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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8화 (18/281)

◈18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12)

“그으, 그렇게 열렬하게 쳐다보시면 부끄러운데…….”

“뭐야?”

2황자가 황당해하는 사이 좋은 생각이 났다.

기왕 이 남자가 이상한 오해를 한 김에 그냥 이 아무말 컨셉을 유지하면 어떨까? 그러면 이 황자님도 나에게 아예 질려 버리지 않을까!

“……황자님이 너무 잘생기셔서, 그만! 죄송합니다!”

나는 2황자가 질리다 못해 화를 내기 전에 잽싸게 말을 이었다.

“어쨌든 저도 황녀님과 대화를 나누기란 절대 쉽지 않았어요. 처음엔 무려 암살자로 오해받은걸요.”

“허…….”

2황자가 이마를 짚었다. 뭔가 짐작 가는 게 있는 듯,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도 그런…… 아니. 후.”

나는 끊긴 뒷말에 집중했다. 반 이상이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지만, ‘아직도 그런 오해를 하고…….’라며 중얼거리는 것까지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 대충 알 만하군.”

“어…… 더는 안 물어보시나요?”

“오해가 풀렸으니 그 애가 얌전히 대화를 나눈 거겠지.”

“그, 황자님께선…… 오해가 쉽게 풀렸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당연한 것 아닌가?”

2황자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내 여동생은 아주 순진하고 착하다. 사람을 너무 쉽게 믿어서 탈이지.”

“네, 순진…… 예?”

뭐라구요?

“가끔 누가 사탕이라도 준다고 하면 그대로 따라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날파리가 꼬이지 않아야 할 텐데.”

2황자의 잘생긴 얼굴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어, 음, 네, 그 확실히…… 음, 순진. 착하고 그, 어 순수해 보이셨죠…….”

외모만큼은. 아니, 외모만.

사탕을 주면서 꼬드기는 사람을 바로 척살할 것 같이 살벌한 성격이시지만 말이죠.

딸랑이의 위력을 몸소 체험했던 나는 그 살 떨리는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 침이 바싹 말랐다.

“당연한 이야기를.”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올라갔어요.]

허어?

“아, 네! 확실히 너무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우셨죠. 머리카락은 꼭 눈꽃 같았어요!”

“당연한 이야기를.”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올라갔어요!]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현재 호감도 : -3]

이거 보게?

“눈동자는 보석 같았고요. 그 눈동자에 건배, 아니, 아니. 아무튼 그런 아름다운 눈을 어디서 봤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2황자님이랑 비슷했던 거였네요!”

“내 눈과 동생의 눈은 색이 다른데 무슨 소릴 하는 건가?”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올라갔어요!]

이봐, 하늘색 아기 고양이, 너 지금 속으로 좋아하는 거 다 보이거든? 까칠한 얼굴 해 봐야 소용없어.

“아하, 볼수록 황녀님과 2황자님이 닮으셨네요. 색이 같다고 착각했을 만큼요!”

“……계속 쓸데없는 소릴 하는군.”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올라갔어요!]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현재 호감도 : 0]

와, 드디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마이너스를 벗어났다.

감격 어린 눈으로 요정의 창을 보는데, 머리 위에서 헛기침이 들려왔다. 고개를 든 나는 입을 살짝 벌렸다.

“크흠, 내, 내 앞에서 여동생 얘기는 금물이란 얘길 듣지 못했나?”

2황자가 입술에 손을 얹고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중요한 건 이 어둑한 복도를 비추는 달빛 아래 이 남자의 살짝 붉어진 목덜미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뭐람. 장관이네요. 절경이고요. 신이 주신 선물이네요.

“황자님, 지금 막 저한테 비가 내린 것 같아요.”

“비? 무슨 소리지?”

“심장마비요.”

“……?”

[이런,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대폭 내려갔어요! ━Σ(゚Д゚|||)━]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현재 호감도 : -10]

아, 저 잠깐만, 잠깐만요!

“농담이었어요. 아, 아니, 황녀님을 생각하니 심장마비가 온 것처럼 설레더라구요. 너무나도 사랑스러우시니 말이에요.”

“그런 말은 이제 지겹군.”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가 자신이 착각했다고 느꼈어요.]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3초 전으로 돌아갑니다!]

와 씨, 다행이다. 다시는 추잡한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고객님.

내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 사이, 2황자의 표정이 한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동생의 사랑스러움을 오늘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되었을 테지만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황녀를 선보이려던 자리는 무산되었겠지.’

아기 황녀님이 연회장이 아닌 본인의 궁으로 돌아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일 때문에 황제가 화를 낼까? 좀 걱정되었다.

어느새 우리는 문에 다다라 있었다. 2황자가 고갯짓으로 문을 가리켰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느슨해진 황자의 눈이 나를 향했다.

“그나저나 영애.”

차갑고 까칠하게 벼려졌으나, 동시에 어딘가 나른하게 들리는 목소리였다.

“내 진명은 기억했나?”

그 순간 내가 지금껏 어떤 커다란 문제를 잊고 있었는지 떠올랐다. 그래, 내가 이 남자를 피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지.

“아, 저. 그…….”

아니, 달린아, 잊을 게 따로 있지! 이걸 잊냐? 나 진짜 새대가리가 맞나 봐.

다행히 리제가 인사법을 알려주었던 게 기억났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차, 창공의 날개에 안식의 숨결을…….”

“날개에 앉은 숨이 그대의 심장에 깃들길.”

2황자가 처음으로 피식 웃었다.

“남들에겐 당연한 예의인데, 그대에게는 그 당연한 인사 한번 듣기 참 어렵군.”

그으, 죄송한데, 잘생긴 황자 전하. 그 뒤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어쩐지 당연히 뭔가 더 있을 거란 시선에 내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어떡하지? 이름은 모르는데.’

나는 입술만 달싹거렸다.

침묵이 길어지자, 2황자의 얼굴이 시시각각 굳어 갔다.

이제는 섬찟함마저 느껴졌다.

“황실 모독죄 최장기 복역 기간은 17년이긴 한데…….”

진명이 정말 중요한 거였구나. 내 이마에서 식은땀이 더욱 흐르는 느낌이다.

뚝.

……어? 착각이 아니었나 본데.

그 순간 2황자의 표정이 묘해졌다.

“영애?”

나는 무어라 말했다. 아니, 말했다고 생각했다. 대답했다고 생각했는데…….

입술에서 축축한 게 느껴진다. 아, 뭐야. 설마 침 흘린 거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지.

그런데 침을 흘렸는데 왜 시야가 흐릿해지지.

[경고! 빙의자 님의 몸이 갑작스럽게 변한 건강 수치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상태 이상 [기절]에 돌입해요! .·´¯`(>▂<)´¯`·. ※남은 시간: 10:00]

투두둑. 바닥에 떨어진 것이 흐릿하게나마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도 검붉게 빛나는 저것은……. 엄마야, 이거 피 아냐?

아니, 왜? 나 퀘스트 성공했잖아! 메인 퀘스트도 새로 받았잖아!

[‘주인공(아기 황녀)’을 쫓느라 너무 많은 체력을 소진했어요. ಡ︷ಡ)]

[이후 급격하게 오른 건강 수치에 몸이 적응하지 못했어요.]

[요정은 급격한 수치에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요!]

이런 뭐, 씨!

그러나 이 종잇장 같은 몸을 원망할 새도 없이 휘청거렸다.

“영애!”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2황자님도 놀랐겠네.

피를 쏟은 건 아마도 건강 수치 부적응에 따른 부작용인 듯했다.

“저, 쿨럭, 죄송한데 황자님,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무, 물러나게 해 주세요…….”

“지금 영애는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음, 왜 화를 내지? 아, 화를 낼 만하지. 아직 인사도 마무리 짓지 못했고, 음…… 이런, 생각도 느려지는구나.

[상태 이상 [기절]에 돌입해요! .·´¯`(>▂<)´¯`·. ※남은 시간: 8:47]

8분 안에 누굴 찾아야 하지. 아, 리제나 파올로를 찾자. 그래…….

“참, 그대는 미련하게도 구는군.”

그 순간 몸이 번쩍 들렸다. 눈앞이 휙휙 움직였다. 고개를 드니 잘생긴 목젖과 날카로운 턱선이 보였다. 음, 턱선도 죽이네.

“달린!”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눈앞에 내 얼굴과 비슷하게 생긴 얼굴이 아른거렸다.

파올로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놓인 걸까.

“아, 파올로, 나 집…….”

이 말과 함께 나는 기절했다.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호감도가 올라갔어요!]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의 현재 호감도 : 1]

[등장인물 ‘2황자(둘째 오빠)’이 빙의자 님께 #$을……]

눈앞에 우르르 뜨는 메시지를 읽을 틈도 없이 시야가 암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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