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29)
나를 발견한 2황자가 눈을 크게 떴다.
“의사, 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잘 와따.”
래빗이 침울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빠르게 말했다.
“랄린이 아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된 거냐.”
어라, 3황자가 다 설명하지 않은 건가?
“암살자가 나타났었댜.”
나는 놀란 눈을 하고서 래빗을 보았다.
“나룰 지켜 주려다가 이로케 다친 거댜. 내 거처에는 치료 마법사가 업써.”
숨 가쁘게 쏟아 내는 래빗의 말에서 많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본궁에눈 있게찌, 치료 마법사.”
“알겠다, 바로 부르지.”
쌔액쌔액, 래빗의 숨이 더욱 거칠어졌다.
“꼭 살려야 댄다! 알았느냐!”
래빗이 내 옷자락을 꼬옥 붙들고 나와 2황자를 보았다. 마치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울먹이는 얼굴이었다.
“……네가, 도와죠.”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2황자의 눈이 커졌다.
“알았다.”
2황자가 재빨리 눈짓하자 이를 받은 기사가 황급히 달려갔다.
사실 나는 치료는 됐고 잠이나 실컷 자고 싶었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래빗이 나를 위해서 가족에게 무려 부탁이란 걸 했으니까.
나로 인해서 변한 모습. 지금 눈앞의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래빗은 익숙하지 않은 옷을 입은 사람처럼 더듬더듬 애써 말을 골라 덧붙였다.
“이래소는 롤린을 유모로 보내 쥰 백쟉에게 황실의 면이 소질 않으니까 도와죠야 하는 고다.”
“그런 말을 붙일 필요는 없어.”
2황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도와달라는 한마디면 충분해.”
“왜?”
그러자 2황자가 정말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넌 내 동생이잖아.”
동시에 살랑, 바람이 불었다.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소원했다.”
하늘색 솜사탕 같은 머리 아래로 왜인지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래빗의 얼굴을 본 것도 같았다.
[‘주인공(아기 황녀)’의 ‘2황자(둘째 오빠)’에게 가진 호감도 +50!]
[대단한 성과로 추가 보상을 받습니다! 건강 수치 +7 현재 건강 수치: 25]
[메인 퀘스트(메인) - ‘아기 황녀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자!’의 ‘2황자(둘째 오빠)’ 조건 달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호감도 90 이상 달성)]
* * *
“하아…….”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무려 세 쌍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나를 향했다.
“아푼가?”
“뭐야, 아파서 저래?”
“……아픈 건가, 영애?”
차례대로 래빗, 꼬마 3황자님, 2황자였다. 나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뇨, 아뇨. 숨이 조금 차서…….”
“안교 있눈데 숨이 차단 마린가?”
“아, 제가 호흡기가 좋지 않아서요.”
나는 래빗의 뾰족한 시선이 2황자를 향하는 것을 보자마자 잽싸게 대답했다.
“아니, 아니, 아프다는 게 아니라, 어, 안 아픕니다!”
“…….”
“다 나았네! 쿨럭쿨럭!”
“…….”
젠장, 당황해서 말이 이상하게 나왔다.
안 그래도 지금 내가 왜 이 사람한테 안겨서 가는 건지 모르겠는데!
[스킬 지속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시간: 5:58]
남은 스킬 지속시간을 보고 한숨을 쉰 거라고! 그냥 날 집에 보내 줘! 보내 달라고!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2황자님의 감동적인 한마디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마법사가 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직접 나를 옮겨 주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나를 안아서!
사실 이건 래빗이 요청한 거기도 했다.
“뎨일 쎈 놈이 안아야 한다!”
“그럼 나군.”
2황자는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안았지만, 그보다는 아기 황녀님에게 부탁받아 뿌듯한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보란 듯이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나를 안았으니까.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은 황성에 거주하던 최고 치료 마법사가 후작가의 요청으로 출타한 참이었다.
지금 급히 달려오는 중이라고 해서 일단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나.
“이바, 뎨대로 안은 게 맞눈 곤가?”
“나는 이봐가 아니라 네 오빠다.”
“돼꼬, 대댭이나 해.”
“넌…… 아니다. 보면 모르겠나? 제대로 안고 있어.”
“그론데 랄린이 왜 기침울 해!”
조금 전에 2황자를 향한 아기 황녀님의 호감도가 대폭 올랐다.
거부하지 않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체가 호감도가 올랐단 증거였다.
“나 참, 그럼 영애에게 직접 묻지. 영애, 불편했나?”
“네? 네?”
“랄린, 괜차느냐? 불푠하면 조굼 약하기는 해도 더 튼실한 놈울 붙여 주…….”
“아, 아뇨! 아뇨! 저 괜찮아요! 진짜 폐가 약해서 그래요! 아니지, 다 나은 것 같아요! 아하하하!”
서늘해지는 2황자의 눈초리가 무서워서 잽싸게 외쳤다.
“들었지? 나는 잘 안고 있으니, 넌 그만 궁으로 돌아가.”
“실타. 같이 갈 고다.”
“그럼 너도 안기던가.”
“난 나보다 약한 눔에게 안기지 안눈다.”
“네 느린 걸음 때문에 영애의 치료가 지체되고 있다 해도?”
“…….”
“아, 저 황녀님! 2황자님은 걱정되시는 거예요. 지금 황녀님이 계속 같이 걷고 계시잖아요.”
나는 얼른 끼어들었다.
아이, 2황자 이 사람 왜 이렇게 서툴게 지껄이는 거야! 기껏 얻은 호감도 다 날아가게!
“혹시라도 황녀님이 힘드실까 봐 걱정하신 거죠! 그렇죠, 2황자님?”
빨리 그렇다고 해, 빨리!
내 시선을 알아챈 건지, 2황자가 찡그리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맞다. 넌 다리가 짧다.”
이봐요, 사족은 붙이지 말고!
다행히 래빗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대신 아주 잠깐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넌 염려룰 이상하게 하눈군.”
[‘2황자’를 향한 ‘주인공(아기 황녀)’의 호감도가 소폭 오릅니다!]
“하지만 나도 갈 고다. 내 체룍은 나뿌지 않아.”
“맞아요, 대단하시죠. 그래도 저는 걱정 돼요. 제가 지켜 드리지 못하니까요.”
“나눈 네가 지켜 주지 안아도 대.”
“알죠, 그래도 제 마음이 그래요.”
나는 2황자에게 안긴 채로 불편하게 얼굴을 돌려 시선을 마주하곤 방긋 웃었다.
“황녀님을 좋아하니까요.”
그러자 래빗은 한참 말이 없더니 별안간 자기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는 문질렀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꾹 참으려 했던 걸까. 눈이 그렁그렁했다.
“곤강하게 돌아와.”
“네.”
“또 올 고지?”
“물론이죠.”
이미 내가 피를 토한 걸로 래빗이 얼마나 놀랐는지 눈으로 확인한 이상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그리고 슬슬 의식이 가물가물해져서 아기 황녀님에게 기절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기도 했고…….
“그럼 황녀님, 안녕히 쿨럭!”
“랄린?”
“아…….”
[스킬이 종료됩니다. 상태 이상 [기절]에 빠집니다! (⸝⸝⸝ᵒ̴̶̷̥́ ⌑ ᵒ̴̶̷̣̥̀⸝⸝⸝) ]
아이 씨, 약한 모습 보이기 싫다니까. 또 이렇게 되네.
나는 속으로 욕을 지껄이며 꺼져 가는 시야를 인식했다. 곧 눈앞이 암전됐다.
* * *
달린의 손가락이 툭 떨어지는 순간 래빗의 숨이 멈췄다.
래빗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덜덜 떨었다. 이를 눈치챈 2황자 라이칸이 재빠르게 말했다.
“기절한 거다.”
“……아라.”
아는 것 같지 않은데. 라이칸이 불안한 눈으로 제 여동생을 보았다.
지금까지 쥐죽은 듯 침묵하던 3황자 루이프가 형의 눈치를 봤다.
“암살자에게 쫓겼다고 했지. 전투도 있었고.”
“…….”
“거기다 피를 꽤 흘렸으니 피로할 만도 할 거다. 큰 문제는 없을 테니 걱정 마라.”
그렇게 이야기하고서 2황자는 여동생을 보았다.
그가 아는 유엘 래빗 비센은 특이한 아이였다.
독특한 말투는 물론이고, 일찍이 각성한 신성한 힘이 몹시도 강해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영리함을 보이기도 하였다.
긴 역사 동안 이런 존재가 드물긴 해도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유엘은 그중에서도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러나 여동생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경계가 지독하리만치 심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그림자 기사를 잠입시켜도 어린 황녀는 거짓말처럼 알아차렸다. 황제조차도 아이의 거처에 출입하는 건 불가했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가족들은 하나둘씩 그녀와 가까워지기를 포기했다.
“형, 쟤는 우리가 다 싫은 거잖아! 맞지?!”
가장 어린 3황자가 첫 시작이었고,
“뭐, 본인이 원하지 않으니 그렇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니? 난 의심스럽긴 하다만은.”
형인 황태자가 두 번째였으며,
“황녀의 거처에서 기사를 모두 물려라.”
다음은 황제였다.
마지막이 2황자 라이칸 자신이었다.
여러 사건을 통해, 또 각자의 생각이 달라, 가족들은 래빗에게 접근하는 걸 체념하고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포기였다.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 관계.
영원히 이 상태가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랬던 아이, 피가 섞인 가족을 외면할 정도로 경계심이 강했던 아이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을 주었다.
그것도 고작해야 일주일이나 보았을까 싶은 젊은 영애에게.
라이칸은 이 상황이 기이했고, 이해할 수 없었으며, 한편으로는…….
달린에게 고마웠다.
적어도 세상과 영원히 단절되고 싶어 보였던 제 여동생이 드디어 누군가를 받아들인 것 같았으니까.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