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그 오브 발할라-10화 (10/208)

# 10

10화. 영웅은 멈추지 않는다 (3)

“일단 오늘은 경기를 했으니 치우고… 알바를 구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하는 데에 한 3일쯤 걸릴 거야.”

“흠, 메르키에게 너와 듀오를 짜겠노라 말하면 되나?”

“아니, 내가 이미 말해 뒀어. 메르키 공께서 너한테 물을 거야, 아마.”

메르키 공(公)?

그 까마귀에게 거창한 말을 붙이는군.

“음? 그런데 지금 어디 가는 거지? 메르키 공이 말하길, 넌 시간이 비면 매일 훈련한다 들었는데… 그쪽은 투기장이 아니야.”

“안다. 지금은 대장간에 가는 길이다.”

“대장간?”

이그나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벌써 그렇게 벌었다고? 아니, 말이 안 되는데… 너 혹시 부업 하니?”

“부업?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승리 수당이 꽤 많이 나왔다.”

무려 21만 크로나다- 하고 말하니, 이그나르가 기괴한 표정을 짓는다.

자기 입에 들어간 육포가 사실은 개똥 말린 것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의 토르손과 비슷한 얼굴이다.

“…어, 음. 그 뜨거운 기대감에 찬물을 부어서 좀 미안하긴 한데…….”

“음? 무슨 문제 있나?”

“엄청 문제 있지, 인마! 대장간에서 취급하는 물건은 기본이 억대야 억대!”

억대라고?

그게 말이나 되나? 회복력을 올려 주는 세흐림니르 고기도 1만 크로나가 안 된다. 헤이드룬 미드 역시 5천 크로나 안쪽으로 한 잔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그냥 무기가 억대라고?

어이가 없어 눈썹을 구기니, 이그나르가 쯧쯧 혀를 찼다.

“대장간에서 일하는 대장장이는 모두가 드베르그다.”

“난쟁이가 만든 물건이라고?”

“그래, 그놈들은 보통 물건은 안 만들어.”

수지가 안 맞거든.

이그나르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보통 물건이 아니다? 그럼…….

“궁니르나 묠니르 같은 걸 만들어 판다고?”

“뭐… 좀 과한 예시긴 한데, 마법 무기를 팔지, 보통.”

입을 쩍 벌리고 있자니, 이그나르가 어깨를 으쓱인다.

“일반적인 무기라면 저쪽이지.”

“…흐음.”

이그나르가 손가락을 펴서 커다란 상점 하나를 가리킨다.

빨간 간판에 새겨진 흰 룬 문자가 선명하다.

[발할라 대표 생활 센스 스토어]

[다이스(Dice)]

간판에 마법을 걸어 뒀는지, 노을이 지는 와중에도 번쩍번쩍 빛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가게를 들락날락거리는 게 약간은 부담스럽다.

“…비싼 가게 아닌가?”

“아니, 박리다매야.”

“마법 간판을 걸어 둘 정돈데… 비싸지 않다고?”

“마법 간판? 아니, 저런 거야, 뭐. 돈이 없는 가게는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인 이그나르가 덧붙인다.

“로키스 패밀리 그룹에서 하는 사업이거든.”

로키. 그 이름에 인상을 찌푸렸다.

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단숨에 인식을 바꾸긴 힘들 것 같다.

입술을 살짝 씹자니, 이그나르가 날 휘황찬란한 가게로 이끈다.

“쯧, 확실히 하계물이 덜 빠졌군.”

이그나르가 중얼댄다.

이 자식, 생각보다 말이 너무 많다.

* * *

“로키는 꽤 좋은 신 아닌가!”

감탄을 토하자, 이그나르가 혀를 내둘렀다.

녀석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로키라는 이름에 인상 구기지 않았냐?”

“이런 훌륭한 창을 겨우 5천 크로나에 팔다니!”

“젠장할. 자본주의 모른다고 한 거 구라지, 새끼야?”

쯧쯧, 혀를 차고 창을 들어 올렸다.

주변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는 창.

무려 통짜 쇠로 된 녀석이다. 반짝반짝 은빛이 아름다운데도 그다지 무겁지도 않다.

과연 발할라, 제국의 훌륭한 야금술로도 만들어 내지 못할 물건을 싼값에 판다.

가격은 어떤가?

패배 수당으로도 두 자루나 살 수 있을 값!

그 덕에 나도 약간은 과하게 샀다.

장창이 한 자루, 거기다 단창이 두 자루다. 장창을 쓰기 애매하다 싶을 때는 단창 & 방패, 혹은 쌍단창으로 상대하리라.

게다가 장창을 사용할 때에도 투기장 무기 규칙에 따라, 부 무장으로 단창을 선택할 수 있다.

더불어, 발할라에서는 노출을 좋게 보지 않는다는 이그나르의 말에 옷도 몇 장 샀다.

“…방패도 샀으면 좋았을 것을.”

“쯧, 어차피 투기장에서 무기 하나는 빌릴 수 있잖아? 방패는 방어하다가 부서지는 경우가 흔한데, 그걸 사서 쓰면 돈만 많이 나가.”

꽤나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투기장 무기 규칙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경기 중 무기는 한 번에 두 개까지 지닐 수 있다(방패도 무기로 취급한다).

둘째, 투기장에서는 무기가 없는 이들을 위해 한 경기에 하나의 무기를 대여한다. 파손이 되더라도 배상은 없다.

셋째, 원거리 무기의 탄환(재블린(투척용 창)과 화살 등)은 각기 5발씩 지닐 수 있다.

활이나 투창을 주로 이용하는 이들에게 불리한 규칙이지만, 투기장은 싸움을 보여 주는 데에 의의가 있다. 원거리 무기를 이용하여 멀리서 깨작대는 건 뜨거운 싸움이라 할 수 없다.

제국군은 활만 쏘는 놈들도 따로 편제를 짜곤 했지만, 발할라의 전사들이 그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난 라그나로크 때를 대비해서 활이나 석궁, 총 같은 걸 좀 연습해 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긴 해.”

어깨를 으쓱이는 이그나르.

쯧쯧 혀를 찼다.

“완전히 발할라의 평화에 젖었군. 그런 비열한 방식을 선호하다니.”

“…너도 길이에서 이득을 보는 창을 쓰잖냐.”

“그것과 이건 다르다!”

“대체 뭐가 다른데?”

이그나르의 말에 잠깐 생각을 했지만…….

“시끄럽다! 당장 훈련을 하러 간다!”

“…할 말 없으니까, 새끼.”

흥, 할 말이야 잔뜩 있다.

진짜다. 이그나르 놈이 멍청해서 이해를 못할 것 같을 뿐이다.

* * *

‘좋은 선택이었겠지?’

이그나르는 오디슨과 헤어진 뒤 생각했다.

칼리돈과의 싸움에서는 실망했다. 괜한 기대를 걸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보여 준 고블린과의 싸움에서 그는 심장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계에 있을 적, 그리고 발할라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을 적에 느낀 흥분이었다.

싸움은 힘이 좋다고, 재생력이 뛰어나다고, 무언가 대단한 능력을 지녔다고, 정교한 기술을 지녔다고 이기는 게 아니다.

싸움은 깡이다.

“…깡이라.”

무식하기 그지없는 단어지만, 이그나르는 자신이 무식한 놈이었다는 걸 잘 안다.

그 무식함으로 우직하게 밀어붙여 가게를 냈다.

그리고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지닌 게 너무 많아진 것이다.

‘싸움에서 크게 다쳐 치료비가 엄청나게 나오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가게가 넘어가면?’

가게를 내고 가게 수입과 투기장 수입을 합치면 금방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올 수 있을 줄 알았다.

두 사람의 운명 가치와 몸값을 합치면 5억. 아들의 운명 가치가 3억에 이른다는 걸 알고, 슬프면서도 기뻤다.

내 아들이 대단한 운명을 타고났구나!

생각했지만, 대단한 운명보다는 그저 곁에서 재롱을 부려 줬으면 싶었다.

‘…뭐, 아내가 1억이나 되는 업보를 지니고 있다는 게 더 놀라웠지만.’

전설 속의 전사인 얼음도끼 이그나르는, 생전에도 대단한 전사였다.

거대 부족의 으뜸 전사였으며, 그를 품고자 하는 이들은 수두룩했다. 아내 역시 이그나르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이그나르에게 접근하는 여자들을 죽이거나 쫓아냈다.

그 대가를 이제야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얼음도끼.’

하계에 있을 때는 자랑스러웠고, 발할라에서는 부담스러웠으며, 지금은…….

“다시 이걸 잡게 될 줄이야.”

기대가 된다.

이그나르는 가게 안 단칸방 벽에서 도끼들을 떼어 냈다.

그의 주 무장인 쌍도끼다.

도끼를 손에서 놓은 지도 몇 년이나 되었지만, 녹 하나 슬지 않은 모습이었다.

“…2억만 더 모으면 된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자.”

서슬 퍼런 도끼를 만지작거리던 이그나르가 탁자 위에 도끼를 놓았다.

그리고 종이를 꺼내 글을 썼다.

[알바 모집]

[접객/서빙/계산]

[시급 5천 크로나.]

[가족 같은 분위기의 숯불 세흐림니르 구이에서 알바를 모집합니다. 깐깐한 사장은 투기장에서 싸우느라 자주 들르지 않으며, 어머니처럼 푸근한 주방 이모와 정답게 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놓치지 마세요^^]

[제한: 용모 단정한 아리따운 아가씨.]

“음, 이 정도면 됐지.”

이그나르가 그 종이를 가게에 붙이러 나간 사이, 테이블 위에 있던 도끼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선명하게 새겨진 룬 문자가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번쩍인다.

[스테인리스 한손 도끼]

[Kr 3,500]

오디슨이 오늘 산 창과 같은 재질이다.

“어, 뭐야. 젠장. 장판이 찍혔잖아.”

이그나르가 돌아와 짜증을 부리고 도끼를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 뒀다.

그는 내일부터 당장 오디슨과의 훈련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메르키 공이 말하길 훈련이 힘들다고 하던데…….’

후후- 나지막이 웃었다.

힘든 훈련을 하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가? 역시나 오디슨 그 자식은 제정신이 아니다.

발할라에서 힘든 훈련이라니.

이그나르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 * *

그는 깨어나자마자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에게 알바생 면접을 부탁한 뒤 투기장을 향했다.

“까악? 오디슨에게 들었다. 듀오를 짜기로 했다면서?”

“흐흐, 그러니까 좀 괜찮은 놈들로 붙여 줍쇼.”

“쯧쯧, 장사하던 습관이 남았구만.”

아무래도 이 장사치 물이 잘 안 빠져서 말이오.

너스레를 떠는 이그나르에게 메르키가 피식 웃어 보였다.

“잘됐군.”

“뭐가 말이오?”

“오디슨 저놈이 장사하던 습관을 쫙 빼 줄 게다, 아마. 깍깍.”

메르키가 기분 좋게 울었다.

이그나르는 신기하다 생각했다.

메르키는 오딘의 까마귀인 후긴과 무닌을 제외하면 까마귀 중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이이다.

까마귀 공작. 그런 그가 이렇게 친밀하게 오디슨을 대하다니. 이그나르가 투사일 적에도 겪어 본 적 없는, 그리고 본 적도 없는 친밀한 태도다.

‘난놈은 난놈인가?’

혀를 내두르며 훈련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기겁했다.

“…미친 새끼!”

오디슨의 훈련이 지독하다 듣긴 했지만…….

그 훈련이라는 게 저런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라니!

“끄으으으으윽!”

거의 제 몸통만큼 커다란 돌을 들었다 놨다, 반복하고 있었다.

고블린과의 경기 이후 가름과의 경기에서 엄청나게 몸이 불었다 했더니, 저런 식으로 몸을 불린 건가?

이그나르는 혀를 내둘렀다.

“미친놈… 저걸 같이하자는 건 아니겠지?”

이그나르가 중얼거릴 때, 오디슨이 돌을 휙 던졌다.

쿠- 웅! 묵직한 소리가 훈련장을 뒤흔들고, 오디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돌을 놓쳐 몸이 만신창이가 되는 일은 사라졌다.

“후우, 이제는 좀 가뿐하군.”

“…그게 가뿐하다고?”

어이없어 내뱉는 말에 오디슨이 뒤를 돌아보았다.

“음? 왔나?”

“…그래. 근데 대체 뭐하는 거야?”

“훈련이지.”

“왜 헤이드룬 미드를 마시지 않고…….”

오디슨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건 더 이상 힘이 안 늘게 되면 마실 거다.”

“…으음, 그래서, 설마… 나도 이걸 하라는 건 아니겠지?”

이그나르의 말에 오디슨이 피식 웃는다.

그리고 땀을 줄줄 흘리며 다가와 그 뱃살을 꼬집었다.

“이딴 몸으로 전사라고 할 수 있나?”

이그나르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날, 최하급 투기장 대기실의 핫 이슈 1위는 빨간 거지의 친구인 곰탱이였다.

투사들은 모두 그 둘의 무식한 훈련을 비웃으며 낄낄댔다.

“대체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야? 저러다가 치료비가 더 나오겠네, 큭큭.”

“쯧쯧, 멍청하긴. 저런 짓으로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어차피 U500을 벗어나면 평범한 투사들은 버티지도 못하는데…….”

메르키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흥, 술과 여자에 젖어 둔해진 너희들보다는 저쪽이 더 기대가 되는데?”

“헹, 메르키 공, 농담이지? 내가 이제껏 마신 헤이드룬 미드가 몇 잔인데.”

“자신 있나?”

메르키의 물음에 얼굴을 가로지르는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웃었다.

“자신? 넘치고말고. 내가 누군지 몰라? U500의 최강자, 야른시다라고!”

그 말에 메르키는 생각했다.

똥통에서 제일 굵은 똥인 게 뭐가 그리 자랑이냐고.

하지만 그 생각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럼 한번 싸워 보는 건 어떤깍? U500의 루키와 U500의 최강자의 싸움이라면 꽤 관심을 가질 텐데.”

“흐흐흐, 그것도 나쁘지 않지. 관심이 커지면 승리 수당도 커지니까 말이야.”

야른시다가 비릿하게 웃고, 메르키도 비릿하게 웃었다. 둘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다른 결과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오디슨과 이그나르 듀오와 야른시다의 듀오가 맞붙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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