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벌떼 야구(2)
봉귤.
미국회사인 ‘트윙클’이라는 인터넷 방송에서 야구를 전문으로 중계하는 스트리머다.
그는 시청자들과 소통하면서 인천 드래곤즈를 응원하는 방송을 주력으로 제법 준수한 시청자를 모았다.
제법 뛰어난 독설가인 그의 주력 콘텐츠는 ‘범인 찾기’.
인천 드래곤즈가 패배한 경기.
그 경기에서 그는 누구 때문에 졌는가를 찾는 자극적인 컨텐츠로 그는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어떻게 보면 범인 찾기는 팀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의 악질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기를 끌어모으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 편이다.
그리고 인천 드래곤즈의 대전 호크스 원정을 앞두고 봉귤은 프리뷰에 가까운 방송을 시작했다.
-봉하!
-봉하!
-오늘 비와서 인천 경기 없는데? 뭐냐?
-봉귤아! 형왔다.
-비오는 날에는 가끔
“안녕하십니까! 행님들! ‘야구전문가’ 봉귤입니다!”
후덕한 얼굴에 뿔테안경을 쓴 그는 실실 웃으며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잠깐 음악을 켜 잠깐 시청자가 유입되기까지를 기다린 뒤에 본격적으로 프리뷰를 시작했다.
인천 드래곤즈와 대전 호크스의 경기.
그는 환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3연전 솔직히 저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선발 매치업이 정말 좋거든요.”
-호크스가 보약이기는 하지.
-요즘, 그 보약 쓰디쓰던데; 리그 6위까지 치고 올라오는 폼을 보니까 시즌 후반에 제대로 고춧가루 뿌릴 것 같음.
-근데 선발 매치업? 호크스가 선발은 좀 쌔던 것 같은데? 그 이번 시즌에 노히트 노런 두 번이나 한 강송구가 있잖아.
-ㅇㅇ
-그건 맞지.
“아닙니다. 강송구 선수의 상대가 누굽니까? 우리 드래곤즈에서 지난 시즌에 25승이라는 어마어마한 승수를 쌓은 팔색조 투수인 엘비 알렉산더에요.”
봉귤이 씩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강송구? 솔직히 잘하기는 하지만…. 엘비 알렉산더와 비교하면 많은 부분이 부족합니다.”
그의 말에 채팅창도 동조하는 반응이었다.
대부분이 인천 드래곤즈의 팬들이었으니까.
-엘비가 훨 좋은 투수지.
-구속도 훨씬 빠르고, 제구도 강송구보다 엘비가 우위라고 생각함. 솔직히 강송구는 컷 패스트볼이랑 싱커빨이지.
-봉귤쉑ㅋㅋㅋ 다 아는 걸 분석이라고 내뱉네.
-엘비가 7이닝 무실점, 강송구가 6이닝 2실점으로 인천 드래곤즈가 가볍게 승리를 거머쥘 듯.
몇몇 이들은 반문했다.
그들은 이 방송에서 ‘반봉귤파’라고 불리는 이들로 봉귤이 고통을 받거나 화를 내는 것을 보며 즐기는 부류다.
-응, 엘비 평균 소화 이닝 쌉쓰래깈ㅋㅋ
-엘비가 기록한 ‘25승’ 중에서 15승은 5-6이닝만 던지고 기록한 승리자넠ㅋㅋㅋ 벌떼 야구로 재미 많이 본 뽀록 투수가 무슨 대단한 투수라곸ㅋㅋㅋ
-에이스라고 하기엔 너무 이닝 소화력이 떨어지지.
-엘비가 7이닝?ㅋㅋㅋㅋ 임성균 감독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 퀵후크로 선발투수 5이닝 전에 내리고 불펜 달리는 감독인뎈ㅋㅋㅋㅋ
그들의 말에 채팅창은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봉귤은 그런 채팅창을 보며 말했다.
“에이…. 이번엔 다릅니다. 엘비라면 분명히 이번 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소화할 겁니다. 상대는 호크스 타선이에요. 솔직히 김효곤이랑 박진수를 제외하면 우리 엘비를 공략할 타자가 있기는 합니까?”
그의 말투가 조금 날카로웠다. 그리고 몇몇 시청자들은 그런 봉귤의 상태를 알아채고 분탕을 치기 시작했다.
-응, 엘비 1이닝 5실점각ㅋㅋㅋㅋ
-이번에는 5이닝도 아니고 1이닝만 던지는 오프너가 될 것 같은데?ㅋㅋㅋㅋㅋ
-솔직히 드래곤즈 선발진은 불펜 없으면 거품이자넠ㅋㅋ
눈을 찌푸린 봉귤.
그가 드디어 폭발했다.
“아니! 솔직히 엘비가 그런 개그팀의 선수들에게 점수를 내줄 것처럼 보입니까? 그리고 호크스의 그 강송구도 인천 드래곤즈 타선을 만나면 한만두에요! 한만두!”
그때 누군가 돈을 내서 그에게 도네이션을 보냈다.
[팩사장:야! 봉귤아! 내기 콜? 엘비가 승리 투수가 되면 내가 20만 원 쏠게, 그 대신 강송구가 이기면 수영복 바지만 입고 한강 공원에서 댄스 타임 한 번 가자.]
그 도발에 봉귤이 확신에 찬 표정으로 답했다.
“좋습니다! 엘비가 이기면 20만! 콜!”
그리고 이 방송은 편집이 되어서 빠르게 다른 커뮤니티에 올라갔고, 인터넷 기자들이 냄새를 맡고 달려들어서 작은 이슈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식은 강송구의 귀에도 들어갔다.
-푸하하핫! 무슨 자신감으로 저런 내기를 한 거지?
망고 조각을 하나 입에 털어 넣은 우효가 봉귤을 비웃으며 낄낄 웃었다.
강송구는 덤덤히 한 손으로 턱을 쓸며 고갤 끄덕였다.
“재미있군.”
아무래도 이번 경기.
꼭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생긴 것 같았다.
* * *
예전과 다르다.
이번 시즌에 데뷔한 강송구를 평가할 때, 전문가들이 고교 시절의 그와 비교하며 자주 꺼내는 말이다.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최고 160km/h가 넘는 구속을 잃은 강송구의 피칭 스타일은 어쩔 수 없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강송구가 수준 낮은 선수냐고 물어본다면 대부분 전문가가 고개를 흔들 것이다.
강속구가 사라진 투수.
이제는 준수한 제구와 구위. 그리고 다양한 구종을 장착한 팔색조 투수가 되어서 타자를 농락한다.
그가 가진 무기는 너무나 다양했고.
너무나도 강력했다.
구속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강송구를 인천 드래곤즈는 평소보다 훨씬 경계하고 있었다.
임성균 감독이 손으로 턱을 쓸었다.
“재미있는 투수야.”
투수를 키우고, 그 투수를 관리하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임성균 감독에게 강송구는 주의해야 할 선수였다.
“거기다 점점 구속도 회복되고 있어.”
이게 문제였다.
예전에 160km/h 이상을 던진 투수가 다시금 구속을 회복하고 있는 사실이 말이다.
인천 드래곤즈에겐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상대가 강해진다는 뜻이니까.
임성균 감독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의 강송구는 그저 130대 초중반의 구속을 가진 투수일 뿐이었다.
“수코.”
“네, 감독님.”
“오늘 선수들 컨디션은?”
“타자들은 나쁘지 않습니다. 어제 간단한 훈련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선수들도 없었으니까요.”
“불펜은?”
이번에는 김형도 투수코치가 대답했다.
“컨디션은 좋습니다. 하지만 승리조 불펜인 평진이랑 진호가 조금은 지친 것 같습니다.”
“오늘 선발인 엘비는 어때?”
“최고라더군요. 불펜에서 잠깐 몸을 푸는 것을 봤는데…. 꼭 메이저리그 시절의 그 엘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좋아.”
그제야 임성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코치들을 보며 말했다.
“이번 3연전에서 조금 쥐어짜야 할 수 있어. 투수들에게 잘 설명하고…. 특히 평진이랑 진호에게는 투코가 잘 설명해줘. 아무래도 경기가 팽팽하면 마운드에 올라가야 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리그 1위인 창원 스왈로스가 조금씩 2위인 서울 데빌스와 차이를 벌리고 있기에 그에 맞춰서 인천 드래곤즈도 승리를 계속 쌓으며 따라갈 필요가 있었다.
임성균 감독은 생각했다.
‘지금부터 창원 스왈로스와 승수 차이가 벌어지면 후반기까지 절대 따라잡지 못한다.’
나중에 스왈로스가 흔들린다면 그에 맞춰서 적절한 휴식을 주며 선수관리를 하면 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느 정도 쥐어짤 여력이 있는 시기다.
임성균 감독의 두 눈이 번뜩였다.
“오늘 경기…. 꼭 잡아야겠어.”
* * *
엘비 알렉산더.
인천 드래곤즈의 에이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7승을 거둔 기록이 있는 그는 전형적인 AAAA급 선수로 딱히 큰 특색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37승 41패 ERA 5.47.’
조금 아쉬운 기록과 다르게 엘비 알렉산더는 제법 오래 메이저리그에서 버텼다.
엘비 알렉산더도 나이를 먹으며 구속이 느려졌고 결국에는 ‘방출’이라는 시련이 찾아왔다.
전성기에 던지던 150대 초반의 구속은 이제 140대 초반의 구속만 나올 뿐이었다.
그런 엘비 알렉산더에게 접근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인천 드래곤즈였다.
드래곤즈는 엘비 알렉산더가 한국에선 충분히 통할 거라 평가했고 거액을 주며 그를 영입했다.
당연히 그 선택은 최고의 선택이었다.
한국에 온 첫 시즌.
엘비 알렉산더는 리그 19승에 2점대 후반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며 거액을 받는 이유를 제대로 증명했다.
작년에는 리그 25승을 기록했고.
올해도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인천 드래곤즈의 팬들에게 ‘갓엘비’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대단한 투수가 바로 강송구의 상대였다.
1회 초.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
인천 드래곤즈의 선두타자는 주전 삼루수이자 빠른 발과 준수한 타격 능력을 갖춘 정향운이었다.
정향운은 지난 시즌에 25개의 도루를 훔칠 정도로 빠른 발과 뛰어난 도루 스킬을 가졌다.
‘내보내면 골치 아픈 선수.’
박진수가 사인을 보냈다.
좌타자 몸쪽을 노리는 컷 패스트볼.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손을 떠난 공이 빠르게 휘며 좌타자의 배트를 피해 박진수의 미트에 틀어박혔다.
슈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날카로운 컷 패스트볼의 위력을 본 정향운이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잠깐 타석을 벗어났다.
‘멘탈을 추스르려는 거지.’
그렇다면 시간을 줄 필요가 없다.
이어지는 피칭.
강송구는 5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정향운을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기분 좋은 출발을 시작했다.
1회 초의 두 번째 타자는 김민상.
주전 중견수로 뛰어난 장타력과 준수한 선구안을 가진 그는 오늘 강송구가 주의해야 할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다행히 김민상은 처음 보는 강송구의 싱커를 제대로 때려내지 못했고 그대로 범타로 물러났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하나.
하지만 강송구는 여유로웠다.
타석에는 사이먼 프라이스가 들어섰다.
뛰어난 장타력이 장점이 넘치는 타자.
반대로 몸쪽 코스에 한없이 약한 타자.
강송구는 그 부분을 노렸다.
우타자 몸쪽 낮은 코스로 빠지는 싱커.
이어서 바깥쪽 코스로 빠지는 공을 던진 뒤에 강송구가 스플리터 그립을 쥐었다.
그의 노림수는 제대로 먹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낮은 코스로 빠지는 패스트볼을 노리던 사이먼은 중간에 뚝하고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삼진을 허용했다.
1회 초를 깔끔히 끝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에 오르는 엘비 알렉산더를 조용히 바라봤다.
1회 말이 시작됐다.
우효가 강송구에게 물었다.
-어떨 것 같아?
‘음….’
우효의 물음에 생각에 잠긴 강송구.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한 것은 강송구가 아닌 1회 말의 선두타자인 김국도였다.
소름 돋는 체인지업에 헛스윙하며 아웃을 헌납한 그가 더그아웃에 들어오면서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와…. 오늘 미쳤는데?”
“뭐? 왜 그래?”
“오늘 엘비 저 녀석…. 미쳤어.”
“그 정도야?”
혀를 내두르는 김국도.
뒤를 이어서 조규환도 알비 알렉산더에게 빠르게 삼진을 허용하고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던 친구였나?”
“꼭 메이저리거의 공 같았어.”
조규환의 마지막 평가에 선수들의 눈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엘비 알렉산더에게 쏠렸다.
강송구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메이저리그에서 뛰던 시절의 엘비 알렉산더라면 오늘 호크스의 타선으로는 운이 좋아야 1점을 겨우 얻어낼 수 있겠지.’
-뭐?
‘뭐긴…. 오늘 엘비 알렉산더의 폼이 좋다는 뜻이야.’
-이길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시절의 폼을 오늘 경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엘비 알렉산더를 강송구가 덤덤히 바라봤다.
“우리 팀의 타자들이 점수를 내줄 때까지 신나게 드래곤즈의 타선을 막아내면 그만이야.”
그래, 우선은 그게 시작이었다.
1회 말이 끝나고 다시 마운드에 올라야 할 시간.
강송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오늘 경기.
제법 힘든 투수전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