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다시 한번, 긴 키스였다. 이제는 그의 호흡에 숨을 맞추는 법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익숙하게 입안을 헤집는 혀를 삼키며 정원이 잘게 떨었다. 그 키스가 도화선을 당긴 것 같았다.
입구 근처를 꾹꾹 누르던 손가락이 잡아 벌린 엉덩이 사이를 망설임 없이 파고들었다. 아직 축축하게 적셔진 타액이 빡빡한 구멍을 조금이나마 적셔 주었다.
손가락 하나를 겨우 밀어넣은 석주가 표정을 살피듯 고개를 들어 정원을 바라보았다. 그의 위에 올라앉듯이 한 정원이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손가락이 개수를 늘렸다.
“윽……!”
곧장 입을 다물었지만 참지 못한 소리가 샜다. 그러나 아픈 티도, 흥분한 티도 내고 싶지 않아 이어지는 신음은 입속으로 삼켰다. 석주의 손놀림은 집요하고 질 나쁜 장난 같았다. 안을 넓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벽을 간지럽히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구멍 안쪽을 긁듯이 휘젓는 손가락은 어느덧 두 개, 아니 세 개로 늘어난 채였다.
“아, 흐읏… 아…, 읏!”
참지 못하고 잘게 흘린 숨소리는 안쪽에서 피어오르는 간지러움에 점차 난잡한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석주는 정원에게 몸을 가까이 붙인 채 고개를 들어 정원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슴 부근에 닿는 숨결이 부드럽지만은 않았다.
각오한 일이었음에도 예상보다 수치심이 컸다. 얼굴을 가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세 개의 손가락은 아무런 규칙성도 없이 안을 헤집고 있었다. 맨살에 닿는 체온이 끈적했다.
“흐으, 그만… 아, 그만!”
흐릿한 신음과 섞여 미약하다 못해 연약하게까지 들리던 ‘그만’은 뒤로 가서야 겨우 제대로 된 음가를 찾았다. 소리를 높이자 석주가 그제야 잠시 손을 멈췄다.
“왜?”
왜냐는 질문을 하기에는 그 역시 위험할 만큼 달아오른 얼굴. 열기 띤 눈동자가 정원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장이 해제될 뻔했지만 겨우 정신을 차렸다.
“내가…… 내가 할래요.”
급하게 석주의 손을 끌어내렸다. 그는 잠시 집요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팔에 힘을 준 채 버텼다. 정원이 완력으로 그를 이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에스퍼와 가이드의 차이란 그런 거였다. 흥분 탓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석주의 손을 빼내기 위해 힘을 쓰는 정원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든 채였다.
그 표정을 보는 석주의 낯이 미묘한 만족감으로 물들었다. 슬슬 움직이던 손가락 세 개가 일순 안쪽을 거칠게 들쑤셨다. 극점 근처를 애매하게 맴돌던 손이 처음으로 가장 예민한 곳 위를 짓눌렀다.
“아으, 아…….”
허리와 다리에 저절로 힘이 풀렸다. 정원이 우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았다. 겨우 안쪽을 한번 제대로 찔린 정도로 이런 반응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스스로를 의아해할 겨를도 없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탓에 구멍을 파고든 손가락이 한층 더 깊숙한 곳을 찌르고 들어온 것이다. 조금 전보다 더 길고 찌릿한 충격이 정원을 관통했다.
“흐읏!”
석주는 이미 정원의 가슴팍에 기대고 있던 얼굴을 떼고 똑바로 정원의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는 정원이 석주의 어깨에 힘없이 머리를 기댔다.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석주는 예상했다는 듯 팔을 뻗어 정원의 허리를 받아 안았다.
뒤늦게 석주의 손이 빠져나갔다. 정원이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열띤 눈동자였으나 석주의 눈빛에는 미약한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직접 하시겠다면서.”
짓궂은 말에 눈을 뾰족하게 뜨는 것도 잠시였다. 이미 흥분감은 고조된 뒤였고 여기서 물러서는 건 지는 기분이었다. 정원은 손을 옮겨 석주의 입가로 가져갔다. 작게 웃어 보인 석주는 순순히 정원의 손을 받아 물었다. 검지와 중지 위로 부드럽게 혀가 감겨 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낯 뜨거운 상상이 머릿속을 스쳤다. 석주는 성기를 빨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스스로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탕한 상상. 정원은 적응되지 않는 기분에 급히 그의 입에서 손을 물렸다. 조금 덜 젖은 듯한 손을 석주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것마저도 괜한 자극으로 다가와 눈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짐짓 사무적인 척하며 뒤로 손을 옮겼다.
석주가 조금 열어 놓은 구멍이 처음에 비해서는 덜 빡빡하게 손가락을 받아들였다. 정원은 하얗게 질리도록 입술을 문 채 가위질하듯 손가락을 움직였다. 순수하게 안을 넓히기 위한 동작이었다. 방금 전에 비해서는 조금 평온해진 표정을 눈치 챈 것인지, 조금 못마땅한 듯한 얼굴로 정원의 얼굴을 보던 석주가 문득 고개를 숙였다. 정원의 가슴팍 위로 그가 다시 얼굴을 묻었다. 이번에는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
뭐 하는 거냐며 입을 열 경황이 없었다. 석주는 심이 도드라진 정원의 유두를 문 채, 빈 손을 정원의 성기 위로 가져갔다. 직관적인 자극이 밀려들었다.
“흐으으…….”
정원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긴 울음 같은 신음을 뱉었다. 허리를 비틀어 봐도 석주는 가차없이 손을 움직였다. 순전히 사정만을 시키기 위한, 빠르고 집요한 자극이 밀려들었다. 절정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찾아왔다.
“……!”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가볍게 떨었다. 손바닥으로 정액을 받아낸 석주는 그게 목적이었다는 듯 빠르게 귀두 위에서 물러났다. 그러고는 곧장 정원의 손 위로 제 손을 겹쳤다. 빡빡한 구멍 위로 치덕거리며 정액이 발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두어 개 들어가 있던 정원의 손가락 옆으로, 석주의 손가락이 미끄러져 들어왔다.
그 뒤로는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자극이 이어졌다. 안쪽을 잔뜩 헤집어 놓은 석주는 한참 만에 손가락을 모두 뺀 뒤 제 옷을 내렸다.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가 곧장 정원의 입구에 맞춰졌다. 이성을 잃은 듯한 동작이었지만, 그는 곧 겨우 진정한 듯 고개를 들어 정원을 마주 보았다.
“조금이라도 밀어내면 그만할게요.”
“…….”
“하지만 안 밀어내면 정말로 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석주는 이미 평소와는 거리가 먼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온한 척하려고 해도 이를 악문 입과 핏줄 선 목,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속내를 드러냈다.
이상한 일이다. 그 표정 때문에 오히려 그를 전부 받아들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정원은 대답 대신 석주의 몸을 제 쪽으로 가득 끌어당겼다. 석주는 홀린 듯한 얼굴로 정원을 올려다보았다. 귀두 끝이 풀어진 구멍 위로 맞춰졌다. 스스로 허리를 내리고 싶었지만 석주에게 붙들린 채라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석주는 순전히 그 본인의 뜻대로 정원의 허리를 조금 당겨 앉혔다.
굵은 기둥이 입구를 열고 들어왔다. 푼다고 풀었지만 젤도 없이 적신 것이라곤 타액과 정액이 전부였다. 아직 비좁은 게 당연했다. 빠듯한 조임에 석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이 들렸다. 귓가에서 들리는 그 숨소리까지 포함해 모든 것이 너무 심한 자극이었다.
“아, 흐으, 흑…….”
“하….”
석주가 이를 악문 것이 보였다. 허리를 감은 석주의 팔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그에게 완전히 갇힌 기분이 들었다. 당장 이 손에 아래로 힘을 주어 앉혀 주었으면, 그렇게 해서 뿌리까지 처박아 주었으면 싶다가도 그다음에 밀려올 감각이 지나치게 두려워졌다.
“하아…….”
석주의 긴 숨소리가 귓가를 오싹하게 했다. 그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정원은 그대로 그에게 입을 맞췄다.
입속으로 그의 신음을 삼키고 있으려니 앓는 소리가 석주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빨리 해. 빨리…….”
이번에 석주는 그의 말을 바로 들어주었다. 입구에 걸쳐 있던 성기가 순식간에 뿌리 끝까지 처박혔다.
쾌감이, 희열이, 통증과 괴로움과 충족감이 한데 몰려 끓듯이 눈가를 적셨다. 모든 게 눈물로 씻겼다. 석주가 정원의 눈가를 길게 핥았다. 맺혀 있던 눈물이 한 차례 닦였음에도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석주는 정원의 눈물이 통증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가 달래듯 정원의 등을 살살 쓸었다.
단순히 섹스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아니라면 석주의 이 불안정한 기운을 진정시켜주기 위한 가이딩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몇 번을 곱씹어봐도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변명이 불가능한 관계였다.
정원은 매달리듯 팔을 뻗어 석주의 목을 끌어안았다. 안쪽에서 더욱 크기를 더하고 있는 성기가 분명 괴로울 정도로 욱신거릴 텐데, 지금의 석주는 그런 기색을 누른 채 정원을 가만히 달래고 있었다. 그는 아마 정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알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석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원은 절절 끓는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변성기가 덜 지난 소년의 목소리를.
널 괴롭게 하는 건 내가 없애줄게.
네가 증오하는 건, 네가 싫어하는 건, 네가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내가 죽여 줄게.
그렇게 할게…….
맹렬한 말. 그 말의 무게를 물리적으로 잴 수 있다면 분명 그건 절절한 사랑 고백이 갖는 무게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정원은 전에 없이 애틋한 기분으로 뒤를 조여 물며, 스스로 강하게 허리를 내려 앉혔다. 지금 이 순간만은 그랬다. 그를 전부 갖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