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57화 (57/198)

#57. 아 꼬우면 너도 슬라이더 던지라고!(1)

8월 중순.

프로야구의 순위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시기.

대부분 시즌이 8월 중순부터 9월 초 사이에 결정되는 만큼 구단 내부에선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기이다.

그만큼 8월과 9월에 갑자기 치고 올라오는 팀이 생기기도 하고 또는 갑자기 성적이 급락해서 가을야구에서 멀어지는 팀이 생기기도 하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그리고 또 한 명…….

아니, 한 마리에게 위기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얀색 방.

그리고 그 방에 들어선 한 마리의 고슴도치.

우효는 범죄를 저지른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는 어느 단상에 천천히 올라섰다.

-도우미 번호 28837번 우효!

“네…….”

-최악의 실적이군. 플레이어에게 뽑아낸 포인트가 이게 뭔가? 고작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야?

멋들어진 수염이 있는 고슴도치의 호통에 우효가 몸을 움찔 떨며 급히 변명했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변명은 죄악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고작 생각해 낸 변명이 어느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악역의 대사를 내뱉는 거였나? 아주 진부하고 부질없군!

“…….”

-그래도 좋은 소식은 플레이어가 상당한 업적을 만들어내면서 ‘시스템’에 많은 이바지를 하고 있다는 건데…….

“헤헤……. 제가 선택한 플레이어입니다요.”

-우효! 어디서 감히 나서는 건가?

“죄…… 죄송합니다!”

콧수염이 난 고슴도치가 곤란하다는 듯이 고갤 흔들었다.

-확실히 자네 잘못만 있다고 보기는 어렵군. 도우미의 포인트를 거덜 내는 플레이어가 있을 줄이야.

그렇기에 우효가 어떻게든 제동을 걸기 위해서 도우미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는 짓도 하고 설명도 부실하게 했지만, 이상하리만큼 강송구는 시스템에 잘 적응했다.

-꼭 회귀자인 것처럼 야구에 대한 경험도 제법 되는 것 같고……. 뭔가 많이 이상하단 말이지.

“그런 존재가 있습니까?”

-아! 내가 고슴도치형벌을 받고 고슴도치가 되기 전인 인간 관리자이던 시절에 박규태라고 김치도 좋아하고 축구도 기막히게 잘하는 놈을 관찰했거든!

“그…… 그렇습니까?”

-그 친구가 과거로 회귀한 회귀자였지. 고놈…… 참 축구를 재미있게 했는데 말이야.

우효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 상사를 보며 설설 기었다.

-뭐……. 아무튼 상부에선 자네 노후자금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내려왔네. 이번 플레이어가 최고의 업적을 달성하면 자네가 소모한 포인트가 몇 배로 다시 돌아올 테니까.

“갑자기 왜 플레이어를 돕는 노선으로 변경되었는지요?”

-나도 잘 모르지! 상부에서 내려온 거라니까. 자네는 그냥 지시에만 따르면 되는 거야! 알겠어?

“아…… 알겠습니다!”

우효가 급히 고갤 숙였다. 이윽고 하얀 방이 환히 빛나더니 장소가 강송구의 숙소로 변했다.

길게 한숨을 내뱉는 우효가 고갤 돌렸다.

거기에는 침대에 누워 아직 만나지 않은 서울 데빌스의 정보를 꼼꼼히 점검하고 있는 강송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 강송구를 잠깐 빤히 바라본 우효가 이내 고개를 절레 흔들며 생각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고는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사과 한 조각을 꺼내서 시원하게 베어 물었다.

* * *

부상의 악령이 한 번 지나간 호크스는 휘청거리던 것이 언제였냐는 듯이 8월 중순까지 힘차게 달렸다.

그렇게 리그 3위부터 5위까지.

오르락내리락하던 호크스는 5위라는 순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대기록을 달성하고 난 첫 등판.

강송구는 고척 헌터스의 타선을 상대로 7이닝 1실점의 무난한 성적을 거두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무실점 연속 이닝 기록은 53.1이닝에서 끝이 났다.

그리고 물음표로만 남아 있던 보상이 기록이 끝나는 순간 공개되며 강송구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거로군.’

강송구가 흡족해한 이유.

그건 보상으로 얻은 것이 ‘파이어볼러-진(眞)’ 특성의 마지막 효과의 잠금을 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묘하게 기분이 나쁜 것이 우효의 반응이었다.

평소라면 ‘아…… 안 돼! 내 노후자금이!’를 외치고 있어야 할 고슴도치가 이제는 스님이라도 된 것처럼 ‘허허’ 웃고 있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거지?”

-어? 그냥! 좋은 보상이 나왔으니 웃는 거지! 으히히! 엄청 행복하네! 아주 좋아요!

어색히 웃는 우효.

그런 우효를 보며 강송구가 눈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한 것 같았다.

그동안 너무 놀리기만 해서 저렇게 정신이 나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강송구가 조금은 안쓰럽게 우효를 바라봤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지? 내일 다양한 과일을 사다 줄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헉! 다양한 과일!

우효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래, 다양한 과일. 포도 품종 중 하나인 ‘힘로드 시드레스’도 ‘샤인 머스캣’처럼 적당히 달콤하고 맛이 아주 좋지.”

-꿀꺽…….

“얼린 망고도 좋고, 구아바도 맛이 제법 좋고.”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과일들.

우효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덩말로 그런 과일을 다 주겠다는 것이냐?

“물론.”

-우…… 우효오오옷!

너무 기뻐 혀짧은 말이 나왔음에도 우효는 신경 쓰지 않고 온 방을 방방 돌아다녔다.

그런 우효를 보며 덤덤한 강송구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튼, 강송구는 슬쩍 시선을 돌려 이번에 얻은 보상이 어떤지 확인했다.

[플레이어]

-프로 1년 차

-이름: 강송구

-나이: 24세

-최고구속: 146.5㎞/h

-평균구속: 142.7㎞/h

[파이어볼러-진(眞)]

-종류: 성장형 특성

-효과: 구속이 3㎞/h가 증가합니다.

-두 번째 효과: 구속이 3㎞/h가 증가합니다.

-세 번째 효과: 구속이 4㎞/h가 증가하고, 모든 패스트볼 계열의 구종에 ‘돌직구’가 적용됩니다.

-마지막 효과: 구속이 5㎞/h가 증가합니다. 추가로 ‘좌완 파이어볼러’가 활성화됩니다.

“드디어…….”

2029시즌.

한국프로야구 평균구속은 143.4㎞/h였다.

그리고 구속이 늘어난 강송구는 그 평균구속에서 고작 0.7㎞/h가 부족할 뿐이었다.

이제 진짜로 한국에서는 구속이 약점이라고 볼 수 없는 투수가 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처음으로 강송구가 가슴속에서 묘한 감흥을 느꼈다.

거기다 구속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새롭게 추가된 ‘좌완 파이어볼러’를 살폈다.

[좌완 파이어볼러]

-효과: 좌완으로 공을 던질 수 있게 됩니다. 구속은 우완으로 던질 때보다 평균 5㎞/h 이상의 보정을 받습니다.

-주의: 단 좌완으로는 단 30구만 던질 수 있습니다. (30구가 넘어갈 시 왼손의 감각이 심하게 둔해집니다.)

시스템이 새로운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우효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갤 흔들었다.

-아니, 저렇게 운 좋은 놈을 상대로 누가 포인트를 지켜낼 수 있겠냐고……!

물론, 이게 끝이 아니었다.

대기록과 타이를 기록했을 때 얻은 ‘다이아 카드’가 아직 강송구의 손에 남아 있었다.

“다이아 카드 개봉.”

[다이아 카드를 개봉합니다.]

촤르르륵!

50장의 카드가 펼쳐졌다.

강송구의 시선은 무지갯빛을 내는 3장의 카드로 향했다. 아쉽게도 검은빛을 내는 카드는 없었다.

하지만 딱히 아쉽지는 않았다.

‘다이아 카드에서 다이아 등급만 나와도 손해는 아니니까. 딱히 실망스러울 건 없지.’

문제는 카드의 내용.

과연 이번에는 어떤 것이 나올까.

빙글빙글.

무지갯빛이 빛나는 카드를 하나 선택하기 무섭게 카드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 다이아 등급!

우효가 감탄을 내뱉었다.

이윽고 회전속도가 줄어들더니 천천히 카드의 앞면이 강송구와 우효의 앞에 드러났다.

-오오오!

제법 쓸 만한 카드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이 우효가 먼저 짧은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천천히 카드 내용을 살핀 강송구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 * *

8월의 마지막 시리즈.

대전 호크스는 잠실 경기장으로 향했다.

이번 상대는 매 시즌 가을야구에 참여하고 있는 강팀이자 화수분 야구로 이름이 높은 서울 데빌스였다.

현재 창원 스왈로스와 함께 리그 1위 경쟁을 다투고 있는 그들은 2020년대에 팀이 매각되고 다행히 알맞은 모기업을 찾아서 다시금 2025년부터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딱히 특출난 선수는 없지만.

리그에서 제일 탄탄한 불펜과 준수한 선발진을 보유하고 있으며, 야수들도 슈퍼스타는 없지만, 기본 이상의 수비 능력과 타격 능력을 갖춘 이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팀으로서 가장 탄탄한 팀이 어디냐고 야구팬들에게 물으면 10명 중에서 7명이 서울 데빌스를 선택할 것이다.

그만큼 짜임새가 있는 야구를 즐겼다.

거기다 뎁스도 상당히 두터웠다.

당장 서울 데빌스의 2군에서는 1군에 올라와도 준수하게 활약할 자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런 데빌스의 3연전 마지막 경기.

그 경기가 강송구의 8월 마지막 등판이었다.

지금까지 강송구의 기록은 19경기 16승 1패 150이닝 5실점으로 ERA는 0.3까지 내려간 상태였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평균자책점 0점대인 선동열 전 감독보다 훨씬 압도적인 성적을 보이기에 8월에 접어들면서 많은 야구팬들이 강송구가 계속 0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할지 궁금해했다.

그리고 강송구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깰 팀으로 가장 유력한 두 팀은 창원 스왈로스와 서울 데빌스 중.

이번에 서울 데빌스가 만나게 된 것이었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아무리 최고 수준의 선수라도 한 시즌에 2~3경기는 큰 실점을 하며 무너지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강송구가 무너지는 경기가 이번 서울 데빌스전이 되지는 않을까?

모든 이들의 궁금증이 이번 시리즈로 모였다.

그리고 데빌스 원정 1차전.

이번 시즌에 강송구와 함께 튼튼히 선발진을 지탱하고 있는 4선발 박철준이 마운드에 올랐다.

서른다섯의 노장.

하지만 130대 중후반의 포심 패스트볼과 예리하게 꺾이는 슬라이더로 박철준은 6이닝 3실점의 호투를 기록했다.

-쳤습니다! 호크스!

-만루 홈러어어어언! 김효곤이 역전을 만듭니다!

-대단합니다! 호크스! 기세를 탔어요!

-또 안타! 안타! 안타!

-데빌스가 크게 무너집니다! 이 역전 만루 홈런이 트리거가 되었습니다! 점수는 어느덧 11 대 5로 6점 차이까지 벌어집니다!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로 폭발력이 있는 타선입니다.

호크스답지 않은 타선.

한 번 터질 때는 제대로 터지는 타선.

그런 타선에 호크스의 원정팬들은 어색함을 느꼈다.

“야……. 우리 팀 맞지?”

“갑자기 왜 이렇게 타선이 탄탄해진 느낌이지?”

“이게…… 야구인가?”

“맨날 따라만 가고 역전을 하지 않던 그 호크스 맞아? 갑자기 왜 이렇게 잘하냐고……. 불안하게!”

그렇게 시리즈 1차전 승리를 거둔 호크스.

하지만 이어지는 2차전에서는 1차전처럼 멋진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

-이게 짜임새입니다.

-아……. 정말 팀이라면 이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서울 데빌스의 선수들이 보여주네요.

-5 대 3으로 데빌스가 시리즈 2차전을 가져갑니다.

하지만 평소와 분위기가 좀 달랐다.

2차전이 끝나고 호크스의 라커룸.

호크스의 선수들은 예전과 다르게 오늘 경기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고 있었다.

강송구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팀으로 뭉치고 있다.’

좋은 현상이었다.

코치들도 예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필요한 것은 확실한 승리.

그리고 지금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이번 정규시즌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적어도 정규시즌 3위에 위치해야 더 편히 가을야구를 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5위로 만족할 수 없지.’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최대한 높은 위치로 올라갈 필요가 있었다.

그때 입에 딸기즙을 잔뜩 묻힌 우효가 물었다.

-그래서 내일은 컨셉이 뭐야?

그 물음에 강송구가 씩 웃었다.

“랜디 존슨과 존 스몰츠.”

-음…….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네.

두 선수 모두 강속구 투수였고.

두 선수 모두 슬라이더가 주무기였다.

강송구가 새롭게 얻은 무기.

A등급의 슬라이더와 새롭게 장만한 묘한 글러브를 같이 바라보며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서울 데빌스는 두 명의 투수를 상대할 거야.”

그 말을 듣고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거참 뭣 같은 상황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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