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스프링 트레이닝(2)
스프링 트레이닝이 시작되었다.
80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야구를 위해서 플로리다의 어느 훈련장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인원은 또 세 종류로 나뉘었다.
결과를 남겨야 하는 자.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
마지막으로 이미 자리가 확정된 자.
결과를 남겨야 하는 마이너리거들은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좋은 모습을 남기고 싶어 했다.
훈련은 물론이고 청백전에서도 그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40인 로스터의 인원들이나 메이저리그 백업 맴버들은 결과를 남겨야 하는 마이너리거보다 훨씬 여유가 있었다.
물론, 그들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입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으니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자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미 자리를 잡은 메이저리거들은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롭게 익히고 있는 구종을 던져보거나 지난 시즌에 드러난 약점을 점검하며 시즌을 준비했다.
강송구도 이미 자리가 확정된 선수로 다른 메이저리거와 함께 여유롭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메이저리거와 다르게 어느 정도 검증을 거쳐야 하지만 심각하게 두들겨 맞지 않는 이상 절대 마이너로 내려갈 일은 절대 없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도 있으니까.
“음…….”
그래, 천천히 준비하면 되는 상황.
강송구는 그런 자신의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등판을 기대하고 있었다.
슈우우욱! 펑!
“나이스 볼!”
강송구가 던진 공을 받은 조던 델가도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키 스토리 감독도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깔끔한 스플리터군.”
“패스트볼이 나온 뒤에 저 스플리터가 튀어나오면 타자들이 비명을 내지르겠군요.”
“그래.”
벤치코치인 크리스티안 피넬리의 말에 미키 감독이 고갤 끄덕이며 수긍했다.
저 공은 마구였다. 문제는 강송구가 가진 무기가 저것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어서 던진 공은 커브였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저런 스플리터를 던지면서 저런 커브를 던질 수 있다니…….”
“그러니 저 선수를 위해서 조던 델가도를 데려왔지. 저런 수준의 구종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슬라이더…….”
“컷 패스트볼도 소름이 돋는군.”
감탄의 연속이었다.
강송구의 불펜피칭을 보고 있던 다른 선수들도 그런 강송구의 무력시위에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저렇게 공을 던질 수 있지?”
“싱커도 던져? 저기서?”
“너클 커브도 있어.”
“Fxxk! 세상 참 불공평하구만!”
몇몇 선수들은 강송구의 능력을 보고 흥미를 느꼈으며, 몇몇 이들은 작은 질투를 느꼈다.
그러는 사이에 강송구가 모든 점검을 끝냈다.
-메이저리그 공인구가 좋은데?
우효의 말처럼 메이저리그 공인구가 오히려 손에 더 잘 감기는 느낌이었다.
그때 조던 델가도가 그를 불렀다.
“헤이! 캉!”
“음?”
“너클볼도 던져봐! 그건 안 던졌잖아.”
그 말을 듣고 곁에 있던 몇몇 선수들이 강송구를 괴물을 보는 것처럼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에이……. 설마 너클볼도 잘 던지겠어?’라는 마음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강송구가 던진 너클볼은 완벽한 공이었다.
완벽히 공의 회전이 죽은 공.
조던 델가도가 짐승과 같이 반응해서 그 공을 잡아낸 뒤에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굿! 나이스 볼!”
모든 점검을 끝낸 강송구.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불펜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그를 바라보는 선수들의 눈에는 더 짙은 질투심과 경외감이 생겼다.
그리고 곧 시범경기 일정이 가까워졌다.
* * *
-송구 강! 한국에서 온 미스터 제로가 3회 초의 마운드에 오릅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정말 기대를 많이 하고 한국에서 데려온 투수입니다. 한국에서는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한 시즌에 두 번의 퍼펙트와 노 히터를 기록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선수군요.
-거기다 한국시리즈라는 큰 경기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여줬던 선수이기에……. 와일드카드에서 잘 미끄러지는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에게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될 선수일 겁니다.
짧게 자른 머리 위로 모자를 썼다.
이제는 주황색의 유니폼이 아닌 보라색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서 마운드를 지킬 뿐.
‘99’라는 숫자를 등에 새긴 유니폼을 입은 그가 숨을 크게 내쉬고는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시범경기 상대는 같은 그레이프프루트 리그인 탬파베이 레이스로 데뷔전 16개의 홈런을 제외하고 매 시즌 2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주는 강타자인 그렉 헌트가 강송구의 첫 상대였다.
-나쁘지 않은 상대네.
‘그렇지.’
여러 가지를 시험하기 좋은 상대.
고개를 끄덕인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그렉 헌트는 처음 보는 상대를 보고 일단은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강송구가 던지는 공은 다양했다.
초구는 싱커.
2구째는 스플리터.
3구째는 슬라이더.
4구째는 커브.
여러 가지 공을 섞어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그렉 헌트는 6구째 승부가 되어서야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꼭 홈런을 맞길 바라는 것 같단 말이지.’
구속도 제각각이었다. 7구째에 던진 슬라이더는 3구째에 던진 슬라이더와 다르게 구속이 조금 더 느렸고, 8구째에 던진 싱커는 초구로 던진 공과 무브먼트, 구속이 조금 달랐다.
따악!
-높게 떠오르는 고오오오오옹!
-캉이 11구 승부 끝에 솔로 홈런을 허용합니다.
-그렉 헌트 선수가 캉의 실투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저런 안일한 공은 맞을 수밖에 없어요.
첫 타자를 상대로 맞은 홈런.
하지만 강송구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과 다르게 이 정도 구속으로 타이밍을 속일 수 없군. 조금 더 타이트한 설계가 필요해.’
조금만 어설픈 공이 들어가면 공이 커트 되거나 방금 맞은 홈런처럼 큰 타구가 나온다.
-오늘 신나게 두들겨 맞으려고 올라왔는데 첫 타자에게 아주 시원하게 당했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메이저리거는 다르군.’
덤덤한 강송구와 반대로 홈런을 때려낸 그렉 헌트는 불쾌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찝찝하네.’
이어지는 타자는 더블A 소속의 젊은 유망주.
앞선 그렉 헌트와 다르게 강송구는 4구 승부 끝에 아주 깔끔한 삼진을 잡으며 첫 아웃을 잡아냈다.
이어지는 승부도 비슷했다.
메이저리거와 트리플A 선수를 상대로 강송구는 제법 많은 공을 던지며 어느 정도 구속까지 상대를 속일 수 있을지, 그리고 상대가 배트를 휘두른 코스가 어떤 코스인지 머릿속으로 담아냈다.
반대로 더블A 이하의 선수를 상대로는 누구보다 깔끔하게 아웃을 잡아내며 이닝을 소화했다.
그렇게 끝이 난 첫 등판.
강송구의 시범경기 첫 등판 성적은 생각보다 상당히 부진한 3이닝 5실점이었다.
하지만 3이닝 5실점을 허용한 강송구의 표정은 덤덤했고, 그런 강송구를 상대로 5점을 만들어낸 탬파베이의 타자들은 알 수 없는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다.
* * *
[강송구는 국내용 투수다? 시범경기 3경기 8이닝 11실점.]
[강송구의 부진은 무엇이 문제인가?]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는 강송구의 성적! 시범경기 성적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라스베이거스 관계자, ‘고작 시범경기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보다 캉을 믿고 있다.’]
-ㅋㅋㅋㅋ 부진은 무슨ㅋㅋㅋ 그냥 수준이 그게그거짘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지난 시즌은 뽀록이었다.
-쯧쯧 저래서 똥볼은 안됨. 솔직히 강송구 구속이 많이 좋아졌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기엔 무리가 있지.
-ㅋㅋㅋㅋㅋㅋ 대전 호크스 팬들 괜히 강송구뽕에 취해서 응원하다가 시무룩해졌죠?ㅋㅋㅋㅋ
-이게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의 차이다. ㅋㅋㅋㅋㅋ 저런 쓰레기 투수에게 털린 한국 타자들 수준 실화냐?
-응, 그냥 시범경기야.
-응, 아무리 시범경기여도 저렇게 폭망은 안 해.
-ㅋㅋㅋㅋㅋㅋ 진짜 송구빠들 수듄ㅋㅋㅋ
-더블A 선수는 귀신같이 잡으면서 메이저리거한테는 신나게 두들겨 맞음. 딱 양학용 투수임ㅋㅋㅋㅋㅋ
국내 언론과 커뮤니티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강송구가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기 무섭게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신나게 그를 물어뜯었다.
물론, 강송구는 신경 쓰지 않았다.
“끝났다.”
-벌써?
“그래, 역시 메이저리그야. 한국과 다르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곤욕스러웠다.”
-전혀 곤욕스러워한 표정이 아니었는데……. 촵촵촵!
우효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강송구를 바라보다가 남은 구아바 조각을 입어 털어 넣고는 다양한 과일이 담긴 쟁반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과일이 좋아?”
-당연하지! 흐흐흐!
메이저리거가 된 뒤로 강송구는 여유가 되면 우효가 좋아하는 과일은 잔뜩 사다 주었다.
덕분에 요즘 우효는 행복한 식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런데 너 살이 좀 쪘다.”
강송구의 말을 듣고 우효가 움찔 몸을 떨었다.
-뭐……?
“너 살쪘다고.”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는 동공.
우효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
-아…… 아니야. 아직 많이 안 쪘어.
“너 요즘 쳇바퀴 돌리는 것도 3분을 못 넘잖아. 처음 쳇바퀴를 사줬을 때는 10분도 거뜬했던 거 기억 안 나?”
강송구의 팩트에 우효가 멍하니 주저앉았다.
-고슴도치 세계의 최고 미남인 내가…… 꿀꿀이가 되었다고? 아…… 아니야! 거짓말이야!
우효가 절망에 빠진 모습을 뒤로하고 강송구는 차분히 다음 시범경기 등판을 준비했다.
오늘 상대는 악의 제국이라는 별명을 가졌지만, 최근 성적은 썩 좋지 않은 과거의 강팀인 뉴욕 양키스였다.
“이제는 경기 플랜을 준비해 봐야겠어.”
이번 시범 등판에서 5이닝 정도 소화할 것이라고 미키 스토리 감독에게 들었다.
전체적인 메이저리거들의 수준과 어떤 성향을 지녔는지를 파악한 강송구에게 이번 시범 등판은 실전에 돌입하기 전에 전체적인 부분을 점검하는 중요한 경기였다.
신나게 두들겨 맞은 다른 경기와 다르게 이제는 성적을 조금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숙소를 나서는 강송구.
절망에 빠졌던 우효도 급히 강송구의 뒤를 빠르게 따라와서는 어깨에 올라탔다.
강송구가 숙소 근처에 있는 찰리 브레이크 파크에 도착하기 무섭게 조던 델가도가 그를 불렀다.
“캉! 몸을 풀 생각이지?”
그의 물음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나랑 같이 러닝을 좀 하자.”
다시 고갤 끄덕이는 강송구.
그를 보며 조던 델가도가 씩 웃었다.
곧이어 같이 러닝을 뛰기 시작한 두 사람.
“그래서 오늘 경기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메이저리거들의 수준이 어떤지 간만 볼 거야?”
그도 알고 있었다.
강송구가 지금까지 다양한 공을 던지며 메이저리그가 어떤지를 조금이나마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조금의 성과가 없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팀으로나 선수 개인적으로나 문제가 생긴다.’
팬들은 물론이고 언론에서 신나게 라스베이거스와 강송구를 흔들기 시작할 것이다.
아니, 물어뜯는 것은 벌써 시작됐다.
‘그런데도 저렇게 여유로운 게 이상한 거지.’
그때 강송구가 입을 열었다.
“아니, 이제는 지금까지 테스트해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서 경기의 플랜을 만들어야지.”
그 말에 조던 델가도가 씩 웃었다.
“좋아! 그러면 오늘 기대해도 되겠네. 그런데 어떤 방식으로 공을 던질 거야? 넌 다양한 피칭 스타일을 가진 투수라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컷 패스트볼과 싱커, 체인지업을 활용해서 땅볼을 유도하는 피칭을 이어나갈까?
아니면 슬라이더와 커브를 활용해서 정통파 투수처럼 착실하게 카운트를 잡을까?
혹시나 커브와 너클 커브를 활용해서 떨어지는 공에 약한 타자들에게 삼진을 잡아낼 생각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너클볼을 던지며 모두가 예측할 수 없는 공을 계속해서 던질까?
기대감이 가득한 조던 델가도의 물음에 강송구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톰 글래빈처럼 던질 거다.”
“톰 글래빈?”
그러고는 힐끔 상태창을 봤다.
[톰 글래빈의 바깥쪽]
-종류: 특성
-효과: 포심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바깥쪽 코스로 던질 때, 제구력의 보정을 받습니다.
-바깥쪽 코스로 공을 던질 시 주심이 당신의 제구력에 속아 존을 넓힐 확률이 조금 늘어납니다.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 파악이 빨라집니다.
(퀘스트 완료 보상)
-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모든 구종이 특성의 효과를 받습니다.
(너클볼은 완벽히 제구되지 않습니다. 다만,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는 들어갈 확률이 매우 증가합니다.)
[특성 퀘스트 목록]
-특성 퀘스트 완료!
특성 퀘스트 완료권으로 얻은 새로운 능력.
강송구는 이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만이 아닌 다양한 구종을 바깥쪽 코스에 정확히 꽂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어쩌면 너클볼을 던지는 톰 글래빈도 좋겠지.”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강송구를 보며 조던 델가도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너클볼을 던지는 톰 글래빈?”
우효도 그런 강송구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