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02화 (102/198)

#102. 대기록(1)

5회 말.

브랜든 윌리엄슨이 마운드에 올랐다.

볼티모어가 기대하고 있는 젊은 유망주인 그는 오늘 경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후우…….’

분명히 라스베이거스의 홈 경기장은 개폐식 돔구장이기에 오늘과 같이 더운 날에는 구장의 지붕을 닫는다.

거기다 에어컨도 빵빵하게 틀어주기에 사실상 마운드에서 더위를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브랜든 윌리엄슨은 평소보다 훨씬 많은 땀을 흘리며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이번 이닝까지만 버티자.’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평소보다 체력의 소모가 심하다는 것도 투수코치가 말을 해줘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4회 말까지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내 발목을 잡고 쭉 끌어내리는 느낌이야. 왜 이러는 거지?’

고작 1이닝 차이였다.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금방 지친다고?

브랜든 윌리엄슨은 이해할 수 없었다.

슈우우욱! 따악!

“파울!”

구속도 평소보다 1~2마일 정도 줄었다.

5회 말의 브랜든 윌리엄슨은 앞선 이닝에서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을 꽉 틀어쥐던 젊은 유망주가 아니었다.

슈우우욱! 빠악!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큰 타구음.

모두의 시선이 높게 뜬 타구로 향했다.

-점…… 점점! 더 멀리! 그리고 높게!

-그대로 넘어갑니다! 조던 웨스트버그! 그가 자신의 한 방을 제대로 증명합니다!

-드디어 터진 라스베이거스의 득점! 조던 웨스트버그의 솔로포가 터지면서 점수는 1 대 0이 됩니다!

브랜든 윌리엄슨의 얼굴에 피로감이 드러났다.

더욱 흥건한 땀이 그의 등줄기를 적셨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고작 솔로홈런이었다.

만회할 방법이 남아있었다.

‘일단…… 하나씩 천천히.’

브랜든 윌리엄슨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를 상대로 초구를 던졌다.

빠아악!

그리고 다시 들려온 큰 타구음.

브랜든 윌리엄슨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외야 담벼락을 넘어가는 라스베이거스의 두 번째 홈런을 바라봤다.

* * *

-네가 이닝을 빠르게 끝낸 효과가 여기서 나오네.

우효가 딸기조각을 입에 넣으며 끄덕였다.

강송구가 빠르게 이닝을 소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브랜든 윌리엄슨이 쉴 틈이 없었다.

거기다 평소와 다르게 메이저리그 선발로 출전한 브랜든 윌리엄슨은 1회 말부터 지금까지 모두 전력투구로 공을 던지며 더더욱 체력을 크게 소모했다.

그 결과가 바로 5회 말에 나온 두 개의 홈런이었다.

물론,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브랜든 윌리엄슨은 체력을 당겨쓴 대가로 잃어야 할 것이 아직 많았으니 말이다.

-브랜든 윌리엄슨이 4.1이닝 4실점을 기록하며 5회 말을 막지 못하고 강판당합니다.

-나쁘지 않은 활약이었지만……. 아무래도 젊은 유망주에게 나오는 단점이 나온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경험이 쌓인다면 충분히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투수가 될 재능이 있습니다.

결국에는 강판당한 브랜든 윌리엄슨.

5회 말에 4점을 내준 그가 하나의 아웃만 잡아낸 상태로 마운드에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볼티모어의 불펜이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5회 말이 끝났다.

* * *

6회 초.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6회 초. 캉이 다시 마운드에 오릅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완봉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캉이 과연 이번 이닝을 어떻게 막아낼지…….

-타석에는 볼티모어의 포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애들리 러치맨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스위치 히터이면서 포수.

거기다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

2001년 조 마우어 이후로 포수가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것은 무려 18년 만이었다.

콜업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그러나 20년대 중반의 볼티모어를 이끌며 자신이 왜 드래프트에서 1순위에 지명이 되었는지를 증명했다.

그리고 33살이 된 올해에도 그는 ‘AL 최고의 포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간간이 등장하는 포수가 되었다.

‘오늘은 무조건 좌타석인가?’

일단, 애들리 러치맨이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면서 바뀐 것은 스위치 히터이긴 하지만 주로 좌타석에 들어섰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우타석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필요하다면 우타석에 들어가서 안타를 때려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게 바로 애들리 러치맨이었다.

아무튼, 그런 애들리 러치맨이 오늘 경기에서는 계속 좌타석에 들어서며 큰 타구를 노렸다.

강송구는 그런 애들리 러치맨을 잠깐 바라보다가 조던 델가도의 사인에 고갤 끄덕였다.

‘바깥쪽 싱커.’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어차피 이번 이닝에는 커터를 던지지 않고 싱커와 커브로 카운트를 쌓을 생각이었으니까.

따악!

“파울!”

초구는 파울.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공이었음에도 애들리 러치맨이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했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싱커에도 배트가 나왔다.’

뭔가 따로 노리는 것이 있을까?

다음 공은 몸쪽 낮은 커브.

쉽게 퍼 올릴 수 없게 몸쪽으로 바짝 붙여야 했다.

“볼!”

2구째 던진 커브가 애들리 러치맨의 무릎에 바짝 붙어 날아들었다. 당연히 타자는 슬쩍 몸을 뒤로 빼면서 커브의 궤적을 눈에 담아냈다.

-캉이 신중하게 공을 던집니다.

-역시 한 방이 있는 애들리 러치맨을 상대로는 쉽게 승부에 들어갈 수 없겠죠?

-그런 것 같습니다.

강송구는 덤덤히 다음 사인을 냈다.

5이닝 퍼펙트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의 표정을 단 한순간도 변하지 않았다.

애들리 러치맨은 그런 강송구를 보며 눈을 찌푸렸다.

‘지독한 놈.’

대기록까지 이제 남은 이닝은 4이닝이었다.

누군가가 듣는다면 ‘아직 4이닝이나 남았는데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애들리 러치맨은 알고 있었다. 경기의 절반인 5이닝까지 퍼펙트가 이어지면 투수의 가슴은 쉼 없이 뛴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이 본다면 고작 절반이지만…….

투수가 생각하면 이제 절반이 남은 것이다.

3구째는 바깥쪽 스플리터.

강송구가 연이어 유인구를 던진다.

애들리 러치맨은 자신의 무릎 높이에 제대로 걸치는 강송구의 스플리터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스트라이크!”

‘바깥쪽 코스의 제구는 그 어떤 투수보다 정확하다고 한 전력분석관의 말이 사실이군.’

이런 투수의 공을 받아주는 포수는 정말 편할 것이다.

카운트가 좋지 않을 때는 낮게 걸치는 바깥쪽 코스만 주문하면 바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낼 수 있을 테니까.

이어지는 4구째.

강송구가 좌우 로케이션을 이어나가며 이번에는 몸쪽에 깊숙하게 박히는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볼!”

물론, 이번에도 몸에 바짝 붙는 공이었다.

카운트는 2-2의 상황.

애들리 러치맨이 바짝 홈플레이트에 붙었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을 노리자.’

슬슬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 때가 되었다.

아무리 강송구가 다양한 구종을 던지는 투수이지만, 투구의 중심이 되는 포심 패스트볼의 비율이 다른 구종보다 많을 수 없었다.

너클볼러가 아닌 이상에야 그건 다른 투수도 똑같았다.

‘커터나 싱커, 투심을 포심 패스트볼처럼 던지는 투수라면 또 모르겠지만…….’

강송구는 그런 유형의 투수가 아니었다.

느린 구속이라도 저 투수의 포심 패스트볼은 그 어떤 구종보다 중요한 순간에 자주 쓰였다.

-5구째 승부.

-캉의 와인드업!

그리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왔다!’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배트를 휘두르는 애들리 러치맨.

강송구의 손에서 빠져나온 구종이 패스트볼이라 확신한 그의 배팅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의 기쁨이었다.

‘아!’

순간적으로 공이 멈추는 것처럼 보이기 무섭게 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송이처럼 얼굴에 패스트볼을 노린다고 그려놨으니 이런 체인지업이 날라오는 거지. 멍청한 자식!’

결과는 당연히 헛스윙 삼진이었다.

강송구가 던진 체인지업은 그가 생각한 궤적보다 훨씬 떨어지며 포수의 미트에 안착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타석을 빠져나가는 애들리 러치맨이 굳은 표정으로 강송구를 잠깐 바라봤다.

오늘 경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 * *B22

“…….”

정신이 없었다.

한 회사를 이끄는 젊은 여성이 내뱉는 환호성이 옆에서 들려왔음에도 단장인 찰리 브라운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도대체 내가 뭘 메이저리그에 데려온 거지?’

6회 초까지 끝났다.

그때까지 강송구는 단 하나의 안타도 단 하나의 볼넷도 그리고 단 하나의 출루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퍼펙트게임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네요.”

새침한 말을 내뱉는 여성은 뛰어난 사업가답게 순간적으로 표정을 바꾸었지만, 묘하게 남아있는 흥분과 기쁨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캐롤 웰링턴.

그녀는 현 라스베이거스 구단주의 딸로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런칭한 인물이자, 슬슬 죽을 날을 기다리는 구단주에게서 모든 것을 물려받을 유일한 상속인으로 낙점된 외동딸이었다.

당연히 찰리 브라운의 태도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목줄을 쥔 인물이니 말이다.

‘반응은 나쁘지 않군.’

그는 캐롤의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동시에 오늘 경기에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쳐주는 강송구에게 고마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그래! 때려눕혀! 커모오온!”

상류층의 여자답지 않은 제스처와 말투가 연이어 캐롤 웰링턴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동시에 라스베이거스가 추가점을 생산했다.

-점수는 이제 6 대 0으로 벌어집니다.

꿀꺽꿀꺽.

시원하게 캔 맥주를 들이켜는 캐롤 웰링턴.

“캬! 한 방 더 때려!”

찰리 브라운은 항상 고급 와인과 안주를 즐기던 현 구단주와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에 생긴 작은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그녀가 현 구단주처럼 웨스트스타즈에 대한 큰 투자를 계속 이어 나가줄까? 지금까지 반응을 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현 구단주와 다르게 그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걱정이군.’

6회 말 끝나기 무섭게 다시금 마운드에 오르는 강송구를 향해 홈팬들의 우렁찬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캐롤 웰링턴의 두 눈이 반짝였다.

“찰리.”

“네, 말씀하세요.”

“캉을 웨스트스타즈에 오래 붙들고 있으려면 얼마의 금액을 지급해야 하나요?”

그녀의 말에 찰리 브라운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희가 계산하기로는 최소 10년 3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0년 3억 달러…….”

“물론, 캉이 2~3년간 이런 활약을 꾸준히 이어나간다면 투수 최초로 10년 4억 달러를 받는 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녀는 마운드 위의 강송구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10년 4억 달러라……. 나쁘지 않네요.”

그 말을 듣기 무섭게 찰리 브라운은 마음속에 있던 불안이 많이 날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눈빛은 뭔가에 제대로 꽂힌 눈이었다.

거기다 한 투수에게 꽂혀 4억 달러를 쏟아 넣겠다는 말을 저리 쉽게 말하는 여자가 투자를 짜게 하지는 않겠지.

때마침 강송구가 7회 초의 첫 번째 타자를 상대로 깔끔히 삼진을 잡아냈다.

“그래! 그거야!”

다시금 들려오는 캐롤 웰링턴의 환호성.

찰리 브라운은 복잡한 생각을 옆으로 치우고 다시 경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 고작 대기록까지 8개의 아웃 카운트가 남았으니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