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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가이드라인-51화 (51/126)

51.

“이제부터 이 방에서 지내게 될 거야.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되긴 하는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적힌 방엔 절대 들어가면 안 돼.”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구원 김재우는 표정 없는 소년의 얼굴을 슬쩍 내려다본 뒤 헛기침을 했다.

“테스트나 훈련은 조만간 센터장님이 직접 와서 봐 주실 거라고 했어. 센터장님은 본 적 있어서 알지? 널 여기까지 데려와 주신 분 말이야.”

“…….”

“그전까지는 센터 안에서 허가 없이 능력을 쓰면 안 돼. …아, 조절이 안 된다고 했었나. 아무튼.”

여전히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김재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센터장은 이 소년을 굳이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자신이 올 때까지 감시만 제대로 하면 된다고 말이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말을 알아듣기는 한 건지, 소년은 알아서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다.

김재우가 머쓱하게 몸을 돌렸다. 어느 정도 소년과 거리가 벌어지자, 기다리고 있던 동료 연구원이 넌지시 말을 붙여 왔다.

“다 됐어? 저만한 애들이 자꾸 여길 오고, 별일이네. 얼마 전에 온 애도 쟤 또래 아니었나?”

“거의 같은 나이일걸. 걔도 무슨 어린애가…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찝찝한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게, 이번에 온 쟤랑 딱 비슷하더라.”

김재우가 소리를 낮춰 대답했다. 슬쩍 눈을 돌려 소년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는데도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김재우는 대한민국 국립 에스퍼/가이드 훈련 센터에서 일하는 연구원이었다. 훈련 센터라고는 하지만 국가에 소속된 모든 에스퍼와 가이드가 이곳을 찾는 것은 아니었다. 위험한 능력을 가졌거나, 사고를 당해 재활이 필요한 이들이 주로 오곤 했다.

어쨌거나 어린이가 센터에 오는 경우는 잘 없었다. 특히나 이렇게 아예 센터 내에서 지내도록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근래 들어 두 명씩이나 그런 케이스가 생겨 김재우로서도 상당히 의아해하던 참이었다.

“참 나, 여기가 훈련 센터인지 어린이집인지 모르겠어.”

열 살은 되어 보였으니 어린이집이라고 하는 건 부적절해 보였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투덜거렸다. 문득 동료 연구원이 호기심을 보였다.

“저번에 온 걔가 걔랬지? 그 가이드.”

“어, 맞아. 예전에 한창 떠들썩했잖아. 무슨 예언이 이뤄진 거라고…….”

“아, 그 최 선생님 얘기?”

김재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국가 기관에는 예언 능력을 가진 에스퍼 한 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젊었을 적에는 굵직한 사건을 미리 예언해 큰 인명 피해를 막았다고 하는데, 덕분에 지금은 존경의 의미를 담아 ‘최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최 선생은 나이가 든 뒤로 능력이 약해진 것인지 별 쓸데없는 일만을 예언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십수 해 전 내놓아 화제가 된 예언이 하나 있었다.

“내용이 뭐였지? 무슨 전설적인 에스퍼가 어쩌구……, 역사적인 가이드가 어쩌구, 하는 거였나.”

“몰라. 나도 아버지한테 들었던 거라. 뭔 전설의 에스퍼가 세상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느니, 그걸 막을 가이드가 몇 년 내로 태어날 거라느니……. 되게 과장된 얘기였지. 예언이 원래 다 그렇잖아.”

모른다고 해 놓고 꽤나 구체적인 대답이었다.

이미 혜안을 잃은 최 선생의 예언이 다시금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예언이었기 때문이다. 그 예언을 남긴 뒤 최 선생은 의식불명에 빠져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연명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고는 들었지만, 당시 이미 일흔 넘은 노인이었으니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아마 없을 터였다.

“위대한 가이드라고 하도 난리여서 뭔가 대단할 줄 알았는데, 그냥 평범한 애더라. 말마따나 대답도 없이 사람을 노려보기만 하고.”

“뭐, 부모님이 막 돌아가셨다잖아. 정신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 어린 가이드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김재우는 다시 뒤를 돌아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근데 오늘 온 쟤는 좀 이상한 것 같아. 에스퍼라고 들었는데 그런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굳이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아도 그들의 대화는 명확히 다 들렸다. 소년… 강석주는 연구원의 마지막 말까지 모두 들은 뒤에야 버튼을 눌러 문을 닫았다.

대화의 내용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이해하기에는 복잡하고 어렵거나, 생전 처음 듣는 단어가 너무 많이 섞여 있었다. 어쨌거나 지금 여기에 자신 또래의 어린애가 또 한 명 있다는 것과 자신이 좀 이상해 보인다는 것 정도가 석주가 이해한 전부였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갑한 컨테이너 같은 방이었다. 벽도 침대도 하얀색이었다. 천장만이 채도 낮은 초록색을 띠고 있었다. 석주는 느릿느릿 걸어 침대로 다가가 누웠다. 배 위에 반듯하게 손을 모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색이었다.

연구원들의 말대로 지금 자신은 좀 이상한 걸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청각은 예민했지만 그 외의 모든 감각이 다 둔해졌다. 항상 몸 안을 돌아다니며 저릿저릿한 느낌을 주던 공 같은 것도 아예 사라졌고. 있을 때는 괴로웠지만 없어지니 속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침대 옆에 놓인 거울을 힐끗 돌아보니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의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형은 보아 왔던 것과 같으니 익숙하다. 하지만 빛이 바랜 듯 어두운 갈색 눈동자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원래 거울 속에 보이는 저 눈은 어두운 갈색이 아니라 노란색, 혹은 주황색에 가까웠다. 석주가 그동안 보아 왔던, 자신 이외의 유일한 ‘타인’ 역시 비슷한 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아닌가.

실은 그에 대한 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사실 자신에 대한 것도.

‘억울한가?’

‘나한테 ……을 모두 빼앗기는 게.’

‘만약 내가 찾지 못할 곳에서 태어났다면 너도 ……였겠지.’

드문드문 끊긴 목소리만 자꾸 생각이 났다. 그 목소리가 떠오를 때면 기이하게 기분이 나쁘고 불안하다가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곤 했다.

분명 그 남자의 말대로 그에게 뭔가 빼앗긴 것만 같은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어쨌든 이런 평온함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것이었다.

석주는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내가 기억나니?”

고개를 끄덕였다. 불과 며칠 전에 본 이였으니까. 방을 안내해 준 연구원이 했던 말에 의하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이 중년 남자가 이곳의 센터장일 터였다.

센터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하는 일이 없기로는 마찬가지였지만 제때 기상하고, 제때 주어지는 식사를 하고, 정해진 틀 내에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가 쉬웠다.

며칠 만에 찾아온 센터장은 석주를 보자마자 이것저것 질문을 늘어놓았다.

“아픈 곳은 없어?”

“…….”

“여기 있으면서 몸에서 뭔가 이상을 느낀 적은?”

“…….”

고갯짓으로 아픈 곳도, 이상도 없다는 것을 표현했다. 그는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석주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빤히 들여다보는 눈동자가 검은색이라 낯설게 느껴졌다.

“처음 봤을 때보다 눈동자 색이 더 어두워졌구나.”

그런가. 거울을 보면서 딱히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어떤 능력이든 쓸 수 있으면 하나라도 써 볼래?”

“그게 뭔데.”

처음으로 입을 열어 대답했다. 센터장이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갑자기 입을 열어서 놀랐거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배려심을 담아 다시 설명했다.

“능력을 쓴다는 게 뭔지 기억이 안 나.”

빼앗겼다고 느낀 부분이 그것이었을까? 센터장은 잠시 후 얼떨떨한 표정을 추스른 뒤 대답했다.

“그렇구나. 일단 그것부터 알아봐야겠네.”

그 뒤로도 센터장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이전까지 있던 곳에 대해 기억나냐 거나, 그동안 석주를 데리고 있었던 게 누구인지 아냐 거나, 예전에 능력을 썼던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나지 않느냐 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오기 전에 뭘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고, 그 남자에 대해서는 애초에 아는 게 그다지 없었으며, 그가 말하는 능력은 무엇에 대한 능력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모든 질문에 고개를 젓자 센터장은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일단 두고 보자고 말하고 떠났다.

센터장이 보이지 않던 며칠간 석주는 귀찮은 일을 제법 많이 겪었다. 자신을 껄끄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연구원들에게 이끌려 삭막한 컨테이너 같은 방들을 돌아다녔다. 그들은 석주에게 알 수 없는 기계 속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게 하거나, 한쪽 눈을 가린 채 기계 속에 보이는 광경을 설명하게 하는 등 의미 모를 행동을 시켰다.

며칠 만에 다시 나타난 센터장은 석주를 단단히 붙들고 대뜸 이 말부터 했다.

“누군가 네 정신과 기억에 손을 대 놓은 것 같구나. 능력도 마찬가지야. 너는 분명 에스퍼지만… 지금 네 몸에서는 초능력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구나. 대체 누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한 거니?”

알 수 없는 말뿐이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건가. 자신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조치를 취해 뒀으니, 기억은 천천히 돌아올 거란다. 만약 생각나는 게 있으면…….”

쾅!

귀찮은 말이 이어질 때, 어디선가 강한 파열음이 들려 왔다.

석주는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느릿느릿 고개를 돌렸다.

그와 처음 눈이 마주친 것은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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