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61화 (61/198)

#61. 코리안 비스트(3)

종종 그런 날이 있다.

게임이든, 스포츠든 평소보다 이상하리만큼 100%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

야구에서도 그런 날이 있다.

특히 투수들이 그런 날에 날뛰다가 부상으로 무너지거나 신나게 두들겨 맞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강송구에게 오늘이 바로 컨디션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날이었다.

-강송구 선수가 깔끔히 삼진을 잡아냅니다.

-오늘 경기 14번째 삼진! 어마어마한 페이스입니다. 6회 말의 두 번째 아웃 카운트를 잡습니다.

-이제 6회 말의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

-말씀드리는 순간 데빌스의 1번 타자 민진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데빌스의 1번 타자.

민진규가 타석에 들어섰다.

앞서 2명의 타자가 어떻게 아웃을 내줬는지를 두 눈으로 본 민진규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배트를 더 짧게 잡았군.’

어떻게든 출루를 하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초구는 좌타자 바깥쪽 슬라이더.

따악!

“파울!”

이제 어느 정도 슬라이더가 눈에 익었는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는 공은 커트해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강송구가 던진 2구째는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드는 커터에 배트가 살짝 밀렸다.

“후우…… 미치겠네.”

민진규는 복잡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바라봤다.

분명히 오른손으로 던지는 공임에도 구속이 140대 초반을 꾸준히 찍어주고 있었다.

‘그냥, 공이 느린 투수 아니었냐고…….’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우우웃!”

-강송구 선수가 6회 말의 마지막 타자까지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오늘 경기 15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깔끔히 떨어지는 스플리터에 민진규 선수가 너무 쉽게 배트를 내밀면서 삼진을 허용했습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오늘 서울 데빌스의 타선이 이상하리만큼 강송구 선수에게 쉬이 배트를 내밀고 있습니다.

-경기 초반에 공을 최대한 보는 방향으로 나갈 것 같았는데……. 4회 말에 왼손에서 나온 160대의 포심 패스트볼이 데빌스의 타자들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데빌스의 타선이 조급한 것은 박태오가 기록했던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의 기록인 19개의 삼진을 헌납한 팀이 데빌스였기에 이렇게 조급히 타격에 임하는 것이다.

프로가 되어서 같은 기록의 희생양을 두 번이나 한다? 솔직히 말해서 썩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 이번 시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원하는 데빌스에게 있어서 이런 처참한 패배는 절대 좋지 않았다.

창원 스왈로스를 상대하기도 벅찬 마당에 그보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호크스에게 이런 패배를 당한다면…….

남은 시즌과 가을 야구.

데빌스의 분위기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거기다 지금 호크스의 분위기를 보면 무조건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하게 될 것 같단 말이지.’

이중일 감독이 팔짱을 끼며 마운드를 노려봤다.

7회 말.

다시금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가 남은 5개의 삼진을 더 잡기 위해서 날뛰고 있었다.

-7회 말! 강송구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이제 남은 아웃 카운트는 9개! 그리고 박태오 선수의 기록까지는 단 4개가 남아 있습니다.

-과연 강송구 선수가 박태오 선수의 기록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박태오 선수가 기록한 19개의 탈삼진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투구수도 상당히 적절합니다. 앞선 6이닝 동안에 단 하나의 안타만을 내주었기에 투구수를 많이 아낄 수 있었어요.

-아! 왼손입니다! 강송구 선수가 왼손으로 공을 던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시펄……. 하필이면 내가 선두 타자일 때 또 왼손이냐고? 어? 나한테 무슨 원수졌어?’

4회 말에 강송구의 왼손에 무참히 삼진을 허용한 신용택이 굳은 표정으로 이를 꽉 물었다.

이윽고 강송구의 손을 빠져나오는 150㎞/h의 포심 패스트볼이 그대로 신용택의 바깥쪽 코스를 파고들었다.

“스트라이크!”

161㎞/h보단 훨씬 느린 구속이지만, 한국에서 150㎞/h는 충분히 강속구라고 부를 수 있는 공이었다.

거기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곧이어 비슷한 코스에 스플리터가 날아들었고, 신용택은 허무하게 헛스윙을 하며 스트라이크를 헌납했다.

‘절대 삼진만큼은 안 돼!’

그리고 이어지는 3구째.

신용택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을까?

강송구가 던진 슬라이더를 때려낼 수 있었다.

-빗맞은 공! 그대로 높게 떠오릅니다!

-강송구 선수가 글러브를 들어 올려서 여유롭게 뜬공을 처리하면서 7회 말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냅니다.

허무하게 아웃을 내줬음에도 신용택은 이상하리만큼 속이 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차라리 삼진보다 이게 낫지.’

차라리 뜬공으로 물러나는 것이 더 좋았다. 이러면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삼진만 못 잡게 하자.’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데빌스의 타자들 머리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승부.

다음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3번 타자 김길동.

워어어어! 데빌스의 홍길동!

김길동! 김길동! 김길동!

날려 버려! 훔쳐 버려!

조금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던 잠실 야구장이 다시금 데빌스의 홈팬들이 내지르는 응원가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쟤들은 지고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든 삼진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발악하네.

‘음…….’

번트 자세를 잡은 김길동을 보고 호크스의 원정팬들이 야유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

하지만 강송구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아직 이닝은 많이 남았다.’

이번 이닝에 삼진을 못 잡아도 남은 이닝이 있었다.

‘그것보다 슬슬 타자들의 타이밍이 엉망이 된 것 같은데……. 이제 오른손으로 완벽히 끝낼 수 있겠어.’

강송구는 조금씩 타격감이 엉망이 되어가는 데빌스의 타자들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타자와 투수.

두 부류는 서로 다른 시야를 본다.

그리고 경기에 있어서 다양한 상황을 서로 다른 시야로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투수와 타자도 같은 부분이 있다.

그건 흐름이다.

‘뭐, 그건 다른 스포츠도 똑같지.’

투수나 타자나 좋은 흐름은 계속 이어나가고 싶어 하고, 좋지 않은 흐름은 빨리 끊고 싶어 한다.

지금 상대 타자들은 흐름을 끊고 싶어 했다.

강송구가 대기록으로 향하는 흐름을 말이다.

그리고 강송구는 그런 타자들의 발버둥을 확실하게 끝낼 자신이 있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좌타자 바깥에 걸치는 패스트볼.

강송구의 왼손에서 나온 강속구에 김길동이 번트 자세를 풀며 혀를 내둘렀다.

‘오른손보다 5㎞/h 정도 더 빠르네.’

왼손에서 나오는 강송구의 패스트볼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느껴졌다.

두 번째로 던진 강송구의 공에 김길동이 빠르게 번트 자세를 풀고 급히 배트를 휘둘렀다.

“파울!”

하지만 배트가 밀리는 것을 느끼며 김길동은 생각했던 모든 것을 머리에서 지웠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가운데로 몰리는 공. 그걸 노리자. 일단은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얕은 생각은 접고 기본으로 돌아갔다.

그래야 저 공을 때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송구는 그 어떤 투수보다 그런 김길동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강송구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공.

가운데로 몰리는 듯한 공이 홈플레이트로 날아들기 무섭게 김길동이 힘차게 스윙을 가져갔다.

하지만 공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빠르게 옆으로 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배트를 피해 버렸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강송구 선수! 멋진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내며 오늘 경기 17번째 삼진을 잡아냅니다!

-가운데로 몰리는 것처럼 던진 공이 옆으로 휠 때…… 정말 타자로서는 탄식이 나오거든요?

-김길동 선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시면 알겠지만…… 헛스윙으로 물러날 때 표정을 보면 제대로 속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오늘 강송구 선수가 왼손으로 던지는 슬라이더가 유난히 빛나는 것 같습니다. 구속도 구속이지만…… 꺾이며 떨어지는 각이 정말로 메이저리그의 유명한 선수들이 던진 슬라이더와 비교해서 그리 부족하지 않았거든요?

‘딱 12구 남았나?’

이제 왼손으로 던질 수 있는 투구수가 몇 남지 않았지만, 딱히 걱정스럽지는 않았다.

한 명의 타자를 잡기에 충분한 숫자니까.

7회 말의 마지막 타자.

4번 타자 찰리 블레이즈가 타석에 들어섰다.

동시에 강송구의 왼손이 움직였다.

-앞서 오늘 경기에서 유일하게 강송구 선수를 상대로 안타를 만들었던 찰리 블레이즈!

-하지만 초구는 쉽게 공략하지 못합니다. 배트에 맞은 공이 포수와 주심의 뒤로 빠르게 넘어가면서 파울!

-찰리 블레이즈 선수가 낙차가 큰 변화구에 약한 모습을 보이거든요? 강송구 선수도 그런 부분을 잘 노린다면 쉽게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구째는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포심 패스트볼.

찰리 블레이즈는 그 공을 조용히 지켜봤다.

“볼!”

아쉽게 높게 빠지는 공.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던질 생각이겠지?’

찰리 블레이즈는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높은 코스의 공을 보여주는 강송구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너무 자신을 우습게 봤다고.

‘몸쪽으로 떨어지는 공에는 자신이 있다!’

이어지는 피칭.

두어 번 높은 코스로 공을 던지며 카운트를 쌓은 강송구가 2-2의 상황에서 몸쪽 낮은 코스로 공을 던졌다.

찰리 블레이즈는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던져진 공을 보고 기회라고 생각하며 빠르게 배트를 휘둘렀다.

부우우웅!

“아웃!”

-강송구 선수 오늘 경기 오늘 경기 18번째 삼진을 잡아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이제 남은 이닝은 단 2이닝! 하지만 강송구 선수의 투구수는 아직 여유롭고, 거기다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의 대기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선수가 이제야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요?

-대단하네요. 그저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7회 말을 깔끔히 끝낸 강송구.

그가 천천히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9회 말.

모두가 숨을 죽여 마운드에 오른 거인을 바라봤다.

19개의 삼진을 잡으며 박태오가 기록한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과 동률을 이룬 상황.

남은 아웃 카운트는 3개.

어쩌면 오늘 기록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기에 모두의 시선이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왜 이번엔 루비 카드를 줬지? 이 기록도 그렇게 흔한 기록이 아닌데 말이야.’

강송구의 의문에 우효가 대답했다.

-그건 기록의 역사 때문이지.

‘기록의 역사?’

-네가 깨부순 기록의 역사를 보면 모두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은 아무도 넘어서지 못한 기록이잖아.

‘그렇지.’

-하지만 이번 기록은 3년 전에 박태오가 기록한 파릇파릇한 신기록이었단 말이지.

‘즉, 그 기록을 넘어서지 못한 역사가 길면 길수록 내가 그 기록과 동률을 기록하거나 넘어섰을 때 내게 주어지는 보상의 크기가 커진다는 뜻이군.’

-그렇지!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생각했다.

‘한국에서 아무도 기록하지 못한 퍼펙트게임을 달성하면 도대체 어떤 보상을 줄까?’

-어쩌면 HoF등급의 카드를 줄 수 있겠지.

‘그거 끝내주겠군.’

그러면서 타자를 바라봤다.

9회 말의 첫 타자는 데빌스의 8번 타자.

-딱 삼진 2개만 더하라고.

‘그럴 생각이야.’

그가 우효의 응원을 뒤로하고 공을 던졌다.

첫 번째 아웃을 가볍게 잡아낸 강송구.

이어지는 승부에서도 그의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는 자신의 위력을 온전히 발휘하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오늘 경기 20번째 삼진을 잡아낸 강송구.

이어서 마지막 남은 타자를 상대로도 삼진을 잡아내면서 오늘 경기 21번째 삼진을 끝으로 경기를 끝냈다.

-경기 끝났습니다! 호크스의 강송구 선수가 9이닝 무실점의 완봉승을 거둡니다! 그것도 21K! 무려 한 경기에 21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말입니다!

-강송구 선수가 이번에도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대기록을 만들어냅니다.

-그냥……. 감탄만 나오네요. 시즌 초반에 누가 이런 모습을 상상했겠습니까?

-맞습니다. 시즌 초반에 130㎞/h를 겨우 던지던 강송구 선수가 이런 대기록을 계속 깨부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코리안 비스트! 그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강송구의 대기록에 놀라움을 표할 때.

기록을 달성한 강송구는 덤덤히 자신의 눈앞에 뜬 보상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보상으로 ‘다이아 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얻은 보상은 루비 카드와 다이아 카드.

거기다 미션으로 얻은 다량의 포인트까지.

-슬슬 한국이 좁군.

‘그렇지.’

그가 보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멀게만 느껴졌던 메이저리그.

그 꿈의 무대가 이제는 자신의 코앞까지 다가온 것을 강송구는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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