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닥터 최기석-392화 (391/407)

유명세 (1)

‘하…….’

최기석은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채팅창을 보고 있었다.

정설화와의 신경전에서 완패를 당한 후 깍두기 신세로 전락했다. 화면 중앙에 있던 그는 살짝 옆으로 밀려 났으며 말수도 대폭 줄었다.

바야흐로 찾아온 정설화의 시대.

그녀는 채팅창을 일일이 읽으며 대답하기 바빴다.

심혈관질환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본래의 목표는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시청자들과 소통하기에 바빴다.

놀라운 것은 정설화의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는 점이었다.

침묵했던 채팅창이 활기를 띠었다.

새로 입장하는 사람의 수도 늘어났다.

그래 봤자 출연자 중 꼴찌는 피하지 못했지만.

[우리 아빠 조지: 하트 최 삐진 듯. ㅋㅋㅋㅋ]

[곰곰곰: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가 왜 이렇게 속이 좁아....]

[신밧드의 램프: 설명충의 최후 ㅋㅋㅋㅋ]

“저 안 삐졌습니다. 속은 넓고요. 설명충이 아니라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려고 했던 겁니다.”

최기석이 채팅창을 읽자 시청자들의 반응이 한층 뜨거워졌다.

[성북동미사일: 하트 최 뒤끝 있는 거 보소?]

[아이 폰 아들 폰: 하트 정 어떻게 꼬셨는지 비법 좀…….]

[구름 사다리: 제가 아는 최기석 선생님 맞나요? 메이죠 클리닉에서 수련하고, 현재 유일한 트리플 보드 흉부외과의에, 남수단에서 의료 봉사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슈리텔에서 너무 망가지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출연하려던 건 슈리텔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낚이고 말았네요.”

“우리 여보, 이제 잘하네?”

“글쎄. 난 신변잡기가 잘하는 건지 모르겠어.”

“슈리텔은 예능이라고. 이 방송을 보는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해.”

“네네. 알겠습니다.”

최기석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정설화와 시청자에게 콩가루가 되도록 까인 후 현자타임이 찾아왔다. 본인이 생각했던 방송 방향과 지금의 방향이 완전히 어그러졌으니까.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나가는 중이었다.

드르르르륵.

문이 열리고 슈퍼비너스 멤버들이 방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쿡방 진행 중인데 음식 평가 좀 받으려고요.”

“매콤한 제육볶음이에요. 한 번 드셔 보세요.”

최기석은 나리와 유선이 건네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슈퍼 비너스.

이들과는 의진대 인턴 시절에 인연을 맺은 적이 있었다.

과거 슈퍼 비너스를 태운 차량이 교통사고를 당했고 최기석은 현장에서 이들에게 발 빠른 응급조치를 했다.

유해진이었을 때 인연을 맺은 강은하는 오늘 출연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두 멤버와는 아까 대기실에서 근황을 나눴다.

“흠흠. 여러분 그거 압니까?”

다분히 의도적인 헛기침을 끝내고 최기석이 운을 뗐다.

“저, 여기 있는 슈퍼비너스 멤버들과 친합니다. 부럽죠?”

[껌이라면 역시 풍선껌: 하트 최 실성한 듯…….]

[붐바스틱: 하트 최 허언증 보소.]

[깔깔낄낄: 하트 정이 도끼눈 뜨고 보고 있다. 입조심해라. ㅋㅋㅋㅋ]

“나리야, 유선아. 우리 친한 거 맞지?”

“아……. 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생명의 은인이시죠. 우리가 예전에 교통사고 당한 적이 있는데 최기석 선생님이 치료해 주셨어요.”

“맞아요. 만약 그때 최 선생님이 없었으면 우리는 이 자리에 없었을 거예요.”

유선이 나리의 말에 한마디 보탰다.

[아도겐: 대박. 하트 최 그럼 슈퍼비너스 멤버랑 인공호흡함? 가슴도 만짐?]

[정글 이즈리언: 내 꿈은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뭐. 딱히 자랑을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럼 음식을 먹어 보겠습니다.”

최기석은 정설화와 사이좋게 너 한입, 나 한입 제육을 입에 넣었다. 슈퍼비너스의 멤버들은 두 손을 모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떠세요? 입맛에 맞으세요?”

“저…… 저하고는 잘 맞는데요? 밥이랑 먹으면 진짜 맛있을 거 같아요.”

“감사합니다. 최 선생님은요?”

“내 기준에서는…….”

뜸을 들이던 최기석이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너무 짜. 간이 센 것 같아. 이 정도면 자린고비가 굴비 대신 이 제육을 천장에 걸어놓고 밥을 먹지 않을까?”

[할매국밥집: 하트 최 폭주한다. 이제 정신줄 놓은 듯.]

[편의점건물주: 흉부외과의라서 그런지 담력이 좋네. 슈퍼 비너스 팬클럽이 무섭지도 않은가?]

[믹스커피최고: 하트 정 립서비스하고 계속 물 마시는 거 봐라. 귀여워 죽겠다. ㅋㅋㅋㅋ]

“우와. 정말 짜네.”

나리가 제육을 맞보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찌릿한 시선으로 곁에 있는 유선을 응시했다.

“중간에 맛 안 봤어?”

“내가 먹어 봤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마지막에 설탕 대신에 소금을 넣었나 봐.”

“죄송해요. 다음에는 진짜 맛있는 음식 가지고 올게요.”

슈퍼 비너스가 떠난 후 최기석은 계속해서 막나가는 전법을 선보였다.

라빈 윌리엄스와의 친분을 자랑했으며 라이브로 진행한 샴쌍둥이 수술 및 수단에서 겪은 납치 사건 등등 스펙터클한 사건을 풀어놓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환타였기에 각종 에피소드를 풀어놓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그는 허언 최, 허세 최, 뻥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아직도 2G폰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IGI 김유전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오라오라오라 님이 입장하셨습니다.]

그의 폭주로 떠났던 시청자들이 하나둘 돌아왔다.

덕분에 방송이 끝날 무렵에는 시청률 꼴찌에서 한 단계 상승한 4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최기석은 스태프들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한 것을 감지했다.

* * *

김구린의 방.

오늘 김구린은 유명 웹소설가를 초대하여 웹소설 창작에 대한 노하우를 들려주는 콘텐츠를 진행하고 있었다.

“근데 글 쓰는 게 정말 돈이 됩니까? 이런 말씀 드리는 건 실례지만 한 달에 많이 벌어야 200만 원 정도밖에 되질 않을 것 같은데요.”

그는 돈을 상징하는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글 쓰는 사람들이 돈을 못 벌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장르소설의 경우 많이 버는 작가님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기도 하죠. 제가 알기로는 월 1억을 버는 작가님도 있는 걸로 압니다.”

“글 써서 한 달에 1억을 번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니까 기사에 나왔겠죠.”

“그럼 작가님 수익은요?”

김구린의 질문에 강태양이 난감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저요? 뭐. 그럭저럭 먹고살 만큼 법니다.”

“에이. 그게 뭡니까? 작가님이 시원하게 공개를 해 주셔야 시청자들이 웹소설 작가의 꿈을 키우죠.”

[조강지처가 좋더라: 궁금하게 하지 말고 빨리 연봉 까시죠.]

[내위속에저장: 쫄리면 뒈지시던가.]

강태양이 채팅창을 읽은 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말씀드리지 않는 게 좋겠네요. 모름지기 정보라는 건 숨겨야 제맛이거든요.”

“거 참 답답하시네. 정말 이야기 안 해 주실 겁니까?”

“네.”

“뭐, 어쩔 수 없죠. 웹소설을 쓰려는 분들께 조언을 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흔히 말하는 전업작가가 되려면 각오를 단단히 하셔야 합니다. 시장에는 이미 자리 잡은 기성작가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인들이 넘쳐나요. 안일한 마음으로 덤벼들었다가는 죽 쓰기 십상입니다.”

“…….”

“저 같은 경우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중간에 종이책 출간도 서너 번 했지만 결과는 다 좋지 않았고요.”

강태양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포기할까 말까 고민한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첫 작품부터 대박이 나서 떼돈을 모은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때는 어찌나 제가 초라하던지…….”

“…….”

“글 쓰는데 가장 중요한 건 글 쓰는 과정을 즐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확률적으로 봤을 때 내가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글 쓰는 본인이야 그런 생각을 안 하겠지만요. 어쨌거나 과정을 즐겨야만 결과가 좋지 않아도 다시 나아갈 수 있죠.”

“그거야 뭐든 그렇죠. 자기가 망할 거라 생각하고 장사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김구린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렇게 글 쓰는 과정을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눈이 떠지는 때가 있습니다. 나보다는 독자를 생각하고, 그저 그런 스토리보다는 더 재미있는 스토리를 구상하는 때가요. 그때부터가 작가 생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

“작가도 직업이니까 길고 오래 봐야 합니다. 단기간에 결판을 지으려고 하면 안 돼요. 과정을 즐기면서 훈련을 하다 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강태양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동안 김구린은 테이블에 놓인 떡을 입에 물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답답해서 팔다리를 휘저어 보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컥. 컥. 컥.”

“선생님. 괜찮으세요?”

당황한 강태양이 김구린에게 다가갔지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었다.

그사이 김구린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으며 두 손으로 목을 감싼 채 바닥에 쓰러졌다.

“방송 끄고 최 선생님 불러와!”

담당 PD의 호통이 스튜디오를 메웠다.

* * *

“선생님. 지금 김구린 씨 방송에 문제가 생긴 모양인데요. 목에 떡이 걸린 것 같아요.”

“바로 갈게요.”

최기석은 정설화에게 방송을 부탁하고 황급히 김구린의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쓰러진 김구린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청색증이 오면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스태프 중 누구도 하임리히법을 몰랐던 모양이다.

“저 좀 도와주세요.”

최기석은 스태프들과 함께 김구린을 일으킨 후 그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의 배꼽과 명치 사이에 주먹을 얹고 다른 손을 그 위에 덮었다.

퍽. 퍽. 퍽. 퍽.

복부 밀쳐 내기를 하자 김구린의 몸이 파도처럼 들썩거렸다.

“켁. 켁. 크어어억!”

그가 뱉어 낸 떡 조각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에 최기석은 그를 편하게 눕히고 인공호흡을 시도했다. 인공호흡을 수차례 시도하자 안색이 차차 돌아왔다.

“응급처치는 끝났습니다. 우선 김구린 씨를 편안한 곳으로 옮기죠.”

“알겠습니다.”

최기석은 방송 스태프와 함께 김구린을 대기실에 눕혔다.

“선생님.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

“기도를 막았던 떡을 빼냈고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굳이 병원까지 갈 필요는 없습니다. 의식을 차린 후 본인이 원하면 보내는 걸로 하죠.”

말을 마친 최기석이 김구린을 응시했다.

기도폐쇄는 심장마비처럼 일상에서 접할 가능성이 높은 질환이다.

대처법을 숙지해 두는 게 본인이나 가족을 위해서 좋았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군대 갔다 오셨죠?”

“당연하죠. 저 전방 출신이었어요.”

막내 스태프의 말투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제가 알기로 CPR이나 하임리히법 같은 건 군대에서 다 배우는 걸로 압니다만.”

“그…… 그거야 그렇죠.”

“하임리히법을 안다면 김구린 씨에게 직접 처치할 수 있지 않았나요?”

최기석의 지적에 막내 스태프가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대충 배운 거라서요. 그리고 괜히 손댔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제 책임이 될까 봐서…….”

“딱히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편하게 쉬세요.”

최기석이 김구린 옆에 자리를 잡았다.

스태프를 꾸짖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환자에게 응급처치를 했다가 보호자에게 소송당한 선의의 피해자들이 엄연히 존재했기에.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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