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투슈퍼 에이스-169화 (169/198)

#169. 천국과 지옥(2)

천국.

라스베이거스는 투수들에게 천국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야수의 수비 수준이 상당하다.

내야진은 6년에 걸쳐서 한 번씩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었고, 외야수들도 기본 이상의 수비 능력을 갖췄다.

거기다 포수들의 수비 능력도 뛰어났다.

당연히 라스베이거스의 투수들은 그 수비력의 도움을 받아 좋은 성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스운 에피소드도 있었다.

28시즌에 라스베이거스에서 3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던 4선발이 다른 구단으로 옮기기 무섭게 4점대 중반으로 가라앉은 것을 보며 놀랐다.

덕분에 라스베이거스의 내야진은 한국팬들에게 ‘시라노 투수조작단’이라는 별명까지 들었다.

아무튼.

이런 야수들의 도움으로 강송구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그야말로 MLB를 폭격하고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만약에 투수에게 지옥이라 불리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발이었다면, 아마 강송구도 0점대가 아닌 2점대 투수로 활약하고 있지 않았을까?

-이게 천국과 지옥인가?

투수들의 표정이 달랐다.

라스베이거스의 투수들은 환했다.

기본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야수들과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반대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투수들은 달랐다.

몇몇 투수는 눈 밑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아마도 불펜 투수들일 것이다.

선발진은 그대로 관리를 받으나 불펜 투수들은 내야진이 저지른 대환장 파티의 희생양으로 제대로 관리도 받지 못하면서 매 경기 혹사를 당하고 있다.

당연히 야수들과 사이도 나빴다.

-야, 내기할래?

우효가 뜬금없이 내기하자고 했다.

강송구는 무표정으로 답했다.

“내기?”

-오늘 경기에서 저기 투수랑 야수랑 한 번 싸운다는 것에 내 일주일 치 도치코인 건다.

“도치코인은 또 뭐야?”

-너! 요즘 유행하는 가상화폐 몰라? 도지코인의 뒤를 이은 고슴도치가 상징인 가상화폐! 도치코인!

“…….”

-1000도치코인을 걸게!

“그게 어느 정도의 가치지?”

-20만 원!

“제법 되는군. 좋아 수락하지.”

-넌 뭘 걸 거야?

“오히려 싸우지 않고 투수가 해탈해서 헛웃음을 짓는다는 것에 네 2주일 치 과일 간식을 걸지.”

그 말을 내뱉자마자 우효가 발작했다.

-2주일 치 간식이라니! 그건 너무 잔혹해!

하지만 이미 강송구는 불펜으로 향하고 있었다.

뒤뚱뒤뚱.

우효가 살이 찐 엉덩이를 씰룩이며 뛰었다.

-야! 2주일 말고 1주일! 1주일로 합의 보자!

* * *

777 베가스 그라운드를 홈팬들이 가득 채우기 무섭게 경기 시작을 알리는 장내 아나운서의 안내가 이어졌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시구자가 시구까지 끝내자.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다른 팀에게는 파이널 보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2미터에 가까운 키를 갖춘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침을 꿀꺽 삼키는 디트로이트의 타자들.

“안타나 제대로 때릴 수 있을까?”

“삼진만 27개 먹을 것 같은데?”

“제발…….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기를!”

누군가의 작은 기도.

그리고 그의 기도처럼 오늘 강송구의 컨디션은 평소보다 상당히 좋지 않았다.

‘잠을 설쳤어.’

아무리 강송구가 대단한 투수여도 한 시즌에 2~3경기만큼은 컨디션이 평소보다 좋지 못할 때가 많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완벽한 몸 상태를 1년 내내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렇기에 이런 날에 강송구는 야수들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이닝을 소화하는 편이었다.

‘불펜에서 평균적으로 포심의 구속이 91마일을 유지했다. 아무래도 피로가 조금 쌓인 것 같군.’

평균 93마일을 유지하던 포심의 구속이 2마일이나 떨어졌다는 뜻은 오늘 컨디션이 최악이라는 뜻이다.

아마 왼손도 마찬가지겠지.

어깨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체력적으로 지친 것이다.

아마 한 경기 정도 로테이션을 거르면 다시 원래의 폼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다.

오늘은 정말 힘든 경기가 될 것이다.

마운드에 올라가 송진을 적절히 발랐다.

-오늘 결정구는 뭐야?

우효의 물음에 강송구가 답했다.

“싱커와 체인지업.”

오늘 경기.

강송구는 생각했다.

내야수들을 좀 굴려야겠다고.

1회 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선두타자.

1번 타순에 배치된 이루수 루크 레토.

좋은 타자다.

작년 0.276의 타율과 17개의 홈런.

이 두 가지 지표만으로도 그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없어서는 안 될 타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올해는 조금 주춤하고 있지만.

그래도 선수의 타격 스타일상 결국 슬럼프를 이겨내고 금방 궤도에 오를 선수였다.

초구는 싱커.

따악!

“파울!”

루크 레토의 배트가 시원하게 돌았으나, 강송구가 던진 싱커를 제대로 때려내진 못했다.

‘평소라면 배트에 닿지도 않았겠지만…….’

지금 그의 컨디션은 엉망이다.

그래도 손아귀 힘은 그리 많이 빠지질 않아 제구나 구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2구째.

좌타자 바깥으로 빠지는 컷 패스트볼.

“스트라이크!”

빠질 것처럼 보이는 공이 존에 걸치자 루크 레토가 주심을 잠깐 바라보고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3구째.

강송구가 체인지업을 던졌다.

빠악!

“아웃!”

투수 정면으로 굴러온 공.

강송구가 가볍게 잡아 1루로 던졌다.

-캉이 첫 타자를 깔끔히 잡습니다.

-이건 루크 레토 선수가 성급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도 문제 될 것이 없던 공이었거든요.

2번 타자.

션 버로우.

작년에 3할을 때렸던 선수다.

하지만 올해 타율은 0.262로 좋지 않다.

장타력은 썩 좋지 않기에 크게 걱정이 없는 타자다.

하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기에 강송구는 차근차근 카운트를 쌓기 시작했다.

초구는 체인지업.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오늘 체인지업이 제법 긁혔다.

“스트라이크!”

2구째.

다시 바깥쪽 컷 패스트볼.

연이어 바깥쪽 공을 던지는 강송구를 보며 션 버로우가 두 눈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3구째.

그는 배트를 훙! 휘두르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몸쪽 싱커를 넣을 확률이 높을 것 같다고.

물론, 이번에 날아든 구종은 싱커가 아닌 커브였다.

틱!

“파울!”

4구째.

낮게 제구가 된 너클 커브.

따악!

“아웃!”

높게 뜬 공을 보며 션 버로우가 1루로 달렸으나 이루수인 조쉬 마이어스가 깔끔이 뜬공을 처리하며 아웃이 되었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그는 평소와 다른 강송구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캉이 포심 패스트볼을 몇 구나 던졌지?”

그의 물음에 누군가 답했다.

“단 1구도 던지지 않았지.”

그때 강송구가 공을 던졌다.

드디어 오늘 경기 처음으로 포심을 던졌다.

91마일의 포심 패스트볼.

그 공을 보고 타석에 선 3번 타자 ‘에드윈 부이트라고’는 물론이고 더그아웃에서 지켜보던 타이거스 타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구속이 조금 느리지?”

“구위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확실히 평소보다 구속이 안 나오는 편이긴 하지.”

“완급조절을 하는 거 아니야?”

“그렇다기엔 뭔가 이상한데.”

혹시?

이런 생각이 디트로이트 타자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건 오늘 경기의 선발로 예정된 디트로이트의 선발인 라이언 펠트너도 마찬가지였다.

‘저 괴물이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이것만큼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가 두 눈을 번쩍였다.

잘만 버틴다면 저 괴물을 상대로 이번 시즌 첫 패배를 안긴 최초의 투수가 될 수 있다.

그 사실에 라이언 펠트너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따악!

평소라면 삼진을 잡았을 공.

하지만.

구속도, 무브먼트도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공의 구위가 좋아 강송구가 던진 공을 그대로 필드를 굴러 카디안 스타우트의 글러브로 빠르게 튀었다.

-깔끔한 삼자범퇴! 캉이 1회 초를 깔끔히 막습니다.

-오늘 경기 초반부터 싱커와 커터, 체인지업을 잘 활용해서 땅볼을 유도하는 피칭을 활용하는 캉입니다.

-포심 패스트볼은 단 2구. 구속이 평소보다 조금 느린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컨디션이 평소보다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깔끔히 잘 막았네요.

1회 초가 끝났다.

강송구가 마운드를 내려갔다.

야수들의 지원을 받은 그는 상당히 편해 보였다.

그리고 찾아온 1회 말.

라이언 펠트너가 마운드에 올랐다.

* * *

강송구가 야수들의 안정감 넘치는 수비로 편히 1회 초를 끝냈다면, 라이언 펠트너는 지옥과 같은 야수들의 실책 속에서 차곡차곡 아웃을 잡아내고 있었다.

[중계창]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가 미국의 부산 티탄즈입니까?

-그래도 여긴 야구는 하네. 티탄즈는 개그를 해서 문제였는데 말이야ㅋㅋㅋㅋ

-ㅋㅋㅋㅋㅋ 디트로이트쉑ㅋㅋㅋㅋ

-아니; 내야 수비 수준이 왜 이따구임?

-소름 돋았다. 진짜 라이언 펠트너가 불쌍하다.

-라이언 펠트너가 내야수 빠따쳐로 무죄임.

-아닠ㅋㅋㅋ 그 뜬공을 놓치냐곸ㅋㅋㅋ

-초등학생도 잡을 뜬공을 놓치네;

-그래도 이번에 삼진으로 잡으면 끝임.

-어? 쳤다!

-X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놓쳤닼ㅋㅋㅋㅋ

-2사 만루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 여기서 공을 흘린다고?

-느그가 프로가?

-와; 크보보다 심한 팀은 처음 봤다.

-그래도 티탄즈보단 잘함ㅋ

-뒤질래? 너 호크스 새끼지.

-응, 티탄즈 리그 9위 ^오^

점수는 아직 0 대 0의 상황.

두 개의 아웃을 잡았고.

남은 아웃은 단 하나.

하지만 라이언 펠트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니, 화병이 쌓일 것 같았다.

-2사 만루!

-웃기게도 루상을 가득 채운 주자들은 모두 야수들의 실책으로 채워진 주자들입니다.

-6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조던 델가도. 이런 기회를 놓칠 타자가 아닙니다.

라이언 펠트너는 이를 꽉 물었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이게 말이 되냐고. 3연속 실책? 지금 우리가 하는 게 야구인 건가? 아니면 애들 공놀이인 건가?’

그래도 그는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래, 상황은 나쁘지 않아.’

절망적인 내야수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희망.

루크 레토가 오늘 선발이었다.

‘루크 레토가 있는 이루수 방면으로 땅볼을 유도하자. 그 녀석이라면 깔끔히 처리해 줄 거야.’

그가 가진 구종이라면 해볼 만했다.

평균 93마일의 구속을 가진 포심.

메이저 평균의 커브.

플러스급의 슬라이더.

플러스-플러스급의 체인지업.

그는 선발투수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변화구를 가지고 있는 쓰리쿼터 투수였다.

특히 체인지업이라면 상대 팀에 있는 괴물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은 수준이었다.

초구.

92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

묵직한 구위를 갖춘 포심이 조던 델가도를 압박했다.

‘생각보다 공이 더 좋다.’

조던 델가도가 잠깐 타석 밖으로 빠져 생각을 정리한 뒤에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슬라이더를 노리자.’

오늘 우타자를 상대로 바깥쪽 슬라이더를 던질 때 제구가 제법 흔들렸던 라이언 펠트너였다.

하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분명히 노린 공이었지만.

라이언 펠트너의 슬라이더가 조던 델가도가 휘두른 배트를 피해 포수의 미트에 틀어박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라이언 펠트너가 3명의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2사 만루까지 몰린 위기를 넘깁니다!

-오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야수진이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선발인 라이언 펠트너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려면 지금부터라도 수비 집중력을 끌어올려야 해요.

겨우겨우 지옥에서 빠져나온 라이언 펠트너.

그가 진이 빠진다는 표정으로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1회부터 29구나 던지다니.’

좋지 않았다.

이러다 5이닝도 못 던지고 강판당할까 걱정이었다.

그가 길게 한숨을 내뱉을 때.

마운드에 강송구가 올랐다.

강송구의 컨디션은 확실히 좋지 않았다.

선두타자를 상대로 처음부터 실투를 던졌음에도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유격수인 카디안 스타우트가 펄쩍 날아서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를 잡아내었다.

환상적인 호수비였다.

편해 보이는 표정의 강송구.

라이언 펠트너는 카디안 스타우트의 호수비를 보며 정말로 부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팀 유격수를 슬쩍 바라봤다.

실실 웃으며 속 편히 스포츠음료나 마시는 유격수.

괜히 속이 울컥했다.

“X발.”

절로 내뱉어지는 거친 욕설.

끊었던 씹는 담배가 그리워지는 라이언 펠트너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