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좌타킬러(1)
C.J 포스터는 좋은 투수다.
평균 95~96마일 사이의 포심 패스트볼.
메이저리그 평균은 되는 커브.
마이너리그에서 배운 것치고는 생각보다 빠르게 숙달이 된 플러스급의 싱커.
마지막으로 준수한 슬라이더까지.
C.J 포스터는 충분히 선발로 뛰어도 제 몫을 해줄 투수로 전문가들의 호평을 듣고 있는 투수다.
거기다 대단한 노력가이자, 누구보다 승부욕이 뛰어나고, 재능도 넘치는 가만히 놔둬도 승승장구할 타입의 젊은 선수였다.
하지만 그런 C.J 포스터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찰리! 슬라이더를 포기하는 게 좋겠어. 계속해서 슬라이더와 싱커를 던지면 손목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
지난 시즌.
손목의 통증을 느끼고 병원에 찾아간 C.J 포스터에게 들려온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자신의 주 무기인 싱커를 쓸 수 없다는 말에 그는 큰 충격에 빠져 한동안 심리적으로 힘들어했다.
거기다 이제야 손에 익던 슬라이더까지 포기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소식이라면 싱커를 대신해서 익힌 투심 패스트볼이 기존에 던지던 싱커와 비슷한 궤적이 나와서 충분히 대체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언론은 C.J 포스터가 싱커를 던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가 던지는 구종은 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슬라이더의 대체재는 찾을 수 없었다.
횡으로 휘는 구종을 쉽게 대체할 수 없으니까.
그때 나타난 것이 강송구였다.
압도적인 컷 패스트볼을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C.J 포스터는 조금씩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이렇게 찾아와 부탁한 것이다.
컷 패스트볼을 가르쳐달라고.
당연히 강송구는 고갤 끄덕였다.
못 알려줄 것도 없었다.
다만, 알려준다고 투수가 그걸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크게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음날.
강송구는 C.J 포스터와 함께 불펜에 섰다.
오늘 등판이 있음에도 시간을 조금 내서 그에게 컷 패스트볼 그립과 던지는 요령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내 커터는 리베라의 커터처럼 패스트볼 그립으로 커터를 던지되 중지를 이렇게 눌러서 던지는 편이야.”
슈우우욱! 펑!
날카로운 커터가 포수의 미트에 완벽히 들어갔다.
C.J 포스터는 두 눈을 반짝이며 강송구의 피칭을 보며 강송구가 알려준 커터 그립을 쥐었다.
다를 것은 없었다.
패스트볼 그립이었으니까.
다만, 던질 때 중지에 힘을 주고 던져야 했기에 이 부분을 의식하며 던지니 공이 그리 위력적이지 않았다.
“영…… 아니네.”
“어쩔 수 없지. 이제 그립을 배웠는데.”
C.J 포스터가 혀를 길게 뺐다.
-완전 밋밋한 커터네.
우효도 C.J 포스터의 커터를 보며 고갤 흔들었다. 하지만 강송구는 C.J 포스터의 커터를 제법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커터의 변화가 무딘 편이지만, 구속도 패스트볼과 비슷하고 투구폼의 변화도 없다.’
조금만 커터가 꺾이기만 한다면 충분히 제 몫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커터를 던질 때 볼 로케이션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도 배워야겠지만…….
‘그건 오늘 경기에서 보여주면 대충 감을 잡겠지.’
슈우우욱! 펑!
“캉! 어때? 이번에는 제대로 꺾였지!”
잔뜩 들뜬 C.J 포스터를 보며 그가 단호히 고갤 흔들었다.
“아니, 밋밋한 패스트볼이었다.”
* * *
볼티모어 오리올스.
최근 양키스와 레드삭스가 부진에 빠진 동부지구에서 새로운 강자가 된 구단이자, AL에서 가장 화끈한 타선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구단이다.
특히, ‘데이비드 코르테스’-‘라이언 클리퍼드’-‘코리 시거’-‘호세 알바라도’로 이어지는 좌타자 라인업은 오른손 투수에게 그야말로 지옥과 같은 경험을 선사했다.
올해도 다를 것이 없었다.
지난 시즌에 3년 약 9,000만 달러의 계약을 체결하며 볼티모어에 합류한 코리 시거는 이번 시즌에도 37살이라는 나이가 어울리지 않는 활약을 보여주며 볼티모어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고.
지난 시즌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풀타임을 뛴 데이비드 코르테스는 올해는 리드오프로 뛰며, 약 0.300/0.400/0.500의 슬래시 라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호세 알바라도는 3년 연속 30홈런을 때려냈고.
라이언 클리퍼드는 5년 연속 100타점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하위타선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타선이 약한 팀에 가면 충분히 중심 타선에 들어갈 수 있는 타자들이 볼티모어의 하위타선에 다수 배치되어 있었다.
쉬어가는 구간이 없는 타선.
그게 볼티모어가 자랑하는 강력한 타선이었고.
그 덕분에 볼티모어는 현재 AL 동부지구에서 확고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타자들이 지금 라커룸에 앉아 긴장 어린 시선으로 감독이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리그 최고의 투수라 생각해야 한다.”
선수들은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들의 손에 있는 것은 상대 투수의 모든 것이었다.
전력분석관이 나눠준 종이 자료는 기본.
아이패드에 자세히 기록된 강송구의 지표와 사소한 습관까지 모두 나와 있는 VR 영상까지 모두 살펴봤다.
그리고 나온 그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상대는 시카고 컵스의 그 괴물과 동급이다. 아니,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그 괴물보다 더 지랄 맞지.”
시카고 컵스의 에이스는 잦은 부상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지만, 라스베이거스의 에이스는 달랐다.
10이닝 완봉도 거뜬한 이닝이터였다.
“오늘 경기는 단 1점으로 갈릴 거다.”
그렇기에 더더욱 타자들의 집중을 요구했다.
그렇게 경기 시각이 다가왔다.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가득 채운 라스베이거스의 팬들이 큰 목소리로 환호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특히, 최근에 강송구의 새로운 별명이 된 ‘타이탄’을 계속 외치며 그가 마운드에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라스베이거스 웨스트스타즈의 팬인 젊은 소방관이 시구자로 마운드에 올랐다.
제법 덩치가 큰 소방관은 깔끔히 공을 던진 뒤에 환히 웃으며 마운드를 내렸다.
이어진 국민의례가 끝나고.
그 뒤를 이어서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타이탄! 타이탄! 타이탄! 타이탄!
강송구의 새로운 별명을 부르짖는 팬들.
볼티머오의 선수들은 마운드에 오른 거인을 보며 조금은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저 선수가 캉이라고?’
‘정말 크군…….’
‘브랜든이랑 덩치가 비슷한데?’
하지만 강송구가 연습 피칭으로 90마일 초반의 패스트볼을 던지자 조금은 긴장을 풀었다.
좌타석에 볼티모어의 리드오프인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들어서기 무섭게 주심이 경기의 시작을 알렸다.
“플레이 볼!”
드디어 부상에서 복귀한 조던 델가도.
그가 포수 마스크를 고쳐 쓰며 생각했다.
‘C.J에게 커터의 모든 것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그렇다면 그것에 맞게 리드를 잘해야겠다고 생각한 조던 델가도가 바깥쪽으로 초구를 요구했다.
‘바깥쪽 패스트볼.’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이윽고 그의 손에서 오늘 경기의 첫 번째 공이 빠져나갔다.
* * *
데이비드 코르테스.
좋은 타자다.
리드오프이면서 준수한 갭파워와 홈런파워를 두루 갖춘 그야말로 만능에 가까운 타자니까.
그래, 어쩌면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모두 개화한다면 그 마이크 트라웃을 뛰어넘는 대단한 선수가 될 가능성도 제법 있었다.
물론, 현실의 벽은 높다.
마이크 트라웃이라는 천재는 짧은 기간에 두 번은 나올 만한 재능이 아니었다.
적어도 몇십 년은 더 있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데이비드 코르테스는 바깥쪽 낮은 코스를 제외하면 모든 존이 핫존이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그런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묘한 표정으로 강송구의 초구를 조용히 바라봤다.
‘생각보다 코스가 까다롭다.’
처음에는 왜 다른 타자들이 강송구가 던지는 바깥쪽 패스트볼을 제대로 공략 못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초구를 보자마자 깨달을 수 있었다.
코스가 상당히 지저분하다는 것을 말이다.
‘조금만 홈플레이트에 가까이 붙어볼까?’
몸에 바짝 붙는 공만 아니라면 다 때려낼 자신이 있었기에 데이비드 코르테스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반 발자국 더 홈플레이트에 붙어서 자세를 잡았다.
이윽고 날아드는 2구째.
강송구의 선택은 이번에도 바깥쪽 코스였다.
따악!
“파울!”
3루 관중석으로 떨어지는 공을 보며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잠깐 타석 밖으로 나온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더 빠지는 공이었네.’
바깥쪽 코스로 던질 때와 몸쪽으로 던질 때 제구력의 차이가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카운트가 몰린 상황.
하지만 데이비드 코르테스는 여유로웠다.
‘이 정도 구속이면 어떤 공이든 쉽게 커트할 수 있다.’
자신감이었다.
어떤 코스로 들어오든 커트해낼 자신이 있다고.
그때 강송구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을 떠나는 공.
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의 공이 몸쪽으로 날아들자 데이비드 코르테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배트를 휘둘렀다.
‘제대로 왔다!’
몸쪽에 몰린 공.
하지만 곧 그 선택이 실수였다는 것을 데이비드 코르테스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빠각!
91마일의 컷 패스트볼이 배트에 닿기 무섭게 나무가 반으로 쪼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공은 내야수가 잡기 편한 바운드와 속도로 정직하게 튀어 올랐다.
이루수인 조쉬 마이어스가 공을 잡아서 일루수인 엘빈 하인리히의 미트에 정확히 연결했다.
“아웃!”
1루로 빠르게 달리던 데이비드 코르테스는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뒤늦게 1루 베이스를 밟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더그아웃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마지막 공이 뭐야?”
“커터요. 패스트볼이랑 구분이 쉽지 않아요. 그리고 바깥쪽 낮은 코스는 웬만하면 노리지 마세요. 쉽지 않아요.”
“오케이.”
물론, 대기 타석에 있던 라이언 클리퍼드에게 정보를 전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2번 타자.
라이언 클리퍼드가 좌타석에 들어섰다.
강송구에게 공을 던져준 조던 델가도는 4번 타순까지 이어지는 좌타자 행렬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진짜 지랄 맞은 타선이네.’
그래도 강송구가 일반적인 우투수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아마 다른 평범한 우투수였다면 진즉 안타를 맞고 흔들리고 있었겠지만 강송구는 달랐다.
C.J 포스터가 추구하는 커터를 강송구는 정말 잘 활용하며 라이언 클리퍼드를 압박했다.
-라이언 클리퍼드가 궁지에 몰립니다.
-카운트는 2-2의 상황.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타자에게도 나쁘지 않은 카운트였겠지만……. 이번 승부를 자세히 살피면 라이언 클리퍼드가 캉에게 쫓기는 형국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저 컷 패스트볼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라이언 클리퍼드가 감을 못 잡고 있어요.
중계진의 말처럼 라이언 클리퍼드는 처음 타석에 들어섰을 때와 다르게 카운트가 2-2가 된 지금 상황에서 묘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캉의 커터가 이 정도 수준이었나?’
당혹스러웠다.
최근 자료에서도 커터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결과가 지금 상황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이윽고 강송구가 던진 5구째.
패스트볼과 커터에 집중하고 있는 타자에게 강송구는 체인지업이란 무기를 꺼내 들었다.
당연히 결과는 삼진이었다.
“하…….”
허탈하게 웃는 라이언 클리퍼드.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1회 초의 마지막 타자인 코리 시거를 상대로 강송구는 3번 연속으로 커터를 던져 내야 땅볼을 유도했다.
-1회 초! 캉이 깔끔이 이닝을 정리합니다.
-아무래도 캉이 볼티모어의 좌타자들을 상대로 꺼낸 카드가 컷 패스트볼인 것 같습니다. 오늘 유난히 커터를 많이 던지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좋은 구종입니다. 리베라가 생각나는 컷 패스트볼이었어요. 특히 패스트볼과 구분하기 쉽지 않은 커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볼티모어의 타자들이 쉽게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마운드를 내려온 강송구.
그런 강송구를 C.J 포스터가 우상을 보는 것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