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Rainbow city (5) (19/23)

Rainbow city (5)


연합국이 활동할 당시 각 시티는 인류의 보존을 위해 핵 혹은 탄도 미사일의 소유권을 포기해야 했다. 레인보우 시티도 연합국에 소속되면서 군사 무기를 상당수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담의 감염도 막지 못했는데 연합국에 소속된 시티 간에 핵 싸움까지 벌어진다면, 인류가 이룩해온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인류의 존속도 장담할 수 없었다. 더욱이 무기를 단속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인간의 이기심과 충동성 때문이었다.

연합국 초기, 아담에 감염된 러시아 시티의 장군은 자살 직전 눈엣가시로 여기던 수장이 있는 도시를 향해 대량의 미사일을 발포했다. 죄 없는 사람들이 죽었고, 혼돈 속에서 아담은 더 날뛰었다. 그 사건 이후 연합국은 군사법을 재정비해 오히려 퇴보하기에 이르렀다. 그 어떤 군사무기로도 아담을 완벽히 제거할 수는 없으니 인류의 존속을 우선순위에 둠에 따라 대량살상무기가 상당수 자취를 감춘 것이다.

[……황제펭귄이 부산, 대구 쉘터를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우리는 백신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지프를 타고 헬기가 있는 곳까지 달리던 중이었다. 양상훈에게서 운전대를 건네받은 곽수환은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헬기를 향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 안에 최호언이 타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헬기가 이동하는 곳은 당사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지상에서 헬기를 격추시키려면 미사일 혹은 대공포가 필요하지만, 그 또한 사격이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했다.

여기서 당사도까지 날아간다면 중간에 기름을 채워야 할 테니, 족히 반나절은 걸릴 거다.

“과천 쉘터로 지금 연결돼?”

“예, 지프 무전기와 전파탑 중계로 연결됩니다.”

조운 대위가 곽수환에게 무전기를 넘겼다.

“과천 쉘터 들리나? 나 곽수환이다.”

[감지 완료. 말씀하십시오, 대장.]

과천 쉘터는 아직 곽수환의 S급 부대원 몇몇과 황제펭귄 용병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하늘에 보이는 헬기 전부 격추시켜. 비상 헬기 제외하고 전부 띄워서 시티 군 헬기 추격해.”

[카피 댓.]

무전기를 원위치에 꽂고는 광주의 11그린 구역으로 차를 몰았다. 대학 캠퍼스로 사용되던 곳을 개조해 군사무기를 관리하는 무기고였다.

중간에 다른 곳에서 헬기를 탈 수 있었으나 과천 쉘터의 헬기와 맞물려 난장판이 되는 일은 피해야 했다. 위에서 공중전을 벌일 동안 저희들은 육로를 이용해 미친 듯이 지프를 몰았다. 젠장맞게도 쉘터에서 나온 뒤로 어느새 두 시간이나 넘어가고 있었다.

석화의 안전이 걱정돼 머릿속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야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흥분은 일을 그르치게 한다. 그런데도 핸들을 쥐고 있는 손등의 힘줄은 터질 듯 불거져 있었다.

“신분을 확인해주십시오! 차를 정차하십시오!”

시티 소속 군용 지프를 향해 경비 초소가 경고했다. 속도를 줄이지 않으니 확성기를 든 군인이 직접 나와 섰다. 곽수환은 그대로 지프를 밟아서 질러나갔다. 침입자다, 막아! 외치는 소리와 함께 두두둑, 총알이 지프에 박혔다. 그는 아랑곳 않고 곧장 총탄이 날아오는 감시탑으로 차를 몰았다.

양상훈과 조운 대위도 감시탑을 향해 총을 휘갈겼고, 그 밑에 차를 세우자마자 그들은 아파트 5층 높이의 탑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 감시탑부터 장악해야 헬기를 가지고 나갈 수가 있었다. 곽수환이 발로 문을 걷어차고 안으로 기관단총을 넣어 난사했다. 총알이 여기저기 튕기는 소리와 함께 비명도 함께 터졌다. 곽수환을 엄호하던 양상훈은 계단 밑에서 거리를 좁혀오는 군인들에게 소리쳤다.

“뒈지기 싫으면 그대로 있어! 니들도 생각이라는 걸 하라고! 씨발! 백신도 개발됐겠다, 상황 보면 몰라? 컨트롤러한테 총 들이대는 군기 빠진 새끼들이 어디 있어! 여기 책임자 새끼 누구야!”

양상훈이 소리를 지르며 군번줄을 떼서 밑으로 던졌다. 밑에서 권총을 조준한 준장 한 놈이 쓱 모습을 드러냈다. 발로 군번을 툭 쳐서 보더니 목소리를 크게 냈다.

“백신이 진짜입니까? 황제펭귄이 시티를 장악했고, 마스터는 우리 버리고 도주한 겁니까?”

“그렇다니까! 귓구멍 처 막혔어?! 라디오에서 나오는 말들 다 진짜라고!”

양상훈과 조운이 놈들을 상대하는 동안 곽수환은 감시탑으로 들어가 대공포의 탄환과 총기를 전부 저 밑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벽면에 각 쉘터 전화번호가 붙어 있었기에 그는 그중 부산으로 전화를 넣었다.

[예, 말씀하십시오.]

“이희찬, 쉘터에 있으면 바꿔.”

부산에 없다면 대구로 전화를 넣을 셈으로 다짜고짜 내뱉었다.

[누구십니까?]

“곽수환 소령이니까 이희찬 바꾸라고.”

그는 빠르지만 위협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전화 연결합니다.]

미리 고지를 받았는지 곽수환이라는 말에 상대는 이희찬에게 신호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납니다, 곽수환.”

[……세상에! 너 이 새끼 지금 어디야?! 어디서 뭐하고 있어!]

“최호언 새끼 말 믿고 석 박사 죽이라고 당사도로 사람 보냈습니까?”

곽수환이 윽박지르자 이희찬이 기가 막혀했다.

[너 장난해? 내가 그런 수작에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냐고! 그리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뭐가 중요해. 새끼야, 어차피 너랑 나랑 한 배 탔어! 석화 박사 살리러 채윤이 보냈는데, 제주도는 난장판인 데다 당사도도 싹 다 불탔대. 그 안에 박사 일행은 없고 시티 군들도 보이지 않는다니 박사가 직접 빠져나간 거 아니겠어?]

석화가 당사도를 빠져나갔다고……?

[너 지금 어디냐고!]

“광주 11그린 구역 무기고는 탈취 성공했으니까, 양상훈이랑 조운은 여기다 두고 갑니다. 이쪽으로 군인 몇 보내요.”

[넌 박사 찾으러 가겠다는 거야? 박 장군 우리 쪽으로 회유했으니 일단 너도 이쪽으로 와서,]

“씨발, 내가 헬기 다 조지라고 명령했는데 분명 헬기 타고 이동했을 것 아닙니까!”

쾅! 천둥이 곧장 눈앞에 내리꽂는 듯한 섬광이 터졌다.

[뭐야, 지금 이게…….]

수화기 반대편에서도 이희찬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곽수환이 보는 것을 똑같이 보는 듯한 반응이었다. 저 멀리서 거대한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가 밑으로 지글지글 들끓었다. 폭발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폭발음이 선명히 들렸다.

[곽 소령……. 지금.]

“11구역 무기고 감시탑에서 3시 방향, 원인 모를 폭발이 발생. 일단 화재 진압팀 보냅니다.”

[곽 소령, 아니 곽수환, 잘 들어. 지금 거기뿐만이 아니야. 지금 각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연락이 들어오는데, 그 폭발이 일어나는 위치가……. 돌겠네, 다 도시 중심이야. 게다가 방금 부산도 폭발했어.]

각 지역의 도시 중심에서 대형 폭발이 일어났다는 건 누군가가 미리 그곳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뜻이다.

“……에덴동산 지부.”

곽수환이 중얼거렸다.

[지금 들어오는 보고에 따르면 부산도 에덴동산 지부에서 폭발이 시작됐어. 일단 우리도 화재진압부터 할 테니까, 넌 최호언이든 그쪽 병신 새끼들이든 다 죽여서 없애! 그 씹새끼들 내가 용서 못 해.]

곽수환은 수화기를 내려두고 감시탑의 확성기를 들었다.

“잘 들어. 레인보우 시티의 대장군은 현재 부산 쉘터에 계신 박우환 장군만 살아계신다. 박 장군님과 컨트롤러의 명령을 전달한다. 현 시각, 각 전역의 에덴동산 지부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우리 광주 지역도 마찬가지다. 화재 진압 지원팀은 지금 당장 폭발 장소로 이동하고, 아담 발견 시 무조건 사살하라. 대피소로 이동하는 시민들 사이에 절대 아담이 껴서는 안 되니 명심들 해. 그리고 에덴동산 신도들은 전부 체포대상이다.”

그는 총을 챙겨 계단 밑으로 뛰어 내려갔다. 양상훈이 무기고의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양 소령, 당사도행은 취소야. 부산에서 군인들 지원 나올 테니까 무기고 수호하고 있어. 화재 진압팀 구성해서 내보내고, 이희찬은 내가 오해한 거니까 계속 공조하고 연락도 계속 받아.”

“야, 너는?”

그때 감시탑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둘을 대신해 조운이 뛰어올라가니 곽수환은 말을 이었다.

“석 박사가 영감하고 김 대위랑 당사도를 빠져나간 것 같아.”

“뭐?”

“위치가 발각됐다고 생각했나 봐.”

“그럼 방송 듣고 부산으로 가지 않을까?”

“아니, 우리 석 박사가 조심성이 좀 많잖아.”

안 그럴 거라며 그가 쓰게 웃었다. 조심성이 많은 건 좋은데 오늘만큼은 덜 조심했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석화가 이희찬을 완벽히 신뢰하지는 않을 테니 그야말로 헛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서 석화가 곧장 러시아로 올라갔을 것 같지도 않았다.

만일 제가 석화라면…….

자신이 신종 변이 아담 바이러스 숙주라고 생각한다면, 분명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갔을 것이다. 석화가 알고 있는 장소이며, 당사도에서 가깝고 사람이 없는 은신처는.

“해남.”

“뭐?”

양상훈이 재차 묻기도 전이었다.

“대장!”

감시탑에서 조운이 소리쳤다. 곽수환이 올려다보니 조운이 수화기를 들어 보였다. 녀석이 부를 정도면 급한 회선일 거다. 그는 한달음에 감시탑으로 뛰어올라 수화기를 건네받았다.

“곽수환입니다.”

[곽가! 나야, 나! 어이구, 이렇게 연락이 되다니! 곽과 네놈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영감?”

곽수환도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래, 나야. 네놈이 말하는 영감탱이. 곽가 당사도로 가면 안 돼.]

“영감은 지금 부산이야? 석 박사는 어디 있어?”

[아니, 우린 지금 목포야. 여기도 박 장군 쪽이 접수했더라고. 쉘터로 연락하니 황제펭귄이 이 번호를 알려주지 뭔가. 우리도 석 박사 말 듣고 올빼미랑 부엉이한테 접선하러 가는 도중에 부산 쉘터를 장악했다고 들었어. 석 박사는 자기가 있으면 이희찬이 저를 제거할 수 있어서 위험하니까 우리만 따로 가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석 박사는 어디다가 놔뒀냐고!”

도무지 침착할 수가 없었다.

[가던 도중에 우리가 다른 헬기에서 공격을 받았어. 나도 김 대위도 죽을 뻔했지 뭔가. 헬기 추락 전에 김 대위가 나를 데리고 뛰어내렸고 석 박사는 혼자 내렸어. 낙하산을 무사히 펼치는 것도 봤는데……. 엇갈려버렸어.]

“김 대위 있으면 바꿔 봐, 빨리.”

수화기가 곽수환의 손에서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곽 소령님, 김 대위입니다. 박사님을 달마산에 내려 드리려고 했는데 헬기가 그 전에 공격을 당했습니다.]

“공격한 상대는 확인했어? 혹시 과천 쉘터 마크가 붙어있던 헬기야?”

[아닙니다. 서울 측 헬기 같았습니다. 그리고 추락 위치는 대략 달마산 반경 10km입니다. 거기서 시간차를 두고 뛰어내린 탓에 박사님과 떨어져버렸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쾅,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는 앞뒤 보지 않고 곧장 지프로 달려갔다.

“야! 곽수환!”

“해남으로 간다. 석 박사 구하면 연락할 테니까 이희찬이랑 공조하고 있어.”

낙하산을 직접 펼치고 뛰어내린 적이 있던 석화이니 무사히 안착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는 몸이 삽시간에 불타올라 재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달마산이라면, 석화는 지금 제 보물창고를 찾아 올라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 안에는 일정 이상의 식료품과 무기가 있으니 꽤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운 좋게 차량을 구할 수 있으면 운전을 해서 갈 테니 곽수환은 석화를 믿었다. 한정된 지역이나 넓은 땅에서 석화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을 알기에.

***

“하아, 하아.”

석화는 숨을 몰아쉬면서 걷고 또 걸었다.

제 몸에서 이렇게 땀을 흘려본 적이 있던가. 옷은 한껏 흐르는 땀으로 마를 일이 없었다.

시티 헬기의 공격을 받은 뒤 자신이 먼저 뛰어내렸고, 이후에 영감과 김 대위가 탈출한 것을 봤으나 육로로는 거리 차이가 꽤 날 듯해 그들과 합류할 수 없음을 예상했다.

석화는 아슬아슬하게 달마산 근처에 떨어졌지만, 산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에 있었다. 석화는 낙하 위치도 숨길 겸 낙하산을 끌어다가 근처 폐가에 집어넣었다. 수리가 되지 않은 이정표에 덩굴들이 얽혀있어 길 찾기가 더 힘들었다. 그래도 위로 걷고 또 걸었다. 목이 바짝 마르다 못해 입술과 혀가 갈라지는 것만 같았다.

석화는 버려진 시골집으로 들어가 주변을 살폈다. 먹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행히 우물이 있었다. 달려가서 내려다보니 우물은 말라붙은 지 오래된 듯 물비린내조차도 풍겨오지 않았다. 사막의 신기루를 마주했을 때 이렇게 절망스러울까. 무기력함이 몰려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대로 누워서 잠들고만 싶었다. 두 다리는 너무 무거웠고, 아까는 또 한 번 코피를 쏟아야 했다.

백신도 개발됐으니 레인보우 시티도 황제펭귄이 무사히 가꾸어 나가지 않을까? 이대로 잠들면 모든 것이 편해질 것만 같았다.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달조차도 가리고자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석화야.

곽수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석화는 뻗어있던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펌프로 다가가 있는 힘껏 펌프를 움직였다. 어디서 이런 기운이 났을까 싶을 정도로 수십 차례나 펌프질을 한 끝에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석화는 제 몸에 그 차가운 지하수를 끼얹었다. 벌컥벌컥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려 한바탕 기침을 쏟아내며 몸을 웅크렸다.

소령님, 너무 힘들어요.

약한 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막았다. 석화는 집 안으로 들어가 먼지와 쓰레기로 뒤덮인 바닥을 뒤지기 시작했다. 쿨럭, 먼지를 한 움큼 마시면서 쓸 만한 플라스틱통 두 개를 찾아냈다. 안을 물로 닦아내고 지하수를 가득 담아 뚜껑을 잠갔다. 배낭에 물을 넣고 다시 물로 입을 축였다. 마음 같아서는 위를 물로 가득 채우고 싶었지만, 너무 많이 마시면 걷는 데 지장이 생길 것을 알았다.

먹구름이 몰려와 달을 완전히 가리니 주변이 더없이 어두컴컴해졌다. 배낭에서 손전등과 권총을 꺼내 앞을 비추면서 이정표도 몇 번이고 확인했다. 들짐승이 달려들지 않기를, 행여 아담이 이곳에 없기를 바라면서 걷고 또 걸었다.

사람이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를 홀로 걷고 있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독감이 밀려왔다. 마치 세상에 저 혼자만 남은 듯해, 권총의 총구를 제 머리에 겨누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석화는 휴대폰을 켜서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끄기를 반복했다. 주변에서 아직 쓸 만해 보이는 차량을 발견해도 무용지물이었다. 차에 남은 기름은 다 털린 뒤였다.

조금씩 물을 마시면서 걷던 석화는 기어코 산의 초입에 도착했다. 부엉이의 울음소리가 저 산에서부터 이 밑으로 흘러내려와 마치 산에 들어오지 말라며 경고하는 듯했다. 괜찮다, 어차피 새일 뿐이야. 러시아처럼 늑대들이 돌아다니는 건 아니니까.

석화는 마음을 굳게 먹고 손전등의 밝기를 최대한으로 줄였다. 산을 타면서 자빠지거나 구르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는 바람에 오르는 속도가 현저히 느렸다. 헬기장이 있던 곳은 도보로 한 시간이면 충분했지만, 석화였기에 적어도 두 시간은 걸렸다. 행여 몸에 상처라도 나서 누군가를 감염시킬까 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곽수환은 소식을 들었을까? 이희찬은 정말 저를 죽이려고 할까? 최호언은 어디 있지? 석화는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로 앞만 보며 산을 탔다. 하아, 숨을 길게 내쉬며 고개를 들어보니 희미한 불빛이 컨테이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자 절대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곽수환의 컨테이너가 저기 보였다. 한달음에 달려서 문을 열고 뻗어 자고 싶었다. 그런데도 두 다리는 느릿느릿하게만 움직였다. 불이 들어온 것을 보니 저보다 곽수환이 먼저 알고 온 듯했다. 석화는 급격하게 안심이 되는 바람에 호흡이 더 가빠졌다. 눈가가 자꾸만 뜨거워져서 물통에 있는 물을 제 머리에 뿌렸다.

소령님, 저 왔어요. 수환아. 나 왔어.

그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석화가 간신히 손을 뻗어 컨테이너의 문고리를 쥐었다. 그와 동시에 먹먹한 귓속으로 거친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풀을 짓밟고 올라오는 지프의 강렬한 불빛에 석화가 손으로 눈을 가렸다.

시티 군인가? 여기는 어떻게 알았지? 석화가 황급히 문고리를 돌려 여는 때였다.

“석화야!”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러나 컨테이너 안은 아니었다. 석화는 놀라 뒤를 돌았고, 지프를 박차고 나오는 곽수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엔 신기루가 아니죠?

소령님, 맞죠?

“당장 거기서 떨어져! 석 박사한테서 떨어지라고, 씨발!”

달려오는 그가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일그러진 얼굴이 꼭 울 것같이 느껴졌다. 석화도 곽수환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누군가가 저를 뒤에서부터 옭아매고 있는 탓이었다.

석화를 붙든 남자는 여전히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컨테이너 안에 있던 사람은 바로 최호언이었다.

한 꺼풀 막에 싸여있던 시각과 청각이 예민하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갈증을 호소하는 목도 따끔거렸다. 총구를 들이민 곽수환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이 선명히 보일 정도로 모든 감각이 일깨워졌다.

“여긴, 어떻게.”

“한때는 러시아로 올라간 줄도 모르고 전국을 뒤졌죠. 전부 불태워 없앨 수도 있었는데 그냥 두었어요. 집은 늘 홈 스윗 홈이잖아요?”

석화는 속삭이는 최호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보내며 총구의 방향을 뒤로 슬쩍 돌렸다. 쉽게 거리를 좁혀오지 못하는 곽수환 또한 석화를 눈도 떼지 않고 바라봤다.

“곽 소령님도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겠어요? 그럴 만한 자격은 충분하죠. 나와 내 동생의 희생으로 완전해졌으니 나는 곽 소령을 증오하지만, 충분히 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장남이잖아요?”

“아윽!”

최호언은 석화의 양 손목을 억지로 그러쥐어 가슴께로 올렸다. 최호언의 허벅지로 향했던 총구는 어느새 곽수환에게 향해 있었다.

안 돼……!

철컥, 최호언이 대신 권총의 공이를 쳤다. 방아쇠에서 검지를 빼려고 했지만 자칫 잘못 움직이다가는 곽수환에게 총이 발사될 것만 같았다.

곽수환의 세상에는 온통 석화만 존재하는 듯 여전히 눈도 깜빡 않고 계속 석화만 바라봤다.

“도심에 폭발 사건이 일어났어. 모든 에덴동산 지부에서 폭발이 일고 대형 화재가 발생했지. 이대로라면 시티 전역이 불길에 휩싸일 거야.”

대체 최호언은 어디까지 갈 셈인가. 시티를 전부 망가뜨리고 싶은 걸까. 석화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저 새끼는 가족 놀이 같은 걸 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걸 핑계 삼아 사이코 짓을 벌이고 있는 거지.”

툭, 투툭. 석화의 어깨로 뭔가가 떨어졌다. 하늘이 도와 비가 오는 건가 싶었지만, 방울이 떨어지는 면적은 어깨에 국한되어 있었다.

“이런.”

최호언이 코피를 흘렸다.

“감염……된 겁니까?”

석화는 곽수환을 본 채로 최호언에게 물었다.

피를 흘리던 자신의 열을 식혀주고 안아주었던 때 분명 최호언의 팔뚝에 상처가 있었다. 제 피가 붕대 안으로 스며든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아주 느린 속도로 진행이 되고 있죠? 전부 진화에 희생을 해준 이들 덕분이죠.”

최호언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온 곽수환을 향해 총구를 좀 더 반듯하게 세웠다. 이러다간 제 손으로 곽수환을 쏘고 말 것만 같았다.

일이 왜 이렇게 됐지? 조금만 늦게 올라왔다면 더 먼저 곽수환을 만날 수 있었을까? 컨테이너로 가지 않았다면 최호언에게 붙잡힐 일은 없었겠지?

이토록 자신의 무기력함이 뼈저리게 저주스러웠던 날은 없었다.

왜 나는 최호언을 뿌리칠 힘이 없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잠재되어있던 열등감이 석화의 내부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군인들이 껄끄러웠던 건 그들의 육체가 부러웠을 따름이었고, 그 누구도 곁에 두지 않고 혼자 지냈던 건 짐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는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 태어났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제 손으로 쏘게 돼도 반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은 너무도 불합리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많은 고민이 될 겁니다. 우리 곽 소령님은 어려울 것 하나 없이 살았으니까. 그런데 석화 박사님, 불쌍한 내 동생은,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데도 그럴 힘이 없죠.”

최호언은 힘을 더 주어 곽수환을 확실히 겨누게끔 만들었다.

“들어봐요, 박사님. 곽 소령을 만들기 위해 시티가 우리 박사님 몸에 온갖 간악한 짓을 벌였어요. 처음은 나였고, 다음은 동생이었죠. 원래대로였다면 우리 동생님도 이렇게 아프고 힘이 없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죠.”

“석 박사, 저 새끼 미친놈인 거 알지?”

곽수환이 저딴 말은 듣지도 말라며, 오로지 자신만 쳐다보라며 눈을 형형하게 떴다.

“아버지가 그랬어요. 석화 박사님은 처음부터 아담 바이러스에서 자유로웠다고. 그런데 오로지 아담 바이러스만 면역이 있었던 겁니다. 곽 소령님의 부모가 우리들 어머니 모르게 석화 박사님 몸을 실험체로 삼았어요. 제 아이를 완벽하게 낳기 위해서, 석화 박사님에게 실험을 한 거예요. 곽수환 소령과 그의 부모만 아니었어도 박사님은 실컷 걷고, 뛰고, 남들보다 더 건강했을 겁니다.”

뱀이 속삭였다.

“저자의 완벽한 신체가 부러워요? 우리의 희생 없이는 불가능했을 텐데?”

석화는 최호언을 다시 한번 돌아봤다가 곽수환을 향했다. 석화의 눈이 불안함으로 흔들리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선악과를 먹으라 유혹하던 뱀의 속삭임에 넘어간 이들처럼 석화 역시 귀를 열었다.

“사실이에요?”

석화는 무덤덤히 물었으나 겨눠진 총구보다 더 예리한 칼날같이 찼다.

“소령님도 알고 있었어요? 언제부터요?”

수분이 사라진 목소리는 잔뜩 갈라져 있었다.

“처음부터……. 알았어요?”

곽수환은 부정하고 싶었다. 저 새끼 말은 다 거짓이라고, 석 박사는 실험체 같은 게 아니었다고 외치고 싶었으나 목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곽수환 소령이 석화 박사에게 잘 대해준 게 당연해요. 그에게는 부채 의식이 있거든요.”

“석 박사, 나한테 부채 의식 같은 게 있어 보여? 나 이기적인 새끼인 거 누구보다 잘 알잖아.”

두려웠다. 석화의 눈에 저를 향한 불신이 들어서는 것만 같았다.

“나도 안 지 얼마 안 됐어. 그런데 그건 내 탓이 아니잖아.”

저를 미워하지 말라며 비굴해지고 있었다. 그게 왜 네 탓이 아니야? 석화의 눈이 추궁해오는 듯했다.

“걸핏하면 쓰러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나 원래 안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어요?”

“그럼요, 누구보다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석화야. 그 누가 뭐라 하든 너는 실패작이 아니야. 유프라테스가 낳은 완벽한 아이지.’

어머니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

총을 쥔 손이 떨렸다.

“도와줄 수 있어요. 내가 복수해줄 수 있어요.”

툭, 투툭, 여전히 최호언에게서 흘러내리는 피는 어깨를 적셨다.

“우리 형제를 이렇게 만든 시티는 싹 다 불로 태워 없애고, 육신이 끝나는 날까지 우리의 집에서 함께 살아요. 저자야말로 시티가 낳은 최대의 수혜자이자 우리의 피와 고름이죠. 없애야 해요.”

‘그자야말로 썩어빠진 레인보우 시티의 수호자이죠.’

서펀트가 말했다. 뱀이 너를 힘겹게 한 것을 죽여 없애고 아늑한 곳에서 살자고 유혹했다.

반항하고자 총을 꽉 쥐고 있던 석화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제 몸을 늘어뜨리고 곽수환을 겨누는 대로 놔두니, 방아쇠에 대신 최호언의 손가락이 걸렸다. 온몸에 힘을 잔뜩 뺀 석화가 최호언의 등에 기댔다. 나의 이브, 나의 구원자. 끝은 얼마 남지 않았다. 최호언이 석화를 소중히 제 품에 담았다.

탕!

총성이 울리고 새들의 날갯짓 소리가 함께 섞여들었다. 그러나 총알은 곽수환이 아닌 어둠에 가려진 나무 어딘가에 박혔다.

석화야!

석화는 곽수환이 저를 부르는데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방심했던 최호언이 총을 쏘는 순간 그를 밀쳐내고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석화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달려, 달려! 빨리!

흙에 미끄러져 다리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어도 절대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달릴 수가 없게 되어도 좋다. 도망가야 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뒤에서는 몇 번 더 총성이 터졌다. 석화는 그래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분명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제가 그를 원망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최호언에게 잡혀있어 봐야 또다시 짐밖에 되지 않으니 뱀의 말에 현혹되는 척을 했던 것뿐이다. 제 몸이 이렇게 된 데에 곽수환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런데 그가 오해할까 봐, 상처 받았을까 봐 터질 것 같은 폐보다 가슴이 더 아팠다.

하아, 하아. 석화는 손에 잡히는 것을 아무거나 잡고 기어올랐다.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바위를 붙잡고 오르고 또 올라 몸을 간신히 바로 세웠다. 저 멀리로 붉은 기둥이 일렁거렸다. 분명 불타고 있는 건 도심이라고 했는데, 저 멀리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에서도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도심의 불길이 여기까지 번진 건가? 아니면 누가 불을 질렀을지도 몰라. 석화는 제 얼굴을 손으로 마구 닦아 내렸다. 땀인 줄 알았는데 코에서 그리고 기침하는 입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영감님이 틀렸나 봐요. 몸이 자꾸만 독을 흘려요.

석화는 커다란 바위 뒤로 돌아가 배낭을 벗고 몸을 움츠렸다.

***

석화를 뒤쫓으려는 최호언에게 곽수환이 총을 발포했다. 놈도 달려오는 곽수환에게 총을 쏘다가 지나치게 좁혀진 거리 탓에 권총을 바닥에 던졌다.

“넌 내가 쉽게는 안 죽여.”

죽을 때까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던 진실을 내뱉은 뱀새끼의 혀를 뽑아내고 눈알을 파내서 흙바닥을 기게 만들 거다. 주먹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은 최호언이 낄낄대고 웃었다.

“곽 소령님도 진짜 알고 있었어요? 아, 말하면 안 되는 거였구나. 아까 봤어요? 석화 박사님 많이 충격 받았던데.”

곽수환이 다시 주먹을 놈의 아가리에 꽂으려는 순간 뻑 소리가 나면서 나무가 패었다. 중심을 낮춰 주먹을 피한 최호언이 곽수환의 옆구리를 쳐올렸다. 갈비뼈를 울리는 충격에 뒤로 물러나자 몸을 밀어서 뒤로 자빠뜨렸다.

“다 싫어서, 도망갔나 봐요. 하긴 나도 용서가, 안 되는데.”

위로 올라탄 최호언이 말을 끊어가며 주먹을 내질렀다. 곽수환은 그동안 가드를 세웠지만, 그럼에도 팔뚝의 뼈가 찌릿찌릿했다. 분명 어딘가에 금이 갔을지도 몰랐다. 최호언이 다시 한번 힘을 밑으로 쏟는 순간 곽수환은 턱을 후려 갈겼다. 큭, 제대로 맞아 균형감각을 잃은 최호언이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곽수환은 우악스럽게 머리채를 쥐어서 뾰족하게 튀어나온 돌에 최호언의 머리를 가져다가 찧어댔다. 퍽, 퍽, 콰직, 뼈가 상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과 피가 함께 튀었다.

“지옥에서 니 애비도 못 알아볼 정도로 뭉개줄게. 감염됐으면 곱게 뒈질 것이지 주둥이를 함부로 놀려? 감염 속도 늦추려고 몇 놈이나 희생시켰어? 쉘터를 빼곡하게 채울 만큼은 되나?”

몸의 모든 힘줄이란 힘줄은 전부 불거져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저따위 간사한 혀에 석화가 놀아날 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다. 놈의 뼈를 잘게 다지고 마지막으로는 혀를 뽑아 버릴 거다. 머리채를 확 밀쳐놓고 최호언의 팔을 꺾기 위해 발을 들었다. 들끓는 분노를 가르듯 총성이 들린 그때였다.

푹, 회전하는 무언가가 옆구리를 스쳤다. 또다시 총성이 터졌고, 빗겨나간 탄환은 바닥에 박혔다.

“마스터를 지켜!”

강렬한 빛이 그들이 있는 방향을 겨눴다. 적어도 여섯은 되어 보이는 군인들이 총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총알이 스쳐간 옆구리에서 피가 울컥울컥 새어나왔다. 곽수환은 최호언의 목에 팔뚝을 단단히 걸어 제 앞으로 끌어당겨 방패로 삼았다. 최호언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연방 웃음만 내뱉었다.

“하아……. 그거 알아요? 석화 박사가 얼마나 자기 자신의 무력함에 치를 떠는지? 근데 그게 전부, 다 곽수환 소령 때문이었네?”

곽수환도 모를 리 없다. 석화는 언제나 무력한 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곽수환! 투항해라! 마스터를 풀어주고 투항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마스터의 정예군은 최호언을 쏠 수는 없기에 더는 다가오지 못한 채로 소리쳤다. 붉은 점이 이동해 곽수환의 팔뚝에 다다랐다. 그가 반대편 팔로 다시 최호언을 조이자 조준점이 사라졌다. 자칫하면 최호언의 쇄골이 뚫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옆구리에서 흐르는 피가 이제는 바지까지 적시고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끌어봐야 제 손해다.

“그거 아냐고.”

최호언의 하얗고 가지런하던 이가 피로 잔뜩 물들어 있었다.

“석화 박사의 몸에, 내 적혈구를 수혈했는데……. 곽 소령과 나는 상극이거든.”

퉤, 최호언이 피를 뱉었다.

“그래서 석화 박사의 출혈도 멈추지 않는 겁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어, 병신아. 네 애비처럼.”

화기에 사로잡혀 있던 곽수환의 얼굴에 한기가 드리웠다.

윽, 한껏 집중해 조준점을 겨누던 정예군이 곽수환의 팔뚝에 총알 한 방을 박는데 성공했다. 곽수환은 이를 악문 채로 목을 조른 팔을 풀지 않았다. 거리를 더 좁혀오는 놈들을 보다가 뒤쪽의 컨테이너를 확인했다. 최호언을 붙들고 뒤로 이동하자 놈들도 똑같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좀 살 것 같네요.”

어지러운 정신이 돌아온다며 한숨을 내뱉은 최호언이 곽수환의 팔뚝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다. 총상을 손가락으로 마구 헤집는 최호언의 목을 꺾어버릴 셈이었으나 놈은 양 팔뚝을 움켜쥐어 힘으로 막아냈다. 힘을 쏟는 만큼 옆구리에서는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젠장, 곽수환은 놈의 목덜미를 쥐고 컨테이너 안에 처박았다.

탕, 타앙! 등을 보인 순간 총성이 터졌고 곽수환이 컨테이너의 문을 닫자마자 최호언이 덤벼들었다. 적어도 한 발 이상이 등에 박혔는지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게 더 여실히 느껴졌다. 곽수환은 벽에 매달린 권총을 찾았지만, 올라타 목을 조르는 최호언을 막기에 급급했다.

그의 가슴팍에서 콰직,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안에 있던 용액이 흥건하게 가슴을 적시고 앰플 뚜껑이 굴러 떨어졌다. 최호언은 그것을 알아본 듯 눈을 키웠다. 깨진 이마는 하얀 뼈까지 드러나 있어 괴기스럽기도 했다. 그야말로 아담이 따로 없었다.

“이런, 쉘터 내부에 생존한 실험체가 있었나요?”

“큭, 빌어먹을 새끼.”

“그 불쌍한 실험체들은 전부 석화 박사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고통 받는 그들에게도 뭐, 한낱 구원의 희망 같은 건 있어야 하잖아요? 아버지가 내게 동생의 소중함을 알려줬듯이, 아담의 백신이 이브였듯이, 석화 박사가 그들만의 희망이었다는 건데, 그들이 생각하는 구원의 뜻이 뭔지는 압니까?”

몸을 한껏 숙이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휴거. 즉 죽음이지. 이 시티를 없애고 고통을 끝내줄 자가 바로 구원자인 겁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는데…….”

최호언이 목을 더 거세게 졸랐다.

태어나 지금까지 곽수환은 약했던 적이 없었다. 지킬 사람만 없다면 저 스스로는 그 누구보다 강했다. 두려울 것 하나 없었던 자신이 처음으로 육체적 한계에 맞닥뜨렸다.

툭, 투툭, 최호언의 코에서 흘러내린 피가 팔뚝에 스며들었다. 이채를 띠고 있던 눈에 흐릿함이 번져나가는 틈을 놓치지 않고 놈에게 올라타 주먹을 내질렀다. 밖에서는 한바탕 총성이 울리고 있었다. 바람을 찢는 헬기와 사이렌 소리도 들려왔다. 컨테이너에 총알이 박혀 철판이 구겨지는 그때, 최호언이 곽수환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앞으로 튀어나갔다.

총상을 입은 곳에 어마어마한 통증이 닥쳐왔지만, 곧장 권총을 낚아채 놈을 따라 나갔다. 헬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이 숲을 밝혔다. 황제펭귄 마크를 단 헬기였다. 빛의 사각지대로 피해있는 정예군들은 헬기를 격추시키기 위해 사격을 했다.

“곽수환 소령! 우리에게 합류해라! 올빼미와 부엉이의 지시로 합류한 우태안 대령이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군인은 백신을 맞고 세 가문에 합류한 자들이었다. S클래스로 구성된 마스터의 정예군들은 각자 쪼개져 곽수환에게 합류하려는 반란군을 막았다. 최호언은 석화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곽수환도 멈추지 않고 놈을 뒤쫓으며 총을 발사했다. 새들조차도 더는 이 근처에 머무르지 않는지 총성과 프로펠러 소리만이 산을 메웠다. 피가 군화 속에 고여 마치 빗물을 머금은 듯 발바닥이 축축했다. 그러나 더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온통 바위로 덮여있는 산을 뛰어오르며 곽수환이 소리쳤다.

“석 박사! 숨어 있으면 절대 나오지 마!”

이 소란에 석화가 얼굴이라도 내밀까 봐 초조했다. 제가 아는 석화라면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뱀새끼 말대로 제가 싫어서 도망간 게 아니라 오히려 짐이 될까 봐 도망쳤을 거다. 석화는 늘 그랬다. 자신보다 약하면서 저를 보듬어주는 사람이었다.

뒤늦게 합류한 헬기 한 대가 정상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시티의 헬기였다. 뒤따르는 황제펭귄 헬기가 사격을 하는데도 동체는 막힘없이 위를 향하고 있었다. 젠장, 젠장! 곽수환은 아이처럼 울부짖고만 싶었다. 이러다 정말 석화를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몸에서 힘이 자꾸만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도 더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정상에 다다르기도 전에 최호언이 보였다. 하나뿐인 산길에서 석화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던가. 바위 앞에 서 있는 최호언은 석화를 붙들고 있었다. 코피를 흘리는 석화는 지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것 같지가 않았다. 석화는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동공의 초점을 잡지도 못했다.

“소령님…… 괜찮아요?”

제 꼴은 생각도 안 하고 자신을 걱정하는 석화를 보니 무력감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석화가 울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괴로워도 울지 않던 사람이 저를 보며 운다.

“왜 이러는 거예요.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합니까.”

석화가 최호언에게 붙들린 채 물기에 섞인 핏물을 바닥에 떨궜다.

“왜라니? 석화 박사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잖아요. 시티가 사라지고, 이 모든 흔적들이 사라지면 우리의 고통도 없어질 거라고.”

최호언은 작은 몸에 링거를 주렁주렁 단 채로 제 손가락을 잡았던 동생을 기억한다. 자기를 실험실 안에서 빼내달라고, 저를 아프게 한 것들을 전부 없애달라고 형도 똑같이 아팠지 않느냐며 울음조차 제대로 내지 못했던 아기를 기억했다.

“우리라고 하지 마…….”

석화는 한 번도 고통스러웠던 적이 없다며 힘을 주어 부정했다.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정예군과 곽수환의 뒤로 선 반란군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 누구도 먼저 총구의 불을 뿜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전부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털을 바짝 세운 짐승들처럼 서로를 탐색하기만 했다.

“곽수환!”

헬기에서 내린 양상훈과 이채윤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려왔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씨발! 너 죽어, 미친 새끼야! 그들은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누면서도 곽수환을 걱정했다. 빌어먹게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귀가 먹먹했다. 피가 아니라 온몸의 오감이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억지로 붙들어둔 영혼이 새어나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신이 진짜이고, 내가 그것을 속였기 때문에 반란이 일어났다죠?”

최호언이 반란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백신이 진짜라고 확신합니까?”

“닥쳐! 석화 박사님한테 뭔 짓이라도 해 봐!”

이채윤이 한 발짝 앞으로 다가갔다. 최호언은 다 허물어져 가는 석화의 몸을 부축해 팔을 들었다. 그리고는 제 정예군 한 명도 잡아 끌어왔다. 피가 차갑게 식는다. 곽수환은 저 새끼가 지금 무얼 하려는 것인지 직감했다.

곽수환을 엄호하러 다가온 양상훈은 제 동료의 총상을 지혈하기에 너무 늦은 것을 깨달았다.

“수환아, 곽수환. 박사님보다 네가 먼저 죽겠다, 새끼야. 너 지금 꼴이 어떤지 알아?”

양상훈이 울듯이 얼굴을 엉망으로 구겼다.

“……내가 항상 신세져서 미안한 거 알지?”

그는 석화를 바라본 채로 양상훈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말할 때마다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이었다.

“씨발놈아. 곧 죽을 것처럼 말하지 마라.”

“부탁 하나만 더 하자. 석 박사 데리고 도망가라.”

“뭐?”

곽수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렀다.

“모두가 석화를 노리게 될 거야. 부탁해.”

“그게 무슨 소리야.”

나직한 비명과 함께 석화의 팔에 상처가 생겼다. 최호언이 석화의 팔뚝에 칼날을 박아 넣은 것이다. 한 줄기 피가 팔뚝을 타고 뚝뚝 흘렀다. 당장 뛰쳐나가 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석화를 영영 구하지 못할 것이다. 냉정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뇌가 텅 비어버리는 듯 이성적인 판단이 자꾸만 흐려져 갔다.

“마, 마스터?!”

최호언이 저를 지키던 정예군의 팔에 석화의 피가 묻은 칼을 찔러 넣었다.

“큭!”

“뭘 걱정해요.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당신도 백신을 맞았잖아요? 그리고 왜 다들 그런 표정입니까? 모두 백신을 믿는 것 아니었어요? 뭐가 두려워요?”

숨겨둔 선물을 꺼내드는 아이처럼 최호언은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최호언의 말이 맞다. 반란군들은 백신이 진짜라는 믿음 아래에 뭉쳤다. 그렇게 세 가문도 손을 잡을 수 있었으며 거기엔 반란의 타당성도 존재했다. 그러나 만일 백신이 가짜라면…….

“컥, 캑, 쿨럭.”

석화의 피에 노출된 정예군이 갑자기 분수처럼 피를 토해냈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공기마저 경악에 물들었다. 그러나 아직, 아직이다. 지금은 아니야.

울컥, 곽수환은 제 몸에서 쏟는 피를 재차 깨달으며 석화만을 눈에 담았다. 여전히 동공에 초점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채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석화 형, 아프지? 조금만 참아. 조금만.

“이런, 백신이 효과가 없나 보군요.”

애석하다는 투로 말한 최호언이 석화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박사님께서 백신을 개발하셨다는데, 여기 박사님 몸에 새로운 아담 바이러스가 심어져 있어서 그런가 봐요. 다들 속은 겁니다. 새롭게 변이한 아담 바이러스의 백신은 없어요. 안 믿기면 누구 시험해 보실 분 계신가요?”

피로 붉게 물든 이가 드러났다. 반란군의 동요는 확실했다. 올빼미와 부엉이에게 합류했다던 대령이 무전기를 들었다. 백신이 효용이 없다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서. 대령이 사격 준비 신호로 손을 올리자 확장된 동공들이 석화를 향했다.

철컥.

저건 바이러스다. 백신이 듣지 않는 새로운 변이 아담 바이러스의 숙주다.

시티의 군인들과 시민들은 바이러스로 너무도 오랜 시간동안 고통 받았다. 변이 아담 바이러스는 혐오를 넘어서 공포를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피를 토해낸 뒤 자빠져 있던 정예군이 몸을 기이하게 일으켰다. 아담이다! 사살해! 총구는 또다시 그쪽을 향했다. 두두두두둑! 아담이 되어버린 정예군의 몸에 벌집이 생기고 곽수환이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양상훈, 지금!”

최호언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부터 양상훈이 곽수환을 엄호하기 시작했다. 몸에 총상을 입고도 제 편을 물어뜯는 아담에 의해 정예군 몇 놈 또한 변이를 시작했다.

“박사를 죽여! 아담부터! 아니 박사부터 죽여!”

헬기를 향해 석화를 들쳐 메고 달려가는 최호언의 등에 곽수환이 권총을 쐈고, 총알이 제대로 박혔다. 그런데도 놈은 멈추지 않았다.

양상훈은 허공에 반쯤 떠있는 헬기의 프로펠러를 향해 기관총을 쉴 새 없이 난사했다. 터엉, 프로펠러 한쪽이 부러져 헬기가 방향을 잃고 바닥으로 앞머리를 처박았다. 맹렬히 돌아가던 프로펠러가 바닥의 바위를 긁으며 제 몸을 산산조각 냈다. 프로펠러 조각이 이리저리로 튀어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몸에 처박혔다.

최호언에게 붙잡혀 있던 석화는 절규 속에서 제 이를 악물었다. 몸이 반쯤 접혀 어깨에 들쳐진 상태로 흔들린 탓에 구역질이 치솟았다. 정신 차려. 지금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 차려야 해. 이대로 휩쓸릴 수는 없다. 그래야 수환이도 살아. 석화는 고개를 들어 시야에 떨어진 권총 하나를 발견했다. 곽수환과 양상훈이 달려오는 장면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손을 뻗어 권총을 낚아채고 싶었으나 그곳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최호언의 등이 삽시간에 피로 물들어 수트가 몸에 축 달라붙었다. 헬기가 폭파되며 섬광을 비추는 그때 그의 허리 벨트에 꽂힌 권총이 보였다.

석화는 손을 뻗어 권총을 재빨리 꺼내들었다. 그리고 공이를 쳤다. 생의 마지막 힘을 내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최호언의 총상을 쥐고 있던 권총의 손잡이로 내리쳤다. 석화는 최호언의 팔에서 힘이 풀리는 틈을 타 그를 밀쳐내 바닥을 굴렀다. 한껏 팽창된 동공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최호언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망설이지 마. 내부의 속삭임도 동시였다.

탕-!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린 최호언의 입가에서 붉은 피가 터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석화에게 고꾸라진 최호언이 손을 뻗었다. 퍽, 날아온 프로펠러 조각이 최호언의 어깨에 박혔다. 반쯤 잘려나간 팔이 너덜거린 채로 뻗어와 소름이 돋았다.

이브, 내 구원자, 내 안식.

붉은 눈은 집착을 가득 담고 여전히 제게 손을 내밀었다. 석화는 뒤로 물러나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그 시선에 붙들려 있었다. 시티가 만들어낸 괴물이 죽어 가는데 어째서 통쾌하지 못한 것인가. 그때, 확 누군가의 커다란 손이 나타나 눈을 가렸다. 몸을 감싸 안는 그 온기가 익숙했다. 곽수환이었다. 그런데 그의 몸이 무언가에 타격을 받는 듯 몇 차례나 경련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석 박사가 아팠던 거야.”

곽수환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희미했다. 그의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데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고개만 저었다.

“그래도 살아야 해. 자기 나 믿지?”

곽수환의 온몸이 흠뻑 젖어있었다. 몸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내는 듯 핏물에서 갓 올라온 듯,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석화의 눈을 가린 채였다. 석화는 그의 손을 하얗게 바래도록 두 손으로 붙들었다. 그에게서 떨어지게 되면 영영 이 품에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살아.”

그가 저를 누군가에게로 밀었다.

소령님, 수환아, 부르고 싶은데 목이 메어서 끅끅거리는 숨만 내뱉어졌다. 곽수환 때문에 아픈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그가 완전해질 수 있었다면, 내 사랑하는 사람이 완벽해질 수 있었다면, 그것은 희생이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를 두 눈에 담고 싶은데 저를 안고 달리는 남자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공중에 떠 있는 헬기의 끈을 잡자,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곽수환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아는데, 그의 몸을 흐르는 모든 피를 이 산이 전부 먹어치우려는 것만 같아서, 이번은 정말 마지막 같아서…….

수환아!

소리쳤지만 거센 프로펠러 소리에 석화의 목소리는 묻혔다.

곽수환은 헬기가 무사히 떠오른 것을 보고 뒤를 돌았다. 아담과 군인들의 시체가 바닥에 즐비했고, 살아남은 사람은 혼이 빨려 버린 듯한 이채윤과 대령, 그리고 몇몇 반란군이 전부였다. 그들을 이제 반란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아, 긴 숨이 흩어졌다. 석화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저 답지 않은 절망 또한 함께였다.

대령이 소리쳤다.

“마스터를 구해라! 곽수환 소령은 아담 바이러스 숙주를 보호하고 도주시킨 죄로 즉결처분한다.”

이제 모든 총구는 저를 향해 있었다. 이것이 종국이었다. 시티에 위협을 몰고 온 이단아이자 반란군은 이제 저 혼자가 되어 버렸다.

“곽수환……. 어쩔 수 없어. 여기서 끝내야 해.”

이채윤이 말했다. 대령은 동료에 대한 마지막 예우를 지켜도 좋다는 듯 그녀에게 암묵적으로 처형을 허가했다.

탕!

그녀는 손만 옆으로 뻗어 대령의 관자놀이에 권총을 발사했다. 그것을 신호삼은 곽수환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아담을 들어 몸을 막고 살아있는 군인들을 사살하기 시작했다. 이채윤이 후방에서, 곽수환이 전방에서 열 명 남짓한 군인들의 숨통을 끊었다. 반란은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이채윤의 가문도 살아남는다. 최호언을 다시 마스터의 자리에 올릴 수는 없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넘어진 군인 몇몇의 상처에 아담의 피가 스며들어 감염되니 아군적군 할 것 없이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곽수환과 이채윤은 서로를 제외하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숨통을 끊어 놨다.

하아, 하아……. 곽수환은 시체의 산에 서서 숨을 몰아쉬었다. 이채윤은 죽은 군인들의 시체를 한데 끌어다 놓고 확인 사살을 했다.

곽수환이 긴 소총을 지지대 삼아 최호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최호언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참 끈질기다. 너도, 나도.”

최호언의 눈에 총기는 없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게 보였다. 곽수환 자신 역시도 생명이 끊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제가 낸 목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으니.

곽수환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릎을 꿇은 채로 총을 장전했다. 그리고 최호언을 향해 겨눴다.

너희들에게 안식할 곳은 없어.

최호언이 동공을 올리더니 저주를 내뱉었다.

석화가 변이 아담 바이러스의 숙주인 이상 시티에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도 함께할 수 없을 거다. 그래서 저는 살아야 했다. 저만큼은 살아서 석화의 곁에 있을 거다.

탕-,

최호언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곽수환의 숨도 함께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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