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한계는 없다!(2)
구속이 왜 늘어났을까.
강송구는 마운드에서 내려와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지.’
그래, 딱히 문제 될 것 없다.
애초에 강송구가 가진 구속의 포텐셜은 102마일에서 103마일 근처라는 사실이다.
즉, 부상이 회복되었고.
시스템도 사라진 이상 언젠가는 달성했을 구속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무튼.
2회 초.
앙헬 풀리도가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 전반기와 다르게 더욱 날카로운 공을 던지는 볼티모어의 에이스는 금방 2회 초를 삭제시키며 마운드를 내려갔다.
하지만 그런 앙헬 풀리도의 피칭도 캠든 야즈를 찾은 홈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길 수 없었다.
모두의 시선이 강송구에게 쏠렸다.
왼손은 물론이고 오른손으로 100마일을 던질 수 있게 된 강송구의 피칭을 기대하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강송구는 그들의 기대감을 충족해 줬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부터 날카로운 포심이 날아들었다.
99마일의 구속을 본 순간.
볼티모어의 4번 타자이자 팀의 정신적인 기둥인 코리 시거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런 구속에 제구력까지 갖췄다고?’
완전 사기가 아닌가?
코리 시거가 재차 자세를 잡았다.
2구째는 스플리터.
이전 스플리터의 타이밍을 기억하고 있던 코리 시거에게 2마일 정도 더 빨라진 스플리터는 재앙이었다.
그저 참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제발 볼이길…….’
물론, 강송구의 오른손은 왼손과 다르게 제구가 뛰어났다.
당연히 완벽한 스플리터를 던질 수 있었다.
“스트라이크!”
단 2구만에 카운트가 몰린 코리 시거.
그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3구째.
강송구가 던진 포심이 매섭게 날아들었다.
그것도 몸쪽 깊이.
슈우우욱! 따악!
급히 배트를 휘두른 코리 시거는 생각보다 타구가 뻗어 나가지 않음을 깨닫고 1루로 빠르게 달렸다.
하지만 결과는 중견수 플라이 아웃.
토미 리브스가 깔끔히 뜬공을 처리하며 강송구가 2회 말의 첫 번째 아웃을 처리했다.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코리 시거는 생각보다 훨씬 종잡을 수 없는 강송구의 포심 패스트볼에 혀를 내둘렀다.
이어진 승부.
5번 타자인 헬리엇 라모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0.237의 낮은 타율과 반대로 28개의 홈런을 때려낸 전형적인 공갈포 타자가 헬리엇 라모스다.
그는 부푼 팔뚝 근육을 자랑하며 배트를 붕붕 휘둘렀다.
-캬……. 저 정도면 진짜 3대 500인 치겠는데?
우효가 헬리엇의 근육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설픈 공은 모두 넘어간다.
그만큼의 파워를 갖춘 타자다.
[중계창]
-강송구 피홈런 기원 132일째…….
-캬, 3대 500은 치겠네;
-500은 무슨; 700도 치게 생겼구만;
-진짜 저 주먹으로 맞으면 죽을 자신 있다.
-저런 팔뚝으로 배트를 휘두르면 공이 터질 수도 있겠는데? 진짜 미쳤네;
-그것보다 오늘 강송구 왜 저럼? 진짜 미쳤는데;
-고3 때 저 정도 기본으로 던지던 투수였다. 솔직히 부상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음.
-진짜 신기하네.
-쳤다!
-응, 파울ㅋㅋㅋㅋ
-2구째는 바깥쪽 커브넼ㅋㅋ
-강송구 쫄았쥬? 커브로 도망가는 피칭들어가쥬?
-3구째 몸쪽 98마일 커터.
-ㅋㅋㅋ 뭐? 쫄아? ㅋㅋㅋㅋ 바로 몸쪽 커터 나오면서 야알못들 아닥해버리넼ㅋㅋ
-개쩌내; 어떻게 저런 구속이 나올 수 있지?
-진짜 사람의 피지컬이 아님.
5구째.
2-2의 상황.
강송구가 선택한 공은 바깥쪽 체인지업이었다.
제대로 손에 걸친 공.
체인지업이 매끄럽게 떨어졌다.
따악!
제법 길게 나아가는 공.
하지만 결과는 좌익수 플라이 아웃이었다.
‘이번 시즌에 쌓은 스텟보다 펀치력이 떨어지고, 오히려 타격 센스가 좋은 타자다.’
아마 올해는 여러 일로 공갈포 타자처럼 때려낸 것이겠지만, 다음 시즌에는 다시 본래의 성적으로 돌아갈 확률이 높았다.
‘데뷔 시즌에 0.273의 타율에 18개의 홈런을 때렸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그와 비슷한 기록을 보여주겠지.’
아무튼, 다음에 상대할 때는 땅볼을 유도해서 범타로 잡아내는 것이 좋겠다고 정리한 강송구가 이번 이닝의 마지막 타자를 바라봤다.
-다음 타자는 볼티모어의 6번 타자! 트리스탄 카사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작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뛰었고, 올해 볼티모어로 왔지만, 전반기에는 부상으로 뛰지 못했었습니다. 타율은 0.180에 홈런은 15개로 후반기에도 부진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루수에 구멍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트리스탄 카사스 선수를 기용할 수밖에 없는 볼티모어인데요. 과연 이번 승부에서 트리스탄 선수가 캉의 공을 때려낼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1할 후반대의 타율을 가진 타자였다.
거기다 96마일 이상의 공을 상대로는 그 타율이 더 낮아서 한국에서는 별명이 ‘미스터 팔푼’이었다.
하물며 강송구가 던지는 공의 구속은 99마일 근처.
트리스탄의 배트는 신나게 허공을 갈랐다.
거기다 떨어지는 공에 그대로 헛스윙 삼진까지.
그나마 그가 볼티모어의 주전급 선수인 이유는 진짜 끝내주는 내야 멀티플레이어기 때문이었다.
타율만 2할대 초반이었어도 지금보다 몸값이 10배는 더 나왔을 것이다.
그만큼 수비력 하니만큼은 끝내주는 타자였다.
아무튼.
깔끔히 2회 말을 지워낸 강송구.
그가 마운드를 내려오니 조던 델가도가 씩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오늘 컨디션이 엄청 좋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오른손의 구속 때문인 것 같았다.
강송구가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평소보다 어깨가 가벼워.”
“3회 말부터는 플랜B로 가자.”
“그래도 될까?”
“화이트삭스와 경기에서 느꼈는데 지금보다 더 다양한 플랜을 활용해야겠더라고.”
“난 상관없다.”
필요하다면 그가 직접 볼 배합을 해도 좋았다.
그저 조던 델가도라는 좋은 포수가 있어서 크게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았을 뿐이지.
3회 초.
앙헬 풀리도가 마운드에 올랐다.
그는 있는 힘껏 공을 던지며 이닝을 순식간에 지워냈다.
악에 받친듯한 그의 피칭에 몇몇 선수들은 생각보다 경기가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강하게 던지는 건 좋은데……. 뭔가 점점 단순해지네?”
“확실히 구위가 대단해. 평소보다 더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단 말이야. 그런데……. 치지 못할 것 같지는 않아.”
어차피 오늘 경기는 라스베이거스에게 유리했다.
강송구는 9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줄 것이고, 그 사이에 라스베이거스의 타선은 딱 1점만 얻으면 되니까.
그러니 평소보다 더 여유가 있었다.
거기다 상대 에이스는 알아서 진창에 빠져주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임에도 그는 한여름의 마운드에 오른 것처럼 땀을 흠뻑 흘리고 있었다.
저렇게 던지다가는 7이닝도 겨우 던질지도 모른다.
[해외야구 갤러리]
-제목: ㅋㅋㅋ 앙헬쉑ㅋㅋ 사우나왔냐?
-내용: 육수가 줄줄 흐르는데?
[댓글란]
-사바뚱도 그렇고 앙헬쉑도 그렇고……. 대체로 공을 잘 던지는 투수들은 배에 야구주머니를 달고 다니더라.
-야구주머닠ㅋㅋㅋㅋ
-강송구는 그런 야구주머니 없이 잘 던지는데?
-고거슨 상대 야구주머니는 근육으로 때려서 강탈하기 때문이에요오오오옷!
-확실히 배에 야구주머니 달고 있는 선수들이 신기하게 야구 하나는 잘하지.
-앙헬쉑……. 10킬로나 증량했다는데……. 그게 왜 다 배로간거냐구?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난 신기한 게 시즌 도중에 10킬로를 찌는 게 가능함? 그 혹독한 시즌을 치르면 절로 살이 빠진다던데;
-그만큼 안 움직이고 도넛만 처먹었다잖아.
-역시 앙헬 도넛맨…….
-그러면 보통 경기력에 문제가 생겨야 하잖아. 그런데 저렇게 잘 던지는 게 말이 되나?
-내가 그걸 알았으면 야구했지. 이렇게 느그들이랑 야구 보면서 토토나 하고 있겠냐?
-누구한테 걸었냐?
-누구한테 걸었겠냐? 당연히 정배지.
-너……. 침팬지보다 똑똑하구나?
-당연한 소린데 뭔가 기분 X같네.
-ㅋㅋㅋㅋ 아 정배하면 일단 침팬지보다 똑똑한거라구! 봐! 세상에 침팬지보다 멍청해서 역배에 건 놈들을 보라궄ㅋㅋ
그렇게 끝이 난 3회 초.
앙헬 풀리도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점점 몸이 공처럼 둥글게 변하기 시작한 30대 초반의 투수를 지켜보던 우효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나도…….
쭉하고 앞발로 배를 당겨보니 살이 제법 붙어 있었다.
우효는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평소에 먹던 망고 4조각과 사과 2조각에서 망고 3조각 사과 1조각으로 줄이는 다이어트를 해야겠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마운드에 오른 강송구.
3회 말의 첫 타자는 헤이든 멜란디즈였다.
이윽고 초구가 날아들었다.
슈우우욱!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하지만 구속은 조금 달랐다.
“…….”
헤이든 멜란디즈의 두 눈에 불꽃이 치솟았다.
‘90마일?’
마치 자신을 간 보는 것처럼 들어온 공이었다.
거기다 구속도 정말 애매하게 90마일이었다.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바짝 배트를 쥔 헤이든의 눈이 빛났다.
2구째는 낮게 처박히는 스플리터였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Fxxk!”
거친 욕설을 내뱉은 헤이든이 조던 델가도를 노려봤다. ‘혹시 네가 볼 배합을 이렇게 가져가는 거 아니야?’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이었다.
물론, 조던 델가도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이윽고 날아든 3구째.
몸쪽 코스로 날아드는 공.
90마일의 공과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봤다.
그다음에 던져야 할 공은?
당연히 100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그것도 몸쪽 깊이 들어가는 코스였다.
슈우우욱! 펑!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그대로 삼진! 헛스윙 삼진!
-헤이든 선수가 완벽히 당했습니다.
몸이 반응하지도 못했다.
그만큼 위력적인 공이었다.
몸쪽 코스로 들어가는 100마일 근처의 포심 패스트볼은 타자가 쉽게 때려낼 수 있는 공이 아니었다.
거기다 앞에서 90마일의 포심과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봤기에 더 타이밍을 잡기 어려웠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강송구는 왼손도 있었다.
“홀리 카우.”
타석에 들어선 셔턴 아포스텔.
그는 강송구의 왼손에서 튀어나온 103마일의 포심을 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오른손으로 던질 때보다 더 흉악했다.
저게 머리로 날아든다?
그날로 죽었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 상상만으로 타자의 몸은 잔뜩 굳어졌다.
“당했군.”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코리 시거가 눈을 찌푸렸다. 점점 라스베이거스에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간다.
‘그래도 기회는 남아 있다.’
아무리 강송구라도 실투 없이 모든 공을 완벽히 던지라는 법이 없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된 거 길게 본다.’
코리 시거가 고갤 끄덕였다.
승부는 8회나 9회에서 걸어야 한다.
지금 상태로는 저 괴물에게 의지만 꺾일 뿐이었다.
이윽고 지워지는 3회 말의 아웃 카운트.
잠시 뒤에 모든 아웃을 잡아낸 강송구가 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며 코리 시거가 두 눈을 빛냈다.
경기는 3회 말일뿐이고.
아직 많은 이닝이 남아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