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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man is an island (1) (21/23)

No man is an island (1) 


서걱서걱, 약재 썰려나가는 소리가 규칙적이었다. 말린 오가피나무 가지는 일정한 모양으로 잘려나갔다. 작두를 사용하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첫날은 고된 삶의 끝을 고하듯 둘이서 하루 종일 잠에 빠졌고,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틀째에 먼저 일어난 건 석화였다.

곽수환은 어제 처음 석화가 작두를 사용하는 것을 봤을 때 과장을 조금 더해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손이라도 잘리면 어쩌려고, 전전긍긍하던 그였다. 정작 석화는 작두 장인처럼 느리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뭇가지를 잘랐다. 결국 그는 이부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석화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러시아까지 올라오는 며칠 동안 잠 한숨 자지 못한 곽수환이었다. 충혈된 눈을 하고서도 잠들지 않으려는 곽수환의 곁을 지킨 것도 다름 아닌 석화였다.

얼마나 잔 걸까. 곽수환은 벌떡 일어나 석화를 찾았다. 바로 정면의 책상에 석화가 앉아 있었다.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살아있으며 손을 뻗으면 온기가 녹아들어오는 석화가 저기 있었다.

석화 또한 곽수환을 바라봤다. 원래는 침대 뒤쪽에 놓여있던 책상을 그가 자는 동안 옮겨놓은 것이다. 그렇게 한 번도 시야에서 그를 놓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실재하는 건가? 일어나면 또 서로의 빈자리에 신음할 꿈은 아니겠지.

아마도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서로가 없던 151일은 너무도 길었다. 계절이 바뀌었고, 서로의 생사조차도 확신하지 못했다.

[러시아에서 했던 약속 기억하죠? 만일 우리가 만나지 못하게 되면 사향노루가 있던 곳으로 와요. 살아요, 우리. 무조건.]

조운이 건네주었던 석화의 메시지. 곽수환은 그 한 장의 종이만을 이정표 삼아 러시아로 향했다. 석화가 이곳에 없었다면 저희들이 함께했던 모든 곳을 찾아 헤맬 생각이었다. 그래서 만일 석화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곽수환도 살 이유가 없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탄환 한 발은 무조건 남겨두기로 했다.

석화는 삐걱거리는 의자를 뒤로 밀고 일어났다. 여기로 다가올 줄 알았는데 싱크대로 가 버너에 불을 켜고는 갑자기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세로로 긴 나무 장판을 손으로 들어 올려 그 밑에 숨겨둔 소시지 통조림을 꺼냈다. 집을 털어간 도둑들이 여기까지는 발견하지 못한 덕이었다.

곽수환이 침대를 서둘러 나가 석화에게로 걸어갔다.

석화는 소시지를 찌그러진 냄비에 다 털어 넣었다. 저를 돌아보지 않는 석화를 억지로라도 보게 만들고 싶었다. 어깨를 움켜쥐려던 손에서 힘을 빼고 곧 석화의 허리를 둘러 껴안았다. 저조차도 모르게 두 팔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나 좀 봐봐.”

석화는 껍질이 터지기 시작한 소시지를 젓가락으로 휘적거릴 뿐이었다.

툭, 곽수환의 팔뚝에 물기가 떨어졌다. 석화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리더니 몸에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곽수환은 석화의 어깨에 턱을 묻고, 뜨거워진 귀에 뺨을 비볐다.

울지 마.

첫날 저도 애들처럼 울어놓고는 석화를 달랬다. 천천히 석화의 몸을 돌렸더니 얼굴은 온통 눈물에 젖어 엉망이었다. 두 손으로 뺨을 닦아도 마를 일은 요원했다. 곽수환은 석화를 품에 가득 끌어안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믿기지가 않아서 한껏 마른 등과 애처롭게 떠는 어깨를 두 팔로 교차해 그러쥐었다. 이대로 스며들어 하나가 될 듯이 석화를 갈구했다.

“왜 이렇게 말랐어. 내가 먹을 거 많이 준비해놨는데, 다 어디 간 거야?”

“……훔쳐갔어요.”

약탈당한 건 불과 그가 왔던 날의 일이었지만, 석화는 말하지 않았다.

“어떤 새끼야. 내가 조져줄게.”

너무나도 그다운 말에 석화는 진정 그가 실재함을 믿을 수 있었다. 석화도 곽수환의 등을 힘주어 감쌌다. 얇은 셔츠 아래로 전과 다르게 울퉁불퉁한 부분이 만져졌다. 총상의 흔적임을 깨닫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더 짓눌렀다.

“자기 그렇게 울면 내 셔츠에 자국 남는다, 볼래?”

어깨를 움켜쥐고 떼어내자 석화가 얼굴을 묻은 곳을 따라 눈물 자국이 우습게 물들어 있었다. 냄비의 물이 다 졸아들어 타는 냄새가 났다. 곽수환은 한쪽 손만 뻗어 불을 끄고 냄비 손잡이를 쥐었다.

한시라도 떨어져 있기 싫다는 듯이 석화를 옆구리에 끼고 냄비를 식탁에 내려놨다. 제 체격에 비하면 보잘것없던 석화였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 동안 더 말라있었다. 지금 당장 소시지를 먹을 사람은 제가 아니라 석화였다. 저는 쉘터에 있으면서 평상시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식사를 했다. 몸을 만들기 위함이었기에 맛 따위는 느끼지도 못했다. 151일 동안은 뭘 먹어도 다 똑같았다. 어쩌면 석화도 그랬을 것이다.

곽수환은 마른 수건으로 석화의 얼굴을 꼼꼼히 닦고는 식탁 의자에 앉혔다. 소시지 다섯 개 중 세 개를 석화의 그릇에 놓아주고 나머지는 제 앞으로 놨다. 즉석밥도 다 털어갔는지 먹을 거라고는 소시지뿐이었다. 곽수환이 몸을 일으키자 석화도 같이 일어났다.

“지프에 좀 다녀올게.”

“같이 가요.”

석화는 서둘러 모포를 어깨에 둘렀다. 털 부츠를 신는 것을 보고 곽수환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가 이내 옅게 웃었다. 한없이 높기만 하던 석화의 체온이 전보다 떨어진 것은 그 또한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평범한 사람보다는 다소 높은 편이었다.

곽수환은 딱히 걸칠 게 없어서 제복 코트를 다시 입었다. 밖은 하얀 눈발이 바람에 나부꼈다. 모자를 쓸 정도는 아니라 손을 잡고 옅게 깔린 눈을 밟았다. 늘 한 쌍의 발자국만 남았는데 이제는 두 명분이 됐다. 석화는 저희들이 지나온 길을 연방 뒤돌아봤다.

산장까지 지프를 끌고 오지 못한 이유는 기름이 다했기 때문이었다. 도보로 10분, 산의 중턱쯤에 곽수환이 타고 왔던 지프가 서 있었다. 지프 어디에도 레인보우 시티의 마크는 보이지 않았다. 차체를 빙 둘러보자 곽수환이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훔친 거 아니야. 버려진 거 타고 온 거지.”

육로를 돌아오는 대신 곽수환은 바닷길을 선택했다. 시티에서 동해의 항구까지는 지프로, 거기서는 보트로 달려온 것이다.

그는 트렁크를 열어 스케이트처럼 날이 달린 널따란 판을 끄집어냈다. 나무판 위에 트렁크 한편에 있던 식량과 식수 같은 것들을 차곡차곡 실어 올렸다. 추운 러시아에서는 바퀴 달린 핸드카트보다 날이 달린 썰매가 끌기에 더 용이했다. 저걸 곽수환이 레인보우 시티에서부터 가져왔다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식량은 전부 시티산이었지만, 지프만큼은 이곳에서 훔친 게 맞는 듯했다.

“훔친 거 아니라니까.”

속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곽수환이 쪽, 석화의 이마에 키스했다. 석화는 제 이마로 손을 가져다댔다. 입술의 감촉을 재차 곱씹으며 머릿속으로 회상하는 것은 역시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도 이런 살갗의 감촉은 진짜 곽수환이 아니면 체감할 수가 없었다.

쌓아올린 물건을 밧줄로 단단히 둘러맨 그는 그 끈을 어깨에 얹었다. 석화도 밀어서 도와주려고 나무 썰매 뒤에 서 있었다.

“썰매 타본 적 있어?”

“없어요.”

“그럼 거기 올라타 봐.”

곽수환이 박스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판 앞을 가리켰다.

“뒤에서 도와줄게요.”

“타는 게 도와주는 거야.”

나 이제 그렇게 힘없지 않은데……. 석화가 입 안에서 말을 뭉뚱그렸다.

“내가 태우고 싶어서 그래. 우리 석 박사 무게 오랜만에 좀 느껴보려고.”

오랜만에. 그 말에 석화는 망설임 없이 판 위에 올라탔다. 박스에 엉덩이를 붙이고 떨어지지 않도록 그의 어깨로 연결된 밧줄을 쥐었다.

“그럼 곽베리안허스키 출발한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요.”

스윽, 슥. 눈이 쌓인 길을 그가 오르기 시작했다. 행여 석화가 앞으로 고꾸라질까 봐 느린 걸음으로 산장을 향해 올라갔다.

“나…….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한 발 한 발 눈을 밟던 그가 움찔했지만 잠깐에 지나지 않았다. 입에서 나온 하얀 김이 눈발에 휘감겼다.

“형은 나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석화는 팽팽한 밧줄이 손에 배길 정도로 쥐었다. 어젯밤 그의 제복을 정리하는데 권총 한 자루가 나왔다. 그리고 탄환도 단 한 개였다. 탄환은 본래보다 훨씬 묵직해 죽음의 무게가 실려 있는 듯했다. 석화는 제가 죽어도 따라 죽지 말라는 말 같은 건 하지 못했다. 남겨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그가 없는 동안 뼈저리게 겪었다.

하아, 석화는 일부러 입김을 길게 내뱉었다. 곽수환은 혹시 석화가 힘들어하는 건가 싶어 급히 뒤를 돌아봤지만, 상기된 뺨에는 생기가 맴돌았다.

스윽, 스윽, 눈을 헤치는 썰매 날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드디어 곽수환과 자신만 남아 있었다. 에덴동산이 존재한다면 이런 게 아닐까. 석화에게 에덴동산은 장소가 아닌 곽수환이라는 사람이었다.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흐트러지는 그의 머리카락으로 눈이 스며들었다. 제복을 입은 뒷모습은 제주도에서 처음 봤던 그날처럼 단단해 보였다.

“소령님.”

“나 이제 중장이라던데.”

“파격적이네요.”

무려 5계급이나 특진을 했다니.

“계급장 떼어놓고 왔으니까 그냥 곽수환이야.”

“그럼 나도 그냥 석화죠. 그동안 라디오도 자주 들었어요.”

사실 레인보우 시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한 것보다 곽수환의 이야기가 나올까 싶어 들었을 뿐이었다.

“많이 안정됐다더라.”

“소령님도 시티에 있다 왔잖아요.”

“시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몰라. 관심도 없었고. 그래서 계급장 뗀 거야.”

나는 석 박사한테 가는 것만 생각했어.

그의 등만 봐도 들리는 듯했다.

무려 다섯 달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바로 오지 못한 이유는 저 등 곳곳에 남은 총상이 대신 말해줬다. 달마산이 그의 피를 전부 먹어치우려고 했던 기억도 생생했다. 그래서 그가 살아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기가 무척 힘들었다.

“……바이러스는.”

“다 왔다. 재미있었지?”

곽수환이 어느새 도착한 산장을 가리켰다. 시원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 석화도 마주 웃었다. 여전히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말았을 뿐이지만 감정은 충분히 와 닿았다.

둘은 산장 문을 열어두고 실어온 짐을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곽수환이 다 하겠다는 것을 말리고,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벼운 부탄가스는 석화가 날랐다.

적어도 둘이서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식량과 생필품들이 차곡차곡 싱크대 옆에 쌓였다. 툭툭, 석화의 머리카락에 묻은 눈을 곽수환이 털어주었다. 제복 코트도 탁 털어낸 그가 식탁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그는 물을 끓여 즉석밥과 시티에서 가져온 레토르트 미역국을 봉지째 담갔다. 봉지 겉면은 미역과 소고기가 푸짐하게 담긴 사진이 장식하고 있었다.

석화가 미역국 사진에만 시선을 주자 곽수환이 투덜댔다.

“과대광고야. 저 정도로 푸짐하진 않아.”

그러나 말한 것과 다르게 봉지를 찢어 미역국을 더니 건더기가 엄청났다. 곽수환은 즉석밥도 석화에게 내밀었다. 그간 통조림만 먹었던 석화인지라 한식에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이럴 줄 알았으면 김치도 가져올걸. 곽수환은 뒤늦게 후회했다.

곽수환이 먹을 준비를 끝내자 석화는 미역국 그릇에 즉석밥 반을 뚝 잘라 넣었다. 수저로 밥알을 풀고 한 입 떠먹었다.

“맛있어요.”

곽수환은 제 그릇에 있던 건더기까지 석화에게 넘겨주었다.

“소령님도 먹어요.”

“석 박사 살찌는 게 먼저야.”

석화는 오랜만에 먹는 밥다운 밥을 꼭꼭 씹어 먹었다. 요즘은 웬만해서 체하진 않지만 급히 먹었을 때는 또 모르는 일이다. 곽수환은 잘 먹는 석화를 보면서 괜히 서글프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했다. 석화 혼자 이곳에서 다섯 달을 얼마나 힘겹게 보냈을지 생각하면 목구멍에 사과가 박힌 듯 숨쉬기 갑갑했다. 곽수환은 괜히 제 목젖을 손으로 쓸어 내렸다.

석화 스스로 잘라놓은 것으로 보이는 앞머리는 고개를 푹 숙였음에도 눈을 가릴 수준은 아니었다. 그래도 밥을 다 먹고 나면 제가 제대로 다듬어줄 생각이었다. 곽수환은 석화가 데워준 소시지 절반을 뚝 잘라 먹었다. 더럽게도 맛이 없었다. 전분이 대량 들어간 소시지는 고기 함유량도 턱없이 적었다. 푸석푸석한 풀을 뜯어 먹는 소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석화는 이런 걸 몰래 숨겨두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맛있어요?”

“응, 맛있어.”

곽수환은 일부러 또 반쪽을 한 입에 욱여넣었다.

“그거 맛없는 건데.”

“근데 왜 숨겨놨어?”

“유통기한이 길어서요.”

핫, 곽수환이 목구멍에 걸린 사과를 뱉어내듯 기함을 토했다.

“석 박사 나 엄청 울컥했었는데, 그게 다 억울해졌어.”

석화는 크게 푼 미역국밥을 그의 입에 가져다댔다.

“아껴둔 건 맞아요. 육류 좋아하잖아요.”

“이게 무슨 육류야.”

그럼에도 씹은 소시지를 꿀꺽 삼키고 석화가 내민 국밥도 먹어치웠다.

“짜다, 너무 데웠나 봐.”

“그래도 맛있어요.”

쩌적, 장작이 갈라지는 소리에 석화가 퍼뜩 뒤를 돌았다.

“마저 먹고 있어요.”

수저를 내려놓은 석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급히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문까지 열고 나가서는 그 옆의 나무 테라스에서 비닐을 걷어냈다. 당연한 수순처럼 따라붙은 곽수환은 석화가 뭘 하는 건지 몰라 돕지도 못했다. 바라보기만 하니 석화는 품에 마른 장작을 안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불 꺼지면 다시 키우기 힘들어요.”

안으로 들어온 석화는 벽난로 속에 장작 두 개를 휙휙 던져 넣었다. 부지깽이까지 들어 쑤셔서 불을 내 새로운 장작과 기존의 것을 뒤섞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놓아둔 커다란 양동이에 계곡에서 떠온 물도 퍼 담았다. 이러면 얼음 같던 물이 미지근해져 씻기에 좋았다.

곽수환은 석화의 뒤를 주인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따라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다시 식탁으로 돌아온 석화가 수저를 들었다. 여전히 먹는 속도는 느린 데다 장작까지 가져왔으니 밥알은 이미 다 불어 있었다. 곽수환은 먹지 않은 제 미역국에 석화가 남겨놓은 즉석밥을 다시 말았다. 석화의 것과 바꿔치기 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후루룩 마셔 버렸다.

그러고 보니 산장에는 제가 준비해놓은 게 아닌 러시아 제품으로 보이는 낡은 코트와 기름병들이 제법 있었다.

“약재를……. 내다 팔았어?”

“연고랑 해열성분 있는 것들이요. 여긴 아직 정상화되기 전이라 의약품이 턱없이 부족하거든요.”

“사람들이 해코지는 안 했고?”

그가 뭘 걱정하는지 안다. 석화는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서 올려두었다. 이제 곽수환이 있기에 꼬박꼬박 챙기지 않아도 될 테지만, 그간의 버릇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권총이 있어서 안전했어요. 밤에는 늑대들이 지켜줬고요.”

“……일찍 오고 싶었어.”

“알아요. 힘들었을 거라는 것도.”

“내가 뭐가 힘들어. 내 인생에서 힘든 건 하나도 없어.”

그의 허세를 알기에 석화는 더는 부정 않고 수저를 들었다.

곽수환은 식사를 하는 석화를 턱을 괴고 바라봤다. 그러다 인상을 와작 썼다.

“나 되게 못된 새끼다.”

“왜요.”

“그냥. 석 박사가 다른 사람들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질투나 하고 있잖아. 석 박사가 제대로 봤어. 나 개자식 맞는 거 같아.”

석화는 피식하고 답지 않게 눈까지 길게 접으며 웃었다.

“아무하고도 말 섞은 적 없어요. 곽 소령님 오고 나서 처음으로 대화해 보는데.”

그가 오기 전까지 동떨어진 섬처럼 살았다.

“질투나면 이제 어디도 가지 말아요.”

그 섬에 들인 건 오로지 곽수환뿐이었다.

곽수환은 할 말을 잃고서, 차분히 식사를 이어가는 석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

곽수환에게 석화는 형이지만 지켜주고 싶은 존재였다. 그러나 정작 레인보우 시티를 구한 건 석화였다. 제 목숨 또한 석화가 구했다. 석화에게 가기 위해 생존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그날 죽었을 것이다. 체력은 바닥이어도 심지만큼은 단단한 석화였기에 이 험난한 러시아에서도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다.

제가 모르는 151일의 석화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제가 아는 석화도 여기에 존재했다.

“존나게 사랑해.”

제 마음을 감히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곽수환은 질 낮지만 누구보다 깊은 애정을 담은 언어로 말했다.

“그때도 들었어요.”

석화는 여의도 밤섬에서 헤어지던 날을 말했다.

‘자기야! 내가 존나게 사랑하는 거 알지?’

“그때도 화답했는데 못 들었죠?”

“뭐라고 했는데?”

석화는 그릇을 두 손으로 받치고 남은 국물을 마셨다.

“알려줘.”

곽수환은 석화의 손목을 잡았다.

“싫어요.”

딱 석화였다.

***

어둑한 밤이 내려앉았는데도 불을 끄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곽수환이 산장 군데군데 촛대에 불을 훤히 밝혔다. 이러면 산짐승들이 몰려드는데, 걱정을 하던 석화는 그가 있기에 곧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늑대무리들이 어슬렁어슬렁 내려와 산장 주위를 맴돌았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 걸 확인한 늑대 한 마리가 창으로 달려들었다. 창 테두리에 놓아둔 박힌 병 조각에 찔려 깨갱 하고 물러나더니 발바닥을 혀로 삭삭 핥았다.

“저게 뭔가 했는데.”

스티로폼에 깨진 유리를 촘촘히 박아둔 건 짐승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간 석화가 살아온 행적들을 볼 때마다 심장의 피가 다 빠져나가는 듯했다. 고독만이 석화의 동반자였을 것이다.

곽수환은 늑대 보란 듯이 창가 근처에서 석화의 머리카락을 잘라주었다. 앞머리는 살짝 다듬어만 줬고, 뒷머리는 조금 더 많이 잘라내야 했다. 석화 스스로 뒷머리까지 손대기는 힘들었는지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머리를 어찌 잘라주는지도 모른 채 눈을 감은 석화는 무방비 그 자체라 장난기가 솟았다. 두 손을 석화의 머리카락 안에 넣었다. 잘린 머리카락을 흔들어 털어내 주고 두피를 꾹꾹 눌렀다. 기분이 좋은지 멍하게 벌어진 입에서 야한 숨이 터져 나왔다.

“큰일이야, 자기 두피로도 밝히면 어떻게 해.”

오르가즘을 닮은 쾌감이 온 건 사실이었다. 조금 더 지압해주지……. 석화는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가자 아쉬워했다. 산장에 물을 끌어올릴 수도 시설은 없었다. 모든 물은 계곡에서 조달해야 했기에 벽난로 근처에 있는 양동이의 물이 그나마 미지근했다. 석화가 바닥의 잘린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쓰는 동안 곽수환은 몇 번에 걸쳐 물을 데웠다. 자신은 찬물로 씻으면 그만이라 석화가 씻을 양만 준비하는 중이었다.

“뭐 해요?”

“목욕 준비.”

“뜨겁게 안 해도 돼요. 양동이에 있는 물이면 충분한데.”

“나 있잖아. 나 있을 때는 그 꼴 못 봐.”

산장에서 유일하게 시멘트로 마감된 곳은 벽에 샤워기가 매달려 있었다. 물이 무리 없이 공급될 적에 사용하던 것이라 샤워기조차 녹이 슬어 있었다. 그는 잘 사용하지 않아 바싹 건조된 나무 목욕통을 시멘트 바닥에 옮겨두었다.

물로 헹구어낸 목욕통 안에 뜨거운 물을 연방 퍼부었다. 전에 이곳에서 함께 살았을 때도 목욕 준비는 늘 곽수환의 몫이었다.

낮에 떠다두었던 계곡 물이 욕조에 가득 찼다. 손을 넣어 온도를 확인한 곽수환은 석화의 셔츠를 뒤집어 벗겼다. 벽난로의 불길은 여전했지만, 차가운 공기와 닿자 살갗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석화가 추위에 떨세라 얼른 전라로 만들어 목욕통에 들어가게 했다. 석화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여태 찬물로도 잘 씻어왔지만, 오늘은 그가 하는 대로 놔두었다.

따끈한 물에 몸을 담그니 눈가가 저절로 풀어졌다. 참방참방, 손으로 물장난까지 칠 만큼 행복감이 대단했다.

“들어 와요.”

“나 들어가면 박살나.”

두 사람을 수용하기에 욕조가 좁아 보이기는 했다.

“자기, 구정물 나온다.”

“그럴 리 없어요. 매일 씻어요.”

석화는 몸을 웅크려 목까지 잠그고 반박했다.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매일 씻었어. 곽수환은 석화의 어깨를 물로 닦아주며 머리를 욕조 가에 걸쳐두게 했다.

“머리 감겨줄게.”

벽난로 앞 양동이를 통째로 들고 와서 그 안의 물로 석화의 머리를 적셨다. 딱딱한 비누에 거품을 내어 석화의 머리를 꾹꾹 마사지했다. 이 동그란 머리통 안에 담긴 뇌가 백신도 개발하고 약재도 만들고, 뭔가 신기했다.

“기분 좋아?”

“……좋아요.”

“얼마나?”

곽수환은 삭삭 머리를 긁어주면서 생색을 냈다.

“나도 해주고 싶을 만큼.”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 정도라면서 달아오른 얼굴을 했다. 그는 한동안 풀어진 석화의 모습을 기분 좋게 보다가 바가지에 물을 퍼서 머리를 헹구어냈다.

목 아래는 따뜻하고 머리는 시원하니 이대로 잠이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석화가 잠겨 있는 물속에 손을 넣어 팔과 가슴 그리고 사타구니까지 손으로 닦아냈다. 말랑거리는 허벅지를 만질 때는 손목에 툭툭 발기한 성기가 부딪혀 왔다. 곽수환은 그런데도 눈치채지 못한 척 이번에는 등을 닦았다.

“왜 모른 척해요?”

“뭐가.”

“발기했는데.”

곽수환은 제 귀에 위험한 유혹이라는 듯 목덜미만 잘근 깨물었다.

“아는데, 이제부터 혹사시킬 거니까 원망 안 받게 잘해주려고. 일단 환심부터 사는 거야.”

석화는 제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온 곽수환의 손목을 붙들었다. 아래로 가져가 문지르니 그의 팔에 힘줄이 불거졌다.

“환심 다 못 샀는데, 전부 석 박사 탓이야.”

그가 한 손으로 셔츠를 뒤집어 벗어버리고 몸에 양동이의 물을 뿌렸다.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열기가 솟아오르는 듯했지만, 그 근원은 욕조에서부터였다. 곽수환은 손에 그러쥔 비누로 몸을 닦았다. 여러 번 마찰하니 거품도 같이 일었다. 그는 석화를 통에서 일으켜 하얀 거품이 가득한 손으로 문질렀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만지고 싶었는지 알아?”

“……나도.”

석화는 그를 껴안았다. 바짝 일어난 젖꼭지가 비누로 미끌미끌한 그의 상체에 비벼졌다. 만지지 않아도 성기가 바지를 뚫을 듯해 석화가 대신 그의 버클을 풀었다. 브리프 안에 갇혀 있는 게 갑갑해 보였다.

주르륵, 비누 덕에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아 그의 바지와 브리프도 단숨에 끌어내렸다. 퉁, 튀어올라 뺨을 때리는 좆의 기세가 엄청났다. 곽수환이 저보고 항상 밝힌다고 했는데 석화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거품이 일어난 손으로 그의 것을 만져주자 더욱 부피를 키웠다. 단단한 허벅지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때에 곽수환이 팟 하고 웃었다.

“고환 만지고 싶어서 그러지.”

번쩍 석화를 일으켜서 입술에 쪽 했다.

“그거 알아? 맹수들도 고환이 잡히면 꼼짝 못 한대. 혹시라도 곰이 덤벼들면 고환부터 낚아채.”

“……불가능해요.”

석화는 손을 내려서 차가운 그의 고환을 움켜쥐었다.

“윽, 난 그거 아니더라도 이미 석 박사한테 옴짝달싹 못 하는데.”

그는 급소가 잡혀 순순해진 짐승처럼 부드럽게 감싼 몸에 물을 끼얹었다.

거품이 몸을 지나가며 발목에 간신히 매달렸다. 뜨거운 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의 손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추위가 느껴질 리 없었다.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물방울 때문에 석화의 얼굴이 축축했다. 입술 또한 젖어 있어 곽수환의 입에 맞부딪히니 습한 소리가 났다. 입이 달았다. 혀가 뺨을 자극할 때마다 타액이 솟았고, 이 타는 듯한 갈증은 서로에게서만 채울 수 있었다. 탄탄한 가슴에 석화는 저도 모르게 젖꼭지를 문질렀다.

“애 달아 죽겠다.”

곽수환은 한 팔로 강하게 허리를 둘러 안았다. 마른 옆구리를 지나온 그의 또 다른 손은 젖꼭지를 움켜쥐었다.

“하읏!”

딱딱하게 심이 솟은 것을 엄지와 검지로 굴리고 콱 잡아 들어올리기까지 했다. 얼얼한 자극은 단순한 아픔이 아니었다.

석화는 그의 목에 두 팔을 걸어 입술을 더 깊숙하게 포개었다. 물에 달궈진 전신이 아직 식지 않은 것인지 여전히 뜨거웠다. 또다시 물을 퍼서 서로의 몸에 뿌리자 거품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곽수환이 석화의 몸에 커다란 수건을 둘렀다. 펭귄 마크가 그려진 뽀송뽀송한 천이었다. 석화를 만나면 이 부드러운 천으로 꼭 몸을 닦아주고 싶어서 챙겨온 것이었다. 석화가 그 사실을 알면 자리 차지하는 걸 굳이 왜 가져왔냐면서 시큰둥하게 반응하겠지만, 정작 포근한 수건의 감촉이 좋은지 손으로 쓱쓱 만져보기까지 했다. 그동안 너무 많이 빨아 꺼끌거리다 못해 해진 수건만 쓴 탓이었다.

그는 목욕을 준비하기 이전부터 이미 용의주도했다. 수건보다도 더 보들보들한 새 침대 시트에 석화를 내려두었다. 쪽, 쪽, 입술에서 목덜미로 키스를 하며 껍질을 벗기듯 조금씩 수건을 열어갔다.

쇄골을 가린 수건을 벌리면서 안의 살점을 핥았고, 그 다음은 붉어진 젖꼭지였다. 제가 잡아당겨놓은 탓에 다른 쪽보다 좀 더 부풀어 있었다. 미안함에 사과라도 하듯 그가 사악 혀로 돌기를 핥았다. 또 한 번 더 혀를 내리눌러 문지르고는 한가득 입에 물었다.

아! 석화는 제 가슴이 떨어져 나갈까 봐 그에게 더 붙었다. 두 번 다시 닿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나중에는 회상도 못 했던 그와의 행위였다.

“그거 알아? 나 자위 한 번도 안 했어.”

젖은 가슴에 나직한 목소리가 흩어지고 쪼옥, 다시 가슴을 빨아 올렸다.

“형은 했어?”

가슴에 턱을 대고 올려다보는 남자가 새삼 잘났다. 석화는 그의 시원한 눈매를 손으로 덧그렸다.

“하려다가……. 눈물 나서 못했어.”

“그게 뭐야. 이거 잡고 있다가 울면 이상하잖아.”

밑에서부터 올라온 손이 수건 안의 성기를 그러쥐었다.

“우리 석화 형은 안 이쁜 데가 없지, 왜. 고추도 이쁘고 허벅지도 맛있고.”

확 아래로 내려간 그가 수건 안의 허벅지를 잘근 깨물었다. 연약한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충격에 몸을 퍼뜩 떨었다. 그의 입에서 빨리고 깨물린 허벅지가 금세 붉게 올라왔다.

마음 같아선 전부 다 먹어치우고도 남을 곽수환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좋다. 함께할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는 석화의 다리에 뺨을 비비다가 도톰한 귀두를 입에 넣었다. 석화의 모든 몸을 통틀어 가장 부드럽고 연한 살갗이 입에서 녹아내려갔다.

더욱 단단해지기 시작한 것을 쪽쪽 빨아들여 선액까지 먹어치우고 회음부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달뜬 신음 소리가 야했다. 곽수환은 제 좆을 움켜쥐면서 더 세게 석화의 성기를 빨았다.

“그, 금방 나올 것 같아.”

그럼 안 되지.

곽수환이 펑 소리가 들리도록 입을 떼어냈더니 다리가 파들파들 경련했다. 석화는 약간 원망 섞인 눈을 하고 있었다. 체력 분배해주는 거라고 중얼거린 그가 허리에 걸쳐진 수건을 완전히 벗겨냈다. 벌써부터 빨리고 깨물린 몸이 울긋불긋했다.

촛대의 불이 흔들릴 때마다 석화의 몸에 내려온 그림자도 일렁거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물결처럼 요동치는 그림자는 석화의 나신을 어루만졌다. 그마저도 질투심이 난다면 머리가 반쯤 돌아버린 게 틀림없다.

석화는 제 몸을 구석구석 바라보는 곽수환 때문에 열기가 더 치솟아버렸다. 그가 이렇게 형형하면서도 가라앉은 눈을 할 때면 묘한 이질감도 같이 들었다. 겉으로는 건들거리지만 속으로는 차가운 불을 숨기고 있던 컨트롤러였을 때처럼.

그러나 그의 실제 모습이 어떻든 그는 제 곽수환이었다.

바짝 일어나 있는 그의 좆을 손으로 감싸자마자 입이 끈끈해졌다. 석화는 홀린 듯이 입술을 벌려 그의 몸을 넘어뜨렸다. 혀를 슬쩍 내밀어 쿠퍼액을 핥으려 하는데 그가 팔뚝을 움켜쥐었다. 한쪽 눈을 짓궂게 찡그린 곽수환이 자기도 입을 벌려 보였다. 마치 빨아주겠다는 듯 음란한 혀에 석화는 망설임 없이 그의 위에 올라타 제 뒤를 내주었다.

그가 침대 상단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는 바람에 석화의 엉덩이가 위로 더 떠 버렸다. 혀를 내밀어 눈앞의 귀두를 핥았더니 선액이 끈끈하게 달라붙는다. 석화는 앞만 입에 문 채로 그가 자신의 것을 뜨겁게 삼켜주기만 기다렸다.

“흐읏…….”

예상과 달리 그는 회음부를 핥아 올렸다. 성기를 가볍게 쥐고 혀는 구멍으로 쓱 미끄러뜨리기까지 했다. 오랜만의 자극이 생경했다.

“그냥 물고만 있을 거야?”

그가 웃는 게 느껴졌다. 석화는 눈을 감고는 그의 좆을 좀 더 깊이 들이밀었다. 목구멍을 열어서 빠는 방법을 일전에 깨우쳤는데 지금은 쉽사리 열리지가 않았다. 컥, 하고 기침이 나와 숨을 고르고 다시 물어야 했다.

귀두가 천장을 긁을 때마다 아래도 움찔거렸다. 입이 마치 또 다른 성기가 된 것 같았다. 안쪽을 열어서 넣는데 그의 좆이 휘어지지 않으려고 목구멍을 찔러댔다. 제가 주는 감각에 단단해지는 허벅지가 만족스러웠다. 석화야, 나 그럼 못 참아. 낮은 숨을 뱉어내는 곽수환이 밖의 늑대처럼 그릉거렸다. 갑자기 손가락이 거칠게 안을 파고들었다. 푸하, 익사 직전의 사람처럼 석화가 입을 떼어냈다. 넣은 것만큼이나 빠져나오는 데도 한참이었다.

“아, 아파요.”

그는 안을 넓히려는 다분한 의도로 엉덩이를 깨물고 빨면서 손가락도 멈추지 않았다. 처음부터 아래를 헤집는 손이 거침없었다. 그런데도 석화는 쥐고 있는 좆을 커다란 사탕처럼 입 여기저기로 굴렸다. 하, 진짜. 허리를 탁 쳐올리니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져버려 좆이 깊숙이 처박혀 버렸다.

우욱, 눈이 불거지고 가슴이 마구 요동쳤다. 마찬가지로 놀란 그가 상체를 일으켜 석화를 살폈다.

“괜찮아?”

“괜찮……. 쿨럭.”

말을 하다 말고 기침을 토해냈다. 곽수환은 석화를 제 위에 포개어 등을 두드려줬다. 다행히 맞닿아있는 성기는 풀이 죽는 법이 없었다. 곽수환이 슬쩍슬쩍 허리를 움직이자 석화의 기침도 잦아졌다. 성기는 뱃가죽을 찔러 올리기도 하고 두 개가 마구 맞물려 마찰하기도 했다. 석화도 그에 맞춰 천천히 움직였다.

“천천히 할 테니까 맞춰줄 수 있지?”

빨리 해도 되는데…….

석화는 제가 그를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할 수 있어요.”

툭툭, 다시 등을 토닥여준 그는 석화를 침대에 엎드리게 했다. 석화는 두 팔로 지탱해 엎드려서 뒤를 돌아봤다. 곽수환이 걱정 말라는 듯 등에 입술을 맞췄다. 이어 손가락을 빠는 듯 질척한 소리가 들렸고, 그 손이 엉덩이 사이를 가로질렀다. 아까처럼 안으로 푹 들어오는 바람에 시트를 그러쥐었다. 석화는 입을 벌린 채 탄성만 토해냈다. 그가 당장에 도톰한 부분을 찾은 탓이었다.

손을 굽혔다가 펴면서 전립선을 긁어주자 눈앞에서 섬광이 터지고 있었다.

“아, 아흣.”

좋은데 벗어나고 싶은 상반된 감각에 반사적으로 손이 뒤로 향했다. 잘근, 그가 탓하듯 또다시 엉덩이를 깨물었다. 더는 꼼짝도 못하게 두 다리를 한데 감싸고 푹푹 소리가 나도록 아래를 쑤셨다.

“아! 아, 안 돼. 아흣.”

계속해서 전립선을 짓누르며 손가락을 점차 더 늘려갔다. 석화는 시트를 그러쥔 손만 허우적거리며 흐느꼈다. 허리 아래가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옴짝달싹도 할 수 없어 적잖은 두려움도 들었다. 머리가 쭈뼛 서고 몸 안에서 요동치는 쾌감은 손끝 발끝으로 내달렸다. 그 끝에서도 분출되지 못한 쾌감은 또다시 온몸을 돌며 숨겨진 신경마저 일깨웠다.

신경들이 타닥거리면서 전신을 불태우다가 겨우 몰려간 곳은 성기였다. 석화는 흔들리는 성기에서 찔금, 액을 뱉어냈다.

“아! 소령님! 나, 안 돼……. 놔줘요. 놔줘요.”

쿨쩍쿨쩍, 이번에는 손가락 세 개가 늘어난 아래를 휘저었다. 곽수환은 등까지 빨갛게 물든 석화를 바라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기분 좋으라는 건데 왜. 응? 안 좋아?”

“조, 좋아. 근데……. 아읏, 못 참겠어.”

“뭘 못 참겠어?”

곽수환은 제 쪽으로 석화의 두 허벅지를 확 더 잡아당겼다. 쪽쪽, 등과 꼬리뼈에 쉴 새 없이 키스를 하면서 손을 놀렸다.

“응? 말해줘야 알지.”

일부러 더 과감히 아래를 빙글 돌렸더니 왈칵, 하고 석화가 시트를 적셨다. 석화가 이를 물고 앓는 소리가 들렸다.

못 참아서 싼 거야?

푸흐, 살갗에 닿은 곽수환의 입술에서 바람이 샜다. 그는 계속해서 전립선만 괴롭혔다. 이러면 금세 지쳐버린다. 석화는 저를 억지로 붙든 그의 두 팔에 제 손을 박았다. 얼굴은 시트에 비벼져 이제 엉덩이만 바짝 들려 있었다.

“억지로, 아흐.”

“억지로라니, 내가 힘으로 함부로 하는 거 아닌데.”

“……하잖아.”

“그래?”

그가 하반신을 옥죄었던 팔을 풀었다. 석화의 몸도 풀썩 침대와 하나가 되듯이 일자로 엎어졌다. 그런데도 뒤의 손가락은 아직도 안에 들어와 있었다. 성기가 애매하게 눌려서 밑으로 향하는 바람에 갑갑했다. 석화가 허리를 슬쩍 들어 올리자 그도 또다시 손을 움직였다.

아윽, 허리에 힘이 빠져 성기를 올리지도 못하고 또 엎어져야만 했다.

“후, 이거 봐. 또 질질 싸면서.”

묽은 액으로 축축해진 허벅지에 그가 좆을 문질러댔다. 기세가 얼마나 흉흉한지 겨우 몇 번 만에 허벅지가 욱신거렸다.

“아!”

크게 안을 휘젓던 손이 예고도 없이 확 빠져나갔다. 허전해진 아래가 움찔대며 원래대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곽수환은 빠끔히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제 귀두를 꾸욱 밀어 넣었다.

“아읏! 아, 아파.”

아래가 동그랗고도 팽팽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후. 괜찮아, 천천히 넣을게.”

그는 엎드려 있는 석화의 위에 팔을 내리누른 채로 속삭였다. 점차 안으로 성기가 진입할 때마다 그와 닿는 살갗의 면적도 늘어났다. 그래서 석화는 힘들다는 소리도 하지 못했다. 느릿하고도 차분히 안을 늘려오는 시간이 지독히도 길었다.

그의 음모가 닿았을 때 수직으로 좆이 꽂히니 배꼽이 밀려나는 듯했다. 그는 완전히 삽입을 하고 나서 길게 펼쳤던 팔을 반으로 접어 지탱했다. 제 몸의 무게를 석화에게 전부 실을 수는 없었다. 가슴팍에 경련하는 등이 고스란히 와 닿았다.

“하아, 자기 나 조루 됐나 봐.”

근 다섯 달 동안 쌓여있던 정액이 방출되고 싶어 난리였다. 아니, 그보다 이러고 있는 순간이 기적 같았다.

“기절하면 어떻게 하지?”

그가 머리카락에 대고 입술을 놀렸다. 석화는 흐린 눈을 떠 눈앞의 팔뚝을 감쌌다.

“안 해요. 체력 많이……. 생겼, 아!”

허락을 기다렸다는 듯 좆을 빈틈없이 넣은 그가 허리를 탁탁 내리눌렀다. 내벽이 그의 것을 감싸고 있어 잔뜩 부어있는 전립선이 또다시 혹사당했다. 이러다가 닳아 없어지는 게 아닐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럴수록 쾌감은 더욱 선명해졌다.

하으, 하으읏. 석화가 아래에 힘도 주지 못한 채 팔뚝에 얼굴만 문댔다. 곽수환도 거친 숨을 내뱉으며 자꾸만 힘이 들어가는 턱 대신 아래를 더 거칠게 놀렸다. 자칫하다가는 석화의 연한 살을 거세게 깨물 것만 같았다. 내 거다. 진짜 내 석화였다.

“후, 안에 더 깊숙이 할까? 그래도 돼?”

“아, 아니. 안 돼.”

석화는 손으로 제 성기를 움켜쥐었다. 아랫배에도 팔이 닿아 그가 들어올 때마다 불룩불룩 튀어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환아…….”

더 깊이 박으면 안 된다고 말도 잇지 못했다. 채 삼키지 못한 침이 입술에 흥건했다.

“하아, 알았어.”

콩, 석화의 뒷머리에 그가 제 이마를 박았다. 뒤로 삽입을 하니 처음부터 너무 깊었나 보다. 곽수환은 좆을 빼지 않은 채 정상위로 체위를 바꿨다. 한 바퀴 휘저어지는 동안 석화가 여간 곤란해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 내벽이 짓눌리다 못해 비틀리는 모양이었다. 제 아래를 쥐어짜는 탓에 흥분이 정점에 달한 건 곽수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석화를 달래주듯 아랫배를 손으로 둥그렇게 매만졌다. 긴장한 석화의 몸에서도 조금씩 힘이 풀리고 있었다.

“우리 형, 진짜 체력 좋아졌네. 나 몰래 웅담 먹은 거야?”

제가 곰을 어떻게 잡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눈이었다.

석화는 벌린 허벅지가 뻐근해 차라리 그의 어깨에 두 다리를 올렸다. 쪽, 쪽, 그는 애타는 시선을 숨기지도 못하고 복숭아뼈를 혀로 굴렸다. 허리를 슬슬 움직이던 곽수환이 기어코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석화는 성기를 그에 맞춰 흔들었다. 참고, 또 참다가 더는 사정감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할 것 같아, 수환아. 나 할 것 같아.

“오늘은 안 돼.”

곽수환이 두 손목을 확 들어 올려 위로 제압했다. 동시에 퍽퍽 아래를 망가뜨릴 듯이 움직이며 고환까지 함부로 쳐댔다. 조금만 만지면 할 것 같은데, 요도가 지글지글 불타는 것만 같았다. 약간이라도 조금만이라도 만져달라고 사정 아닌 사정이 입에 매달렸다. 그의 거센 움직임에 흔들린 성기가 뱃가죽을 때렸다. 그 자극만으로도 성기에서 정액이 왈칵 튀었다. 그런데 사출은 한 번으로 그치고 다른 액만 찔끔 쏟고 말 뿐이었다.

만져, 만져줘. 못 나와. 말이 되지 못하는 신음으로 석화가 몸을 뒤틀었다. 곽수환은 잔뜩 수축한 내벽을 비집고 들어가며 여러 번이나 콱콱 틀어박았다. 귀두 홈을 구멍에 걸쳤다가 앞으로 밀려날 정도로 삽입해온 순간이었다. 배 안의 좆이 요동치며 그가 화악, 뜨거운 뭔가를 마구 쏟아냈다. 석화는 커다랗게 벌린 입을 뻐끔거리지도 못했다. 화인이라도 박는 듯 데이는 것만 같았다. 대체 얼마나 가득 채우려는 건지 사정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후우, 그가 숨을 길게 토해냈다. 석화는 얼른 빼달라며 발로 그를 밀었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허리를 일으켜서 석화의 몸을 반으로 접다시피 했다. 사정이 끝나고도 풀이 죽지 않은 성기는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허리가 위로 들려버려 그가 싸질러 놓은 정액이 더 깊숙이 스며들었다.

“바로 간다.”

그래도 되지? 애교를 피우는 말투에 석화는 숨을 몰아쉬는 게 고작이었다. 그가 허리를 뒤로 빼내니 정액이 몽글몽글 좆을 따라 새어나왔다. 푸욱, 다시 처박을 때 석화가 밭은기침을 했다. 곽수환이 벌린 입 안으로 혀를 얽어왔다. 기침과 키스가 함께 뒤엉켜서 엉망이었다. 몸이 더 접혀서 그의 것을 물고 있는 구멍도 더 팽팽하게 벌어졌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참았는지 알아? 자기 사정하면 바로 뻗잖아.”

“하아……. 할 수 있어.”

사정해도 버틸 수 있다면서 석화가 호언장담했다. 저는 이제 옛날의 제가 아니라는 듯이. 석화는 빵빵해진 것 같은 아래에도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더 많이 먹고, 더 체력 기르자. 좋은 거 내가 많이 해줄게. 나도 많이 하고 싶어.”

섹스는 보통 첫 판으로 끝이 나고는 했었다. 심지어 불발도 있었다. 전보다 마르기는 했어도 지금 석화는 혼절할 수준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저를 따라오려고 부단히도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솔직한 석화이니 정 싫었으면 거부를 했을 거다.

곽수환은 기분 좋게 해주겠다면서 허리를 빙글 돌렸다. 아주 천천히 내벽을 둥그렇게 밀어내면서 석화의 얼굴을 살폈다. 정액 덕분에 안이 매끄러워져서인지 뺨이 아까보다 더 상기되어 있었다.

좆을 길게도 빼냈던 그가 쿠욱, 하고 전립선을 밀며 들어왔다. 석화가 재빨리 제 성기를 쥐었다. 이번에는 곽수환이 막을 새도 없었다. 몇 번 흔들자 어쩐 일로 기세 좋게 정액이 튀어 올랐다.

곽수환은 제 가슴팍에 부딪혀 오는 사정액을 손으로 모아 혀로 쓱 핥아 먹었다. 아직 사정을 하는 틈을 타 아래서 위로 때려 박았다. 내벽은 사정의 여운에 빠듯해져 있었다. 닫히려는 안을 억지로 파내듯 쑤셔 박자 석화가 흐느끼면서도 연방 신음했다. 물컹해지는 성기를 쥐어 그가 손바닥으로 마구 문질렀다.

“아! 아, 안 돼! 아윽!”

한껏 예민해진 귀두에서 왈칵왈칵 전립선액이 쏟아졌다. 가혹하게도 삽입을 해오는 뒤와 앞의 자극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반신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었다. 제가 조절할 수 없으니 오로지 곽수환에게만 달려 있었다.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리는 쾌감에 익숙해져도 되는 걸까.

곽수환은 숨이 턱까지 달아올라 몸 어디 할 곳 없이 붉게 물든 석화에게 키스했다.

기분 좋지? 나도 기분 좋아. 씨발, 너무 좋아서 뒈질 것 같아.

석화는 이제 그의 감탄사에 딴죽을 걸 수도 없었다. 이 정도면 많이 버텼다. 간신히 그의 등을 끌어안고 있던 손이 툭 미끄러졌다.

***

아니나 다를까, 석화는 앓아누웠다.

곽수환은 벽을 보고 반성하는 대신 석화를 향해 있었다. 엉덩이 안쪽의 열이 엄청났기에 차가운 수건을 그 밑에 대주었다. 앓는 신음 소리가 나올 때마다 연방 등을 쓸어주고, 열이 내렸을 때서야 곽수환도 한숨 자고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눈을 뜨고도 한참이나 석화의 옆자리를 지켰다. 잡티 하나 없는 둥근 이마 밑으로 눈꺼풀은 미동도 없었다.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자는 듯 석화는 고른 숨만 내쉬었다. 곽수환은 진부하게도 제 뺨을 후려쳐보고 싶었다.

“우리 형, 진짜 맞지.”

나직하게 속삭여도 석화는 눈뜨지 않았다. 예전에도 잘 자는지 석화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대보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전처럼 시체 같은 안색은 아니었다.

딱딱한 팔베개가 별로인지 석화는 불편한 기색으로 머리를 뒤척였다. 팔 대신 머리를 살짝 받쳐서 접은 수건을 내려두었다. 몸이 아직 아픈 건지 그 잠깐의 움직임에도 석화는 약하게 신음했다. 편히 잘 수 있도록 침대를 벗어나 의자에 앉아 또 한참을 쳐다봤다. 러시아 영감도 그랬지. 제가 석 박사를 쳐다보는 눈이 형형했다고. 누군가가 지금 제 모습을 본다면 석화보고 도망가라고 할지도 몰랐다. 그만큼 엄청난 집착을 담고 있을 테니까.

“누가 감히 도망가라고 해. 내가 얼마나 잘해주는데.”

어제의 미안함이 남아있는지라 혼자서 허세를 부렸다.

석화가 일어나면 닭죽을 해 먹일 생각이었다. 여기 어디에도 닭은 없으니 백숙을 해줄 수는 없고, 아쉬운 대로 쌓아둔 식량 중에서 레토르트 닭죽을 꺼냈다. 행여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석화가 깨지는 않을까 봉지를 들고 굳어버린 자세를 취했다. 쓱 돌아보니 아직 한창 꿈나라였다.

닭죽 말고 또 몸에 좋은 게 뭐가 있으려나. 이번에는 조금 덜 조심하면서 박스 안을 뒤적거렸다.

둘이서 먹을 식량은 충분했고 부족하면 제가 산짐승을 잡아서 조달할 수도 있지만, 목표는 레인보우 시티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저는 석화와 함께 있으면 어디든 좋다. 그러나 석화는 고향에 대한 애착도 있어 보였다. 솔직히 다른 것 다 제치고서 보상심리가 제일 크게 작용했다.

시티를 구한 게 누군데 석화는 이렇게 다 쓰러져가는 산장에서 살고, 누구는 호의호식하고. 그 꼴은 못 본다.

쾅쾅!

인상을 와작 구긴 그가 소리가 난 곳을 돌아봤다. 불청객이 또 문을 두드리기 전에 성큼 가서 문을 열어젖혔다. 말아 쥔 주먹을 들고 있던 여자가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다른 한 손에 말린 햄까지 들고 있었다.

“뭐야.”

금발 머리의 여자는 러시아인으로 보였다.

“누구세요? 선생님은 어디 계시죠?”

그녀는 미남 약사 선생이 나올 줄 알았는데, 엄청난 장신의 남자가 나오니 경계심을 잔뜩 세웠다. 저도 모르게 산장 안으로 시선을 던졌다. 혹시 약사 선생을 이 남자가 죽이거나 해코지했을까 봐서였다.

“뭐냐고.”

당연히 서로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러나 약사 선생님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봤기에 조금은 안심했다.

“선생님이 가져다준 연고 덕분에 엄마 상처가 많이 좋아졌어요. 이건 감사한 마음에 가져온 거예요.”

곽수환이 말라비틀어진 햄을 내미는 여자를 팔짱을 끼고 내려다봤다.

“선생님이 어디 아픈 건 아니죠?”

“나 러시아어 거의 못해. 할 줄 아는 건 욕뿐이라.”

여전히 서로 다른 말을 해대기 바빴다. 그녀는 한숨을 폭 쉬고 햄만 내밀었다.

“이걸 왜 주는데? 돌도 아니고 석 박사한테 햄으로 구애해 봤자야. 너나 먹어.”

한기가 들어올까 봐 문을 닫으려는데 햄을 휙 문 사이에 끼워 넣었다.

“이 여자가 진짜.”

“……누구예요?”

침대에 일어나 앉은 석화는 여전한 저혈압에 이마를 꾹 눌렀다.

“모르는 여자야.”

햄을 잘라내면서 문을 닫을까 했지만 석화가 깬 이상 그러기는 어려웠다. 곽수환이 문을 다시 열었고, 그녀는 일어난 석화를 보자마자 화색을 띠었다.

“선생님! 엄마 다리의 상처가 많이 아물었어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석화도 그녀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봤다. 늑대에게 다리를 물린 어머니를 이곳까지 업고 왔던 딸이었다. 깊은 상처는 아니라 응급조치만 해주고 재생연고를 쥐여 보냈던 게 불과 보름 전이었다. 석화는 모포를 걸치고 문으로 걸어갔다.

“약소하지만 감사의 뜻이에요. 이건 저희가 말린 햄인데 물에 끓여 먹으면 맛이 꽤 좋아요.”

지금은 저희에게 식량이 많아서 굳이 받을 이유는 없었다. 식량이 부족한 건 오히려 그녀의 가족이었다. 그럼에도 석화는 햄을 감사히 받았다. 곽수환은 여전히 팔짱만 낀 채로 달갑지 않은 기색을 풍겼다.

“스바시바(Спасибо).”

짤막한 인사에 그녀가 입과 눈을 동시에 벌렸다. 말을 하지 못하거나 러시아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모르는 선생인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와, 우리 석 박사 욕도 잘하네.”

고맙다는 말 정도는 곽수환도 알지만 장난기가 더 먼저 앞섰다. 어쩐지 석화가 씨발이라는 말을 하면 어떨까도 싶었고.

“소령님, 우리 가지고 있는 식량 좀 나눠줘도 되죠?”

곽수환이 고개를 끄덕했다. 석화 대신에 식량 박스로 가 별맛이 없는 것들만 빈 박스에 옮겨 담았다. 그사이 석화는 여자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둘 사이를 방해하듯 들고 온 박스를 툭 내려두었다.

“바이바이, 잘 가요, 빠까(Пока).”

그녀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으나 곽수환이 재빨리 문을 닫았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여자는 곧 박스를 품에 안고 산길을 내려갔다. 곽수환은 들어 올렸던 커튼을 치고 석화를 돌아봤다.

“몸은 괜찮아?”

“걸을 순 있어요.”

석화는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식탁에 둔 물을 들이켰다. 곽수환이 데워놓았는지 물이 아직 따뜻했다. 석화는 의자에 앉을까 하다가 햄만 내려둔 채 다시 침대로 향했다. 모포를 벗고 안으로 들어가니 온기가 머물러 있어 훈훈했다. 이렇게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건 이 산장에 온 뒤 처음이었다. 자는 동안 그가 벽난로도 끊임없이 땠는지 그 안에 장작이 수북했다.

“배는 안 아파?”

그가 바닥에 앉아서 침대에 턱을 괬다. 얼굴이 바로 코앞이었다.

“조금 아파요.”

“닭죽 괜찮아?”

“좋아요.”

“달리 아픈 데는 더 없고?”

석화는 옆으로 누워 곽수환을 바라보다가 어제 하지 못했던 말을 꺼내놓기로 했다. 그는 일부러 그 점에 대해서는 피하려는 듯 어제도 말을 잘라냈었다.

“바이러스 말이죠.”

“바이러스는 무슨. 코피 안 나고 건강하면 된 거야.”

꾹, 석화의 코끝을 문질렀다.

“저 식량 다 먹으면 시티로 내려가자.”

석화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미간에 살짝 금이 갔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곧 매끈해졌다.

“혹시 아담 키트 가져왔어요?”

“……그게 왜 필요해.”

말투가 다소 냉랭했다.

“그럼 시티로 못 가요.”

신종 변이 아담 바이러스의 숙주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지금 살아 있잖아. 그럼 문제없는 거야.”

“만약에 여전히 숙주라면요?”

곽수환은 문제가 없을 테지만, 다른 사람은 아닐 거다.

“영감이 그랬잖아. 이미 최종 진화 형태였다고.”

신종 변이 아담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만큼 감염 경로도 짧아졌고 레인보우 시티에서 신종 아담이 발견된 일은 달마산 이후로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 쥐 잡아 줘요.”

“쥐는 왜? 쥐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 나보고 그 더러운 걸 만지라고?”

투덜거리는 수준이 평소보다 거셌다.

가장 확실한 건 쥐에게 제 피를 주입해보는 일이지만 그간 실행해보지는 못했다. 저는 쥐를 잡을 만한 순발력도 없고, 만일 쥐가 아담으로 변이해 도망친다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터였다. 이 근처 사람들이 저 때문에 전부 감염되어 죽을지도 몰랐다.

“감염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현재는 그것뿐이잖아요.”

“그럼 피는 칼로 찔러서 내려고? 나는 석 박사 몸 어디에도 상처 나는 거 싫어.”

석화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그런 사람이 저를 반으로 접어 쾅쾅 박아대나. 물론 석화도 그거랑 이거는 별개라는 것을 안다.

“소령님, 솔직해져 봐요.”

“난 항상 솔직해.”

곽수환이 침대에서 물러나 등을 보였다.

“내 체내에 바이러스가 남아 있을까 봐서 그러는 거잖아요.”

곽수환에게 쥐를 잡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거다. 만일 쥐가 감염된다 하더라도 그는 쉽게 제거할 수도 있었다. 그 쉬운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조차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겠지.

“소령님도 확신하지 못하는데 시티로 내려가는 건 너무 위험해요.”

“피날 일만 없으면 되잖아.”

“…….”

“알아, 개소리인 거.”

여전히 등을 보인 채로 그가 냄비의 물을 데웠다.

“나도 석 박사랑 여기서 단둘이 사는 게 당연히 더 좋지. 그런데 여긴 너무 열악하잖아.”

“열악하지 않아요.”

넘치지는 않지만 필요한 물건들은 다 있었다. 제 욕심에 또다시 시티를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자칫 자신을 시티로 데려간 곽수환조차 위험해질 수 있었다.

“억울하지도 않아?”

풍덩, 그가 닭죽 봉지를 거칠게 담그고 뒤를 돌았다. 곽수환과 다르게 석화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 시종일관 덤덤한 표정이었다.

“억울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났고 같이 있는데.”

“난 억울해.”

곽수환은 전 재산을 사기당한 사람처럼 온통 분해했다.

표정을 부드럽게 푼 석화는 두 팔을 벌려 그에게 뻗었다. 이리 와서 안기라고 종용하는 무언의 행동에 곽수환이 저벅저벅 걸어왔다. 그의 무게에 끼익, 나무 바닥이 몇 번이고 울었다. 곽수환이 무릎을 꿇어 침대에 앉아있는 석화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마른 허벅지에 얼굴을 기대니 석화가 툭툭 등을 두드렸다.

“억울해 죽겠다고, 석 박사. 적어도 이딴 산장 말고 우도에 있는 별장 정도는 줘야지.”

허벅지가 잘게 떨렸기에 석화가 웃는 것을 깨달았다.

“곽 소령님 돈 많잖아요.”

“시티 돈은 러시아에서는 땔감이야.”

그가 아이처럼 고개만 들어 석화를 올려다봤다.

“쥐 한 마리 잡아올 테니까 문제없으면 바로 내려가자. 바늘로 살짝만 손 따서 피내고.”

“근데 여기서 쥐를 본 적이 없어요.”

겨울이면 먹을 게 거의 없기에 늑대들이 쥐도 다 잡아먹었다.

“그럼 늑대 한 마리 잡아올까?”

“물 졸아요.”

석화가 그의 어깨를 잡고 일어났다. 허리에 무리가 없을 만큼 천천히 걸어서 버너의 불을 껐다. 냄비 안에는 닭죽 세 봉지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봉지 끄트머리를 잡아서 끄집어내 내용물은 그릇에 덜었다.

두 개는 곽수환, 한 개는 저의 몫이었다. 식탁에 내려두려고 했건만 곽수환이 침대로 그릇을 가져갔다. 딱딱한 나무 의자보다는 낫긴 하다. 석화도 침대로 가서 그와 나란히 앉아 닭죽을 살살 긁어먹었다.

잘게 찢어져 푹 고아진 살점이 입 안에서 녹았다. 곽수환은 고기가 얼마 없다며 시티 공장을 욕했지만,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침대에 눕는 대신 밖으로 나왔다. 곽수환도 밖으로 나간 탓이었다. 석화는 나무 의자에 앉아 나무를 패는 그를 구경했다. 제가 주워온 땔감이라고는 부러진 나뭇가지 같은 게 대부분이어서 그가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사용하지 않아 날이 무뎌진 도끼로 나무를 쳐대는데 통나무가 잘도 쩍쩍 갈라졌다. 그가 내리치는 도끼 소리에 오늘은 사향노루도 내려와 보지 않았다. 그건 다른 산짐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석화는 방석 대신 곽수환이 깔아둔 수건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밥도 든든히 먹고 시간이 좀 지나니 근육통이 많이 풀어진 덕이었다.

조금만 있으면 곧 눈도 녹을 테고, 새싹이 올라오는 봄이 올 터였다. 봄이 오기 전에 그가 와줘서 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새싹도 보지 못한 채 육신은 바스러져 갔을 거다.

“우리 노부부 같지?”

곽수환이 손에서 도끼를 한 번 돌렸다.

“노부부요?”

“은퇴하고 도시를 떠나 사는 부부 말이야. 한적하게 우리 둘이 오순도순 지내는 거 좋잖아. 방해꾼도 없고.”

아마도 그가 본 소설 중에 그 비슷한 게 있었나 보다.

“신기하기는 해요. 아담도 없고.”

아직 아담이 박멸되지 않은 러시아지만, 여긴 인적이 워낙 드문 곳이라 아담이 없는 세상이나 다를 바 없었다.

“시티에도 아직 처리되지 않은 아담이 있기는 할 거야. 이쯤이면 다 아사해 죽어서 시체를 소각했을 수도 있겠고.”

“백신이 전 시민에게 배포된 건 맞겠죠?”

“아마? 중국하고 러시아까지 배포한다는 것 같던데, 이희찬이 수완가잖아. 아마 이걸 요구하겠지.”

곽수환이 오케이 표시로 동전을 만들어 보였다.

“만약에 제 피에 문제가 없다면 블라디보스토크로 갈래요?”

뜬금없는 석화의 제안에 곽수환은 반쯤 갈라진 나무를 손으로 쪼갰다.

“거긴 왜?”

“백신 생산하러요.”

“우리가 무료로 제공하면 이희찬이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들걸? 위험 감수하지 말자. 근데 생각해보니까 또 억울하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받는 거잖아. 아무래도 시티에 석 박사 동상 하나 정도는 세우게 해야겠어.”

곽수환이 나뭇가지를 하나 들어 눈으로 젖어있는 바닥에 끄적거렸다. 동상의 기본 틀을 뜨는 듯 석화의 얼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석화는 나무 테라스 밑으로 내려가 그가 그리는 그림을 구경하려 했다. 손재주가 좋은 곽수환이니 꽤나 잘 그리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도 함께였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림 실력은 엉망이었다. 아몬드 모양의 눈도 삐뚤빼뚤했고 코와 입의 위치도 이상했다. 흉상처럼 가슴까지 그려놓고는 콕콕 양쪽을 나뭇가지로 팠다.

“젖꼭지는 왜 그려요.”

“눈치챘어?”

그래도 그는 파놓은 부분을 없애지 않았다. 한술 더 떠 흉상 밑의 글귀도 가관이었다.

[석 박사 ♥ 곽 소령]

석화는 저도 나뭇가지를 하나 들어서 젖꼭지 부분을 직직 그었다.

“뭐야, 부은 젖꼭지 됐네. 지금 옷 안에 딱 이런 거 아니야?”

안 그래도 그가 물고 씹은 가슴이 옷에 스칠 때마다 쓰라렸다. 석화는 제 못생긴 흉상 옆에 곽수환을 그리기 시작했다. 석화의 그림 솜씨도 곽수환 못지않아서 못난이 두 명이 달라붙어 있는 모양새가 됐다. 석화도 그의 젖꼭지를 그릴까 하다가 똑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어서 그만두었다.

[밝힘쟁이 석 박사가 그린 내 흉상]

곽수환이 그 밑에 또 글을 썼다.

쯧쯧, 고개를 저었지만 석화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풀어져버렸다. 먼저 나뭇가지를 내려놓은 것은 석화였다. 손을 탁탁 털고 흘러내린 모포를 끌어올리는데 곽수환이 뒤에서 확 허리를 안아 올렸다.

“와, 너무하네. 혀까지 차? 맞는 말이잖아.”

쪽쪽, 드러난 목덜미에 그가 입술을 잘게 부딪쳐왔다.

석화는 내려달라고 그의 손을 툭툭 두드렸다. 바닥으로 내려간 석화가 빙글 돌아서 곽수환을 끌어안았다. 그의 가슴 안쪽 심장에서 요동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심장마저도 기운이 넘쳐났다. 석화가 불시에 껴안아왔기에 더 난동을 피우는 거긴 했지만.

“자기, 내일부터 나랑 같이 체력 기를까?”

“좋아요.”

“나 훈련시킬 때는 엄청 무서운데. 석 박사, 좌 굴러, 우 굴러. 잘 못하겠습니까? 그게 최선입니까? 굼벵이도 그것보다는 빠를 겁니다. 어때, 가능하겠어?”

석화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곽수환은 그 모습이 못내 사랑스러워 웃음이 샜다. 수건 위에 앉는 석화를 보고 재차 도끼를 들었다. 제가 아직 덜 크긴 했나 보다. 저렇게 구경하니 괜히 팔뚝에 더 힘을 주어 장작을 패기 돋게 쪼개게 되니 말이다.

“오늘 하루 동안 올 겨울 날 만큼 다 쪼갤 거 같은데.”

그는 과장을 더했다.

석화는 내일은 도끼날을 갈아둬야겠다는 한가로운 목표를 세웠다. 쓸 일이 없어 방치해뒀으나 그가 있기에 이제는 활용처가 많을 것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눈이 투둑 떨어지고, 어느새 해가 기울어 석양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때는 하루가 괴로움에 몸서리칠 정도로 길었는데 그가 나타난 이후로는 이렇듯 날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런 한가한 날들이 계속될 수 있으면 바랄 것이 없었다. 며칠 전부터 지금까지 산장은 잠시도 불이 꺼지는 법이 없었다. 짐승도 두렵지 않은 날들이었다.

***

“연락은?”

“아직 없습니다.”

“죽었대, 살았대?”

“살아계시겠죠. 석화 박사님이 살아계신 한은요.”

만족스럽지 못한 대답이었다. 이희찬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냈다.

“끊은 담배를 왜 태우십니까?”

“그러게. 마스터들 있을 때 오히려 더 잘 참았는데 말이야.”

현재 레인보우 시티는 황제 펭귄이 정권을 잡은 상태였다.

올빼미와 부엉이 가문은 경제 부흥을 위해 공장과 기지국 개설에 힘썼고, 의회는 시민 대표와 군 장성들을 비롯해 살아남은 명예 가문 대표들이 꾸려나갔다. 이희찬은 시민들의 투표로 향후 4년간 의회운영을 맡기로 했다.

마스터를 제거하기 전 곽수환이 군과 정치는 분리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지만, 인구도 턱없이 적은 데다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시티의 치안은 여전히 군이 책임지고 있었다. 게다가 새롭게 등록되는 시민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강압적인 힘도 필요했다.

시민이 된 이들 중에는 약탈꾼이나 살인을 밥 먹듯이 저지른 놈들도 섞여있었다. 또한 시티의 시민이었으나 밖의 사람을 상대로 브로커 노릇을 했던 악인도 존재했다.

그때는 아담이 판을 치는 세상이었기에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가능하나 이제부터는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시티는 공장을 세우는 것만큼이나 더 빠르게 교도소를 재정비해야 했다. 현재 교도소의 기능은 범죄자의 교화뿐만이 아니라 교육도 포함이었다.

S 혹은 A클래스들은 아담이 있던 때보다 훨씬 더 바쁘게 시티 전역을 돌아다녀야 했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을 군인이 맡고 있기 때문에 각종 사건 사고에 그들이 투입됐다.

이 또한 겪어야 할 홍역이겠지. 이희찬은 그럼에도 끊은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곽수환이가 다시는 안 돌아올 것 같아?”

차 중령, 지금은 차 소장이 된 차학현이 대장의 거취를 짐작해봤다.

대장이 석화 박사를 찾고자 시티를 벗어났다는 건 확실했다. 양상훈에게 쉘터를 떠나는 대장의 영상을 건네받기도 했으니까. 다섯 달간 백치로 있던 모습과 다르게 그날 대장은 차학현이 알던 그대로였다.

“대장을 찾으려면 석화 박사님이 있는 곳을 찾는 게 가장 빠를 텐데, 저로서는 어디에 계실지 짐작되지 않습니다.”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 건 맞고?”

백신을 가지고 시티로 돌아오기 전, 곽수환과 연락을 주고받은 사람이 바로 차학현이었다. 대장이 박사와 함께 지낸 몇몇 장소는 그도 알고 있었다. 하산도 그 중 한 곳이었다.

“희찬 님께서는 석화 박사님이 살아계신다고 생각합니까?”

“……그랬으면 좋겠어. 안 그러면 우리가 너무 미안하지 않겠어?”

이희찬은 가죽 의자를 반쯤 돌려서 일어났다. 이곳 쉘터에서 보이는 여의도의 수많은 아파트들은 한창 보수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밤낮으로 공사를 대놓고 해도 두렵지 않은 시대가 도래한 거다. 이것이 평화의 시대인가? 적어도 이희찬 본인에게는 아니었다.

“차 소장.”

“말씀하십시오.”

“그 둘을 데려와야겠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이들을 데려와야겠다니? 차학현은 티 나지 않게끔 인상을 구겼다.

“둘에게도 충분한 보상은 해줘야지. 한 사람은 시티를 괴멸시키려던 놈을 제거했고, 한 사람은 인류 최대의 적인 아담에게서 자유롭게 해줬으니 말이야.”

“그분들이 원하지 않으면요? 그리고……. 희찬 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석화가 신종 변이 아담 바이러스의 숙주였다는 것을. 그래서 그의 공로를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것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가문들과의 암묵적인 조약이기도 했다.

“석화 박사가 살아있다면 바이러스를 이겨낸 거겠지. 더는 숙주도 아니길 바라야겠고.”

그 점에 희망을 걸어보자고. 이희찬은 담배를 하나 더 꺼내 물었다

“솔직히 말씀해보십시오.”

“뭐를.”

말투가 건방지다는 듯 이희찬이 눈썹을 꿈틀했다.

“대장과 박사님을 시티 안정화에 이용하려는 생각이 아니십니까?”

“……같이 책임져야지.”

“예?”

“지들이 이렇게 만들어놨으면 같이 책임져야지 나만 머리 빠지면 되겠어? 둘이서 희희낙락하게 편히 살 생각 하면 배 아파서 안 되겠어. 막말로 걔들이 나한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줬니? 고기를 그냥 잡아다 준 거지.”

변명투성이다. 차학현은 알면서도 입술만 삐죽이고 말았다.

***

드드드득, 드드득, 이빨 빠진 노인처럼 앓는 소리만 낼 뿐 지프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추위에 수명이 다한 모양이었다. 남아 있는 기름을 빼내 곽수환의 지프로 옮긴 석화는 운전대를 그에게 맡겼다. 계곡물을 뜨러 가기 위해 양동이도 한 가득 트렁크에 실었다. 계곡까지 가는 동안 산장을 털러 오는 약탈꾼들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계곡물은 대체로 꽝꽝 얼어있어서 산 위쪽까지 올라가야 했지만, 곽수환은 근처 아무데나 차를 세웠다. 그는 석화가 날을 간 도끼를 들고 언 부분을 발로 쿵쿵 내리쳐봤다.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밑으로 한 뼘 정도는 얼어있을 듯했다.

석화가 빈 양동이를 꺼내 늘어놓았고, 곽수환은 도끼로 얼음을 내리쳤다. 두 번의 도끼질에 콰직 하고 단단한 표면에 균열이 갔다. 연거푸 내리치자 양동이를 담갔다가 올릴 만큼 구멍이 뚫렸다. 석화는 나열해둔 양동이를 곽수환에게 하나씩 건넸다.

“지금 편리하다고 생각했지?”

그가 구멍 안에 양동이를 집어넣어 물을 가득 담아 끌어올렸다.

“했어요.”

“기억나?”

그가 퍼 담은 양동이의 물은 전부 범람 직전이었다. 석화는 바가지로 한 번씩 물을 퍼 버렸다. 그러면서 의문을 띠는 일도 잊지 않았다.

“전에 오 박사네 집에서도 날 이용해먹었잖아.”

“그때는 저도 엄호했는데요.”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때 다짜고짜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진짜 골 때렸다니까.”

“소령님도 제 입에 생식기 가져다댔잖아요.”

석화는 손잡이를 붙잡아 올려 양동이를 트렁크에 실었다.

“그냥 놔둬. 내가 해.”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때 진짜로 입에 넣으려고 했어요?”

“응.”

“다른 사람한테도 그래요?”

“형아 질투해?”

“하는데요.”

얼음낚시를 하려고 낚싯줄을 풀던 그가 동요했다. 물론 냉수마찰을 해도 실실 웃을 수 있을 정도로 기분 좋은 동요였다.

“내가 여태 하고 싶었던 사람은 내 인생에서 석화 형이 유일무이해. 그러는 형은?”

예전에 이채윤을 통해 사귄 사람이 있었다는 괴소문을 듣기는 했었다.

“내가 유일무이하지?”

석화는 그의 옆으로 가서 제 몫의 낚싯대를 풀었다. 줄 끄트머리에 땅콩을 돌돌 감아서 얼음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왜 대답이 없어.”

곽수환이 오리걸음으로 좀 더 다가와 쭈그려 앉았다. 그 역시 깨뜨린 얼음 안으로 낚싯줄을 흔들어 넣었다.

“알면서 물어보니까요.”

석화는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었다. 당연히 곽수환뿐이었다.

곽수환이 어깨를 툭 석화에게 기울였다. 옆으로 넘어질 만한 무게는 아니라 기대오는 그를 단단히 받쳐줄 수 있었다. 흔들, 줄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석화는 줄을 손에 빙글빙글 감기 시작했다.

“오, 빠르네.”

막상 산천어가 잡혔더라도 땅콩만 먹고 튀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랄 노 자였다. 대롱대롱 매달린 생선은 무려 송어였다. 석화는 퍽 소리가 나도록 얼음에 송어를 패대기쳤다. 파닥파닥하던 송어가 기절해 입까지 벌렸다.

“뭐야, 강태공이야?”

송어의 입에서 주르륵 흘러나온 땅콩은 아직 건재했다. 석화가 다시 물 안으로 낚싯줄을 풀어 넣었다. 곽수환에게 입질 소식은 아직이었다.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건 아니지만 석화보다 큰 물고기를 잡아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고 싶어 애가 탔다. 곽수환이 줄을 이리저리 마구 흔들었다.

“그러면 도망가요. 가만히 있어요.”

석화는 돌처럼 굳어있는 상태였다. 낚싯줄을 쥔 몸은 꼼짝하지 않았고, 얼음 밑으로 흐르는 물에만 줄을 맡겼다.

잡히지 않을 때는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다려야 하건만 곽수환은 벌써부터 좀이 쑤셔 직접 손으로 낚아챌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흔들, 또다시 석화의 줄에 입질이 걸렸다.

석화가 이번에는 대어를 낚는 어부처럼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격동적인지 청새치라도 하나 딸려 나오는 줄 알았다. 건져보니 또 송어였지만 아까보다 크기가 컸다. 똑같이 패대기를 쳐서 기절시키고는 송어를 양손에 쥐었다.

“이제 가요.”

“그걸 누구 코에 붙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 한겨울에 송어가 뭘 그리 잘 처먹었는지 크기가 팔뚝만 했다.

“둘이서 먹기에 충분하고, 코가 아니라 입으로 먹어요.”

석화는 송어가 정신을 차리는 것을 깨닫고 트렁크 장판에 또 패대기쳤다. 이번에는 기절이 아니라 죽었을지도 몰랐다.

“이야, 자기 멋있다. 나 굶겨 죽이진 않겠어.”

“고작 생선 가지고.”

별 거 아니라는 듯 조수석에 올라타는 석화는 자못 기분이 좋았다. 곽수환도 강태공이 되기는 포기하고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그러고 보니 석화가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중간중간 연비를 채우고자 뭘 먹는 일이 없다는 거였다. 정말 체력이 좋아진 건가. 곽수환은 저 좋을 대로 생각하면서 시동을 걸었다. 그러다가 또 아차 싶었다.

시티에 있을 때야 견과류 같은 군것질거리가 있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있어봐야 조악한 통조림이 전부였으니 그걸로 간신히 버텨오는 데 익숙해진 거다. 낚시를 잘하는 것도 어찌 보면 생존본능에 개발된 솜씨일지도 몰랐다.

“여기서 낚시 자주 했어?”

“산짐승은 잡을 수가 없어서요.”

탄환도 아껴야 했고.

“낚시는 제주도에 있을 때부터 몇 번 해봐서 어렵지는 않았어요.”

“할머니가 물질하셨다고 했었지?”

“살아 계실 적에는 물질하는 것도 구경했어요. 아주 어릴 때지만요. 사람은 산소 없이 3분도 버티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할머니는 물속에서 5분도 더 넘게 잠수했어요.”

바위에 쭈그려 앉아서 할머니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앞으로 고꾸라진 적도 수많았다.

“333법칙이 깨진 거네.”

석화가 눈을 슬쩍 키웠다.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공기 없이 3분, 물 없이 3일, 식량 없이 3주가 생존의 333법칙이었다.

“자기, 자꾸 나 무식한 놈 취급할 거야? 내가 성인소설만 읽는 것 같아? 나름 박학다식하다고.”

물론 그건 알고 있었다.

“소령님은 얼마나 참을 수 있어요?”

“뭘 참을 수 있는지 정확히 말해줘. 안 그러면 나 또 야한 쪽으로 발전한다?”

“숨이요, 숨.”

뭘 두 번이나 강조하고 그래. 곽수환이 석화의 어깨를 끌어와 쪽쪽쪽 뺨 여기저기에 빠르게 키스했다. 싫지는 않은지 간지러움에 한쪽 눈만 찡그렸다.

“잠수 훈련했을 때 한 5분은 버텼던 것 같은데. 이게 또 물 온도에 따라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달라져서. 석 박사는 30초지? 아니다, 내가 키스해서 숨 불어넣어주면 같이 5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날숨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서 그렇게까지는 못 버텨요.”

“내공을 쌓아서 현경의 경지에 이르면 한 시간도 참을 수 있을 거야. 기합으로 계곡의 물고기도 싹 다 잡을걸.”

“말이 되는 소리를 해요.”

“안 될 건 또 뭐야. 석 박사 할머니도 물질하면서 폐가 진화한 거 아니겠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곽수환은 지프 속도를 현저하게 늦췄다. 노부부라는 말은 반쯤 농담이었지만, 저희에게 이렇게 한가로운 날이 올 줄 알았는가. 제 마음대로 조절 가능한 자동차의 속도처럼 흐르는 시간을 늦추고만 싶었다.

“생각해보니까 소금을 안 가져왔네.”

웬만한 건 시티에서 넘어올 때 챙겼는데 정작 조미료를 빼먹었다. 석화를 만나면 시티로 내려갈 생각에 해먹기 간단한 식료품만 챙겼을 뿐, 직접 요리를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산장에 소금 있어요.”

“어디서 났어?”

“러시아 사람들한테 연고랑 약재 가져다주고 교환했거든요.”

“여기 사람들이 다 착했어?”

“권총 앞에서 나쁜 사람은 없어요.”

웃음이 적은 편은 아니지만, 다섯 달 동안 한 번도 웃지 않았던 곽수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입꼬리가 풀어졌다.

“석 박사 담이 왜 이렇게 커졌나 했더니 그럴 만했네. 우리 둘이서 아담한테 쫓기고 쉘터를 종횡무진 달리고, 심지어 낙하산도 메고 몇 번이나 뛰어내렸잖아.”

우리 둘이 아담한테 쫓겼던가? 석화는 동공을 왼쪽으로 올렸다.

“소령님은 쫓긴 적 없죠. 저 때문에 도망간 거죠.”

“아담한테 이성이 있었다면 그 새끼들이 석 박사 보자마자 피해 갔을 텐데 말이야. 우리 석 박사 물 데가 어디 있다고.”

“이성이 있었다면 먼저 곽 소령님을 보고 도망갔겠죠.”

짐승도 저보다 센 포식자는 본능만으로도 충분히 감지한다. 그런 면에서 아담은 짐승만도 못했다.

“나도 그건 알지. 나 같이 잘생긴 놈을 물면 인류의 손실이야.”

석화는 그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다가 잠깐 숨을 골랐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았더니 힘에 부친 탓이었다. 그와 함께 있고 싶어 계속 붙어 있었는데 결국 체력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곽수환이 갑자기 핸들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프의 속도까지 올려 산장을 향해 내달렸다. 산장 앞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몰려 있었다. 석화도 무슨 일인가 싶어 유심히 그쪽을 바라봤다. 다행히 그들의 손에 흉기나 해코지할 만한 농기구가 들려있지는 않았다. 그들 사이에 며칠 전 햄을 가져다준 여자도 보였다.

“있어봐. 무슨 일인지 내가 가볼게.”

차를 세운 그는 시동을 건 채로 차문을 열었다.

“같이 내려요. 의사소통 어렵잖아요.”

곽수환은 러시아어 공부를 틈틈이 해둘 걸, 손톱만큼 후회했다. 석화는 영감을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러시아어를 많이 깨우친 상태였다. 말을 유창하게 할 수는 없지만 알아듣는 건 곧잘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석화가 곽수환의 옆에서 먼저 운을 떼었다.

남성 셋에 여성 둘은 한 가족은 아니었고, 저기 아랫동네에 사는 이웃 주민이었다. 그런데 조금 떨어진 뒤쪽에 놓인 손수레가 어쩐지 꺼림칙했다. 이불로 수레를 덮어놓았기에 더더욱.

“갈리나 말이 정말이었군요! 그동안 왜 말을 안 했어요? 우리는 다 선생님이 말을 못하시는 줄 알았어요.”

정리되지 않은 남자의 수염이 희끗희끗했다. 추위 때문에 잘 씻지 않아 각질도 군데군데 매달려 있었다.

“지금도 잘 말하지는 못해요. 무슨 일이시죠?”

“이 동네는 의사가 없고 생각나는 분이 선생님뿐이라서요. 저희가 나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저 뒤에 분에게도 오해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일전에 선생님 집에서 먹을 걸 털어온 녀석들도 제가 대신 혼내줬어요.”

남자가 안심하라는 듯 두 손을 위로 올리면서 수레로 향했다. 곽수환은 다섯 사람을 전부 눈여겨봤다. 조금이라도 이상행동을 보인다면 가차 없이 손을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수염이 난 남자가 수레를 덮었던 이불을 걷어냈다. 놀랍게도 수레 위에는 한 남자가 밧줄에 묶여 있었다. 남자는 침을 질질 흘리면서 중간중간 몸을 바르르 떨기도 했다. 곽수환은 재빨리 석화를 제 뒤로 보냈다. 설마 아담인가 싶었는데, 특이하게도 사람을 물려는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며칠 전에 늑대 한 마리가 갑자기 민가로 뛰어들었는데, 다행히 저희가 곡괭이로 때려잡았어요. 그런데 제 동생이 늑대를 제압하다가 물려버렸지 뭡니까. 첫날은 괜찮더니 이틀 전부터 토를 하고 지금은 저렇게 경련까지 일으켜요. 딱 봐도 아담에 감염된 건 아닌 것 같지만…….”

석화는 제 앞을 막고 선 곽수환에게 간단하게나마 통역을 해줬다. 공격성이 없는 것을 봐서는 아담은 아닐 게 분명하고, 늑대에게 물렸으니 어쩌면 광견병일 수도 있다는 제 사견도 포함해서.

“광견병?”

“겉으로 보이는 증상으로는 그래요.”

곽수환의 엄호를 받으면서 남자를 살피니 발목에 물린 상처는 이미 곪아 있었다. 물린 직후 소독을 잘했다고 하더라도 광견병의 경우, 백신이 없으면 감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석화는 조금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트렁크 안의 양동이를 들고 왔다. 사람은 광견병에 감염되었을 시 대다수가 물을 무서워하는 증세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첨벙거리는 물을 보자마자 세르게이라고 불린 환자는 눈앞에 용암을 둔 듯 지독한 공포심에 오줌까지 지렸다. 심지어 이미 얼굴 한쪽은 마비가 와 굳어 있었다.

석화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난감해했다. 레인보우 시티였다면 HDCV 백신을 주사할 수 있을 테지만, 이곳에 광견병 백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안면마비가 올 정도면 이미 합병증이 도진 상태라 백신을 투여해도 목숨은 보장 못 했다.

“선생님. 제 동생에게 맞는 치료법이 있을까요?”

이런 식의 감염은 민간요법으로 해결되는 사안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어요.”

“갈리나네 엄마는 선생님이 치료해주셨다면서요.”

“그때도 상처 감염만 막은 것이지 광견병에 감염됐던 거라면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갈리나라 불린 여성도 실망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곽수환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고 상황을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또한 아담만큼이나 광견병에 대해서 잘 알기도 했다. 들개에게 물려 광견병으로 고생한 군인을 몇이나 봤고, 제때에 백신을 맞지 못해 죽은 이들도 있었다. 저 상태라면 길어야 며칠이나 버틸지 모르겠다.

고칠 수 없다는 말에도 사람들은 석화의 주변을 떠나지 못했다. 방법이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지고 온 이들이었기에 아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석화는 이곳의 유일한 의사이자 약제사이기도 했다.

“그럼……. 동생이 죽는 걸 손 놓고 지켜봐야 하나요?”

시티로 내려가 백신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남자는 그 사이 죽고 말 거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미안해하실 건 없어요. 저희도 혹시나 해서 온 거예요.”

갈리나는 고개를 젓고 수레로 향했다. 다시 이불로 세르게이의 몸을 덮어주었다. 갈리나가 포기해요, 그 말을 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민가를 향해 수레를 밀었다. 석화는 한참이나 그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곽수환은 트렁크 안의 양동이를 내려놓다가 혀를 찼다. 급히 차를 세운 바람에 물이 넘쳐 트렁크가 잔뜩 젖어 있던 탓이었다. 그 와중에 정신을 차린 숭어 한 마리도 물을 마구 튀기며 난동을 부렸다. 꼬리를 잡아 대가리를 쳐서 기절시키고 물이 반도 남지 않은 양동이에 두 마리를 넣었다.

“아담이 아니라고 해도 위험한 일이 너무 많죠.”

석화도 그제야 산장으로 양동이를 옮기는 일을 도왔다. 수레를 끌고 가는 이들이 더는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였다.

“그렇지. 특히 산을 끼고 있을 때는 더해. 봄이 되면 곰까지 가세할 테고.”

불곰 최대 서식지인 러시아는 겨울이라고 해서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불곰의 겨울잠은 가수면 상태와 다를 바가 없어서 근처에 다가가거나 위협을 주면 바로 공격을 해온다. 곽수환에게 짐승이나 아담은 위협적이지 않으나 그도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는 인지하고 있다. 제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 것들이 석화에게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니까.

“오랜만에 업어줄까?”

기분도 환기할 겸 곽수환이 제 등을 가리켰다.

“괜찮아요.”

석화는 단칼에 거절하고 양동이를 마저 안으로 들여놨다. 배를 뒤집어 까고 떠 있는 숭어도 건져서 비닐을 펼친 식탁에 올렸다. 튼실한 숭어를 손으로 붙들고 조금 전의 잔상을 털어냈다. 이곳은 아담 감염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라 안심했건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어떤 식이든, 위험이 도사렸다. 그래도 산 사람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벽난로에 장작 좀 더 넣어줘요.”

“예, 대감님.”

저건 또 무슨 놀이인가 싶어 대꾸는 하지 않았다. 석화는 큰 결심을 한 듯 숨을 들이켰다가 칼로 비늘을 쳐냈다. 억센 비늘이 떨어져나가는 소리는 듣기 싫었지만 이래야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드드득, 비늘을 긁어내는 동안 뒷목에 소름이 조금 돋았다. 탁, 칼로 머리를 잘라내고 가른 배 속에 손을 넣어 내장을 제거했다.

“내가 해도 되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밖에서 장작을 가져온 그가 손을 툭툭 털었다.

“금방 손질 끝나요.”

“누가 느려서 그렇대? 나 석 박사가 그렇게 실감나게 표정 짓는 거 처음 봐서 그래.”

석화에게서 식칼을 가져온 곽수환이 남은 숭어의 비늘을 긁어냈다.

“나 봐봐.”

얼굴을 봤더니 그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눈만 가느다랗게 뜨고 있었다. 거기다 숭어가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조금 뒤로 젖히기까지 했다.

“석 박사가 딱 이랬거든.”

“안 그랬어요.”

“혐오하는 시선이 살벌했는데 무슨 소리야.”

드득, 드득. 그는 일부러 더 천천히 비늘을 긁었다. 석화는 그제서야 제 미간이 찡그려지는 것을 인정했다.

“그 소리 듣기 싫어요.”

“나한테도 그래.”

그는 최대한 빠르게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발랐다. 손질하고 남은 건 비닐에 싸서 산장 밖으로 가지고 나가 저 멀리로 던졌다. 음식물 찌꺼기는 산짐승이 해결해줄 터였다.

두 손에서 비린내도 여간 나는 게 아니었다. 안에서 익히기를 포기하고 버너를 밖으로 들고 나갔다. 냄비 안에 순도 낮은 기름을 두르고 반으로 잘라 펼친 숭어를 집어넣었다. 뒤따라온 석화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둘은 대야를 가운데다 두고 생선이 익을 동안 서로 손을 담갔다.

손장난을 치듯 둘이서 미끄덩거리는 비누를 주고받았다. 물이 뿌옇게 흐려질 때쯤에 손을 들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미세하게 비린내가 남아 있었다. 적어도 한 번은 더 씻을 생각에 대야를 비워버리고 다시 물을 뜨러 허리를 일으킨 때였다.

그르르릉, 밤마다 산장을 배회하는 늑대 몇 마리가 생선 굽는 냄새에 평소보다 이르게 내려왔다. 저기서부터 아치형으로 둘러싸서는 앞발을 구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도약을 해 뛰어들려는 듯 빳빳한 털도 꿈틀거렸다.

“이제 들어가서 익혀요.”

곽수환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팔을 제 허벅지에 걸쳤다. 쭈그려 앉은 채로 냄비 손잡이를 잡아 휙 숭어를 뒤집었다.

“빨리 들어와요.”

마저 밖에서 익히고 싶었던 그였지만 석화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냄비를 올린 버너를 통째로 들고 열린 문으로 걸었다. 그러자 대장으로 보이는 늑대 한 마리가 쏜살같이 곽수환의 목덜미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그는 늑대의 주둥이가 아슬아슬하게 다가오기 직전에 문을 쾅 닫았다. 튀어나온 주둥이를 나무문에 박은 늑대가 깨갱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꽤나 아픈지 앞발로 코를 마구 문댔다.

그 모습을 창문으로 보던 석화는 제 코가 다 아팠다.

“왜 놀려요.”

“재미있잖아.”

그가 입꼬리를 늘어뜨리고 애들처럼 굴었다. 다행히 적당히 익은 숭어는 더 이상 비린내가 올라오지 않았다. 곽수환은 레토르트 식료품을 함부로 남용하면서 식탁을 가득 채워 나갔다. 탕, 마지막으로 뭔가를 내려두었는데 박스 안쪽에서 꺼낸 병이었다.

“와인.”

씩 웃었다. 촛대까지 가져와 불을 밝히니 여느 레스토랑 못지않았다. 그가 석화를 데려와 식탁 의자에 앉히고 한쪽 손을 배에다 얹었다. 고상하게 인사를 하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와인의 밑동을 받쳐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도련님. 이 와인으로 말할 것 같으면 2002년 프랑스 지방에서 생산된 빈티지 와인입니다. 그때 대한민국에서는 축구놀이가 한창이었다더군요. 그거 아십니까, 도련님? 저도 공을 제법 찬답니다.”

“앉아서 밥 먹어요.”

“그럼 와인을 오픈하겠습니다.”

오프너가 없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가위를 가져왔다. 가위의 한쪽 날을 푹 코르크에 박아 넣고 돌려서 잡아 빼기 시작했다. 포옹, 청량한 소리와 함께 병 안에 갇혀있던 와인 향이 식탁을 은은하게 채워나갔다. 유리 와인잔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플라스틱 컵에 와인을 졸졸 따랐다.

석화의 잔은 고작 3분의 1만 채웠고, 제 잔은 붉은 액체가 넘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장력에 의해 봉긋하게 솟은 와인을 고개만 숙여 빨아 마셨다.

“제가 무식한 놈이라 도련님께서 이해를 좀 해주십시오.”

석화는 턱을 괴고 괴상한 그의 행동을 감상했다. 그는 숭어 한쪽과 소스에 절여진 햄버거 패티를 각자 그릇에 담았다. 김이 올라오는 미역국과 즉석밥을 까 놓으니 이로써 식사 준비는 완벽해졌다. 곽수환도 그제야 마주보고 앉아 플라스틱 잔을 들었다.

“석 박사의 눈동자에 치얼스.”

석화는 톡 부딪쳐오는 그의 잔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늘 일정 선을 지켜가며 장난을 치고는 했다. 이런 식의 이벤트는 전의 시티에서도 겪은 적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먹을 게 없는 폐허 직전의 레스토랑이었다. 게다가 서로를 신뢰할 수 없어 탐색하던 시기였었다.

석화는 입가심만 하듯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 숭어 살을 떼어내 씹었다. 비린 맛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나 소금 간이 잘 되어 있어 나쁘지는 않았다.

곽수환은 이미 와인 한 잔을 다 비워놓고 또 따르는 중이었다.

“소령님.”

“응?”

“그날 말이죠…….”

석화는 다시 한번 와인으로 입을 축였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많은 양이었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술의 힘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달마산에서요.”

곽수환도 컵을 들었다.

“내가 최호언 박사를…… 죽인 게 맞죠?”

“죽어도 싼 놈이야.”

그는 석화가 살인을 한 데 죄책감이라도 가질까 봐 얼른 선수 쳤다.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씩 생각해봤어요. 왜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됐을까 하고요.”

“미친놈을 이해하는 일이 필요할까?”

“이유를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요?”

“세상에는 이유를 알아도 해결이 안 되는 일들이 많잖아. 그리고 석 박사가 죽인 거 아니야. 숨통을 끊은 건 나였어.”

곽수환의 기억은 거기서 끊겼고, 다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공백이었다. 죽었다 살았다는 것도 영감을 통해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냈을 뿐이었다. 제가 죽었다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은 석화가 알 필요 없는 진실이었다.

“아프죠?”

“어디가? 나 건강한데.”

“총 맞은 데……. 아파 보여.”

필요하다면 셔츠를 잘도 벗었던 그가 지금은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제 등을 잘 보여주지 않았다. 곽수환은 석화의 입에 햄버거 패티를 잘라서 넣어주었다.

“다 나았는데 아프긴.”

“보는 나는 아파.”

석화는 그와 다시 재회한 이래로 가장 우울한 눈을 했다. 이쯤 되면 하는 수가 없다. 저는 석화의 생기 어린 눈이 좋았다. 저렇게 속상해하는 것을 보기 위해 살아 돌아온 게 아니기에 곽수환은 저에게 있는 카드를 하나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잠깐만.”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구석에 놓아둔 배낭 고리에 손을 걸었다. 식탁으로 돌아오며 지퍼를 크게 열었다. 그 안에서 묵직한 돌을 꺼내 식탁에 탁 자신 있게 내려두었다. 반짝반짝 눈을 빛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석화는 그저 놀라기만 했다.

“자기 좋아하는 거잖아. 왜 반응이 시원찮아.”

석화는 에덴동산 북부지부로 가기 전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의 물건뿐만 아니라 곽수환의 수첩과 큐브도 저 가방에 함께 챙겼었다. 분명 세컨드의 방공호에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대체 어떻게 다시 손에 넣은 걸까? 그날 최호언에게 붙들리는 바람에 지프와 함께 그냥 버려졌을 줄로만 알았다.

“어디서 찾았어요?”

“자기 만나면 주려고 다시 가서 가져왔지.”

곽수환은 쉘터를 벗어나 바닷길로 가는 길에 세컨드의 방공호에 들렀다. 지프에서 배낭을 찾아내 수첩과 큐브를 봤을 때 그는 배낭이 석화라도 되는 양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재회하기 전까지 이 배낭이 석화를 대신하기도 했고.

곽수환은 석화의 손에 좆돌을 올려주었다.

석화도 오랜만에 느끼는 매끄러운 돌의 감촉 덕인지 그리움에 잠겼다.

그렇게 집착하고 좋아했던 것이었는데 그 없이 산장에 홀로 있을 때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제 집착 특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손에 쥐고 있으니 갖고 싶은 욕구가 물씬 피어올랐다. 제 버릇 남 못주는 건 맞았다.

“고마워요.”

티는 크게 안 나도 좋아하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곽수환은 적잖은 뿌듯함에 와인을 더 마셨다.

“그런데 그건 도저히 못 찾겠더라.”

“어떤 거요?”

“석 박사 탱글탱글한 엉덩이 닮은 돌. 다시 비슷한 거 찾으면 가져다줄게.”

“전 이제 이거면 돼요.”

석화가 플라스틱 컵 옆에 좆돌을 세워두었다.

곽수환은 문득 제가 과천으로 좌천됐을 때 일이 떠올랐다. 차 중령이 넘겨준 사진을 봤을 때도 저 돌만큼은 부지런히도 들고 다녔지. 좆돌이 바로 옆에서 있어서 그런지 하얀 얼굴이 음심을 더 자극했다. 식사를 하고자 벌린 붉은 입술까지 더해지니 오늘 날 잡았다 싶었다. 뭐, 저는 오늘뿐만이 아니라 매일 날을 잡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석화의 체력을 보강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 오늘 밤은,”

부아아앙, 거칠게 돌아가는 엔진 소리와 동시에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창문 너머에서 쏟아졌다. 한동안은 둘이서 오순도순 지내려고 하는데 왜 이리 불청객들이 많은 건가. 아까 러시아 놈들이 다시 온 거면 목덜미를 잡아서 늑대 밥으로 던져줄 셈이었다.

곽수환이 짜증스런 기색으로 자리를 박찼다. 호시탐탐 산장을 돌며 하울링을 하던 늑대 소리도 뚝 끊겼고, 지프는 산장 문 바로 앞에 와서 섰다. 자동차의 눈이나 마찬가지인 헤드라이트의 빛은 여전히 강렬했다.

“소령님.”

석화가 일어나자 곽수환은 고개만 한 번 저었다. 어깨를 내리눌러 석화를 다시 앉히고 권총을 장전했다. 커튼을 열어둔 창문 밖에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검은 인영이 보였다. 역광 때문에 누군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불청객이 케이프를 두르고 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쾅! 불청객이 발로 문을 걷어찼다. 다시 한번 걷어차자 문고리가 박살나며 산장 문이 천천히 열렸다.

“와, 씨발. 인간적으로 너무하지 않냐?”

문이 열리는 순간부터 총구를 내려둔 곽수환은 팔짱을 꼈다.

“진수성찬에, 촛대에, 창고에서 쌔벼간 와인까지! 아주 살판 나셨어?”

그는 석화가 앉아있는 곳도 제 몸으로 가렸다. 그러나 익숙한 목소리에 석화는 옆으로 몸을 일으켜 방문객을 반겼다.

“오랜만이에요, 이 소령님. 잘 지내셨어요?”

“박사님!”

반가움에 한달음에 달려오는 이채윤을 성큼 곽수환이 막아섰다. 그가 후, 하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뱉었다.

“어떻게 찾았냐?”

“너는 새끼야, 진짜 나쁜 새끼야. 우리도 다 속이고 말이야.”

이채윤이 곽수환을 피해 크게 돌아서 와인을 낚아챘다. 그녀는 와인이 물이라도 되는 듯 병째로 벌컥벌컥 들이켰다. 뒤늦게 시동을 끄고 군홧발로 걸어온 또다른 사람은 다름 아닌 양상훈이었다. 전과 똑같은 제복 차림이었지만, 그들의 견장은 이제 은색에서 검정이 되어 있었다.

“아이씨, 이채윤! 이거 문고리 고장 난 거 어쩔 거야? 그것보다 박사님! 진짜 반가운 거 아십니까? 그때 그렇게 절 버리고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그리고 곽수환 넌, 이 씨발놈아.”

양상훈은 반가움과 미안함 그리고 화를 한데 담았다. 이채윤에게서 와인을 건네받아 그도 벌컥 들이켰다. 남은 술이 완전히 동났다.

“하여간 진짜 좆같은 새끼라니까.”

그 와중에 곽수환이 챙겨 간 좆돌을 보고 양상훈은 기가 막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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