-포인트를 모아서 루비 카드를 뽑는다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을 사는 놈에게 죽는다고.”
그 말을 듣고 우효가 눈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거 영화 아저씨에서 나오는 대사 아니야?
그 물음에 강송구가 입을 꾹 닫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우효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우효효횻!
조용히 입을 닫고 있던 강송구가 상점창을 열었다.
그리고 브론즈 카드를 하나 구매했다.
“프로에 입단하면 경기를 뛸 기회가 생길 거다.”
-그러니까…. 미래를 조금 희생해서 지금을 달리겠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기는 해. 다만, 브론즈 카드에서 좋은 카드를 뽑을 수 있을까? 그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우효의 걱정에 강송구가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오늘도 운이 좋을 것 같군.”
[브론즈 카드가 구매되었습니다.]
[브론즈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강송구.
그렇게 그의 눈앞에 떠오른 50장의 카드.
강송구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카드의 색상을 보며 신중히 고민하는 척을 했다.
‘황금색 카드가 없다.’
아무래도 이전에는 꽝인 것 같았다.
모두 황동색과 은색 테두리만 보일 뿐.
황금색의 테두리는 보이지 않았다.
‘카드 등급의 비율이 고정되는 건 아닌가?’
강송구는 어쩔 수 없이 31장의 은색 카드 중에서 한 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빙글빙글 회전하며 은색 빛을 내뿜는 카드.
-드디어! 이 녀석의 운도 다 끝났군! 하하하! 역시 시스템이다! 방탄유리처럼 단단한 네 운도 끝났다!
[하루의 기적] (일회용)
-종류: 아이템
-설명: 등록된 구종 중에서 하나를 24시간 동안 ‘B’등급으로 고정한다.
-어?
하지만 공개된 카드의 내용을 본 우효의 표정이 금방 구겨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또야! 또오오오오! 왜 이렇게 운이 좋냐고! 하필이면 왜 실버 카드에서 가장 좋은 카드가 나오냐고! 너 정체가 뭐야? 어? 정체가 뭐야?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화 아저씨에서 나온 대사를 인용해서 말이다.
“나? 옆집 아저씨.”
-으아아아악!
그 말을 듣고 우효가 작게 발작했다.
하지만 강송구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오히려 남은 포인트로 카드 한 장을 더 뽑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우효가 불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제발…. 제발…. 제발!
이윽고 나오는 50장의 카드.
강송구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곧이어 빙글빙글 회전하는 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금빛을 지켜보던 우효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