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나에 대해 알고 있나?”
노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정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예언자. 예언 능력을 가진 에스퍼라면 세상에 꽤 많이 있지만, 그 중 ‘예언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사실 딱 한 사람뿐이었다. 최 선생. 젊었을 적 굵직한 사건을 모두 예언했던 사상 최고의 예언 능력자.
그러나 정원이 그를 알고 있는 것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바로 ‘최강의 에스퍼와 최고의 가이드’를 운운하는 예언을 했던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솔직한 심정으로 정원은 ‘그 예언만 아니었다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때문에 모두가 존경하는 최 선생이 정원에게는 떨떠름한 존재였다. 그러나 은퇴한 이후 더는 공식 석상에 나타나지 않던 이라 볼 일도 없었는데,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어르신께서 대체 왜 여기에……. 국가에서 보호받고 계셨던 게 아니었습니까?”
정원이 신중하게 물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최 선생은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죽었다는 이야기가 소문의 주류였다. 은퇴한 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최 선생은 어느 순간부터 아예 외부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다들 그가 나이가 들어 사망했을 거라고 예측했다. 예언자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죽었다고 공표하지 않는 게 틀림없다며.
“다 늙은 이를 그렇게 보호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내가 여기 와서 살겠다고 했네.”
최 선생은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원은 경계하는 얼굴로 그를 살피면서도 입으로는 담담하게 ‘그랬군요.’라고 대답했다.
정확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이 깃들어 있는 듯한 얼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섬은 대체 뭘까. ‘그’ 테프트의 사장마저 뚫지 못할 만큼 강한 결계가 있다는 게 사실일까. 사실이라면 그건 최 선생의 능력일까? 그는 모든 예언 능력을 잃었고, 그 외의 다른 능력은 없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게 꼭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으니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제일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최 선생이 대체 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지만, 그보다는 석주가 그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가 더 의문이었다.
노인의 시선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있었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군. 지친 것 같은데, 일단은 차를 마시고 쉬는 게 어떻겠나?”
그렇게 권유하는 목소리는 정원을 향한 것이었다. 앞이 보이지도 않아 허공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고민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눈치챈 걸까. 분명 담담하게 말했고, 목소리만으로 알 수 있는 티를 내지도 않았는데.
정원은 최 선생이 내준 차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주는 차를 마실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 상대는 아예 모른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그 예언가인 데다……. 이곳은 강석주가 데려온 곳이니까.
괜찮지 않을까?
복잡하게 고민하던 정원은 결국 찻잔에 손을 가져다 댔다. 뜨끈한 차를 목으로 넘기자 식도를 타고 깊은 안정감이 퍼졌다.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에 살짝 놀란 정원은 이게 무슨 차인지를 노인에게 묻기 위해 입을 벌렸다.
그런데…….
‘…어?’
고개를 든 정원의 시야가 흐릿해졌다. 눈앞의 노인이 두 개로 보였다가, 네 개로 보였다가, 이윽고 뿌연 잔상처럼 보이지 않게 되더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지금… 기절하고 있는 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속았나.’였다. 무슨 말을 들었어도 끝까지 거절했어야 하는 건데. 그러나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나.’였다. 이렇게 마음이 편한데, 그냥 이대로 정신을 잃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지독한 안락함이 정원을 덮쳤다.
* * *
정원은 꿈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느껴진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너무 익숙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바로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묘하게도 꿈이라는 것을 바로 자각해서 그 남자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사무용 책상 앞에 사장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전무가 서 있었다. 정원은 혼란스러운 심정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그들의 추적을 걱정해 꿈을 꾸고 있다기에는… 너무 생생한 것이었다.
『이거 참 신기한 일이야……. 어디로 꺼진 건지 조금도 알 수가 없다니.』
『최선을 다해 수색하고 있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신다면-.』
『아니, 아니. 그건 아무래도 힘들겠지.』
『…….』
더 듣지 않아도 무엇에 대한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사라진 정원과 석주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전무는 곤란한 얼굴로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하긴 정원과 석주가 도망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상 그의 덕이었다. 그가 방심하고 있었던 탓에 석주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이니까.
지켜보는 자신마저 그가 처벌을 받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전무 본인은 얼마나 좌불안석일까 싶었다. 그러나 의외로 사장은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원은 천천히 실감했다. 이건 역시 단순한 꿈이 아니다. 꿈이었다면 정원의 예상과 걱정대로 상황이 흘러갔을 텐데, 지금은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도 궁금했지만 그것보다는 당장 사장의 태도가 더 의아했다.
절대 자신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강석주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나.
『내가 찾을 수가 없는데, 다른 녀석들이 수색을 한다고 그걸 찾겠나?』
『…죄송합니다.』
『사과하라는 게 아니야. 오히려 신기하군.』
즐거워 보이기까지 하는 사장의 모습이 정원의 눈에는 영 이상하게 비쳤다.
『세상 어딜 가든 내 손바닥 안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석주 그 녀석이 재주가 좋긴 좋아.』
『…….』
『확실히 묶어뒀던 건 맞겠지?』
『예, 물론입니다. 절대 능력을 쓸 수 없게 처리해 두었습니다. 사장님의 능력이니 허점이 있었을 리도 없어요.』
전무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새삼스럽게 석주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어쨌거나 사장의 구속을 끊어내고 여기까지 도망쳤다는 게 아닌가.
『하긴 뭐…. 그때도 끝장을 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돌아온 녀석이니, 신기한 일도 아니지.』
사장은 즐거운 듯 사납게 웃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 녀석을 찾는 건 일단 뒤로 미뤄. 어찌어찌 도망쳤다고 해도 당장은 어차피 힘도 제대로 못 쓸 테니까. 그보다는 계획을 무사히 실행하는 게 중요하지. 잘 되어가고 있나?』
『물론입니다.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확실히 진행하겠습니다.』
각이 바짝 잡힌 전무의 대답을 들으며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획이라니?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듯한 느낌에 정원이 바짝 긴장한 채 귀를 기울였다.
『그래, 그래. 첫걸음이지……. 오히려 그 녀석이 없는 지금이 딱 적기일 수도 있겠군. 저번에도 석주 녀석이 방해하지 않았나.』
『…그때 일은 저희 실책입니다. 설마 그 자리에 섞여들었을 거라고는…….』
『괜찮아, 괜찮아. 자네들이 몰랐어도 내가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입사 시험에 관한 이야기 같았다. 사장이 알고 있었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날 그곳에 석주가 있는 것을 사장은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역시 알면서도 석주와 정원을 내버려 둔 것이었나.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조금 기분이 나빠질 것 같았지만, 그럴 때는 아니었다. 정원은 이어지는 말에 신경을 집중했다.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게. 민간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
『예? 예……. 알겠습니다.』
그 말에 전무조차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것 같았다. 그 ‘계획’이라는 것을 전무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세뇌가 완성되면…….』
어울리지 않게도,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사장이 잠시 말을 멈췄다. 정원은 순간 불길한 예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정원은 분명 꿈을 꾸는 중이었다. 그런 정원을 사장이 알아챌 수 있을 리는 없을 텐데도…….
『잠시만. 쥐새끼가 숨어든 것 같은데.』
정확히 정원이 있는 곳을 바라보는 눈길에, 정원은 번개를 맞은 것처럼 파르르 떨었다.
‘깨어나야 한다.’
그렇게 판단하자마자 입안을 강하게 콱 깨물었다.
둔탁한 통증과 함께, 정원은 눈을 떴다.
“…정원 씨!”
깨어나자마자 들린 것은 다급한 석주의 목소리였다. 자신이 잠든 사이 그가 정신을 차린 걸까.
힘겹게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원의 손을 강하게 붙들고 있는 석주가 제일 먼저, 그리고 벽 쪽에 그림처럼 서 있는 예언자 최 선생의 모습이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정원은 반사적으로 석주의 손을 한 번 꼭 쥔 뒤, 최 선생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한테 무슨 짓을 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