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22화 (122/198)

#122. 빅게임 피처(2)

크리스 피셔가 공을 던진다.

96~98마일 사이의 구속이 나오는 포심 패스트볼.

그리고 88마일의 고속 슬라이더.

마지막으로 77마일의 파워 커브.

정통파에 가까운 우투수로 최근에는 체인지업까지 익히기 시작한 젊은 투수는 오늘 경기에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뽐내고 있었다.

‘고속 슬라이더가 오늘 제대로 긁히는군.’

강송구는 라스베이거스의 1번 타자를 상대로 초구부터 슬라이더를 던진 크리스 피셔를 조용히 관찰했다.

2구째는 바깥쪽 커브.

3구째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조금은 단조롭지만, 기본적으로 타자가 싫어하는 코스에 제대로 공을 꽂아 넣고 있었다.

‘저 구위라면 패턴이 단조롭더라도 쉽게 공략할 수 없지. 오늘 경기도 쉽지 않겠어.’

-이번 경기도 길게 던져야겠네?

우효의 말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따악!

-높게 떠오르는 공.

-그대로 좌익수가 처리하면서 아웃.

-크리스 피셔! 오늘 경기 첫 번째 아웃을 잡아냅니다. 패스트볼이 타자가 싫어하는 코스로 제대로 걸쳤죠?

-이 선수의 장점이죠.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빅게임 피처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중요한 경기에서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었던 시애틀의 크리스 피셔입니다.

이어지는 승부.

크리스 피셔는 고속 슬라이더를 활용해서 카운트를 쌓고 낮게 제구된 패스트볼로 삼진을 잡았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카디안 스타우트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수긍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어때?”

“경기 초반부터 패스트볼을 노리는 건 무리.”

“그러면……. 슬라이더를 노려야 하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

오늘 경기 3번 타순에 배치된 앨빈 하인리히가 카디안 스타우트의 조언을 듣고 고갤 끄덕였다.

천천히 타석에 들어서는 앨빈 하인리히.

최근 상승세로 다시 상위타선으로 복귀한 그가 차분히 타석에 들어가 자세를 잡았다.

동시에 사인교환을 시작한 크리스 피셔는 곧이어 고갤 끄덕이고는 바로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몸쪽에 조금 몰린 공.

하지만 쉽게 공략할 수 없었다.

‘캉의 왼손만큼 구위가 상당한데?’

이런 패스트볼은 때려봤자 외야 플라이로 끝날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카디안 스타우트의 조언처럼 슬라이더나 커브를 노려야겠다고 생각한 앨빈이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다시 투수가 공을 던진다.

앨빈 하인리히는 좌타자 바깥쪽에 걸친 커브의 궤적을 보고는 두 눈을 찌푸렸다.

‘너무 절묘하네.’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로 몰렸다.

타자에겐 좋지 않은 상황.

그리고 크리스 피셔는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그대로 앨빈 하인리히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2연속 삼진을 잡아낸 크리스 피셔가 주먹을 불끈 쥐고서는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와아아아아!

시애틀의 홈 경기장인 T-모바일 파크는 그런 크리스 피셔의 호투로 환호성에 물들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저벅저벅.

2미터에 가까운 거인.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강송구가 마운드로 향하자 거대한 야유가 쏟아졌다.

우우우우우우!

상대 투수가 무너지길 바라는 시애틀 홈팬들의 기원이 담긴 야유에도 강송구는 덤덤했다.

슈우우욱! 펑!

압도적인 초구.

강송구의 왼손에서 뻗어 나온 패스트볼.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을 본 순간 시애틀의 1번 타자인 자크 밴튼이 두 눈을 찌푸렸다.

‘오늘 경기는 시작부터 왼손인가?’

이어지는 2구째는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였다.

환상적으로 꺾이는 궤적.

자크 밴튼은 시원하게 헛스윙을 하며 투 스트라이크에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좌타자 몸쪽 포심 패스트볼.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결과는 당연히 삼진이었다.

“와우.”

대기 타석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던 라몬 로잘레스가 혀를 내두르며 고갤 흔들었다.

‘어째 더 지랄 맞은 것 같은데?’

지난번에 붙었을 때보다 훨씬 공이 날카로운 느낌을 받은 라몬 로잘레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연이은 좌타자의 등장에 오늘 경기 강송구와 호흡을 맞추게 된 백업 포수인 헤이든 존스가 사인을 보냈다.

‘슬라이더.’

고갤 끄덕이는 강송구.

이윽고 강송구가 초구를 던졌다.

슈우우웅! 펑!

“스트라이크!”

좌타자 바깥에 절묘하게 걸치는 슬라이더.

라몬 로잘레스는 빠질 것처럼 날아든 슬라이더가 보더라인에 정확히 걸치는 것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진짜 x같은 공이군.’

이게 끝이 아니었다.

2구째는 몸쪽 포심 패스트볼.

라몬 로잘레스는 힘겹게 그 공을 커트해냈다.

그리고 카운트가 쌓이기 무섭게 강송구가 라몬 로잘레스를 잡으러 들어왔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두 구종만 던지던 강송구가 이번에는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던지며 헛스윙을 유도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순식간에 투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

그리고 다음 타자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3번 타자이자 팀의 중심인 하워드 멜란데인이었다.

그가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타석에 섰다.

‘우타석이군.’

스위치 히터인 하워드 멜란데인의 선택은 우타석.

헤이든 존스가 쓱 하워드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강송구에게 사인을 보냈다.

초구는 바깥쪽 스플리터.

강송구가 던진 공이 감정적이게 스윙을 시작한 하워드 멜란데인의 배트를 피해 미트에 안착했다.

펑!

“스-윙! 스트라이크!”

이를 꽉 물고 눈썹 끝을 부르르 떠는 하워드 멜란데인을 보며 헤이든 존스는 다음 사인을 보냈다.

‘몸쪽 낮은 코스로 빠지는 패스트볼.

퍼 올려봤자 외야를 넘어가기 힘든 코스.

하지만 하워드 멜란데인은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배트부터 휘두를 것이다.

‘상당히 감정적이게 됐네.’

지난 경기에서 강송구에게 굴욕을 맛본 것이 큰 원인이었던 것 같았다.

헤이든 존스의 사인에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그리고 하워드 멜란데인은 두 사람의 노림수에 그대로 당하며 외야 플라이 아웃으로 허무하게 기회를 날렸다.

-중견수 플라이!

-그대로 이번 이닝이 끝납니다!

-오늘 경기 1회까지 두 선발 투수가 두 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좋은 출발을 보여줍니다.

더그아웃에 들어가 거칠게 배트를 집어넣는 하워드 멜란데인을 보며 우효가 킬킬 웃었다.

* * *

크리스 피셔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자신을 향해 큰 함성을 내질러주는 시애틀의 홈팬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좋다.’

그는 오늘 경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와 2.5경기 차이가 나는 상황.

‘꼭 이겨야지.’

시애틀의 지구 우승을 위해 오늘 경기는 꼭 이겨야 한다며 라커룸에서 연설한 앤디 맥티그 감독의 말을 떠올린 그가 씩 웃으며 로진백을 들어 올렸다.

‘요즘 끊었던 위장약을 다시 드시는데……. 감독님 건강을 위해서라도 오늘 경기는 꼭 이겨야지.’

2회 초.

크리스 피셔는 또 삼진을 잡았다.

세 타자 연속 탈삼진.

물론, 다음 타자가 내야 뜬공으로 허무하게 물러나면서 흐름이 살짝 끊겼지만, 크리스 피셔는 개의치 않고 마지막 남은 아웃을 삼진으로 잡아냈다.

오늘 경기 4번째 삼진.

2회 초도 깔끔히 지운 그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와아아아아!

크리스! 크리스! 크리스!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홈팬들.

크리스 피셔는 이 분위기가 좋았다.

좋게 말하면 관심을 즐기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관심종자다.

어쩌면 이런 성격 덕분에 크리스 피셔가 큰 경기에서 강한 것일 수 있었다.

아무튼, 그는 마운드에서 내려와 시원한 스포츠음료를 들이켜고는 마운드를 바라봤다.

‘대단해.’

마운드에는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AL을 지배하는 괴물.

강송구가 올라와 있었다.

슈우욱! 펑!

이번에는 오른손을 꺼내든 강송구는 절묘한 제구력과 여러 뛰어난 변화구로 카운트를 쌓았다.

크리스 피셔는 그 모습이 신기했다.

‘어떻게 왼손과 오른손 모두 저렇게 잘 쓸 수 있지? 난 아무리 왼손으로 던지려 해도 안 되던데 말이야.’

앞선 두 타자 모두 내야 뜬공으로 처리한 강송구가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이닝을 끝냈다.

짧게 쉴 틈도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 피셔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런 경기지.’

이런 투수전이야말로 야구의 백미였다.

크리스 피셔는 더욱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예전 애송이 시절처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엉망진창인 피칭을 보여줄 생각은 없었다.

이제 그도 메이저리그 데뷔 4년 차다.

바보 같은 이유로 마운드에서 무너지는 것은 1, 2년 차에 겪었던 것으로 충분했다.

마운드로 향하기 무섭게 다시금 들려오는 시애틀 홈팬들의 환호성에 그가 환히 웃었다.

오늘 경기.

정말로 느낌이 좋았다.

* * *

3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경기의 흐름은 또 0 대 0이었다.

-진짜……. 저주받은 거 아니야?

우효는 강송구의 경기마다 항상 치열한 투수전이 펼쳐지는 것이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거기다 뻥뻥 홈런을 때리던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도 강송구가 등판하면 득점 지원이 줄었다.

그건 지금까지 쌓인 데이터가 이야기를 해줬다.

물론, 강송구는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최대한 오래 버티며, 상대 투수보다 적게 실점하는 것에 집중하기 바빴으니 말이다.

이번 이닝의 첫 타자.

7번 타자 훌리오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오늘 경기 첫 안타를 허용한 강송구는 이어진 승부에서 삼진을 잡아내며 시애틀의 흐름을 깔끔히 끊었다.

그리고 9번 타자인 댄 글리슨을 우익수 방면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투 아웃을 잡아냈다.

2사 1루의 상황.

타순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1번 타자인 자크 밴튼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의 표정은 결연했다.

앞선 타석에서 허무하게 아웃을 허용한 것을 만회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강송구는 앞선 타석에서 보여줬던 구종을 또 보여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초구부터 싱커를 내던지는 강송구를 상대로 자크 밴튼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그저 지켜볼 뿐.

‘패스트볼은 느려……. 왼손과 다르게 타이밍만 잘 잡으면 충분히 때려낼 수 있을 거야.’

패스트볼을 노려보자.

그 생각을 한 자크 밴튼의 앞에 패스트볼이 날아들었다. 물론, 타자가 때려낼 수 없는 코스였다.

“볼!”

자크 밴튼의 두 눈이 반짝였다.

‘이 정도 패스트볼이라면 때려낼 수 있다!’

왼손과 거의 10마일 차이가 나는 오른손이었다.

자크 밴튼은 자신 있었다.

100마일의 공이면 몰라도 지금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나오고 있는 패스트볼의 구속은 90마일 전후.

계속해서 이어지는 피칭.

바깥쪽에 걸치는 너클 커브.

몸쪽 깊은 컷 패스트볼.

다시 바깥쪽으로 크게 빠지는 포심 패스트볼.

풀 카운트가 되는 순간.

자크 밴튼은 몸쪽 높은 코스에 날아들 포심 패스트볼을 생각하며 그 타이밍을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자크 밴튼은 보며 우효가 웃었다.

-노골적으로 패스트볼을 노리는 타자는 뭐다?

‘체인지업이지.’

강송구의 손에서 위닝샷이 날아들었다.

틱!

“아!”

자크 밴튼의 타이밍을 완벽히 속인 체인지업.

공은 살짝 튀면서 일루수 정면으로 굴러갔다.

깔끔히 공을 처리안 앨빈 하인히리가 가볍게 1루 베이스를 밟으며 이닝을 끝냈다.

‘느낌이 좋군.’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3회 말이 끝날 때까지 점수는 계속 0 대 0.

이 지독한 투수전은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팀의 선발 투수인 강송구와 크리스 피셔는 자신의 패배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4회 초.

라스베이거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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