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슬슬 시험 장소로 이동해야 할 때였다. 팀별로 함께 움직여야 했기에 석주와 정원은 이번에도 함께였다.
언제라도 다시 질문을 던지기 위해 기회를 노렸다. 그래도 아까 들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편이…….
그러다 문득 생각이 멈췄다.
개인전이 아니라 팀별로 함께 합격이 좌우되는 거라고 말하면… 강석주가 정원을 떨어뜨리기 위해 팀에게 방해되는 짓을 하는 건 아닐까?
여태 최선을 다해 정원을 밀어내려 했던 석주를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말도 아니었다. 그래서 정원은 어차피 상대가 들을 마음도 없겠다, 일단은 정보 전달을 포기하기로 했다.
덕분에 그의 꽁무니를 쫓던 꼴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석주는 정원이 멀쩡히 걷기 시작하자 갑자기 고개를 돌려 물었다.
“왜요?”
“뭐가 왜인가요?”
“할 말이 있었던 거 아니었어요?”
“새삼? 아까 듣기 싫다면서요.”
시선이 붙은 것도 아니고 떨어진 것을 눈치채고 저러는 건가. 그런 게 맞는다면 그것도 어지간히 변덕이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처음부터 전혀 돌아보지 않았던 척하자 석주는 살짝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아까부터 무슨 시선이…….”
“착각이겠죠.”
아까 바라보았던 건 사실이지만, 살짝 찔려서 아예 아닌 척 잡아뗐다. 그 순간 석주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혹시 안 봤다고 해서 화가 난 건가? 들을 생각도 없었으면서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의아함에 석주를 부르려 했을 때였다.
강석주의 팔이 순식간에 뻗어 나와 정원을 잡아당겼다. 워낙 갑작스러웠던 탓에 비틀거리며 끌려간 정원은 그대로 강석주의 가슴팍에 머리를 박았다. 몇 번 눈을 깜빡이며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한 뒤에야 자신이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뭐지?
문득 정원은 그에게 안기는 순간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원에게 직접 와서 부딪친 것은 아니었고, 몸에 닿아 있던… 그러니까 강석주에게 뭔가가 부딪친 것 같은 느낌.
“강석주, 씨?”
확인하고 싶었지만, 석주가 통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기세로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정원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고개를 슬쩍 틀어 빼꼼 옆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어어엇, 죄송합니다!』
등 뒤에서 누군가 사과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원은 무언가를 느끼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공?”
“초능력 수류탄이라는 거예요.”
석주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모두가 영어 혹은 노른어로 대화하는 가운데 두 사람만 한국어로 작게 속닥거리는 중이었다. 이제 모르는 사이인 척하기는 포기한 걸까…….
바닥을 구르고 있는 모양새를 보아 석주에게 부딪치고 떨어진 것의 정체가 바로 저것인 모양이었다.
그럼 지금 사과하며 달려온 게 저것의 주인일까.
“수류탄이라고요? 그만큼 위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조잡한 가짜 장난감처럼 생긴 건 당연하고, 심지어 실제 수류탄과는 비슷한 구석도 없었다. 석주는 정원의 무지함이 우스운 건지 짧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설명했다.
“진짜 수류탄은 당연히 아니고, 진짜 초능력도 아니에요. 그냥 저걸 던지면 랜덤한 초능력이 튀어나와서 던진 사람을 지켜준다나 뭐라나 하는 물건이죠.”
“그건 거의 사기 아니에요?”
“나오는 가짜 초능력이라는 게 제법 강도가 괜찮대요.”
에스퍼가 쓰는 초능력과 얼추 비슷한 기능이 나오도록 만든 장난감, 그 비슷한 물건인 듯했다. 석연찮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에 떨어진 초능력 수류탄을 줍는 이를 보고 석주가 한마디 했다.
『이런 걸 공공장소에 가지고 다니면 어떡합니까. 사람이 다칠 뻔했잖아요.』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면접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석주는 진심으로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한번 쳤다.
『도움? 그게?』
솔직히 정원도 전적으로 공감하는 반응이었지만, 그러고 있다 보니 주위의 시선이 자신들 쪽으로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조용히 합격하는 게 최선이었다. 정원은 석주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작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이제 그만해요.”
“…….”
석주는 알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정원을 바라보았다.
“네, 뭐……. 그러든가요.”
마음이 단단히 상한 것 같은데. 착각은 아닌 듯했다.
왜일까,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실수했다. 정원은 금세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마음이 급한 나머지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곧장 남들이 보니 하지 말라는 말이나 해 버렸다. 기분이 상했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정원은 고마워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며, 물론 고맙지만 지금 우리가 눈에 띄어서는 안 되는 입장이라 걱정이 되어서 실수했다 말하려 했다. 그러나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주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많았고, 석주는 정원의 말을 듣자마자 성큼 걸음을 옮겨 꽤나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쫓아가서 붙들고 사과한다면 그거야말로 다시 시선을 모으는 짓이 될 터였다.
뭐… 애초에 지금 그와 자신이 서로 도와주고 감사하고 훈훈하게 함께 걸어갈 사이가 맞기는 한지, 그것부터가 의문이기는 했지만.
정원은 다소 곤란하고 머쓱한 심정으로 다시 슬슬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일행의 틈에 섞여드는 것은 석주의 옆으로 돌아가는 것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정원은 제니의 추측이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했던 대로였다. 시험은 훈련 시설에서 치러졌다.
훈련 시설 제일 위층에서부터 시작해 미션 1개 혹은 2개를 성공할 때마다 아래층으로 내려갈 수 있다. 한 팀이 들어간 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다음 팀이 입장한다. 만약 두 팀이 마주칠 경우 서로 도와 미션을 해결할 수도 있고, 제각각 해결할 수도 있으며, 나중에 출발한 팀이 먼저 출발한 팀을 추월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쨌거나 1층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사이에서 개개인이 얼마나 역량을 보여줬는지를 종합적으로 평가하여 합격자를 가린다고 했다.
팀과 협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팀과 무조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미션은 아닌 것처럼 들렸다. 팀전은 아니고 개인전. 본래 시험의 취지는 그것이겠으나 정원이 들은 통화가 사실이라면 실제로는 그렇게 성의껏 합격자를 추릴 생각이 없다는 뜻이 됐다.
어차피 뒤 팀은 앞 팀이 뭘 하고 있는지 볼 수 없었고, 무슨 미션이 있는지도 확인시켜주지 않았기에 들어가는 순서에는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순서를 정하는 대신 번호순으로 입장하게 되었다. 정원의 팀은 31번부터, 즉 7번째 팀이었으므로 앞선 6개의 팀이 입장하기를 기다렸다가 출발해야 했다.
팀원 네 명 사이에는 불편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친화력이 좋은 알렉스까지 입을 다물어 버리는 바람에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알렉스는 기에 눌려 버린 모양이었다. 우선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던 시험 내용이 현실로 다가온 것에 대한 두려움도 한몫을 했을 것이고, 결국 제니의 말이 맞았다는 데에서 오는 짜증이나…….
“기운을 좀 누르는 게 어때요?”
정원이 석주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남들 앞에서 아는 사이인 티를 내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팀원들이 다 알아들을 영어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석주에게서는 계속 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원이 워낙 예민한 탓에 알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 지금 알렉스가 저렇게 넋이 나간 상태인 데에 석주의 기운도 한몫하고 있을 터였다. 다만 원인이 뭔지조차 모르는 채 당하고 있을 뿐.
솔직히 알렉스가 기운이 빠지건 말건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지난번처럼 석주에게 아우라가 남다르다며 접근해 에스퍼가 아닌지 확인할 사람이 생길까 봐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석주는 정원의 이런 마음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것처럼 툭 던지듯 대꾸했다.
“누구세요?”
“어차피 이 말 알아들을 사람도 없는데 그냥 대답하면 덧나나요?”
역시 아까는 미안했다는 말부터 해야 했나. 곤란한 표정을 짓는 정원을 보며 석주가 느릿느릿 대답했다.
“누르고 있는 건데, 이 정도면.”
“그런 것치고 전보다 기운이-.”
겨우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온 것이었기에, 곧장 심각하게 대답하려던 정원이 말하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
누르고 있음에도 불안정하다는 건……. 지금 강석주의 상태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뜻 아닐까.
“강석주 씨, 지금,”
『31번부터 35번 팀 입장하실게요~』
또 이렇게 방해였다. 정원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