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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벤지 가이드라인-113화 (113/126)

113.

그러나 정원의 목을 감아 온 형의 손은 가만히 떨리기만 할 뿐, 정말로 죽일 것처럼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정원은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입을 열어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지냈어?”

형이 헛웃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 왔다. 그의 목소리가 목을 감싼 손처럼 떨려 오기 시작했다.

“날 놀리고 싶은 거지?”

정원은 어쩌면 형의 손이 망설임으로 떨리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떨리는 목소리는 망설임이 아니라 분노에 가까워 보였다.

자연히 정원의 목소리는 평온해졌다.

“지금 형을 놀리는 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

정원의 담백한 설명에 형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졌다.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내심 훨씬 더 격한 반응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정원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가 않았다면서?”

“그래!”

형이 울음기를 머금은 채 발악처럼 소리쳤다. 정원은 여전히 담담했다.

“무슨 뜻이야?”

“…….”

다시 긴 침묵이 이어졌다. 눈을 떠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핏발 선 눈에 물기가 어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슬픔인지 아니면 분노의 연장선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죽은 사장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날…….”

“…….”

“왜 날 죽지도 못하게 만들어 놓고 가신 걸까…….”

형의 모습은 정말로 불안정해 보였다. 정원의 목을 감싸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그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싼 형이 그대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한테 벌이 주고 싶으셨던 걸까…….”

명쾌한 설명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짐작이 가기는 했다. 사장은 죽었지만, 죽기 전 정원의 형을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놓고 간 모양이었다. 아마 마지막 남은 능력을 끌어모아 벌인 일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어떤 원리인지도,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럴 거라고 예상이 됐다.

정원이 형의 말을 들으며 상황을 정리하는 사이, 연신 사장의 거취를 찾듯 중얼거리던 형 역시 마음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그가 번뜩 눈을 들었다.

“널 죽이면 용서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럼 그분을 따라가서……!”

자신을 죽이고, 또다시 사장을 따라 죽겠다는 것인가. 떨어져 나갔던 손이 다시 한 번 정원의 목을 향했다. 정원은 이번에도 그의 손을 피하지 않았다. 형이 목을 조르게 내버려 둔 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미쳤구나.”

정원이 담백하게 평가를 내렸다. 목이 틀어막힌 채 꺼낸 말이라 힘겹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지금 정원의 눈에 형은 정말로 미쳤다는 말 외의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상태였다. 형은 비명처럼 대꾸했다.

“닥쳐! 미친 건 너겠지.”

정원은 대꾸하지 않았다. 미친 사람의 말에 대꾸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반, 나머지 절반은 딱히 그 말을 부정할 근거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기관에서 우리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뻔히 알면서…… 아직도 그럴 마음이 들어? 아직도 강석주 그 새끼한테 매달릴 마음이 드냐고.”

정원의 눈가가 처음으로 흐트러졌다. 강석주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형의 손을 잡아떼어 내고 싶었지만 여전히 손목이 묶인 상태라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바로 하자, 형.”

“…….”

“우리라니…… 형이 나랑 형을 그런 말로 묶으면 안 되는 거잖아.”

한심하고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목소리. 형의 손이 움찔거렸다. 아마 우리라는 것은 자신도 모르게 뱉은 표현인 모양이었다. 정원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기관에서 한 짓이랑 그 사람은 관계없어.”

그것만은 분명했다. 따지자면 석주는 사장과 기관 모두에게 피해자였다. 기관, 그리고 유 관장과 한통속이라고 매도당해서는 안 되었다.

정원의 목소리는 석주를 비호하는 지금 가장 선명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형이 작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이어지는 정원의 말에는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나랑 그 사람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형은 얼굴을 찌푸린 채 침묵했다. 정원은 못을 박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되풀이한 말은 형이 아닌 정원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뭐, 그딴 건 내가 알 바 아니지. 그냥 죽여 버리면 그만이니까.”

찝찝한 얼굴로 정원을 보던 형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정원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그를 마주 보았다. 자신의 입으로 강석주와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말을 뱉고 나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진 듯했다. 자신을 죽여 버리겠다는 말에도 저항하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때, 문 밖에서 누군가의 괴성이 들려 왔다.

“아악! 윽... 으아악!”

비명 소리가 분명했다. 워낙 뭉개진 목소리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건 분명 알렉스가 낸 소리였다. 정원과 형 모두 반사적으로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갑자기 허공에 소리를 질러 댔을 리는 없다. 단순히 혼자 어딘가에 부딪쳐서 낸 소리라고 치기에는 너무 처절한 비명 소리 같았다. 정원의 머릿속에 위기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찾아온 걸까? 희망인지 불안인지 모를 감정으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 직후, 거친 소리와 함께 낡은 문짝이 떨어져 나갔다. 형은 헉, 하고 숨을 삼키더니 정원의 손목을 묶은 줄을 팍 끌어당겨 문짝에 깔리지 않도록 몸을 피했다.

그리고 털썩이는 먼지를 뚫고 보이는 것은.......

“……하!”

한쪽 발을 들고 있는 강석주의 모습이었다. 문짝을 발로 걷어차 열어젖힌 모양이었다. 삐딱하게 고개를 한쪽으로 틀고 방 안을 훑어보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느릿느릿 원위치로 돌아가는 한쪽 다리가 눈에 띄었다.

귓가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흘린 것은 형이었다. 그가 살벌하게 정원을 노려보며 물었다.

“아무 사이 아니라면서?”

“…….”

“농락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그러나 정원은 이미 형의 말 같은 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정원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

꺼질 듯한 음성. 시선은 오직 석주를 향해 못 박힌 것처럼 머물러 있었다.

왜 여기까지 온 걸까?

어떻게, 보다 그게 더 궁금했다. 그가 왜 여기까지 온 것인지. 자신을 따라온 거라면 뭘 위해서인지.......

형은 정원을 질질 끌고 제 침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침대 옆 협탁에 놓여 있던 화병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병이 산산조각 났다. 이번에도 정원을 질질 끌어당기며 자세를 낮춘 형이 깨진 유리 조각을 집어 들곤, 곧 그것을 정원의 목에 겨누었다.

“가까이 오지 마! 얘 죽는 꼴 보기 싫으면!”

석주는 오묘한 얼굴로 정원과 형이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우습지만 재미없는 촌극을 보는 듯 무료한 표정이었다. 정원은 무슨 말이라도 하기 위해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석주는 정원의 등 뒤에서 유리 조각을 들고 있는 형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것처럼, 정원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형이 버럭 외쳤다.

“나가라니까!”

“내가 나간다고 안 죽일 것도 아니잖아요?”

석주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꾸했다. 상황에 맞지 않게 태연한 목소리였다. 나가 봤자 죽일 거면서 뭐 하러 나가라고 하느냐는, 언뜻 당연하게 들리는 물음이었다. 형이 살짝 움칫했다.

“죽여 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던데? 멀리서도 다 들렸어요.”

정말로 정원과 형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형은 아주 짧은 순간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짧은 빈틈만으로도 충분했다.

석주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천장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낡은 조명이 그대로 뚝, 형의 머리 위를 향해 떨어졌다. 조명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형은 와장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문 밖에서 엉금엉금 기어온 알렉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안 돼, 윤!”

“안 죽었어요. 시끄럽네.”

시큰둥하게 중얼거린 석주가 알렉스의 어깨를 꾹 밟았다. 다시 비명을 지른 알렉스 역시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 축 늘어졌다.

정원은 제 뒤에 쓰러진 형을 돌아보지도 못한 채 석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 정원을 마주 보고 있었다. 정원이 간신히 입을 열어 물었다.

“여긴…… 여긴 왜.”

더듬거리는 목소리를 들은 석주가 가만히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대꾸했다.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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