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23화 (123/198)

#123. 빅게임 피처(3)

빅게임 피처라는 것이 진짜 존재하는가?

많은 야구팬의 궁금증이다.

그 질문에 답을 하는 전문가들은 ‘없다.’라고 답한다.

빅게임 피처, 클러치 히터는 그저 허상이다.

그런 대답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럴만한 것이 그 대단한 빅게임 피처, 클러치 히터가 큰 경기에서 기록했던 성적의 표본이 쌓이기 무섭게 그 선수가 가진 평균수준의 성적으로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그건 세이버메트릭스같이 현장의 경험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이들의 주장이고,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뛰는 선수들은 빅게임 피처나 클러치 히터의 존재를 믿는다.

“빅게임 피처? 있지……. 유난히 가을에 강하거나 순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에서 폼이 좋은 친구가.”

“클러치 히터는 허상이 아니야. 경기를 직접 하다 보면 조금씩 느낀다니까? ‘아! 저 친구 가을에 강하구나.’ 이런 거.”

“숫자놀음이나 하는 친구들이 뭘 알겠어? 현장도 현장 나름의 흐름이 있는데……. 아무리 야구가 통계의 스포츠여도 직접 플레이하는 건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걸 알아야 해.”

현장의 코치나 선수들.

그들은 빅게임 피처나 클러치 히터가 있다고 말한다.

팬들의 의견도 어느 정도 갈리는 편이다.

-김시진을 보면 빅게임 피처는 존재한다. 정규시즌에 20승씩 찍던 김시진이 플옵에서 12경기 선발해서 10경기 56이닝 0승 9패 ERA 5.14를 박는 거 보면 빅게임 피처는 실존함.

-응, 정규시즌에 250이닝씩 던졌는데 플옵에서 멀쩡한 게 이상한 거지. 솔직히 빅게임 피처는 없다. 만약 김시진이 매 시즌 190이닝씩만 던졌어도 플옵에서 저렇게 똥 싸지도 않았음.

-범가너를 보면 마냥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음.

-오티즈도 클러치 히터라고 오지게 빨다가 표본 쌓이니까 평균적인 기록으로 회귀한 거 못 봤냐? 빅게임 피처, 클러치 히터는 진짜 허상이다.

-이안 엘런은 어떻게 볼 건데? 정규시즌 평균 1점대 중후반 나오는 놈이 포스트시즌에는 0점대 찍고 있는데;

-그거 고작 30이닝 쌓인 거잖아. 그게 정확한 표본이라고 생각하냐? 솔직히 최소 100이닝은 쌓여야지.

그렇기에 빅게임 피처나 클러치 히터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그 효용성이 있는지는 항상 논란이 된다.

그리고 강송구는 대체로 빅게임 피처나 클러치 히터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뭐……. 대전 호크스에서 네가 포스트시즌에 어떤 활약을 했는지를 다른 사람들이 보면 빅게임 피처는 무조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믿을 거야.

우효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4회 초의 마운드를 지키기 위해서 크리스 피셔가 있는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첫 타자에게 안타를 맞고.

연이어 볼넷을 내주며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크리스 피셔는 위축되지 않았다.

초구부터 좋은 공을 던지는 크리스 피셔는 위기라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움직였다.

96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든다.

타자는 몸을 움찔하며 피했다.

몸쪽으로 바짝 붙는 공이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아웃!”

강심장을 가진 크리스 피셔는 무사 2, 3루의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2개의 아웃이 눈 깜빡하는 사이에 사라졌다.

다시 볼넷을 내주며 2사 만루까지 몰렸지만, 크리스 피셔는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내며 기어코 4회 초의 만루 위기를 넘겼다.

-그대로 삼진! 헛스윙 삼진!

-크리스 피셔가 만루의 위기를 벗어납니다!

“커모오오온!”

마운드에서 포효하는 크리스 피셔.

라스베이거스의 선수들이 눈을 찌푸렸다.

“만루 기회를 놓치네.”

“저 친구가 침착하게 잘 막았어.”

“후우……. 뭔가 위기에 강한 스타일인 것 같네……. 저기서 저렇게 삼진을 잡아낸다고?”

“슬라이더가 날카롭긴 했어.”

위태로운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은 상대 투수를 조금씩 의식하기 시작한 팀원을 보며 강송구가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좋지 않군.’

-그래, 분위기가 멜랑꼴리하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확실히 상대 투수가 자기 힘으로 위기를 벗어나면서 분위기가 살짝 넘어갔어.’

위기 뒤에 기회가 오고.

기회 뒤에 위기가 찾아온다.

‘좋은 기회를 놓친 여파가 내게 불어오겠군.’

물론, 걱정은 없었다.

마운드로 향하는 동안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팬들이 야유를 보냈음에도 강송구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우우우우우우!

4회 말의 마운드.

타석에는 시애틀의 2번 타자.

라몬 로잘레스가 들어섰다.

* * *

따악!

때리는 순간.

라몬 로잘레스는 큰 타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은 크게 뻗지 못했고 그는 1루에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초구를 잘 노렸다.’

운도 좋았지만, 그가 지난 며칠 동안 고생해서 강송구의 자료를 본 것이 빛을 발했다.

높은 확률은 아니나 그나마 그가 노리고 칠만한 코스와 구종을 노렸고 성공했다.

‘문제는 마운드에 있는 친구가 전혀 흔들림이 없군.’

그래, 마치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오늘 경기 두 번째 안타를 맞은 강송구가 다음 타자와 승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이닝도 그렇고 이번 이닝도 안타를 맞았네.

‘저건 상대가 잘했어.’

준비를 많이 한 것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점수를 내줄 생각은 없지만.’

타석에는 시애틀의 3번 타자인 하워드 멜란데인이 타격 자세를 잡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조금의 틈이라도 찾으려는 그 눈을 보고 강송구는 초구부터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타석도 우타석에 섰나? 이래서 스위치 히터가 조금 거슬린단 말이지. 그런데 저렇게 타석을 바꿔서 타격해도 타격 벨런스가 안 무너지려나?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하겠지.’

그리고 강송구가 알기에 하워드 멜란데인은 어마어마한 승부욕의 화신이며 성실한 연습벌레였다.

스위치 히터로 활동하면서 타격 벨런스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도 그의 숨은 노력 덕분일 것이다.

‘초구는 몸쪽 싱커.’

강송구의 사인에 헤이든 존스가 고갤 끄덕였다.

이윽고 강송구의 오른손에서 싱커가 날아들었다.

“스트라이크!”

타자가 원치 않는 코스. 존에는 정확히 걸친 강송구의 싱커를 보며 하워드 멜란데인이 혀를 찼다.

‘쯧……. 여기서 싱커라니.’

최근 허리 부상으로 구속이 빠르면서 낮게 떨어지는 공에 반응이 늦기 시작한 하워드 멜란데인.

그에게 싱커는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이 없었다.

2구째는 바깥쪽 슬라이더.

완전히 빠지는 슬라이더에 하워드 멜란데인이 배트를 내밀다 멈추며 참았다.

“볼!”

아쉬운 표정의 헤이든 존스.

반대로 하워드 멜란데인은 타석 밖으로 잠깐 빠져나와서 말리기 시작한 타이밍을 다시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집중하자. 내가 노리던 구종만 생각하자.’

마운드에 있는 저 투수는 그 누구보다 타자의 타이밍을 잘 훔치는 투수였다. 지금은 차분히 타석에서 공을 보며 타이밍을 맞춰가는 것이 중요했다.

“타자, 타석으로.”

주심의 말에 하워드 멜란데인이 고갤 끄덕였다.

3구째.

하워드 멜란데인이 타석에 들어서기 무섭게 강송구는 우타자 바깥쪽에 걸치는 너클 커브를 던졌다.

“스트라이크!”

투 스트라이크를 내준 하워드 멜란데인은 계속해서 바깥쪽 낮은 코스에 정확히 걸치는 변화구를 떠올리고는 아무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진짜……. 저 오른손의 제구력은 답이 없네. 구종 하나쯤은 미흡할 만하지 않나?’

실투 하나가 없다.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야구에서 완벽은 없어.’

저 괴물도 점수를 내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함에도 하워드 멜란데인은 강송구에게서 안타를 때려낸다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부우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마무리는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

하워드 멜란데인이 두 눈을 꽉 감았다.

이어서 타석에 들어선 시애틀의 4번 타자인 그렉 하셀이 5구 승부 끝에 외야 플라이로 아웃을 헌납했다.

제법 멀리까지 나아간 코스였기에 좌익수가 공을 잡기 무섭게 1루에 있던 라몬 로잘레스가 2루까지 조금 아슬한 타이밍에 도달할 수 있었다.

2사 2루.

장타 하나만 나오면 점수를 낼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강송구는 작은 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다음 타석에 들어선 매니 세가라는 강송구가 던진 컷 패스트볼과 체인지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따악!

높게 떠오르는 공.

가볍게 내야 뜬공으로 이닝을 끝낸 강송구.

-뭐야……. 이번 이닝도 왜 이렇게 싱거워? 기회 다음에 위기가 온다며? 근데 위기는 티끌만큼도 오지 않았는데?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덤덤히 답했다.

“그러면 아까는 기회가 아니었나 보지.”

* * *

5회 초.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이 다시 움직였다.

오늘 경기 2피안타 1볼넷을 내준 것을 제외하면 무실점으로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주고 있는 크리스 피셔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슈우우욱! 따악!

분명히 상대는 하위타선.

하지만 크리스 피셔는 앞선 상위 타선보다 더 상대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다.

물론,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11구나 던졌지만, 크리스 피셔는 이번 이닝의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냈으며, 이어지는 승부에서 7구 승부 만에 내야 뜬공으로 두 번째 아웃까지 만들었다.

공을 조금 많이 던진 것을 제외하면 이번 이닝도 크리스 피셔는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보여줬다.

‘완벽에 가까운 피칭이라…….’

강송구는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시원하게 공을 던지는 크리스 피셔를 바라봤다.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정말 좋았다.

위기도 잘 넘겼으며, 이번 이닝도 별다른 위기를 만들지 않고 이닝을 끝내고 있었다.

1승이 중요한 경기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크리스 피처의 피칭은 더욱 빛났다.

‘그래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군.’

애매한 체인지업.

오늘 경기에서 딱 5구 던진 공이다.

크리스 피셔의 체인지업은 20-80 스케일에서 40점밖에 받질 못한 부족한 구종이었다.

하지만 크리스 피셔의 볼 배합에서 체인지업은 가끔 타자의 타이밍을 끊는 데 필요한 구종이었다.

‘한 이닝에 1구를 던질까 말까 하는 변화구를 노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책임한 조언이지만…….’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한 도박이었다.

아직 다른 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쿠세(습관)를 하나 발견한 강송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요즘 폼이 가장 좋은 앤디 요스트에게 다가갔다.

-저 친구 오늘 쉬잖아.

‘곧 교체될 거야.’

앤디 요스트는 옆으로 다가온 강송구를 보고는 씩 웃으며 자신 있게 말했다.

“캉! 조금만 기다려! 내가 홈런 한 방 때려서 0 대 0의 균형을 제대로 무너트려 줄게.”

“체인지업을 노려.”

“What?"

“저 친구 체인지업을 던지기 전에 글러브 안을 3초 정도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

“그래? 다른 구종은?”

“커브나 슬라이더는 1~3초 정도 바라보지.”

“쩝……. 그걸로는 체인지업을 골라내기 어렵겠는데? 글러브를 3초 바라본다는 건 결국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중 하나를 던진다는 뜻이잖아.”

“하지만 패스트볼은 던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 말을 듣자 앤디 요스트의 두 눈이 반짝였다.

“패스트볼을 던지지 않으니 변화구에 집중해라?”

“그렇지.”

“체인지업을 기다리면서? 조금 도박이네.”

“그것도 제법 확률이 높은 도박이지.”

강송구의 말을 듣고 앤디 요스트가 고갤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5회 초가 끝나고 이어지는 5회 말 수비가 시작될 때 앤디 요스트가 투입되었다.

미키 스토리 감독은 최근 체력적으로 지쳐가는 앤디 요스트에게 하루 휴식을 주고 싶었지만, 오늘 경기의 흐름을 보고는 그를 출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경기에서 일루수로 뛰던 루이스 마토스를 빼고 5회 말부터 1루 수비로 앤디 요스트를 투입했다.

그는 안정감 있는 수비를 보여주며 강송구가 5회 말을 깔끔히 막을 수 있게 도와줬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 5회 말이 끝난 것도 앤디 요스트가 몸을 날려 안타가 될 타구를 잡아준 덕분이었다.

그렇게 끝난 5회 말.

6회 초의 수비를 위해 크리스 피셔가 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오늘 경기에서 2개의 안타와 볼넷 하나를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운 피칭을 이어가는 크리스 피셔입니다!

-아마, 이번 6회 초가 큰 위기일 겁니다.

-그렇죠. 어느 정도 타선도 돌았고……. 투수의 체력도 어느 정도 빠진 시간대가 바로 지금이니까요.

물론, 크리스 피셔는 무너지지 않았다.

랜디 에드워즈를 상대로 커브를 던져 삼진을 잡아낸 크리스 피셔가 주먹을 움켜쥐며 소리쳤다.

“커모오오오온!”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의 더그아웃에서 앤디 요스트가 묘한 눈으로 그런 크리스 피셔를 바라봤다.

‘캉의 말처럼 일단 글러브를 바라보면 변화구가 나온다. 하지만 변화구의 던지는 타이밍을 알아도 저 친구가 던지는 슬라이더와 커브는 쉽게 칠 수 없는 공이야.’

솔직히 강송구를 제외한 AL 투수 중에서 슬라이더와 커브를 잘 던지는 ‘Top10’에 드는 선수가 크리스 피셔였다.

다시 봐도 저 슬라이더는 무리였다.

거기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사이에서 나오는 커브도 직접 노릴 만한 구종이 되질 못 했다.

‘패스트볼을 노리는 것도 좋은 판단이지만…….’

그것보다는 장타를 만들 수 있는 체인지업.

그걸 노리기에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캉의 말이 옳았군. 결국, 저 친구의 체인지업을 노리는 게 가장 쉬운 지름길이었어.’

그렇게 판단을 내린 앤디 요스트.

그가 시애틀 매리너스의 빅게임 피처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건조하게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