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벤지 가이드라인-63화 (63/126)

63.

찾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말해 봤자 진지하게 들릴 리 없었다. 정원은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는 듯 일그러진 얼굴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대답해 주시죠. 전 데이비드에 대해 얼마나 잘 아시는지 물은 것도 아니고, 누가 절 찾는지 알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알고 있다면 지금 어디 있는지도-.』

『그것참, 이상하네. 분명히 자네도 반가워할 거라고 하던데.』

그는 쏘아붙이던 정원의 말을 태연하게 끊고 들어왔다. 남의 말을 끊는 것 정도는 익숙한 태도였다. 정원은 미간을 좁힌 채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를 볼 때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었지만, 적어도 뭔가 정원의 관심을 끌 만한 주제가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무슨 말이죠? 누가 그런 소리를 했다는 건가요.』

『자네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사람한테 들은 얘기지.』

차분한 목소리였다. 찾는 사람이라고 해 봤자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원은 유능한 가이드였고, 평소에도 자신을 찾는 사람 정도는 많았다. 기껏해야 그런 식의 의뢰일 거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탐색하는 정원의 얼굴을 보며 사장이 하하, 웃었다.

『정말로 여태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나?』

도무지 따라갈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화법. 단순히 ‘에스퍼는 다 이렇지.’ 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상대가 그저 ‘그냥 에스퍼’로 표현할 수 없는 이라서 문제였다. 정원은 겨우 인내심을 발휘해 대꾸했다.

『그러니까 뭘 말인가요.』

『실종도 아니고 아예 죽은 걸로 처리가 됐다던데……. 시체 확인도 못 했을 거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고?』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었던 말이 점점 명확해졌다. 정원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형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건가?

정원의 앞에서 형을 언급한다는 것은 사장이 석주만이 아니라 정원의 신원 역시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본능적인 생각 하나만이 정원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뻔뻔하게도.

다른 사람도 아닌 저 남자가 그런 말을 하다니. 시체조차 확인하지 못했으면서 형의 죽음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고, 가족을 죽인 이에게 비웃음 같은 말을 듣게 되다니…….

『그렇다고 하면 지나치게 순진한 거지. 설마 아니겠지만.』

가볍게 웃는 사장의 얼굴을 보며 정원은 간신히, 정말이지 간신히 화를 억눌러 참았다. 정원의 입에서는 한참만에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롱하려는 게 아니라면…….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는 건 그만둬 주시죠.』

겨우 만들어낸 정중한 어투였다.

『대체 뭘… 얘기하는 겁니까.』

분노를 터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은 단순히 표면적인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사장이 정말로 자신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거라면 그런 겉치레는 의미가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러니까…….

사장이 한 말이 단순히 악질적인 변덕이나 조롱이 아니고, 정말로 그의 말대로 형이…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가능성 때문에.

사장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정원을 보며 말했다.

『자네 형이 자네를 만나보고 싶어 해.』

『…….』

정원은 완전히 굳은 얼굴로 사장을 마주 보았다.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워낙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상대이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시신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기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기관에서 정원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정원의 형은 대체 불가능한 S급 가이드였다. 그가 살아 있다면 그에 비해 한참 모자란 정원을 억지로 그 자리에 앉혀 놓을 이유가 없었다. 위험 부담이 너무 큰일이었으니까. 그가 살아 있었다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 기관 측에서, 인력을 모조리 갈아 넣어서라도 형을 구출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더더욱 의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표정이 상당히 복잡해 보이는데……. 못 믿는 모양이지?』

『…….』

『뭐, 못 믿겠고 만날 생각도 없으면 그렇게 해도 좋아. 자네 형이 좀 서운해하기야 하겠지만. 떨어져 산 기간이 워낙 길었으니 남 같을 만도…….』

『형이, 살아…….』

말을 맺지 못한 정원은 그때서야 숨을 들이켰다.

이 남자의 말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반신반의하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형의 이름은 정원에게 그런 의미였다. 단순히 세상에 딱 하나 남았을지도 모르는 가족을 향한 애정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무겁고 부담스러운 의무감에 가까웠다.

형이 살아 있다면 그동안 생각했던 계획은 그대로 유지할 수 없었다. 부모님의 원수인 저자가 얼마나 밉든 간에 섣불리 동귀어진 같은 짓을 벌여서는 안 됐다. 형이 무사하다면. 아니, 멀쩡하지 못한 상태라고 해도 잘 살아 있기만 하다면… 모든 걸 포기하더라도 그를 구해 내는 게 우선이었다.

부모님도 분명 그렇게 하라고 말했을 테니.

정원의 심각한 표정을 보며 사장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절박함을 비웃는 모습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정원의 초조한 표정에는 이제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목소리만은 숨기지 못하고 떨리고 말았다.

『살아있습니까? 무사… 하다는 말인가요?』

『여태 속았다는데 화가 난다거나, 그런 생각은 안 드나?』

형이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남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입을 다문 채 서 있었다.

사장은 태연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주 교묘한 녀석들이야. 국가기관은 각성자가 세운 게 아니니 각성자를 위해 움직일 리가 없지. 그게 이상하다는 건 아니지만……. 나라꼴이 멀쩡히 돌아가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자네를 그렇게 노예처럼 굴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런 말은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에 대한 대접에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낄 겨를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형의 안위가 궁금할 뿐이었다. 정원의 창백한 얼굴을 본 사장이 다시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듣지도 않는 모양이군.』

『제가 당신의 뭘 보고 그 말을 믿으면 되는 건가요.』

제법 강경한 어투였다. 사장은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며 대꾸했다.

『산 사람을 죽었다고 속이는 게, 죽은 사람을 살았다고 속이기보다 훨씬 쉽지. 안 그런가?』

『…….』

『죽었다는 증거는 없어도 그만일 때가 많지. 이미 죽었으니까. 하지만 살았다는 건 직접 봐야만 믿을 수 있으니까 말이야.』

형을 볼 수 있다고? 이런 상황에서도 기묘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뒤늦게 이성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장은 형을 인질로 잡아 놓았던 것일까? 왜 형을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었던 걸까? 사장 자신을 막을지도 모르는 가이드의 존재가 두려워서 친히 형을 죽이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데에는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러나 지금 생각하고 있을 일은 아니었다. 정원은 모든 자존심과 분노를 굽힌 채 물었다.

『형을 만나게 해 주시겠다는… 그런 의미인가요.』

『선택해.』

고개를 끄덕인 사장이 말했다. 뭔가 조건을 붙일 모양이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자네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있지 않나?』

정원의 머릿속이 일순 싸늘하게 식었다. ‘무엇을’ 선택하라고 종용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살짝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는, 정원에게 강석주와 형 중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고 있었다.

정원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건 정말이지 되지도 않는 선택지였다. 자신은 어차피 강석주를 이용하려 했다. 복수를 위한 수단으로. 형이 살아 있다면 앞으로의 목표는 복수에서 형을 구출하는 것으로 바뀌겠지만, 그렇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거야 당연…….』

죄책감과는 별개로 석주는 정원에게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다.

…분명 그런 것이 틀림없는데.

『당연히?』

단번에 대꾸하려던 정원의 입은, 그의 재촉에도 굳게 다물린 채 열리지 않았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당황스러운 반응이었다. 아무리 석주와 정이 들었고, 아무리 석주에게 미안하고, 아무리 석주를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인다 해도 이건 이상했다. 형이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답을 망설이는 자신이라니.

오히려 이 순간에도 이 소식을 강석주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할 정도였다.

한참 만에 입을 열어 겨우 대답했다.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기 전까지는 저도 확답이 힘들 것 같은데요.』

애써 이성적인 척하는 목소리. 사장은 다시 웃어 보였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그때 다시 찾아오게. 오래는 기다리기 힘들겠지만.』

그리고 비웃는 것 같은 말이 마지막으로 덧붙여졌다.

『자네 형은 자네가 본인을 고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하던데… 그게 맞을지 궁금한걸?』

『…….』

『다시 보지. 연락하도록 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