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바깥 양반! 제발 안으로 공 좀 던져!
대니 맥스터 감독이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7회 말.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보여주고 있는 퍼포먼스는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오늘 경기 강송구가 내준 안타는 단 하나.
그것도 유니콘즈의 타자들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야 땅볼로 만들어진 안타였다.
강송구는 단 하나의 볼넷도 없이 그저 기계처럼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찔러넣었다.
그리고 유니콘즈의 타자들은 그런 강송구의 공에 헛스윙하며 무너졌다.
그가 예상했던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따악!
뭔가 타격음이 들려와도 기대가 되지 않았다.
강송구가 던진 구위에 눌린 공은 오늘 대부분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빠르게 처리되었으니까.
8회 초.
오늘 경기 7이닝 3실점을 유지하고 있는 로이 슈미츠가 땀을 주룩 흘리며 마운드로 올라섰다.
오늘 그는 대단한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제법 많은 안타와 홈런을 맞았음에도 로이 슈미츠는 효율적인 피칭으로 7이닝을 소화한 지금까지도 투구수가 100개가 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8회 초에 올라선 그는 호크스의 하위타선을 상대로 깔끔히 삼자범퇴로 잡아내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일종의 화풀이였다.
8이닝 3실점.
보통의 상황이라면 충분히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좋지 않았다.
로이 슈미츠가 더그아웃에 들어가자마자 스포츠음료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8회 말.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라와 유니콘즈의 타선을 다시금 꽁꽁 묶었다.
구속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공이 가진 구위는 아직도 유니콘즈 타자들의 배트가 밀릴 정도였다.
동시에 강송구는 ‘돌직구’가 주는 여러 효과를 생각하며 고갤 끄덕이고 있었다.
‘이 능력은 구위를 강하게 만들어주지만, 모든 패스트볼 계열 구종의 회전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공은 아니군.’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때는 확실히 회전수가 늘어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포심 패스트볼은 공이 뜬다는 느낌을 받을수록 좋은 포심 패스트볼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컷 패스트볼은 다르다.
슬라이더 계열의 공에 가까운 컷 패스트볼은 공의 회전축이 앞쪽을 향하기 때문에 포수의 미트에 도달하기 전까지 총알이나, 럭비공과 유사한 회전을 하게 되기에 회전수가 낮으면 오히려 더 좋은 무브먼트를 보여주는 공이었다.
싱커와 스플리터도 비슷했다.
회전수가 높은 스플리터는 배팅볼에 가까운 실투에 가까운 공이었다. 싱커도 회전수가 높으면 가라앉는 움직임이 덜한 투심에 가까운 공이 되는 것이다.
이번에 얻은 ‘돌직구’는 정확히 이런 공의 회전수를 조절해서 각 패스트볼 계열 구종의 구위와 무브먼트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뜻이었다.
강송구는 이번 경기에서 그걸 활용해서 다양한 실험을 했고 8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까지 ‘파이어볼러-진(眞)’에 투자한 포인트가 전혀 아깝지 않은 능력을 얻었다고.
‘패스트볼 계열의 구종에 한정된 능력이지만 회전수를 조절할 수 있다. 거기다 완급조절로 구속까지 조절할 수 있다.’
이런 투수가 몇이나 있을까?
지금 강송구와 가장 비슷한 투수라면 ‘타격은 타이밍이다.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대투수인 ‘워렌 스판’ 정도가 있을 것이다.
아이싱을 시작한 강송구.
그가 더그아웃 밖을 바라봤다.
9회 말.
3대0의 세이브 상황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호크스의 마무리 투수인 곽민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가볍게 3개의 아웃을 잡아내며 강송구의 시즌 11승과 호크스의 승리를 지켜냈다.
“좋았어!”
“고생하셨습니다!”
“이렇게만 하자! 이렇게만!”
경기가 끝나고 호크스의 라커룸은 승리의 여운을 즐기는 선수들의 미소로 가득했다.
하지만 예전과 매우 달랐다.
몇몇 선수들은 이런 좋은 분위기 속에서도 치열하게 오늘 경기를 복기하며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금씩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승리의 주역이 되고 싶다고.
그리고 계속해서 이 달고 끝내주는 ‘승리’라는 열매를 계속해서 먹고 싶다고.
‘분위기도 좋다.’
강송구가 흡족히 고갤 끄덕였다.
이번 후반기.
호크스가 드디어 반등할 조건을 갖췄다.
* * *
7월 말.
호크스는 부상으로 빠졌던 주전이 모두 돌아왔다. 이진모와 조규환이 돌아온 호크스의 타선은 필요할 때 점수를 만들어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리고 후반기에 기세를 탄 호크스는 연승을 달리며 단숨에 리그 5위까지 치고 올라섰다.
[대단합니다! 호크스가 4연승을 거두며 좋은 기세를 이어나갑니다! 호크스가 다시 리그 5위까지 올라섭니다!]
[호크스가 또 이깁니다! 리그 5연승! 대전 호크스의 질주가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제대로 불이 붙었습니다!]
[조규환의 끝내기 안타아아아아!]
[연승이 끊겼음에도 호크스가 정말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후반기 시작과 함께 9승 1패를 기록하고 있는 호크스! 정말로 4위와 경기 차이도 크게 줄었습니다!]
강송구는 7월의 마지막 등판에서 다시금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시즌 12승을 거두었다.
8월로 접어든 프로야구.
호크스의 질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더운 8월의 더위가 호크스의 주전들을 부상의 늪으로 끌고 들어갔지만, 오랜 기간 2군에 쌓아놓은 유망주들이 드디어 터지기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승리를 쌓아갔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호크스의 단장실.
백동혁 단장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팀이 만들어졌다.
요즘 호크스를 보면 패배를 모르는 팀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만큼 기세가 대단했다.
순위 경쟁이 심한 8월에 이렇게 치고 나온다면 리그 2~3위까지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저런 보물은 어디서 나타난 걸까?”
8월의 첫 등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라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소름이 돋는 완급조절과 다양한 구종의 조합으로 부활한 강송구는 점점 고교 시절에 보여줬던 ‘코리안 비스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그 시절의 강송구와 비교하면 아직도 ‘구속’이라는 부분에서는 많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야구 커뮤니티에서는 ‘저번 스토브리그의 승자는 강송구를 데려온 호크스의 승리다.’라는 말이 떠돌고 있었다.
그만큼 백동혁 단장의 주가도 치솟고 있었다.
[또 삼진! 대단합니다! 강송구!]
[후반기에 들어서 강송구 선수가 매 경기 10개의 삼진은 기본으로 잡아주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는 강송구 선수의 완급조절 능력과 수준급의 변화구를 다양하게 다루는 모습은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코리안 비스트가 이번 이닝도 깔끔히 막아내면서 호크스의 리드를 계속해서 이어나갑니다! 광고 보고 오시죠.]
이번 경기.
강송구는 공무원처럼 이번에도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또 하나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를 하는 강송구의 모습을 보며 백동혁 단장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이제 문제는 위닝 멘탈리티군.”
계속해서 이기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만 되면 호크스는 어이없는 실점을 하며 무너졌다.
그게 8월을 질주하면서도 호크스가 아직도 리그 4위에 올라있는 이유기도 했고, 호크스에게 아직 7연승 이상의 연승이 없는 이유기도 했다.
“우리 같은 팀이 정규시즌에 우승하려면 1935년 시카고 컵스가 기록한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인 21연승이나, 클리블랜드가 기록한 20연승, 오클랜드가 기록한 20연승처럼 긴 연승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런 기록은 여러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했다.
“뭔가 기폭제가 필요해…. 선수들의 위닝 멘탈리티를 뒤흔들 긍정적인 자극이 말이야.”
똑…. 똑…. 똑.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는 백동혁 단장.
그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TV를 바라봤다.
TV에는 강송구가 리포터의 질문에 ‘예.’로만 대답하고 있는 기묘한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8월의 두 번째 등판.
강송구는 이번 등판에서도 8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4경기 연속 8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보여줬다.
그리고 가뿐히 시즌 14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모두가 강송구의 14승과 그의 인간승리에 집중하며 기사를 내보내고 있을 때, 호크스의 운영팀의 한 막내 직원은 다른 부분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거 가능하지 않나?”
7월에 있던 전반기 마지막 경기에서 거둔 완봉승을 시작으로 오늘 경기까지 강송구는 단 하나의 실점도 없었다.
그러니까 강송구는 오늘 경기까지 합쳐서 41이닝 동안 무실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막내 직원의 머리에서 한 가지의 기록이 빛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선동열 전 감독의 49.1이닝 연속 이닝 무실점!”
그래.
이제 그 기록까지 8.1이닝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가 급히 운영팀장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 소식은 금방 위로 올라가 백동혁 단장에게 도달했다.
“미치겠군.”
설마 이런 기록을 앞두고 있었다니.
모두가 ‘코리안 비스트’의 비상과 호크스의 반등에 집중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대기록에 집중하기엔 다른 좋은 기사 소스가 많아서 생긴 일이었다.
그가 고민했다.
강송구의 다음 등판은 부산 티탄즈 원정.
‘과연 강송구가 그 경기에서도 무실점을 유지하며 선동열 전 감독의 대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했다.
누가 리그 10위를 기록할지 부산 티탄즈는 고척 헌터스와 신나게 꼴찌경쟁을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타선의 침체가 심각한 상황.
‘기사화해서 이슈화시킨다.’
강송구가 이번 대기록을 넘어선다면 현재 리그 4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호크스에게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내가 찾던 긍정적 기폭제가 바로 눈앞에 있었군.’
문제는 강송구가 이런 상황에서 부담감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냐는 점이었다.
‘고작 120대 중후반의 구속을 던지던 때 메이저리그에 가겠다고 이면계약을 들이밀던 녀석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누구보다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강심장을 가졌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한 시즌에 두 번의 노히트 노런은 물론이고 여러 기록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백동혁 단장이 홍보팀 팀장을 불렀다.
“팀장님. 이거 진행하죠.”
지금 호크스에는 괴물이 필요했다. 그것도 지금 한국 프로야구의 모든 것을 뒤집어엎을 괴물.
백동혁 단장의 두 눈이 푸르게 빛났다.
* * *
[강송구 41이닝 무실점 기록! 선동열 전 감독의 49.1이닝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까지 단 8.1이닝을 남겨두다!]
[부활한 ‘코리안 비스트’ 한국 프로야구계를 뒤흔들다.]
[리그 4위인 호크스의 원동력은 ‘코리안 비스트!’]
[강송구의 다음 무대는 부산 티탄즈 원정!]
미친 듯이 인터넷 기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호크스와 강송구에 대한 긍정적 기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모든 야구계의 이슈가 호크스와 강송구에 쏠렸다.
이 모든 것이 백동혁 단장이 원하는 흐름이었다.
-부담감이 대단하겠군.
우효가 인터넷 뉴스를 보고 고갤 흔들었다.
하지만 부산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강송구는 그런 것에 신경도 쓰지 않고 가만히 상태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민이군.’
딱 모인 5만 포인트.
지금 다이아 카드를 살까.
아니면 다음에 쓸까.
그걸 고민하고 있었다.
우효는 대기록을 앞두고도 카드 뽑기에 집중하는 강송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넌 전쟁통에도 치타가 나오는 과자를 찾겠다고 적진에 찾아갈 또라이가 분명하다.
‘음….’
작은 고슴도치가 자신의 앞발로 뾱뾱 자신의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아! 그냥 사라니까?
‘으음….’
-으아아아악! 쪼잔하게 그러지 말고 팍 골라!
‘좋아. 지금 뽑는 게 좋을 것 같군.’
고갤 끄덕이는 강송구.
그가 손을 움직여 ‘다이아 카드’를 한 장 구매했다.
그리고 고민도 없이 빠르게 카드를 개봉했다.
[다이아 카드를 개봉하시겠습니까?]
이윽고 눈앞에 뜬 50장의 카드.
강송구가 덤덤히 턱을 쓸었다.
그의 눈에 비추는 여러 가지 빛.
그리고 한 장의 카드에서 평소라면 볼 수 없는 검은 빛을 내뿜는 카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HoF 등급의 카드.’
고민할 것도 없이 강송구가 그 카드를 선택했다.
‘배트 브레이커’라는 구종 전용 특성이 나온 등급이었기에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공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빙글빙글 회전하는 카드.
카드에선 검은빛이 흘러나왔다.
우효는 화들짝 놀랐다.
-어? 어어어? 어어어!
그리고 회전을 끝낸 카드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순간 우효는 자신의 노후 연금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
강송구도 그대로 몸이 굳어졌다.
설마 이런 카드가 나오다니.
그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이번 경기에서 그가 준비했던 피칭의 레퍼토리를 크게 바꿔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