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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가이드라인-59화 (59/126)

59.

정원의 거짓말이 통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전무는 납득한 듯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정원은 이번에는 자신 쪽에서 그를 떠보기로 했다.

그런데 같이 입사한 다른 직원들도 비슷하게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적인 상황이기는 했지만 다들 똑같이 기억을 못 한다는 게 조금 신기하고 무섭기는 했습니다.』

정말인가요? 그런 보고는 받은 적이 없는데.』

전무는 심각한 얼굴로 대꾸했다. 이번에도 진심인지 아닌지 조금도 읽어낼 수가 없는, 뱀 같은 얼굴이었다.

『혹시 테러 집단 쪽에서 여러분께 뭔가를 한 건 아닌지, 한번 알아보고 다시 말해 드리겠습니다. 좋은 정보 고마워요.』

『예? 아닙니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죠.』

정원 역시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손사래를 쳤다. 전무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그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쨌거나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회사에 잘 적응해 준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그 뒤로 이어진 것은 회사 생활에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등 단순한 질문들이었다. 한참을 가만히 대꾸하던 정원은 적당한 때를 노려 질문을 꺼냈다.

『행사 관련해서 여쭤보고 싶은 부분이 있는데요.』

『행사 말인가요? 뭐죠?』

『그냥 구체적인 것들이 궁금합니다. 제가 뭘 해야 되는 건지, 뭘 준비해야 하는 건지…….』

그 행사에 관련해 뭐라도 알아 둬야 구체적인 계획을 짤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그러나 전무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더니 대답했다.

『음, 딱히 뭘 해야 되는 건 아닌데요. 말하지 않았나요? 그냥 딱 참석만 하셔도 충분히 상징적이고 의미가 있을 겁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공개적인 행사면 역시 외부인들도 많이 보러 오게 되는 걸까요?』

혹시라도 전무가 의문을 가지면 곤란하니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많은 사람 앞에 나서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요. 만약에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하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외부인에게도 개방이 될 테니, 아무래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오겠죠.』

『그렇군요.』

이래서야 정보를 캐기도 어렵게 생겼다.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원을 보며, 덩달아 심각하게 대답하던 전무가 어느 순간 씩 웃어 보였다.

『행사 진행에 관한 부분은……. 그렇지, 역시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네?』

전무의 시선은 의아하게 되묻는 정원이 아니라, 그 뒤쪽을 향해 있었다.

『사장님의 복귀 기념 행사니까요.』

『그 말씀은…….』

정원이 당혹스럽게 중얼거렸다. 사실 그의 말을 들으며 대충 짐작한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차마 그걸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전무는 그 생각이 맞는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정원의 뒤편을 향해 인사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정원의 몸이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설마, 설마 지금 자신의 뒤에…….

말 그대로 ‘설마’라고 생각했지만, 정황상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깍듯하고 살갑게 인사하는 전무의 모습을 보니 내심 확신까지 들 것 같았다.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기대하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이런 타이밍에.

이렇게까지 기대하고 긴장했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다른 사람이 서 있다면 정말이지 실망스럽겠지만, 그걸 알면서도 도무지 긴장을 멈출 수가 없었다.

등 뒤에서 전무의 말에 대답하는, 나직하고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음, 먼저 온 손님이 있었나 본데……. 내가 방해가 됐나?』

상냥하게까지 들릴 정도로 부드러운 말투. 권위적인 기색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였다. 정원은 그 사실에 놀라야 할지, 아니면 그럼에도 그 목소리가 정원이 기억하는 것과 상당히 흡사하다는 사실에 더 놀라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방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이쪽은 전에 말씀드렸던 그 신입 사원입니다, 사장님. 정말, 마침 잘 오신 거죠.』

『아하.』

등 뒤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분명 그가 이 방에 들어올 때에 정원은 아무런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그의 발소리는커녕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듣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시선이 느껴진다는 것은, 정원이 갑자기 예민해졌다기보다는 상대가 일부러 기척을 드러내고 있다는 쪽에 가까울 터였다.

『반갑네요. 우리 회사 식구가 된 걸 환영합니다.』

등 뒤에서 이번에는 인사말이 들려 왔다. 정원은 그때까지도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이대로 굳어 있으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주기 딱 좋겠지만 알면서도 눈을 돌리기 힘들었다.

이 순간을 수없이 상상했지만, 그 상상 속에서 한 번도 그 남자와의 만남이 이런 식이었던 적은 없었다.

사장이라고 불린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 친절했고, 일개 비각성자 신입 사원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말투는 지나치게 예의가 바른 느낌이었다. 우선은 그 사실부터가 현실 같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에단 전무에게 사장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세상에 딱 하나뿐일 터였다. 그 사실을 새긴 정원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민에 빠졌다. 정말로 지금 같은 공간에 그 남자가 있는 것이라면……. 복수를 해야 할까? 지금 당장이라도? 고개를 돌려 그가 맞는지 확인한 뒤, 맞을 경우 곧바로 계획을 실행한다면…….

그 남자 혼자뿐이라면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는 S급 에스퍼인 전무도 같이 있었다. 제압당하기라도 할 경우 다음을 노려 볼 수가 없다. 게다가 여기서 계획을 실행한다면 크게는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테고, 그렇다면 괜히 이 건물에 있는 무고한 사람들까지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그 피해는 아마 에스퍼보다는 몇 안 되는 비각성자나, 신체적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은 가이드에게 미치겠지.

그렇기에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정원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이 부디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겨우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얼굴을 보기 전 우선 인사를 뱉었다. 눈을 마주 본다면 그 말마저 꺼내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리고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

등 뒤의 그 남자는…….

정원이 기억하던 것과 완전히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은 샛노란 눈동자였다. 그러나 정원이 두려워했던 것처럼 섬뜩한 색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때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었나. 얼굴에 드문드문 세월의 흔적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변화가 심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이를 알면서도 그것보다 대여섯 살은 족히 젊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 번듯하고 말끔한 생김새를 제외하면 그는…….

그저 평범해 보였다.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단순히 ‘세상에서 가장 강한 S급 에스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수준이 아니라, 에스퍼의 기운에 나름대로 민감한 정원조차 순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일반인에 가까워 보였다.

충격적인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정원은 한참을 가만히 그의 얼굴을 뜯어보다가, 정말이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를 뒤로 끌고 일어나 기계적으로 허리를 숙이는 몸이 자신의 것 같지 않았다.

『…만나 뵙게 되어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사장이 타인의 존경과 두려움에 익숙한 사람일 거라는 데에 있었다. 자신의 이런 고장 난 태엽인형 같은 모습을 이상하게 느끼기보다는 평범한 반응이라 납득할 터였다.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형은……. 형은 어떻게 된 걸까. 급박한 마음에 필터링 없이 그 말을 그대로 뱉어 버릴 뻔했지만, 다행히 그것마저도 어떻게든 참아낼 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인자하게 웃던 사장이 문득 전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깐 자리를 좀 비켜주겠나?』

물론 전무가 그 말을 거절할 리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임에도 상석을 양보하며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키지 않는 마음이 있더라도 거부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럼 문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편히 말씀 나누시길.』

문 밖에서 기다린다는 시점에서 이미 불편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문 바로 밖에 있을 경우 안쪽의 소란에 얼마나 빨리 대처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정원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방 안에는 그 남자와 정원 단둘만이 남아 있었다.

사장은 전무의 자리를 향해 아무 거리낌 없이 걸어갔다. 그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앉은 그가 웃으며 고갯짓을 했다.

『앉으세요.』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 남자의 존댓말. 머릿속이 거의 하얘진 상태로 자리에 앉는 정원을 보며 그가 양손으로 턱을 괴었다.

『당신 파트너는 어디 있나요? 지금 이름은……. 그러니까, 데이비드라고 했나?』

‘지금 이름’이라니?

정원이 멍하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장은 꼭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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