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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28화 (28/281)

◈28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22)

저게 3황자인가?

나이는 일곱 살, 아니 여덞 살 정도로 보인다. 다시 말해 이쪽도 어린애란 소리다.

……저 몸으로 이만한 돌을 던졌다고? 나는 돌 크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놀랐다.

아무래도 저 3황자님도 뭔가 특별한 힘을 가진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큰 돌을 던질 수가 없을 테니.

“음, 창공의 날개에 안식의…….”

“야!”

아무리 어린애라도 황족은 황족이니 제대로 인사를 해야겠다 싶어서 입을 열었는데, 내 노력이 무참히 씹혔다.

꼬마 3황자님은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창문틀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래빗을 맹렬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너 뭐야! 뭐냐고!”

“음, 저기 황자님…….”

“말이 다르잖아!”

내 말은 한 번 더 꼬깃꼬깃 접혀 씹혀 버리고, 래빗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꼬마 3황자님을 보고 있고.

“네 궁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며!”

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홱 고개를 돌려 래빗 쪽을 보았다. 래빗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나는 두 아이를 유심히 보다가 꼬마 3황자님에게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3황자의 조그만 손은 흙투성이였고 앙증맞은 들꽃을 꼭 쥐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에게 주려고 꺾기라도 한 듯이.

오호라, 이제야 상황이 조금 이해됐다.

그러니까 저 3황자님은 이 궁에 정식으로 출입할 수 없어서 심통이 난 거군?

혹시 그간 황제는 물론 황태자와 2황자도 이 궁에 출입할 수 없었던 건가?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낡고 초라한 이 거처의 모습이나 의복 상태, 시녀들의 만행 등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일단 그들은 아기 황녀님이 어떻게 사는지 보지 못했으니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알지 못했겠지.’

그리고 저 아기 황녀님 성격상 세작이라거나 그림자 기사도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 만남 때 황녀가 2황자 뒤에 있던 그림자 기사의 기척을 알아차렸던 것이 떠올랐다.

이런 정황들로 미루어 나는 이번 일에 대해, 귀여운 아기 3황자님이 자기를 봐 주지 않는 여동생을 향해 부린 작은 심술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마냥 귀엽게 보기엔 저 짱돌의 크기가 상당히 마음에 걸렸지만, 여기까지는 귀엽게 봐 줄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리고 그 시도는 거의 성공할 뻔했다.

다음 순간 들려온 말만 아니었다면.

“야! 말을 막 바꾸냐? XX! XXXX! XXXXXX!”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의 험악한 말이 엄청난 속도로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다. 누가 내 뒤통수를 치면 눈이 톡 굴러떨어질 정도로 크게.

……저기,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죠? 나는 화들짝 놀라 래빗을 쳐다봤다.

아무리 전생을 기억한다지만 래빗은 아기였다. 저런 험한 말은 정서에 좋지 않다! 너, 여동생한테 그런 욕을 하면 쓰냐!

……하고 생각했더랬지.

“X발. 뭐래는 고냐, XX이.”

“……예?”

래빗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심심하다고 쳐들어오지 말래찌. 이 XX가 어디소 뇩이야?”

“으음…….”

그렇지. 욕을 하는 건 잘못됐지, 그래!

“XX! 니가 가르쳐 줬잖아!”

……니가 가르쳤냐?!

“내가 온제 가르쳐써? 말운 바로 해라, 아가야.”

“뭐래는 거야, XX. 니 말버릇 보고 배운 거거든?”

“저기, 황녀님, 황자님?”

“가눈 말이 고와야, 돌아가눈 말도 고운 거지, XX야. 꺼죠. 아가는 상대 안 한댜.”

눈알이 핑글 돌아갈 것 같았다.

하지만 상황파악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니까 먼저 괴롭히기 시작한 건 저 꼬마 3황자님 쪽이고, 아기 황녀님은 참다 참다 험한 말로 응수를 했는데…….

학습력 좋은 3황자님이 냉큼 비속어를 배웠다는 거군!

정리하고 보니 이게 무슨 개판인지 모르겠다. 나는 황당한 얼굴로 조그만 아이 둘을 번갈아 보았다.

이 깜찍하고 예쁜 아이들이 욕을 썼다는 그 자체로 무척 경악스러운 일이긴 했으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주인공’이 ‘클리셰’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발언을 했습니다. 소설이 ‘클리셰’에서 멀어집니다.]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대폭 떨어지고 말았어요! ━Σ(゚Д゚|||)━ 현재 건강 수치: 22]

[건강 수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빠릅니다!]

이 비틀린 세계는 래빗의 아저씨 같은 말투는 허용했지만 욕설까지 봐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처럼 원작에서 멀어지거나 클리셰가 망가질수록 내 건강 수치가 확 떨어진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마다 건강 수치가 떨어졌었는데.

이는 그동안에도 주인공이 계속 클리셰를 깨부수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일 터였다.

어떻게든 이를 막아야 했다!

[서브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퀘스트(서브) - ‘콩가루 집안이지만 화해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주연 ‘3황자(셋째 오빠)’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아기 황녀님은 3황자와의 대화를 원하지 않아요.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혀 티타임을 갖고 대화를 나눠 봅시다!

내용: ‘주인공(아기황녀)’와 ‘3황자(셋째 오빠)’ 가 참석한 티타임 만들고 대화를 나누게 할 것

실패 시, 건강 수치 -15

보상: ‘주인공(아기 황녀)’의 ‘3황자(셋째 오빠)’를 향한 호감도 +5

기한: 1시간]

음, 이번엔 꽤 양호한 패널티가 떴다. 물론 실패할 경우 한동안 시름시름 앓을 것 같지만, 죽지 않는 게 어디야.

거기다 성공했을 때의 보상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잠깐 퀘스트 내용을 읽는 사이에도 아기들의 대화는 계쏙 이어지고 있었다. 으아, 지금 이렇게 멍청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주인공’이 ‘클리셰’에서 벗어난 발언을 반복했습니다. 소설이 ‘클리셰’에서 멀어집니다! o(iДi)o ]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떨어졌어요! 현재 건강 수치: 21]

나는 황급히 아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만, 그만! 모두 그만하세요!”

래빗은 물론이고, 3황자 또한 아직 젖살이 오동통한 어린애였다.

나는 숨을 들이마시다 말고 후, 크게 내쉬었다.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창 쪽으로 성큼 걸어갔다.

“저기요, 황자님.”

“뭐, 뭐야!”

나는 생긋, 예의 바르게 웃었다.

“창틀에 매달려 계시면 위험해요.”

줄곧 신경 쓰이던 점이었다.

3황자가 나를 쳐다보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XX, 뭐라는 거야. 못생긴 게!”

“네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나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대신 황자에게로 손을 뻗었다.

“음, 실례하겠습니다.”

“뭐?”

“그래도 눈앞의 아이가 위험에 처한 걸 보고만 있기는 힘들어서요.”

이게 되려나?

나는 상체만 불쑥 올라온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꼬마 3황자님에게 손을 뻗었다.

“뭐, 뭐야?”

“헉, 바닥에 유리 있어요!”

“어어?”

그리곤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3황자님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무, 무거워!

[갑자기 무거운 걸 들어 올린 충격으로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떨어졌습니다. ಡ︷ಡ) 현재 건강 수치: 18]

나는 금방 후회했다.

생각해 보니 원래 세계의 나였어도 이 정도로 큰 아이를 쉽게 들어 올리진 못했을 것 같았다. 하물며 약해빠진 이 몸이야 말해 무엇하리.

얼굴이 빨개지도록 힘을 줘서 안쪽으로 끌어당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놔, 너 뭐야?! 놓으라고!”

“앗, 가만히 좀 계세요! 움직이면 다쳐요!”

“이익……!”

무엇 때문인지 순간적으로 3황자님의 몸이 가벼워졌다.

문제는 내가 이미 있는 힘껏 힘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중심을 잃은 몸이 기울어졌다.

“윽!”

놓치지 않으려 본능적으로 아이를 끌어안았다. 어딘가 긁히는 느낌이 났지만 결국 3황자를 창문 안쪽으로 들이는 데 성공했다.

대신 볼썽사납게 뒤로 넘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아야야…….”

“으윽, 아파라. 헉! 괜찮으세요, 황자님?”

3황자가 내 배 위에서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아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다 차차 얼굴 전체가 빨갛게 물들었다. 쑥스러움이 아닌 분노 때문이었다.

그 순간 내 시야에 하얀색과 하늘색이 섞인 머리가 나타났다.

“롤린! 괜차느냐?”

“롤린 아니고 달린이라니까요……. 네, 끄응, 괜찮아요.”

“안 갠찬군.”

“네? 괜찮은데?”

래빗의 앙증맞은 손이 한곳을 가리켰다. 내 손등이었다.

“피가 나쟈나.”

“헉, 그러네요?”

손등에는 길게 베인 상처가 보였는데, 그 상처로 피가 아주 철철 흐르고 있었다. 흐르다 못해 드레스에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으음, 이런 건 침 바르면 나아요.”

“어린애햔테나 먹힐 소리 하지 마라.”

“……어리시잖아요?”

래빗이 미간을 찡그리더니 어딘가에서 하얀 손수건을 들고 와서 상처를 덮어 주었다.

그러고는 묶어 주려 했는데, 손아귀 힘이 너무 센 탓에 아팠다. 마나를 이용한 움직임이라나.

“끙, 아파요…….”

“이로케 해야 지혈이 된댜.”

“오히려 피가 안 통해서 큰일이 날 것 같은데요.”

“내가 더 쟐 안다.”

하긴 그렇겠지. 손을 보다 말고 고개를 돌렸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3황자가 움찔했다.

“쓰, 쓸데없는 짓을!”

그러더니 갑자기 발끈해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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