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벤지 가이드라인-19화 (19/126)

19.

「다 왔어요. 그런데……」

룸미러로 힐끗 뒤를 돌아본 택시 기사가 머뭇거리며 질문을 덧붙였다.

「왜 두 분 다 가면을 쓰고 계시나?」

「오늘 좀 특별한 날이라서요.」

강석주가 웃으며 대꾸했다. 노른어였다. 영어는 할 수 있어도 노른어는 ‘안녕하세요’, ‘얼마인가요’ 정도밖에 모르는 정원으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택시 기사가 무슨 말을 했을지는 감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가면 얘기죠.”

“글쎄요?”

뾰족하게 묻자 석주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뗐다.

“얼굴만 쳐다보던데 글쎄는 무슨 글쎄입니까. 가면 보고 비웃은 거 맞죠?”

“비웃긴 뭘 비웃었다고 그래요. 너무 잘 어울린다고 칭찬하던데.”

가면 얘기를 하기는 했다는 뜻이네. 정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는 동안에도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계속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착해서 쓰면 될 것이지 꼭 이래야 하냐고 물어도 석주는 고집스러웠다. 몰입을 위해서라나 뭐라나.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석주가 정원의 말대로 무난한 무늬의 가면을 골라 왔다는 것이었고, 안타까운 점은 무난한 민무늬 회색 가면을 썼는데도 그는 눈에 띄었다는 것이었다. 모델 같은 체격 때문인지, 아니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왠지 눈길을 끄는 특유의 아우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정원 자신도 함께 가면을 써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초대장에 적혀 있는 장소는 도심으로부터는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바로 테프트가 이번에 새로 지었다는 그 건물이었다.

“완공 기념이라고 하기는 했어도… 설명회를 여기서 진행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네요.”

건물에 멋스럽게 새겨진 ‘T.E.F.T’라는 사명을 보며 정원이 중얼거렸다.

해외에서도 착실하게 입지를 넓히고 있던 테프트는 이를 과시하기 위해 노른에 새 본거지로 사용할 고층 건물을 세웠다. 그것이 이번에 완공이 되었고, 기념으로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외부인에게 폐쇄적인 테프트였기에 정말로 이 건물에 사람들을 부를 줄은 몰랐다.

“건물만 지어 놨지 이사는 아직이라고 하니까요. 주요 인력은 하나도 없겠죠.”

“그래도 그렇지……. 외부인한테 개방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지 않나요.”

영 석연찮았다. 석주는 덤덤한 얼굴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높다란 건물 앞에는 그들 말고도 가면 쓴 이들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 오늘의 설명회를 위해 온 사람들이리라. 꽤나 외진 곳이라 참석자 외에는 원체 오가는 사람이 몇 없었다. 덕분에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상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건물로 다가가자, 앞을 지키는 가드가 근엄한 얼굴로 말을 붙였다.

『초대장 확인하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요.』

회색 가면을 쓴 석주는 들고 있던 초대장을 내밀며 부드럽게 웃었다.

『데이비드입니다.』

본인의 것도 아닌 이름을 영어로 말하면서,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역시 저 뻔뻔한 자세를 본받아야 할 것 같았다.

『저는… 존입니다.』

정원 역시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이름을 밝혔다. 가드가 심각하게 초대장을 확인하는 사이, 옆에서 석주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우스워도 그렇지 여기서 웃으면 수상해 보이기 딱 좋을 텐데, 제정신인가? 가면 뒤로 도끼눈을 뜨고 석주를 노려보았지만 그는 모른 척 딴전을 피울 뿐이었다.

다행히 가드는 초대장에 적힌 이름만 확인하고 의심 없이 석주와 정원을 건물로 들여보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에 간이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거기에 흰 양복 차림에 화려한 디자인의 빨간색 가면을 쓴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가면으로 가려진 탓에 정확히 어떤 의도의 눈빛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나가는 석주와 정원을 빤히 바라보는 것이 영 신경 쓰였다.

테프트의 소속 직원인가? 저기 앉아서 뭘 하는 거지.

정원이 미심쩍은 눈으로 그쪽을 훑어보았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기요.』

어느 쪽을 부른 걸까. 잠시 멈칫했지만 자신을 명확하게 지목한 것은 아니니 멈출 이유가 없었다. 계속 느릿느릿 걸음을 옮기자 다시 부름이 따라왔다.

『회색 가면 쓰신 분.』

석주와 정원은 똑같이 회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눈만 돌려 옆을 힐끗 보니 석주는 아예 멈추는 척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회색 가면 쓰신 키 크신 분?』

또 한 번 부름이 이어졌다. 여전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걷는 석주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 정원이 따라가 그의 옷깃을 잡았다.

“부르잖아요?”

“아, 저였나요?”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으면서 씩 웃는 모습이 어이없었다. 석주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뻔뻔하게 남자가 앉아 있는 간이의자 쪽으로 갔다.

『절 부른 거라면서요?』

다리를 꼬고 앉아 있던 하얀 양복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뜸 질문을 던졌다.

『비각성자이신가요?』

『그런데요?』

『다른 건 아니고, 딱 보기에 뭔가 분위기가 남다르셔서~』

태연한 석주와 달리 그 질문을 듣고 놀란 것은 정원 쪽이었다. 가면으로 표정을 감출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혹시 눈치챈 걸까? 그가 비각성자가 아니라 S급 에스퍼라는 걸.

하지만 오늘의 석주는 웬만큼 예민한 사람도 알아채기 힘들 만큼 본인의 기운을 지운 상태였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원래 석주가 옆에 있기만 해도 특유의 기운 때문에 버거웠던 정원조차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정도였다.

『잠깐 손 좀 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이거 종교적인 질문… 뭐 그런 건가요?』

석주가 빙긋 웃으며 되물었다. 상대는 테프트 소속의 에스퍼 같은데, 이렇게 무례해도 되는 건가. 평범한 일반인 구직자로 보이기는 틀린 것 같았다.

여기서 그가 에스퍼라는 걸 들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혀 몰랐던 것처럼 굴어야 하나.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인 척 행세하며 들어오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석주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흰 양복 에스퍼는 잠시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맞잡고 앉아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정말 석주가 말한 것처럼 종교 권유 집단에게 붙잡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곧 남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석주에게서 손을 뗐다.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비각성자가 맞으시네요. 간혹 이렇게 분위기가 특이한 분 중에 본인이 각성자라는 걸 모르고 일반인으로 살아오셨던 분이 있거든요. 혹시나 싶어서 확인한 거니까,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거 아쉽네요. 제가 숨겨진 각성자가 아니었다니.』

여유롭게 대답한 석주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걸어와 다시 정원의 옆에 섰다.

간혹 특별한 능력은 없지만 타인이 에스퍼인지 아닌지 그 기운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에스퍼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 남자가 그런 케이스였던 걸까?

어떻게 통과했느냐고 이 자리에서 물으면 훨씬 더 수상해 보일 테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로 모르는 사이인 척했다면 자신에게도 확인을 해 보자고 덤볐을지 모르는데, 바로 옆에 존재감 넘치는 강석주가 서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쩌면 존이라는 흔해 빠진 이름과 유난히 밋밋한 가면이 한몫했을지도 모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설명회장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투명한 통유리로 만들어져 층마다 건물 안쪽의 모습이 들여다보였고, 반대로는 건물 밖의 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짓는 데 돈을 엄청나게 많이 들인 모양이네요.』

『신입사원 설명회라는 건 신입을 뽑긴 뽑는다는 거겠죠?』

『그렇겠죠? 여기서 일할 수 있으면 좋기는 정말 좋겠는데요.』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총 다섯 명이 타고 있었는데, 정원이 느끼기에는 대화하는 두 사람 모두 에스퍼나 가이드는 아닌 것 같았다. 입을 다물고 있는 마지막 남자 하나만이 낮은 등급 에스퍼인 듯 미미한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저, 혹시 에스퍼이신가요?』

『아뇨. 비각성자입니다.』

그때 시끄럽게 대화하던 사람 중 하나가 갑자기 정원에게 말을 붙여 왔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상대가 반색했다.

꽤 귀엽게 생긴 노란 가면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당황스러웠다. 정말로 다들 가면을 고르는 데 공을 들인 걸까? 석주가 이상한 게 아니었나?

아무튼 그는 너머로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일반인인데, 테프트에서 참석자를 모집한다길래 지원해 놓고 까먹고 있었거든요. 당연히 안 될 줄 알고. 근데 연락이 와서 기뻤어요. 솔직히 좀 기대도 되고요.』

『아……. 그러셨나요.』

『여기 참석자 뽑는 경쟁률도 꽤 높았다고 하는데, 붙일 생각이 있으니까 부르지 않았을까요? 가뜩이나 요새 취직이 안 돼서 힘들었는데~』

말이 많은 모습이 어쩐지 얼마 전 만났던 유튜버 에스퍼레소를 떠올리게 했다. 정 구직이 힘들다면 그도 유튜버로 나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정원은 그냥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워 봤자 좋을 게 없지. 그러나, 조용하던 마지막 남자는 정원과 생각이 상당히 다른 듯했다. 이어지던 노란 가면의 말을 끊듯 혼자 짜증스럽게 혀를 찬 것이었다.

혀 차는 소리에 놀란 노란 가면이 그쪽을 돌아보았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아무 능력도 없는 멍청이들을 불러다가 설명회라니……. 테프트는 무슨 생각인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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