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91화 (91/198)

#91. 에이스의 품격(2)

LA 에인절스의 중견수.

오늘 경기 1번 타자로 출전한 스위치히터인 에릭 롱마이어가 마운드 위의 강송구를 노려봤다.

첫 타석을 좌타석에서 시작한 그는 초구부터 몸쪽 가까이에 붙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바깥쪽을 공략하는 투수가 아니었나?’

컨트롤과 무브먼트로 상대를 홀딱 속이는 유형의 투수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강송구의 초구는 구위로 윽박지르는 투수들처럼 몸쪽 높은 코스로 파고들었다.

‘뭐…… 나쁠 것은 없지.’

에릭 롱마이어가 고갤 끄덕였다.

굳이 깊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치기 좋은 공이 날아들면 친다.

오직 그 생각만을 하며 다시 타격자세를 잡았다.

강송구의 경기 영상을 자주 조사했던 에릭 롱마이어는 최대한 바깥쪽으로 빠지는 싱커나 체인지업을 조심하며 패스트볼과 커브의 타이밍에 맞추려고 노력했다.

슈우욱! 펑!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나온 2구째.

이번에는 바깥쪽 구속에 정확히 걸치는 싱커였다.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을 점검하려는 것처럼 날카롭게 제구된 공이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 꼭짓점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카운트는 1-1의 상황.

에릭 롱마이어는 카운트가 2-2가 될 때까지 조금은 공을 지켜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역시……. 바깥쪽 코스는 노리지 않는 게 좋겠어.’

저런 제구력에 섞여 나오는 변화구를 때려낼 능력이 지금의 에릭 롱마이어에겐 없었다.

‘그래도 보였다.’

강송구가 던진 포심 패스트볼이 보였다.

만약에 몸쪽으로 비슷한 구속의 공이 날아든다면 충분히 안타를 만들어낼 자신이 생겼다.

그제야 에릭 롱마이어가 배트를 아까보다 아주 조금은 짧게 쥐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몸쪽으로 날아드는 90마일 전후의 패스트볼.

그것을 노리면 잡아낼 수 있다.

‘칠 수 있다.’

그런 에릭 롱마이어에게 강송구가 5구째 던진 공으로 패스트볼 계열의 공을 던졌다.

그가 생각했던 구속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드는 공을 보고 에릭 롱마이어가 두 눈을 반짝였다.

‘왔다! 이건 꼭 때려야 해!’

그는 공이 몸쪽에 살짝 몰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누구보다 시원스럽게 배트를 휘둘렀다.

그는 확신했다.

저 괴물을 상대로 안타를 때려냈구나.

하지만 현실과 상상은 달랐다.

빠각!

그가 휘두른 배트는 반으로 쪼개지며 높게 떠올랐고 그가 때려낸 공은 강송구가 잡기 편하게 적당한 속도로 굴러갔다.

이윽고 깔끔히 1루로 공을 던지며 1회 말의 첫 번째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에릭 롱마이어는 깨달았다.

“아! 커터!”

그래, 자신이 커터를 잊고 있었다고.

다음 타석부터는 조심해야겠다고.

하지만 그는 몰랐다. 강송구의 커터가 예전과 다르게 좀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어지는 강송구의 피칭.

LA 에인절스의 2번 타자인 데이비드 플레처를 상대로도 위력적인 피칭을 선보이며 아웃을 잡아냈다.

이번 승부에서도 강송구가 범타를 잡아내기에 던진 공은 컷 패스트볼이었다.

1회 말의 마지막 타자.

LA 에인절스에서 가장 타격감이 좋은 남자.

27시즌만큼은 그 마이크 트라웃을 뛰어넘는 괴물 같은 활약을 하며 LA 에인절스의 팬들에게 ‘포스트 트라웃’이라는 별명을 얻은 벤 린드가 타석에 들어섰다.

물론, 그 뒤로는 꾸준히 하향세.

그래도 매 시즌 3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주는 강타자로 아직도 많은 기대를 받는 타자였다.

하지만 그런 벤 린드도 오늘 강송구가 던지는 컷 패스트볼을 제대로 때려내지 못했다.

4구 승부 끝에 높게 떠오른 공.

이루수인 랜디 에드워즈가 가볍게 뜬공을 처리하며 그렇게 1회 말이 끝을 맺었다.

마운드를 내려가는 강송구.

[배트 브레이커]

-종류: 전용 특성

-효과: 컷 패스트볼의 구속이 5㎞/h 증가하고, 구위와 무브먼트가 크게 상승합니다.

-반대 손 타자의 배트를 부러트릴 확률이 매우 증가합니다.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를 던질 수 있습니다.

[특성 퀘스트 목록]

-특성 퀘스트 완료.

[특성 퀘스트 보상]

-마리아노 리베라의 커터

그가 특성 퀘스트 완료권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한 커터를 확인하며 흡족히 미소를 지었다.

“깔끔하군.”

* * *

“스트라이크 아우웃!”

호쾌한 주심의 아웃 콜.

LA 에인절스의 9번 타자이자 팀의 포수인 후안 팔렌코는 타석에서 벗어나 힐끔 마운드의 투수를 바라봤다.

마운드 위의 투수.

강송구는 삼진을 잡는 순간에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누구보다 빠르게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는 후안 팔렌코의 두 눈에는 두려움과 경외감이 가득했다.

‘저 컷 패스트볼……. 완전히 언터처블이야. 어제 영상 자료에서 봤던 커터와 전혀 다른 공이라고.’

특히 좌타자들이 지옥을 맛보고 있었다.

전에 던지던 커터도 대단한 공이었다.

하지만 지금 강송구가 던지는 커터는 대단함을 넘어서 뭔가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질 정도로 소름이 돋는 구종이 되었다.

그래, 몇몇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온 리베라의 삼진 베스트 피칭 무비에서 나오는 커터처럼 말이다.

‘설마…….’

아닐 것이다.

설마 그 리베라의 커터일까?

그래도 그와 비슷한 수준의 공은 맞을 것이다.

후안 팔렌코가 급히 포수 장비를 착용하면서 팀의 에이스인 다리우스 킬슨을 살폈다.

현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불운한 사나이.

지난 시즌 4월 한 달 동안에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음에도 그가 거머쥔 성적은 0승 4패였었다.

올해도 비슷했다.

‘제발 오늘은 이겼으면 좋겠는데…….’

그래, 그랬으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이길 것 같지 않았다.

후안 팔렌코의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아까 강송구가 보여준 컷 패스트볼의 궤적만이 남아 있었다.

확실히 대단한 피칭이었다.

강송구가 던지는 커터가 바깥쪽 경계선을 넘나들며 타자를 현혹했고 덩달아 다른 구종도 더 위력적이게 변했다.

우타자 바깥쪽 경계면을 타고 노는 커터.

그러다가 몸쪽에 파고드는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에 너무나 허무하게 삼진을 허용한다.

좌타자를 상대로는 그냥 몸쪽에 냅다 커터를 쑤셔 넣으면 자연스럽게 범타가 나오거나 삼진이 나왔다.

그야말로 마법의 공이었다.

그렇게 끝이 난 3회 말.

강송구가 9타자 연속 범타라는 소름이 돋는 기록을 만들며 마운드를 내려온 순간.

그리고 4회 초의 마운드에 다리우스 킬슨이 올라간 순간부터 경기장의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다.

정확히는 마운드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다리우스 킬슨의 피칭이 더욱 거칠어졌다.

‘저 멍청이!’

포수인 후안 팔렌코가 화들짝 놀랐다.

다리우스 킬슨의 장점은 준수한 제구력과 수준급의 무브먼트를 활용한 땅볼 유도에 있었다.

그런데 지금 다리우스 킬슨은 마치 강속구 투수처럼 억지로 구속을 끌어올려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확실히 싱커는 위력적이었다.

93마일의 하드 싱커.

하지만 제구가 되지 않는 공은 결코 메이저리그의 타자들을 상대로 큰 효과를 볼 수 없었다.

“베이스 온 볼스!”

그 결과는 당연히 볼넷이었다.

급히 마운드로 올라가는 후안 팔렌코.

그가 다리우스 킬슨을 만류했다.

“왜 그래? 상대 투수가 그렇게 신경 쓰여?”

“…….”

“킬슨. 넌 강속구 투수가 아니야! 왜 갑자기 강속구 투수처럼 공을 던지는 거야?”

“상대도 똑같이 던지잖아.”

“맙소사……. 킬슨! 내 말 잘 들어. 넌 그냥 플러스급의 싱커를 가진 투수이고……. 저 망할 괴물은 리베라의 커터를 가진 투수야. 당연히 같은 레퍼토리로 던져도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어.”

“뭐? 리베라?”

“그래! 저 망할 투수가 가진 커터가 그 정도 수준이 된다는 뜻이야. 못 봤어? 지난 시즌에 3할의 타율과 38개의 홈런을 때렸던 벤도 저 커터에 당했어.”

“……”

“네 싱커로 그렇게 윽박질러서 벤을 상대로 깔끔히 아웃을 잡아낼 자신이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면 네 피칭을 해. 알겠어?”

“그래, 알겠어.”

조금은 긴 대화가 끝나고 주심의 부름에 후안 팔렌코가 길게 한숨을 내뱉고 홈플레이트로 돌아왔다.

‘하여간 투수란 생물체는 이해할 수 없어.’

뭐, 조금은 이해가 간다.

다리우스 킬슨은 조급한 것뿐이다.

아직 시즌 첫 승리도 얻지 못했으니까.

“후우…….”

후안이 한숨을 내뱉었다.

이상하게 오늘 느낌이 좋지 않았다.

‘오늘 경기 정말 좋지 않아.’

상대 투수에게 말리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아직 위기는 시작도 되지 않았다. 타석에 라스베이거스의 2번 타자인 카디안 스타우트가 들어섰다.

오늘 경기 가장 주의해야 할 타자.

후안은 낮은 코스의 싱커를 요구했다.

‘천천히 하자.’

고개를 끄덕인 다리우스 킬슨이 숨을 크게 내뱉고는 빠르게 자신의 오른팔을 휘둘렀다.

낮게 잘 제구된 싱커.

후안은 코스가 좋다고 생각하며 미트를 내밀었다.

그때였다.

절대로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 배트가 빠르게 후안의 눈앞을 지나서 공을 때려냈다.

빠악!

듣자마자 알 수 있는 큰 타구.

라스베이거스의 천재 타자인 카디안 스타우트는 낮게 제구된 싱커를 무릎까지 꿇어가며 때려냈다.

그리고 높게 떠오른 타구는 그대로 큰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의 담장을 넘어갔다.

화려한 배트 플립을 하며 베이스를 도는 타자.

그제야 다리우스 킬슨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이 했던 실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경기.

또 질 것 같았다.

* * *

[인터넷 중계 댓글창]

-엌ㅋㅋㅋㅋㅋㅋㅋ 패배귀신 쉑……. 또 패배각 떴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토토충은 다리우스 킬슨이 너무 좋다. 패배귀신 다리우스가 너무나도 좋다.

-진짜 패귀 디그롬이랑 똑같은 놈임ㅋㅋㅋㅋ 진짜 왜 저기서 저런 공을 던지냐?

-ㄴㄴ 제구는 좋았음. 그냥 상대가 나빴지.

-그것보다 오늘도 우리 송구는 완봉각 보고 있네.

-캬…… 국뽕 찬다. 특급 도우미 카디안 스타우트도 오늘 경기력 좋아 보인다!

4회 초에 나온 선취점.

2 대 0으로 앞서나가는 웨스트스타즈.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강송구는 감각적인 배팅을 보여준 카디안 스타우트를 보며 고갤 끄덕였다.

‘내가 저 코스에 싱커를 던졌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겠어. 저 타격 능력만큼은 나도 무서울 정도야.’

-확실히 대단한 선수이긴 해.

저런 타격 능력을 갖춘 선수가 유격수라니.

그 가치는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10년 4억 달러를 받는 최초의 유격수가 될지도 모르겠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저기서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그 정도 금액을 충분히 받아낼 능력이 있는 선수가 바로 카디안 스타우트였다.

이윽고 4회 초가 끝이 났다.

2점을 먼저 내준 다리우스 킬슨은 정신을 차리고 낮은 코스로 공을 던지며 아웃을 잡아냈다.

다시 메이저리그 최고의 싱커볼러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아마 본능적으로 알고 있겠지.

오늘 경기가 방금 내어준 2점으로 이미 크게 기울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4회 말.

강송구가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이번에는 왼손으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보고 LA 에인절스의 1번 타자.

에릭 롱마이어가 조던 델가도에게 물었다.

“혹시 저 친구 왼손으로도 커터를 던져?”

조던 델가도가 씩 웃으며 답했다.

“100마일짜리 커터 감당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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