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프 컷-29화 (29/49)

러프 컷   29편

<--  -->  선우는 해경과 몇 번 촬영을 하면서 현장에서의 그의 연출 스타일이 꽤 간결한 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케이 싸인을 내리는 시기가 꽤 이른 편이었다. NG가 나는 경우를 제외하곤 재촬영을 요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여유 컷도 아예 찍지 않거나 찍어도 한두 컷이면 끝이 났다.

“서피디는 사전에 철저히 공부하는 스타일이라.”

선우가 은연중에 그런 면이 조금 신기하다는 뜻을 내비치자 촬영감독인 이재우가 말했다.

“대본을 오래도록 질릴 만큼 분석한 뒤에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을 가지고서 촬영에 돌입하는 편이야. 찍기 전에 본인의 머릿속에 이미 출력된 결과물이 분명하니까 촬영 하면서도 판단이 빨라. 이게 맞는지, 아닌지. 그렇다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은 또 아니라서 그림이 약간 다르게 나와도 허용 범위 안에 있으면 오케이 하는 거지.”

“가끔은 정말 이걸로 되나 싶을 때도 있어요. 바로 끝나서.”

이재우가 웃었다.

“그거야 선우씨 장면이라 그런 것도 있지. 워낙 잘하니까. 신기해. NG 한 번을 안내데.”

“...이러다 앞으로 NG가 한 번이라도 나면 큰일일 것 같은데요.”

선우가 걱정 아닌 걱정을 하며 웃었다. 연선우는 절대 NG를 안 낸다. 그게 언젠가부터 촬영 현장에 명제처럼 돌아다니기 시작해서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선우는 오히려 부담감을 갖게 됐다.

“그래. 선우씨 입장에선 그게 부담일 수도 있겠네. 차라리 조만간 NG를 가볍게 한 번 내버려. 맘 편해지게. 그 다음엔 또 NG없이 쭉 가면 되는 거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헷갈렸다. 마음의 짐을 덜어놓기 위해서라면 괜찮은 방법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일부러 NG를 낸다는 건 선우로서는 사실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아니다. 그냥 하던 대로 하자. 선우씨랑 서피디가 해주는 게 있어서 요즘 그나마 적당히 끝낼 수 있는 거지. 골치 아픈 인간 하나 때문에 계속 분위기 흐리게 생겼으니.”

남자가 혀를 찼다. 그가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선우 또한 알고 있었다. 박형규. 최근 촬영현장에선 신인배우도 아닌 그가 의외로 문제였다.

“이 정도로 꼰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주식하다 큰돈이라도 날린 건지, 원.”

남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선우도 앞서 그와 두 번 정도 촬영하면서 속으로 조금 놀랐었다. 꽤 오랜 기간 드라마를 봐오면서 적지 않게 접해본 그의 연기가 한 번도 모났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지금도 연기한 결과물이 문제라기보다는 과정의 문제에 가까웠지만 이런 잡음을 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곧 촬영에 돌입할 분위기가 형성되자 이재우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선우의 촬영은 지금 찍을 씬의 다음이었지만 선우는 여러 부분을 검토할 겸 스태프들과 함께 한쪽 구석에서 현장을 지켜보기로 했다.

드라마 촬영을 위해 오늘 하루 통째로 빌려 대기 장소로 쓰고 있는 커피숍에서 박형규와 이승조가 걸어 나왔다.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각자 서 있어야 하는 곳에 위치를 잡았다. 마지막 체크를 위해 한동안 분주한 시간이 이어진 끝에 슬레이트 소리와 함께 싸인이 떨어졌다. 이승조가 먼저 대사를 쳤다.

“선배님, 아직도 그 남자 의심하시는 거예요? 아유,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어머니랑 여동생까지 잃고 그 사람도 참 안쓰럽던데.”

“안쓰럽기는 개뿔. 그 새끼가...”

대사를 내뱉던 박형규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순간적으로 대사를 까먹었는지 그는 가볍게 웃으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해보였다. 그 후로 재촬영에 들어갔지만 박형규의 NG 행렬은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승조야. 네가 표정이 갑자기 굳으니까 내가 자연스럽게 대사가 안 나오잖아.”

“아, 제 표정이 그랬나요?”

잘 나가는 것 같다 마지막에 또 대사가 막혀버린 박형규가 NG 직후 던진 말에 이승조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그럴 타이밍이 아닌데 표정이 딱딱해지니까 나도 덩달아 멈칫한다고 해야 하나.”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는 무슨. 그냥 그렇다고.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지. 서피디, 쏘리.”

박형규가 손을 들어 해경을 향해 말했다.

“괜찮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NG였다. 대사를 자꾸 틀리거나 통째로 날려버리면서 NG를 연발한 박형규는 민망한지 시간이 지나자 슬슬 후배인 상대배우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식이었다. 문제는 결국 이승조가 그런 박형규에게 말려들었다는 것이다.

“컷!”

“죄송합니다.”

이번엔 이승조가 대사를 놓쳐버렸다. 그는 사색이 되어 해경을 비롯해 스태프들에게 사과했다.

“아이, 아깝다. 이번엔 잘 가고 있었는데. 이러다 이 씬만 하루 종일 찍겠네. 허허.”

박형규가 지금껏 자기가 했던 행위들은 어느새 다 잊고 승조를 향해 슬쩍 핀잔을 줬다.

“잠깐 쉬었다 가죠.”

그때 해경이 나서서 휴식을 알렸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임시 대기 장소인 커피숍으로 향하는 박형규를 보며 해경이 승조를 향해 말했다.

“승조씨, 담배나 한 대 피울까요.”

“네.”

굳은 채 얼굴을 쓸어내리던 승조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살가운 성격은 못 됐지만 나름 요령 좋게 다운된 이승조를 달래고 온 해경은 피곤한 표정으로 조감독을 찾았다.

“집에 우환이 좀 있긴 한가 봐요.”

조감독이 주위를 슬쩍 살피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박형규에 대한 얘기였다.

“도박해서 큰 돈 날린 거란 소문도 있고. 잘은 모르지만 요즘 보이잖아요. 자꾸 딴 데 신경 쓰고 있는 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해경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아있는 일정 짤 때 박형규씨 촬영분 되도록 앞쪽으로 몰아서 일찍 끝내는 걸로 하죠. 다른 배우들 컨디션에 계속 영향을 주는 데다 한창 바쁠 때도 이런 식이면 곤란하니까. 단 무리하지는 말고 되도록 가능한 내에서요.”

촬영 기간 중 대본을 실시간으로 계속 받아서 찍는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시차’는 2회차를 찍고 있을 당시 대본이 16부까지 모두 나왔다. 또 다행히 박형규는 조연으로 분량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었다.

이야기를 끝낸 해경이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조감독이 물었다.

“연선우씨 찾으세요?”

어떻게 알았을까. 내심 신기한 까닭에 해경이 한쪽 눈썹을 스윽 들어 올리자 남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요즘 감독님 틈만 나면 선우씨 찾으시잖아요. 두 분이 회의를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선우씨 장면은 유독 빨리 끝나나 봐요.”

물론 선우와 만나 촬영에 대해 의논할 때도 있지만 그건 가끔이고 대부분은 그저 얼굴을 보거나 사담을 나누는 식이었다. 그러나 조감독의 어긋난 해석이 해경에게 유리하기는 했다.

“연선우씨가 의외로 아이디어를 많이 줘서 내가 도움을 많이 받고 있긴 하죠.”

이것 역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선우가 직접 아이디어를 말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고 대개 해경이 그의 모습을 보며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영감을 받는 식이었다.

“선우씨 저기 있네요.”

조감독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선우가 장비차 근처에서 스크립터와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깊은 시선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단정한 옆모습을 바라보다 해경은 손목시계로 눈길을 향했다.

"이제 슬슬 촬영 시작하죠."

지연된 만큼 다른 데서 시간을 아껴야 했다.

할 말이 있어서 찾은 거 아니었나. 고개를 갸웃한 조감독이 촬영 현장을 정비하기 위해 먼저 발을 뗐다.

해경 역시 선우의 얼굴을 한 번 더 시선으로 훔치고선 등을 돌렸다. 연선우를 찾은 건 저에게도 나름의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해경은 짧지만 달디 단 휴식을 취하고서 다시 현장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휴식의 효과인지 박형규는 그 다음 촬영에서는 무리 없이 장면을 끝마쳤다. 마치 살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인 이승조가 스태프들에게 서둘러 인사를 한 후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 씬 역시 장소와 위치는 똑같았고 박형규의 상대역이 연선우로 바뀐다는 점만 달랐다. 해경이 촬영감독과 함께 방금 전 찍은 장면을 재확인하는 동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선우가 촬영장 안에 들어섰다.

이승조는 퇴근이지만 스태프들은 그대로다. 조금 지친 기색의 주변 분위기를 흘긋 본 선우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묵히 자신의 연기를 준비했다.

“하아, 돈 벌기 참 빡세네.”

촬영 속도를 지연시키는 주범이 할 말은 아니었으나 박형규는 그를 의식하지 않고 지쳤다는 듯 목을 몇 번 꺾으며 중얼거렸다.

“그럼 다음 장면 이어서 들어가겠습니다.”

잠시의 대기 시간 이후 슬레이트를 쥔 스태프가 두 사람 앞에 섰다. 약간의 정적 후 스태프가 슬레이트를 내려치고 물러서자 선우가 억울함 한편으로 원망이 담긴 눈초리로 남자를 바라봤다. 울컥. 목 안에서 한 번 걸린 감정이 그 다음 주체없이 터져나왔다.

“그 때 수사만 제대로 했어도 분명 범인을 잡았을 거라고요!”

그 말에 박형규가 비웃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선우에게로 한 발 다가섰다.

“내 눈에 용의자는...아.”

반사판을 들고 서있던 스태프가 한숨을 삼키며 팔을 내렸다. 박형규와 선우를 빙 둘러싸고 있던 주위 사람들 모두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선우 역시 감정의 흐름이 끊겼지만 호흡을 정리하며 덤덤히 갈무리했다.

“아, 오늘 자꾸 꼬이네.”

몇 번 아에이오우를 반복하며 입을 풀던 그가 미안하다는 듯이 한 손을 들어보이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 후. 설마 이번에도 NG 러시일까 싶었던 박형규는 아까와 비슷한 과정을 또 되풀이했다. 네 번째 NG를 낸 남자가 한쪽 눈썹을 실룩이며 멋쩍게 중얼거렸다.

“아까 거랑 자꾸 헷갈리네. 이거 대사가...”

그는 대본을 보고 싶은 눈치였지만 주위를 슬쩍 둘러보다 자존심이 상하는지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그 앞에서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선우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

“내 눈에 유력한 용의자는 따로 있는데 말이야. 이 지긋지긋한 시골 동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댔다며? 왜 하필 그 날 너만 그 마을을 벗어났냐 이 말이야, 내 말은. 그것도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 선우는 박형규의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나직이 읊조렸다.

“흠흠,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민망해서 괜히 선우에게도 한 마디 던지려던 형규는 계산 없이 순하기만 한 눈앞의 얼굴을 일별하곤 할 말을 삼켰다. 경력이 오랜 만큼 주변 분위기까지 못 읽을 정도는 아니다. 그런 가운데서 가장 적의도, 불만도 없어 보이는 표정으로 자신을 대하는 이가 바로 연선우였다. 박형규가 선우의 말을 되짚으며 한 번 더 정리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그 날 너만 그 마을을 벗어났냐 이 말이야, 내 말은. 그...뭐였지?”

“그것도 모두가 자고 있을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아, 그랬지. 땡큐.”

선우가 답안지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의 대사를 대조해서 검토해보던 박형규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해경은 문득 소리 없이 웃었다. 모두가 안달복달하고 있는 박형규 앞에서 가장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연선우였다. 의외로 과하게 굽실거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몰래 그를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지도 않았다. 있는 듯 없는 듯이 굴다가 박형규가 대사를 헷갈려하면 기분 나쁘지 않게 넌지시 알려주기도 했고 가끔씩 그가 성질을 내도 무덤덤하게 받아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연기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다섯번째 테이크에선 다행히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다른 각도에서 동일 씬을 찍을 때 현장의 많은 사람들이 나름 긴장했지만 이 또한 양호하게 두번만에 오케이 컷이 나왔다. 무사히 촬영 완료를 알리는 소리에 스태프들에게서 안도의 박수소리와 함께 기다렸던 퇴근 인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서 하나둘씩 촬영 장비들을 철수하고 있을 때 갑자기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뭐야. 오늘 비 온단 말 없었는데.”

예보에 없던 소나기로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진수와 함께 동네 한 켠에 주차돼 있던 밴으로 향하던 선우 역시 발걸음이 빨라졌다. 운전석에 올라 탄 진수가 휴대용으로 챙겨뒀던 우산을 찾아 손에 쥐더니 선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난 스케줄 짜는 것 때문에 조감독님이랑 얘기 좀 하고 와야 할 것 같은데. 선우야, 넌 여기서 쉬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선우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곤 진수가 다시 차문을 열고 나갔다. 선우는 몸을 돌려 뒷좌석에 놓인 가방을 찾아 수건을 꺼냈다. 짧은 사이 젖은 옷에서 빗물의 흔적을 닦고 있을 때 누군가 차문을 두드렸다. 선우가 문을 밀어젖히자 서해경이 큰 몸을 굽히면서 불쑥 밴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 신세 좀 질게요.”

부지불식간에 선우의 옆자리를 냉큼 차지한 그는 미안하다기 보다는 멀끔히 웃는 표정이었다.

“이걸로 닦으세요.”

선우가 손에 들고 있던 수건을 건넸다. 해경은 그다지 꼼꼼하지 않은 손길로 몇 번 머리와 팔 등을 훔쳐내더니 저를 지켜보고 있던 선우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말없이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니 민망해진 선우가 뺨을 긁적이곤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 할 때 남자가 불현듯 손을 뻗었다.

“여기에 빗방울이 묻었네요.”

해경이 선우의 눈가를 한 번 스윽 훔치곤 손을 물렸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여기도.”

얌전히 제자리로 돌아간 줄 알았던 남자의 손이 또다시 뺨 어딘가를 문지르곤 달아났다. 뒤늦게 선우가 얼굴을 다시 더듬었지만 특별히 물에 젖은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해경이 문득 느슨해진 표정으로 입가를 조금 끌어올렸다. 그에 뒤늦게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애초에 비에 젖었던 건 맞는 건지. 눈동자를 도로록 굴리는 선우를 웃음기 밴 시선으로 바라보던 해경이 불쑥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 민세아씨가 또 뭘 주고 가던데. 설마 이번에도 전화번호는 아니겠죠.”

살짝 휘어져 있는 해경의 눈가가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선우는 괜히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선 말했다.

“그냥 평소에 촬영할 때 자주 마시는 차가 있다고 하시면서 제 것도 따로 챙겨 주셨어요.”

선우의 대답에 해경의 눈웃음이 한층 더 짙어졌다.

“연선우씨랑 사귀면 애인이 걱정할 일이 많겠어요. 워낙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저곳에서 관심을 많이 받으니까.”

“아뇨. 전... 연애하면 그 사람만 봐서요.”

차분히 얘기하는 선우의 얼굴은 무표정한 듯 덤덤해보였으나 귀끝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힐긋 본 해경이 의도해 짓던 웃음을 거두고서 조용히 읊조렸다.

“그 사람만 본다,라.”

묘하게 조용해진 차 안에서는 고적히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변덕스러운 소나기의 빗줄기가 점점 잦아드는지 차체를 두드리는 소리가 많이 희미해져있었다. 해경의 옷 속 어딘가에서 약한 진동소리가 들려왔다. 굳이 그를 확인하지는 않은 채 해경은 인사를 건넸다.

“이제 나가봐야겠네요. 오늘 고생했어요.”

“네. 서피디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내일 뵐게요.”

고개를 끄덕인 해경이 문을 열고 나가려다 ‘아’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선우를 다시 돌아봤다.

“그래서 연선우씨 지금 애인 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대답하는 선우를 꼼꼼한 시선으로 훑던 해경이 이내 진심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행이네요. 조심해서 가고 내일 또 봐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해경은 경쾌하게 문을 밀어젖히고는 차에서 내렸다. 정작 서해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데도, 선우의 가슴은 그때부터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이렇게 서해경은 일단 마지막 확인까진 끝마쳤습니다.

촬영 현장은 비교적 적게 나올 예정입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많이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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