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벤지 가이드라인-91화 (91/126)

91.

「이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는 게 누구 덕분입니까?」

전무는 타고난 웅변가처럼 빠르게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정원은 그의 말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불안했다. 어떤 말이 나올지 은연중에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우리 각성자들이 위험으로부터 사회를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갖 이상 현상으로부터 사회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모두 각성자들뿐입니다. 비각성자들은 각성자들에게 기생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상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말이었다. 정원은 작게 한숨을 쉰 뒤 불안한 표정으로 전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들은 우리 각성자들을 이용하는 것을 당연시하죠. 그들이 각성자를 노예처럼 부리며 핍박하려 했던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역사입니다. 지금에야 처우가 나아졌지만, 여러분, 한 번도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보신 적 없습니까?」

석주를 향해 고개를 가까이 한 정원이 넌지시 물었다.

“분위기가 좀 위험하지 않나요?”

그 말대로였다. 전무는 상당히 원초적인 부분을 건드려 각성자를 자극하고 있었다. 각성자들이 인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용당했던 과거. 그 부분을 건드리면 각성자로서는 어느 정도나마 분개하는 것이 당연했다. 정원처럼 아예 확고한 분노의 대상이 정해져 있거나, 아주 초연한 타입이 아니고서야.

「철저하게 각성자 위주로 돌아가는, 각성자를 위한 사회. 저희 테프트는 그것을 실현하려 합니다.」

복잡한 기분이었다. 정원은 항상 그게 편협하고 유치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편협하고 유치한 생각을 품은 것이 사장처럼 힘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곤란해진다.

설마 모든 비각성자를 자신의 의지가 없는 인형으로 만들어 각성자만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발상을 할 줄이야.

비슷한 생각을 한 각성자야 많았겠지만, 사장만큼 강대한 능력을 가진 이도, 이런 것을 실현에 옮기려 했던 이도 없었을 것이다. 정원은 사장의 목표와 욕망이 정말로 ‘고작 그것’이었다는 데 허탈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무시무시한 적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실은 그렇게 단순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게, 알 것 같으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사장의 오랜 잠적도… 실은 이걸 위한 것이었을까?

정원과 석주가 테프트의 입사 시험을 치르던 날, 그 자리에 있던 비각성자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굳이 왜 그런 일을 벌였는지가 계속 의문이었는데, 어쩌면 그건 전부 테스트였을지도 모른다.

이 일을 실행에 옮기기 전, 정말로 비각성자를 조종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기 위한 테스트.

그렇다고 생각하면 정말 지독한 악취미였다. 능력의 성공 여부를 따지고 싶었던 거라면 조금 더 비밀스러운 방법도 있지 않나. 굳이 그렇게 자신의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는 사람을 불러모아 놓고 실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있었나.

아마 오늘의 일도 끝은 아닐 것이다. 전무는 ‘각성자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비단 이 자리에 모인 비각성자 몇만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비각성자를 이런 상태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일 터였다.

비각성자들과 달리 멀쩡한 상태의 각성자들은 대부분 전무의 연설을 듣고 분위기에 휘말린 것 같았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흥분감과 기대를 품은 듯했다.

그러나 그때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이건…….」

정원이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건 좀 과하지 않습니까?」

확신을 얻은 것인지, 목소리는 방금 전에 비해 한층 커졌다. 이렇게 떨어진 거리에서도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은, 정원의 청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이 아니라 저 에스퍼의 능력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는 능력을 사용해 증폭시킨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물론 저도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있습니다! 비각성자들이 유세를 부리는 게 보기 싫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게 용납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나요? 그 많은 비각성자를 전부 조종해서…… 영혼 없는 꼭두각시로 만든다니요?」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전무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찌푸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는 점차 다시 소란스러웠다. 정원은 귀를 세우고 분위기를 살폈다. 여전히 대부분은 전무의 말에 찬동하고, 말을 꺼낸 이를 비난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이도 많았다.

각성자 중 몇몇이 하나둘 입을 열어 반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가족 중에 비각성자가 있다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연인이 비각성자라는 사람도 있었다.

「비각성자 중 누구는 내 가족이고, 누구는 내 연인이니 빼놓고 나머지만 우리의 꼭두각시로 만들자고 할 수는 없어요.」

「맞습니다. 이건 너무 심해요!」

사실 이게 너무 심한 처사라는 것만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었다. 모든 비각성자를 다 지배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이들도 점점 기세가 누그러지는 듯했다. 전무는 일그러진 얼굴로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도움을 청하듯 사장을 돌아보았다. 전무의 시선을 따라 정원 역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게 됐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장은 느긋한 상태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점차 한데로 집중되었다. 겨우 일어서는 동작 하나만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전무의 옆까지 걸어간 사장이 마이크와 가까운 거리에서 입을 열었다.

「마침 잘됐어.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었거든.」

「예?」

전무가 당황한 듯 물었고, 사장은 손짓으로 물러나게 했다.

단상 앞에 선 그가 사람들의 모습을 쭉 둘러보았다. 어떤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눈빛만으로 충분한 위압감이 있었다. 소리 높여 떠들던 사람들이 하나둘 조용해졌다.

마침내 모두가 입을 다물었을 때, 사장이 다시 한번 손짓했다. 그러자 그의 뒤에 앉아 있던 남자…… 즉, 정원의 형이 무언가를 꾹 누르는 듯한 시늉을 했다.

그걸 기점으로, 위기 경보 같은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은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넋이 빠져 있는 비각성자들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사장을 향해 멍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장은 후련한 건지, 만족한 건지 모를 표정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쭉 둘러보았다. 정원은 정체 모를 오싹함에 몸을 떨었다.

불길한 예감은 곧 현실이 됐다. 정원의 눈에 각성자들의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꼭…… 지금 정원과 석주의 옆에 있는 비각성자들처럼.

사이렌 소리가 꼭 정원의 머릿속에서 위험을 알리는 것같이 느껴졌다. 이상함을 감지한 것은 정원만이 아닌 듯, 사장의 옆에 서 있던 전무도 당황해 질문을 던졌다.

「사장님…? 지금 뭘 하신 겁니까?」

「…….」

「저들 상태가 왜 이렇죠?」

「…….」

「사장님? 사장님!」

「잠깐 조용히 해 봐. 지금 중요한 장면을 보고 있지 않나.」

모든 대화는 마이크와 가까운 거리에서 이루어졌다. 꼭 일부러 정원에게, 아니 정원과 석주에게 들려주려고 하는 것처럼.

전무는 비틀거리며 사장에게서 물러났다. 그조차 이 상황을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사장님… 설마 이들까지 그런 상태로 만드시려는 겁니까? 어째서! 이런 얘기는 들은 적이…….」

사장은 무서울 만큼 초연한 모습이었다.

「저들 중에 한 사람이 좋은 말을 하지 않았나? 누구는 내 가족이고, 누구는 내 연인이라는 이유로 예외를 두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고. 그러니 예외를 두지 않으려는 거야.」

차라리 그가 미디어에 나오는 전형적인 악당처럼 반응했다면 덜 오싹했을까.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굽어 보며 비열한 웃음을 터뜨리기라도 했으면 조금 더 인간적이었을까.

그러나 그는 그저 고요하고 잠잠한 시선으로, 점차 멍하게 변해 가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셨군요.」

전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은 미미한 미소를 띤 채 계속해서 객석 쪽을 바라볼 뿐 그를 향해서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당신은…….」

분개한 듯하던 전무의 음성에서도 점차 힘이 빠졌다. 사람에게서 혼이 빠져나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점점 늘어지던 목소리를 끝으로, 전무는 끈 떨어진 인형처럼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사장을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심복까지 똑같은 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정원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각성자에게서 의지를 빼앗아 각성자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성자마저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려 했던 건가.

공포에 질린 채 석주를 돌아보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정원을 바라본 뒤, 자신은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것처럼 정원의 손을 잡아 주었다.

석주와 자신은 왜 멀쩡한지 의아함을 느낄 때쯤, 사장이 마이크를 쥐었다.

「역시, 라고 해야 할까… 자네들은 멀쩡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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