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준플레이오프 1차전(1)
퍼펙트게임의 여운은 제법 빠르게 지나갔다.
언론이 신나게 떠들던 것도 고작 일주일이 끝.
그렇기에 강송구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매 경기에 집중했다.
슈우우욱! 펑!
포수가 공을 잡기 무섭게 대전 호크스 파크가 홈팬들의 거대한 함성으로 흔들렸다.
강송구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10월 중순의 쌀쌀한 바람이 불었음에도 강송구의 흐르는 땀을 다 식히지는 못했다.
-퍼펙트게임 이후로 팀이 제대로 탄력을 받아서 결국에는 리그 3위 자리를 수성했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타자가 의욕이 떨어지는 표정으로 다시 타석에 섰다.
이미 최하위 순위를 기록하고 있는 고척 헌터스였기에 선수들의 의욕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흐흐흐! 유종의 미? 그런 건 다음 시즌이 기대되는 녀석들만 부르짖을 수 있는 마성의 말이지.
우효의 말처럼 다음 시즌도 썩 좋지 않은 결과가 예약된 고척 헌터스에게 유종의 미는 필요가 없다.
‘음…….’
-그래도 지난 시즌에는 중위권에서 놀았던 팀이 이렇게 몰락할 줄 몰랐네.
‘반대로 우리는 제법 잘 나가고 있지.’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야! 오늘은 여기까지인 것 같은데?
‘그렇군.’
8회 초를 끝내기 무섭게 박진수가 다가왔다.
“송구야. 감독님이 아이싱하래.”
“네, 수고하셨습니다.”
“내가 뭐 고생한 게 있다고……. 고생은 네가 했지.”
박진수의 말에 강송구가 덤덤히 마운드를 바라봤다.
-드디어 시즌 마지막 등판이 끝났군.
‘그래.’
오늘 강송구의 성적은 8이닝 1실점.
시즌 26경기에 출전해서 22승 2패를 기록하고 199이닝 12실점 평균자책점 0.54를 기록했다.
패배가 하나 붙은 것은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뒤에 잡힌 경기에서 6이닝 4실점으로 두 번째 패배를 기록했기 때문이었다.
패배의 이유는 손가락 물집.
아무리 강송구가 대단한 투수여도 손가락에 생긴 물집까지 극복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대단한 메이저리그 투수들도 손에 물집이 생기면 제법 고생을 하는 편이니까.
물론, 그 뒤에는 항상 긴 이닝을 소화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기에 호크스의 순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이윽고 9회 초의 마지막 타자를 마무리 투수인 곽민준이 손쉽게 잡아낸 순간 모두가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가을 야구다! 가을 야구!”
“하……. 우리가! 대전 호크스가! 진짜 가을 야구라니…….”
시즌 초의 호크스는 딱히 우승과 거리가 먼 팀이었기에 이번 경기에서 순위를 확정 지은 선수들의 마음은 그 어느 순간보다 벅찬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우효는 경기가 끝나기 무섭게 눈물을 흘리는 김효곤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훌쩍……. 짜…… 짜식 울기는!
그러면서 작은 눈에서 물을 열심히 쏟아냈다.
강송구는 그런 우효는 덤덤히 바라봤다.
‘언제 호크스의 팬이 다된 거지?’
그러거나 말거나 강송구가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구단에서 만든 ‘경축! 대전 호크스! 2030시즌 준플레이오프 진출 확정!’이라는 현수막을 구단 직원이 가지고 나왔다.
선수들이 붙어서 그 커다란 현수막을 들자 호크스 파크의 홈팬들이 더 큰 환호성을 내질러주었다.
와아아아아아!
기뻐할 만했다. 그리고 대전 호크스는 홈팬들이 기뻐할 만한 경기력을 꾸준히 보여줬다.
‘이제 남은 건 가을 야구지.’
쉽지 않을 것이다.
정규시즌의 경기와 포스트시즌의 경기는 다르니까.
하지만 지금 호크스의 선수단 구성은 좋았다.
기본적으로 15승 이상을 꾸준히 기록해 주는 든든한 상위 선발진과 필승조가 잘 갖춰진 불펜진.
거기다 타격도 상위타선만큼은 다른 상위권 팀과 비교해서 절대 밀리지 않았다.
수비에서도 나쁘지 않았다.
내야 수비진은 리그 상위권이었고.
외야 수비가 조금 아쉬웠지만, 그건 젊은 선수들이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실수들이었다.
‘어쩌면 올해가 호크스의 우승 적기일 수 있지.’
그 누구보다 호크스를 지켜본 이들이라면 이번 시즌만큼 우승하기에 좋은 시즌이 없었다고 판단할 것이다.
물론, 그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나머지 구단도 호크스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강송구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정규시즌이 끝나고.
강송구의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
-띠링!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플레이어의 활약에 따라서 ‘시즌 보상’이 차등지급됩니다.]
[이번 시즌에 모은 포인트는 다음 시즌에 모두 제거됩니다.]
[포스트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지금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모두 소모해 주세요.]
[현재 보유 중인 포인트는 총 103,413포인트입니다.]
[플레이어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성장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하면 시스템이 업그레이드됩니다.]
이제 강송구의 수준이 이제 메이저리그에 충분히 통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일까?
시스템도 그에 맞춰서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송구는 침대에 누워서 시스템이 아닌 이번 포스트시즌의 첫 상대를 생각했다.
‘와일드카드에서 올라올 팀은 웬만하면 리그 4위였던 인천 드래곤즈가 올라올 확률이 높다.’
리그 5위인 수원 나이츠가 와일드카드에서 좋은 기세를 탄다면서 인천 드래곤즈를 잡을 수 있겠지만…….
‘후반기에 썩 경기력이 좋지 않았지.’
거기다 탄탄한 베테랑들을 제외하면 로스터 대부분이 젊은 선수들인 수원 나이츠가 인천 드래곤즈보다 더 상대하기 껄끄러운 팀이었다.
‘젊은 선수들은 기세를 탈 때가 제일 무서우니까.’
물론,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금의 대전 호크스는 충분히 강한 팀이었다.
‘그저 내 역할만 잘 해낸다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슬쩍 TV를 켜니 와일드카드 1차전의 승자가 나오고 있었다. 허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원 나이츠의 마무리 투수.
그리고 역전 홈런을 때린 뒤에 주먹을 움켜쥐며 베이스를 빠르게 달리는 인천 드래곤즈의 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상대는 인천 드래곤즈네?
‘음…….’
새로운 벌떼 야구로 승리를 거머쥔 인천 드래곤즈를 보며 강송구가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다.
“포스트시즌의 첫 상대로 인천 드래곤즈면 수원 나이츠보다는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포인트를 언제 쓸 거야?
‘지금.’
그 말을 하는 동시에 강송구가 10만 포인트로 ‘HoF 에디션 카드’를 구매했다.
그의 수중에 있는 카드는 이제 ‘HoF 에디션 카드’ 2개가 전부였지만, 강송구는 진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카드는 언제 개봉할 건데?
‘카드는 조금 나중에 쓸 생각이다.’
-곧 포스트시즌인데?
‘딱히 준플레이오프나 플레이오프를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호크스는 거기서 무너질 팀이 아니야.’
강송구의 말에 우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맞지.
이제는 호크스의 팬이 다된 우효가 자신이 구매한 호크스의 점퍼를 바라봤다.
며칠 뒤에 있을 준플레이오프에서 포인트를 활용해서 작은 고슴도치가 입을 수 있게 변환시킬 생각이었다.
-후후후! 최!강!호!크!스!
우효의 음침한 웃음을 뒤로하고 강송구는 자신의 손에 들린 2장의 카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무기는 역시 극적인 상황에서 꺼내야지.”
* * *
인천 드래곤즈.
제2의 벌떼 야구를 구사하는 팀.
뛰어난 전력분석관과 젊은 선수들이 다수 포진된 수원 나이츠보다는 상대하기 수월한 이들이 준플레이오프에 올라왔다.
-이쪽도 상대하기 제법 껄끄럽지 않아? 이런 포스트시즌에는 불펜들을 쥐어짜서 1승을 거머쥐는 인천 드래곤즈도 무서운 상대일 것 같은데 말이야.
우효의 걱정스러운 조언에 강송구가 고갤 흔들었다.
‘확실히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인천 드래곤즈는 와일드카드에서 이미 불펜을 많이 소모했어.’
9회에 역전 홈런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던 경기였다.
당연히 두 팀의 불펜진은 5회가 넘어가기 무섭게 마운드를 들락날락했고 인천 드래곤즈도 불펜진을 제법 많이 소모해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1차전에서 내가 확실한 승리를 가져온다면 솔직히 말해서 2차전도 우리가 쉽게 가져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강송구의 그 자신감처럼 대전 호크스도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드래곤즈의 임성균 감독, ‘강송구를 잡아낼 자신이 있다. 우리는 충분히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할 능력이 있는 팀이다.’]
[호크스와 드래곤즈의 1차전! 그 승자는?]
[호크스의 김동식 감독, ‘우리는 강력한 승리카드인 강송구를 가지고 있다. 1차전에서 패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조건 승리를 가져오겠다.’]
[인천 드래곤즈! 대전 호크스와 상대하는 준플레이오프 1차전부터 총력전을 예고하다!]
[대전 호크스의 김명진 사장,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 1군 선수단 전원에게 명품 시계를 돌리겠다. 그리고 우승하면 한국시리즈 MVP에게 차를 선물할 생각이다.’]
벌써 언론들이 시끌시끌했다.
대전 호크스가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강송구가 포스트시즌에도 강할까?
인천 드래곤즈의 타선이 강송구를 공략할 수 있을까?
다양한 시선이 준플레이오프 1차전으로 쏠렸다.
그리고 찾아온 경기 날.
대전 호크스와 인천 드래곤즈.
두 팀이 맞붙게 된 준플레이오프.
전문가 대부분이 대전 호크스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를 점치고 있었지만, 몇몇 이들은 인천 드래곤즈의 임성균 감독과 그가 가진 강력한 불펜진이 어떤 변수를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평가를 하고 있었다.
점점 대전 호크스 파크에 들어서는 관중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경기 시각이 다가왔다.
국민의례와 시구가 끝나고 천천히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가 오른손으로 모자를 고쳐 쓰며 주변을 살폈다.
‘포스트시즌 첫 경기에 딱 맞는 날씨군.’
10월 중순임에도 오늘 날씨가 제법 따뜻했다.
손끝의 감각도 나쁘지 않았다.
-그것보다 관중석이 제법 비었네?
‘아마 곧 들어찰 거다.’
아직 관중석 일부가 비어 있었다.
금요일 경기였기에 퇴근한 직장인들이 2~3회에 저 비어 있는 관중석을 모두 채워줄 것이다.
주심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플레이 볼!”
경기가 시작되고 강송구는 건조한 눈으로 박진수와 사인을 교환했다.
초구는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강송구의 초구는 바깥쪽에 구성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반적인 타자라면 그 사실을 파악해서 강송구의 초구를 잘 공략하겠지만…….
우습게도 강송구의 바깥쪽 초구 패스트볼은 알고도 치지 못할 절묘한 코스에 걸쳤다.
드래곤즈의 1번 타자.
정향운이 이를 꽉 물었다.
‘아니, 무슨 코스가 이렇게 절묘해?’
볼 때마다 놀란다.
바깥쪽 코스로 나가는 공은 단 하나도 실투가 없다.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나마 몸쪽으로 파고드는 공은 해볼 만했다.
바깥쪽 코스보다는 조금은 실투가 나오기는 했으니까.
물론, 강송구도 그 사실을 알기에 몸쪽으로 집어넣는 공은 좌타자가 싫어하는 컷 패스트볼이거나 우타자가 싫어하는 싱커가 주류를 이루었다.
때리면 정타가 나오지 않는 공들을 던지면 타자들은 좋다고 배트를 휘둘렀고 결과는 당연히 한 가지뿐이었다.
빠각!
“아웃!”
2구째 승부.
강송구가 몸쪽으로 던진 컷 패스트볼에 배트가 아주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반으로 쪼개졌다.
1루로 뛰던 정향운은 일루수가 가볍게 공을 잡아내는 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고 드래곤즈의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당연히 투수를 향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씨X……. 공 진짜 ㅈ같이 던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