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프 컷 32편
<-- --> 그 말에 선우의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그를 향한 하나의 대답처럼 맹렬히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머리로는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우는 확인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서피디님은...”
“예를 들면 이런 게 하고 싶은 거죠.”
해경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선우의 뺨을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쳤다. 해경은 선우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다가 조금 벌어져 있던 입안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마주 닿은 혀를 진득하니 핥자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이 느껴졌다. 해경은 좀 더 고개를 깊게 숙여 주춤하는 선우의 혀를 감아올렸다.
그의 거친 움직임에 선우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매달리듯 남자의 어깨를 잡았다. 맞물린 몸짓에 선우의 가운이 점점 벌어져 허벅지 안쪽까지 드러나보였다. 곤혹스러움에 선우는 다리를 몇 번 버둥거렸다.
촉. 민망한 소리와 함께 불현듯 입술이 떨어졌다. 선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눈동자로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자세 불편해요?”
해경의 물음에 순간 자세가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벌게진 얼굴로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선우를 번쩍 들어 근처에 있던 테이블에 앉혔다.
“이러면 되겠네.”
해경이 눈가를 접어 웃고는 다시 선우의 턱을 쥐고 끌어당겼다. 다시 입술이 막 닿기 직전 해경이 문득 움직임을 멈췄다. 남자는 엄지손가락으로 선우의 아랫입술을 슬쩍 문지르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키스해도 됩니까.”
이미 입술을 겹치고 난 후의 질문으론 적절치 않았다. 장난처럼 가볍게 물은 줄 알았던 해경의 시선은 어느새 진지하게 깊어져 있었다. 그 순간 어쩌면 그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는 문득 기시감을 느꼈다. 술에 취해 자신의 입술이 달 것 같다 말하며 불현듯 고개를 기울이던 언젠가의 남자가 떠올랐다.
해경이 취했던 어느 날, 사고처럼 일어날 뻔했던 입맞춤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파는 대단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선우에게 남은 것은 입술의 감촉이 아니라 그것에 닿고 싶다는 강렬한 감각이었다. 결국 닿지 못한 키스가 선우에겐 도리어 뜨거운 흔적을 남긴 셈이다. 술에 취해 입맞춤을 시도하는 그의 앞에서 선우는 처음으로 자신의 열병을 깨달았다.
그리고 눈앞엔 다시 서해경이 있었다. 선우의 마음은 그때와 같았다. 서해경이 좋았고, 여전히 그와 닿고 싶었다.
선우가 한동안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하자 남자는 조금 초조해하는 듯 했다. 해경의 애타는 기다림에 대한 대답처럼 선우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슬쩍 잡아당겼다. 선우는 눈을 감고 해경에게 먼저 살짝 입 맞추었다.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납게 선우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음.”
누구에게선지 모를 짙은 신음이 중간중간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의 입술이 점점 깊게 맞물렸다. 선우의 혀를 능숙하게 빨아 당기던 해경이 거칠게 선우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울리던 룸에 때 아닌 노크 소리가 울렸다. 선우가 먼저 눈을 뜨며 해경을 슬쩍 밀어냈다.
촉촉하게 젖은 선우의 입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갈증을 담고 있었다. 해경이 아쉬운 듯 작게 한숨 쉬었다.
“옷 도착했나 봐요. 가지고 올 테니 기다려요.”
해경은 선우가 그사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당부를 하듯 말을 건네고는 큰 보폭으로 걸어가 문을 조금 열었다. 해경에게 가려져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보이지 않았다. 방문한 이가 큰 종이가방 두 개를 내밀었다.
“고마워요, 윤비서님.”
해경이 받아든 종이가방을 들고 돌아왔다. 어느새 입술이 살짝 부어오른 채 색색 거친 숨을 내쉬는 선우를 바라보며 해경이 미소지었다. 지금 그의 기분은 상당히 좋아보였다.
“옷이 도착하긴 했는데.”
해경이 종이가방을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꼭 지금 입어야 할 것 같지는 않고.”
선우가 헛기침을 하고는 살짝 목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속옷이라도 입었으면 좋겠는데…”
해경의 시선이 새삼스럽게 선우를 슥 훑었다.
“속에 아무 것도 안 입은 게 신경 쓰여요?”
“네, 조금.”
“할 수 없죠. 그럼 이리 와봐요.”
남자가 종이가방 속에서 포장된 새 속옷을 꺼냈다. 선우가 조금 경계하듯이 말했다.
“...제가 알아서 입을 겁니다.”
“누가 뭐래요? 일단 여기로 오죠.”
테이블에 걸터앉은 해경이 아이를 부르듯이 허벅지 위를 두어 번 두드렸다. 그에게 다가가던 선우가 얼핏 걸음을 멈추었다. 그런 선우를 보고 남자가 한쪽 입꼬리를 당기며 웃었다.
“내가 무서워요?”
“…좀 주의를 해야 할 것 같긴 해서요.”
“잘 봤네.”
해경이 손에 쥐고 있던 속옷을 다시 가방 속에 던져놓고는 몸을 일으켜 선우에게 다가왔다.
“솔직히 지금 별로 입히고 싶지 않아요.”
남자가 선우의 팔을 잡고 부드럽게 끌어당겨 이마에 짧게 키스했다. 그리고는 선우의 턱을 쥐고 살짝 끌어올린 채 집요하게 시선을 맞추었다. 흥분조차 무구하게 내비치는 선우의 달아오른 얼굴은 꽤나 자극적이었다. 해경이 고개를 기울여 선우의 입술을 핥았다. 그를 시작으로 두 사람의 혀가 다시 급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해경이 흥분한 틈을 빌어 선우 역시 욕심껏 그의 입술을 빨았다. 그는 모를 것이다. 자신 또한 오랫동안 이 순간을 갈망해왔다는 것을. 선우는 마치 태어나 처음 키스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떨렸다. 지금의 모든 감각을 몸 안에 새겨 넣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자신을 해경이 몰랐으면 했다. 너무나도 큰 마음이었다. 들키는 것조차 두려울 만큼.
점점 진득해지는 키스로 서로의 몸이 빈틈없이 맞붙자 가운 너머로 서로의 맨몸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해경의 손이 느슨하게 묶여있는 선우의 가운 끈으로 향했다.
그 때 다시 한 번 노크소리가 울렸다. 놀란 선우의 눈이 크게 떠졌고 해경이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뗐다.
“내가 나갔다 올게요.”
윤비서가 채 전해주지 못하고 간 것이 있나 싶어 문을 열려다가 혹시나 싶어 문고리를 쥔 채 서있었다.
“누굽니까.”
“나야, 문 열어.”
현석의 목소리였다. 해경이 옅게 한숨 쉬고는 문을 열어주자 현석이 조금 흥분한 모습으로 걸어 들어왔다.
“야, 너 그 잠깐 사이에 또 소문을 만드냐? 대단한 놈.”
“무슨 소리야.”
“그 버릇 남 주겠냐. 명훈이가 벌써 신나게 다 떠벌리고 다닌다. 너 수영장에서 숨겨둔 애인이랑 밀회하다 들켰다고.”
해경이 힐긋 선우를 돌아봤다. 선우가 슬쩍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뒤늦게 선우와 해경이 가운만 입고 있는 것을 확인한 현석이 붕어처럼 입을 몇 번 뻐끔대다 끝내 소리 없이 합 다물었다. 해경이 한쪽 눈썹을 스윽 들어올렸다.
“둘 다 수영장에 빠져서 그냥 씻은 거야.”
“그래, 그랬겠지.”
현석이 뭔가 체념한 듯한 말투로 대답하다가 뒤늦게 뭔가를 떠올린 듯 호들갑을 떨었다.
“아, 맞다. 선우씨 얼른 여기서 내보내.”
“왜.”
“파티에 다른 잡지 기자들도 몇몇 와 있었잖아. 네 얘기 듣더니 떡밥 물려고 그런다, 지금.”
해경이 피곤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선우에게 말했다.
“현석이가 데려다 줄 거예요. 선우씨는 지금 옷 챙겨 입고 먼저 나가는 게 좋겠어요.”
해경이 선우가 입을 옷이 든 종이가방을 아까와 달리 순순히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선우가 옷을 갈아입기 위해 욕실로 향하려고 할 때 불쑥 해경이 선우의 손목을 붙들었다.
“그래도 연선우씨 스캔들 첫 상대,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해경이 입가에 미소를 덧그리며 제법 뻔뻔하게 말했다. 옆에서 현석이 작게 ‘미친 놈’하고 중얼거렸다. 선우는 이리저리 꼬이고 난처해진 상황 속에서도 결국 그를 보며 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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