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필리건(1)
[강송구 21K 퍼펙트게임!]
[정규시즌에 2번의 퍼펙트! 강송구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최다 탈삼진 퍼펙트게임 갱싱! 자신의 기록은 자신만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괴물!]
[라스베이거스의 타이탄! 버블 헤드로 등장하다!]
[불티나게 팔리는 강송구의 버블 헤드!]
-캬... 주모오오오오!
-진짜; 소름 돋네; 요즘 좀 잠잠하다 했는데 이렇게 퍼펙트게임 하나 만들어주는구나.
-조던 델가도 쉑;; 개 부럽네.
-왜?
-델가도가 부럽다고?
-당연하지. 벌써 롤렉스만 3개 자넠ㅋㅋ
-난 전혀 부럽지 않다. 어제 롤렉스 선물 받았다고 의무방어전에 들어갔다는 내용의 SNS를 봐버려서…….
-아.
-아아...
-원래 신혼이 바쁠 때지.
-난 요즘 밤이 무서워.
-나두 그래.
강송구의 퍼펙트게임이 끝나고.
8월 말까지 라스베이거스는 연승과 연패를 오가며 차근차근 승리를 쌓아갔다.
7할에 가까워졌던 승률이 6할까지 떨어졌지만.
그들의 지구 1위는 거의 확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송구의 퍼펙트게임 다음 등판.
클리블랜드전에서 모처럼 강송구는 이번 시즌 최다 피안타 경기를 경신하며 흔들렸다.
강송구 답지 않은 6이닝 무실점.
그래도 타자들의 도움으로 시즌 22승을 거두었다.
점점 정규시즌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상황.
언론과 야구팬들은 언제나 시끌시끌했다.
[강송구 퍼펙트게임의 후유증? 6이닝 무실점에 그쳐.]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다. 퍼펙트게임 후유증으로 기대 이하의 피칭을 보여준 강송구.]
[강송구, 6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22승!]
-ㅋㅋㅋㅋ 6이닝 무실점이 기대 이하의 피칭이라닠ㅋㅋ 진짜 강송구가 대단하네.
-와; 그동안 평균 8이닝씩 무실점으로 막아주던 게 진짜 대단한 퍼포먼스였다는걸 깨달음.
-다음 상대 텍사스지?
-ㅇㅇ 선발 로테이션대로 보면 텍사스전에서 뛰고 9월 초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랑 만남.
-오! 필리스!
-이 새끼들 또라이 아님?
-ㅋㅋㅋㅋ 필리건들 다저스로 간 체이스 반 다이크가 필리스 갔을 때 온갖 욕설을 내뱉으며 필리스 왜 안 왔냐고 욕했자넠ㅋㅋ 근데 알고 보니 필리스에서 FA로 나온 체이스한테 접촉도 없었다는 거 밝혀져서 데꿀멍했짘ㅋㅋ
-그런데 아직도 필리건은 체이스한테 욕함.
-왜?
-필리스 안왔다곸ㅋㅋㅋ
-아닠ㅋㅋ 부르질 않는데 어케 가냐궄ㅋㅋ
-???: 네? 필리스요? 부르지도 않는데 어케가요?
-앜ㅋㅋㅋㅋ
그리고 찾아온 8월의 마지막 등판.
강송구가 텍사스를 상대로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지난 경기의 부진을 씻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와……. 진짜 절대 무너지지 않네.”
“이러다가 진짜 정규시즌을 무실점으로 소화한 메이저리그 첫 번째 선수가 탄생하는 거 아닌가 싶다.”
“퍼펙트게임 다음 등판에서 그렇게 흔들렸는데도 기어코 6이닝 무실점하고 마운드 내려가는 거 보고 소름 돋았잖아.”
“끝났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도 마냥 완벽하진 않네.”
“그렇지. 확실한 마무리가 없으니까.”
마무리로 올라온 투수는 C.J 포스터.
바비 홀이 지난 경기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하고 존 바예호가 다시 5선발로 기회를 잡으며 C.J 포스터에게 다시금 마무리라는 보직이 부여되었다.
“각 투수의 평균자책점이 바비는 4.40이고, 포스터는 3.68, 그리고 존 바예호는 5.38인가.”
“스티브 하그레이브가 3.70을 기록하고 있지.”
“셋업까진 완벽한데 마무리랑 5선발은 계속해서 말썽이네. 특히 바비 홀은 예전의 그 철벽이 아니야.”
“한 시즌을 통으로 날린 게 크지.”
“미키 스토리 감독도 고민이 크겠어.”
깔끔히 끝난 이닝.
C.J 포스터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확실히 수행하며 라스베이거스와 강송구에게 1승을 안겼다.
곧이어 찾아온 9월.
라스베이거스는 필라델피아로 날아갔다.
* * *
필라델피아 필리스.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3위.
1위인 워싱턴과 14경기 차이.
2위인 뉴욕 메츠와는 5경기 차이.
불펜진은 역대 최악이라 불리고 있으며.
선발진은 ‘에제키엘 벤투라와 4명의 트롤러’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제법 심각했다.
그나마 타격과 수비는 봐줄 만했는데.
장점이라고는 딱 그 정도뿐인 팀이었다.
내야의 핵심인 유격수가 ‘야구의 신’과 ‘40살 먹은 사회인야구단 부장님’을 오가며 오락가락한 것만 빼면 내야의 수비도 제법 탄탄했고.
외야도 기본 이상은 해주었다.
타격에서도 기회가 오면 뻥뻥 쳐주었다.
하지만 타격의 도움을 받아도 불펜이 날렸다.
에제키엘 벤투라를 제외한 선발은 평균 이닝 소화 능력이 5이닝도 겨우 될까 말까 한 수준.
이 팀에 제일 필요한 것은 투수였다.
그런 상황에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투수진을 갖춘 라스베이거스와 매치업이 잡혔다.
“필리건은 말이야. 그냥 미쳤어.”
“어떻게 미쳤는데?”
“그걸 설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필리건이었겠지.”
“오.”
필리건의 악명을 들어서 알고 있는 몇몇 젊은 선수들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찾아온 필리스와 3연전.
그 첫 번째 경기에서 라스베이거스의 젊은 선수들은 필리스의 악명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우우우우우우우!”
“죽어! 죽으라고!”
“이 X같은 새끼야!”
필리스의 투수인 단테 멘도자가 폭투를 던지는 순간 들려오는 날선 욕설과 야유.
라스베이거스의 젊은 선수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곧 다음 타자를 삼진으로 잡자…….
“와아아아! 그렇지!”
“단테! 넌 최고야!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환상적인 필리스의 에이스가 될 재능이라고!”
“커모오오오오온!”
“이렇게만 던지라고!”
태세전환이 남달랐다.
뭐,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순간 단테 멘도자의 아버지의 직업이 바뀌는 기적까지 이루어졌다.
오락가락한 홈팬들의 반응.
물론, 원정팀인 라스베이거스에게 쏟아지는 야유와 욕설은 홈팀인 필리스와 비교할 수 없었다.
덕분에 1차전 승자는 필리스.
8 대 6까지 가는 접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마운드에 올랐던 존 바예호의 표정은 이미 하얗게 질려있었다.
어마어마하게 욕을 먹었으니.
-역시……. 필리건! 진짜 야유랑 욕설 하나만큼은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야.
우효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남은 과일을 입에 넣었다.
찹찹찹찹찹.
-캬! 역시 아이스 망고야! 시원하네. 그런데 내일 경기는 자신 있어? 다른 경기랑 다르게 뭔가 여유로워 보이네?
“여유가 아니다. 기쁜 거다.”
-기쁘다니?
“네게서 받은 도치코인이 떡상했거든.”
움찔.
-거……. 거짓말이지?
“아니, 300% 떡상이다.”
툭하고 떨어지는 아이스 망고.
우효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 * *
9월 4일.
필리스 3연전의 두 번째 경기.
강송구의 선발 등판이 있는 날.
그는 어제 충격을 받아 창문만 바라보던 우효가 평소와 다르게 고슴도치용 티셔츠를 입고 있음을 확인했다.
“필리스 유니폼이네.”
-우우우우! 죽어! 죽어라! 강송구! 여기가 너의 무덤이다! 덩치만 큰 머저리!
“…….”
갑자기 왜 저러는 것일까.
강송구는 작은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이내 고갤 흔들었다.
저 고슴도치가 괴상한 일을 저지른 것이 같이 살면서 한두 번 있던 일인가?
버스에 올라 필리스의 홈구장으로 향하고,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효는 계속해서 야유를 보냈다.
강송구는 저 작은 고슴도치가 이러다가 성대결절이 오지는 않을지 작게나마 걱정을 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되기 무섭게 우효는 도도도 달려서 1루 관중석 펜스 위에 앉았다.
우효의 뒤에는 필리건이 두 눈에 광기를 드러내며 1회 초 마운드에 오른 필리스의 에이스.
에제키엘 벤투라를 향해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벤투라! 오늘 지면 너희 어머니가 하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달려가서 더블 콰트로 치즈버거 3개를 시킨 뒤에 2개 값만 내고 도망갈 거야!”
“벤투라! 벤투라!”
“오늘 무조건 너도 퍼펙트게임이야! 알겠어? 벤투라! 오늘은 꼭 이기라고!”
-벤투라! 벤투라! 벤투라!
홈팬들 사이로 우효가 상대 에이스인 에제키엘 벤투라의 이름을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강송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효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1회 초.
에제키엘 벤투라가 초구를 던졌다.
그는 패스트볼과 커브, 체인지업을 주로 던지는 투수로 작년에 15승 12패 ERA 4.00을 기록했었다.
에이스라기엔 뭔가 아쉬운 기록.
하지만 작년 필리스의 내야는 시한폭탄이었고, 그런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200이닝을 소화하며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는 점은 사실 좋게 봐야 할 부분이었다.
올해 그의 성적은 10승 10패 ERA 2.98로.
한국 내에서 그의 별명이 필리스산 패배 귀신이었다.
이번 시즌에 내야가 안정되면서 작년보다 평균자책점은 무려 1점이나 내린 에제키엘 벤투라는 확실히 에이스라는 말이 어울리는 최고의 투수였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93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타자의 몸쪽에 날아들었다.
움찔하고 몸을 떤 선두타자 조쉬 마이어스.
그 모습을 보고 필리스의 홈팬들이 크게 웃었다.
“이거지! 이거야! 역시 벤투라!”
“어이! 조쉬! 그런 공에 겁먹으면 X알 때라고!”
“커몬! 커몬! 커몬! 필리스!”
하지만 다음 공을 조쉬 마이어스가 때려내자 웃음을 지우고 온갖 야유와 욕설을 내뱉었다.
“XX같은 새끼야! 제대로 던져!”
“조쉬 이 X같은 놈!”
“우우우우우우우!”
필리건의 야유와 욕설은 에제키엘 벤투라가 병살로 깔끔히 이닝을 지우고 나서야 사라졌다.
그리고 1회 말.
강송구가 마운드에 올랐다.
-우우우우! 강송구 망해라!
우효의 야유가 들려오는 것을 무시하고 강송구는 타석에 들어선 선두타자를 바라봤다.
안드레스 에스퀴벨.
쿠바 출신의 29살의 좌익수.
타율은 0.295로 제법 준수한 편.
하지만 그에 비해 타출갭이 크지 않고.
삼진을 자주 당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장타력이 뛰어난 편도 아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4구 승부 끝에 잡아낸 첫 번째 아웃.
필리건들이 강송구의 피칭을 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제법이네. 난 아메리칸리그에 속한 녀석들이 멍청해서 저 투수에게 농락당했다고 생각했거든.”
“뭐, 좀 하네. 하지만 필리스를 상대로 무실점 기록을 더 이어나갈 수 없는 법이지.”
“딱 얼굴을 보니까. 필리스에 어울리는 투수야.”
다음 타자를 5구 만에 삼진으로 잡고.
마지막 타자를 내야 뜬공으로 잡아낸 순간.
그들의 여유는 사라졌다.
“이 XXX같은 새끼들! 너희들이 프로야? 왜 저 공에 손도 못 대는데?”
“멍청한 갈반.”
“데이비드! 집중해!”
“우우우우우우!”
강송구에게 아웃을 헌납한 팀의 타자들을 향해 야유를 보내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필리건이 지독한 만큼, 그 필리건에 시달리며 진화한 필리스 선수의 반응도 대단했다.
자신을 향해 욕설을 내뱉는 팬이 있는 방향으로 침을 뱉고는 피식 웃어넘겼다.
어떤 선수는 몰래 중지를 들어 올리기도 했다.
혼란한 필리스의 시티즌즈 뱅크 파크.
강송구는 더그아웃에 앉아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세상에 이런 구단과 팬들이 대한민국 부산 말고 다른 곳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