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35)
꼬마 3황자님은 창문을 벌컥 열고 날 듯이 들어오며 멋진 착지를 보여주었다.
1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 싶은 멋진 착지였지만 꼬마 3황자님의 얼굴은 매우 험악했다.
“야, 여기 있었냐? 아니, 그보다 내가 이상한 걸 들었는데…… 어, 영애도 있었나?”
“창공의…….”
“됐어, 됐어. 나 그 인사 별로야.”
완전 감사합니다. 저도 마침 황자님 진명을 모르던 참이었거든요.
나, 이 꼬마 3황자님이 좀 좋아졌어.
“창뮨으로 드나들지 마라, 누가 허락해찌?”
“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영애, 너도 들어봐.”
“창문으로 드나드시면 안 돼요, 3황자님.”
“뭐야, 영애까지!”
“황녀님이 암살자로 오해하시면 어떡해요.”
“…….”
그러자 꼬마 3황자님이 잠시 사색이 됐다. 그러다 홀로 켈록 헛기침을 했다.
“뭐, 다음엔 고려해 보겠어.”
“고려는 무슨 고려냐, 오디 마.”
“야야, 그러지 말고 들어봐. 내가 네 거처로 가는 무기들을 봤는데…… 어?”
래빗의 말에 찔끔 눈치를 보던 꼬마 황자님이 말을 잇다 말고 갑자기 멈칫했다. 이제야 이 방 한가득 쌓인 물건들을 본 모양이었다.
“너 무슨 전쟁 준비하냐?”
“호들갑운.”
“칫, 뭐 그,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많긴 많잖아! 안 그렇냐고, 영애?”
“음……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물으신 거라면, 그렇긴 하죠?”
“봐!”
그러나 래빗은 전혀 타격받지 않은 낯으로 심드렁하게 ‘그래서 뭐?’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우리 조금 친해진 줄 알았는데…….”
그러자 꼬마 황자님이 밥그릇 빼앗긴 강아지처럼 조금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그날, 저 영애 기절하던 날에 나랑 같이 돌아가 놓고. 나한테 마법 써 달라 해서 거처로 돌아갔잖아.”
아, 정황상 내가 기절했을 때 꼬마 황자님이 래빗을 둥실 띄워서 데려간 것 같은데.
아 직접 봤으면 진짜 귀여웠겠다. 둘 다 강아지처럼 앙증맞고 사랑스러웠으니까.
난 3황자를 좀 도와주기로 했다. 래빗의 호감도를 올리기도 해야 했으니까.
“황자님, 황자님. 들어보세요.”
“뭐야, 영애…….”
나는 래빗에게 하듯이 눈높이를 맞추고 3황자 귓가에 소곤소곤 속닥였다.
“친해진 건 맞는 것 같은데요? 지금 황녀님 방에 허락 없이 들어오셨는데도 그냥 계시잖아요.”
“어……?”
사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래빗은 이 이야기도 전부 듣고 있을 거였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걸 보면 호감도가 많이 올랐단 소리.
좋은 신호다.
“황녀님이 침입자에게 얼마나 가차 없으신는지는 황자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어? 뭐, 뭐어. 그건 그, 그렇지. 아니, 난 몰라!”
“네네. 그리고 여기 있는 검들은 황녀님이 갖고 싶다고 하셔서 가져오게 된 것들이에요. 어때요, 예쁘죠?”
자, 꼬마 황자님 네가 할 말이 뭔지 알겠지? 다행히 눈치가 없진 않은지 3황자님이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주 예쁘군……? 아니, 예쁘다!”
“그죠, 그죠. 래빗 황녀님, 들으셨죠? 3황자님도 이 검들이 좋으시대요.”
“보눈 눈이 있군.”
[‘주인공(아기 황녀)’이 ‘3황자(셋째 오빠)’에게 가진 호감도가 3 오릅니다!]
‘퀘스트 창, 3황자를 향한 호감도만 보여줘.’
[퀘스트(메인) - ‘아기 황녀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자!’
내용: 100일 내로 황가 사람들의 호감도를 90 이상 달성
진행 상황:
4. 3황자 : 30 / 90 ]
‘흐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난 손뼉을 짝 쳤다.
“래빗 황녀님, 머리 묶어 드릴까요?”
“모리? 갑자기?”
“네, 그 검들 시험해 보실 거면 머리카락이 신경 쓰일 것 같은데, 제가 묶어 드릴게요. 대신 리본은 직접 골라 주세요!”
래빗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머리 장식이 담겨 있는 서랍 쪽으로 갔다.
커다란 만두같이 오동통한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불쑥 시야로 고개를 내밀었다.
“영애, 지금 뭐라고 부른 거야?”
“네?”
“내 동생, 뭐라고 부른 거냐고.”
꼬마 황자님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아, 래빗…… 황녀님이요?”
꼬마 황자님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를 휙 잡아당겼다.
“귀 좀 대 봐!”
순순히 앉아 주었더니 조그만 황자님이 나를 붙잡고 속삭였다.
“불러.”
“네?”
“부르라고. 내 이름도.”
말이 ‘속삭였다’지 조금 협박 같군요?
약간 험악한 표정의 아기 고양이가 빤히 쳐다보며 ‘날 키워라, 인간’이라며 압박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 3황자님은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
“나도 노아.”
“네? 중간이름은…….”
“쟤는 불러 주잖아!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불러!”
무슨 그런 억지가 있나 싶지만, 상대는 어린애인 데다 황자님이었으니.
‘보아하니 중간이름은 아주 친밀한 사이에서만 부른다는 걸 모르진 않는 것 같은데.’
3황자 노아가 잠시 망설이다가 눈처럼 새하얗던 뺨을 장미처럼 빨갛게 물들였다.
“너랑, 친해지면…… 쟤랑도 친해질 수 있을 거잖아.”
아.
“도, 도와준다며…….”
나는 터질 것 같은 노아의 뺨을 보며, ‘저기, 지금 하시는 말들, 우리 래빗 황녀님에게 다 들릴 거예요……’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주인공(아기 황녀)’이 ‘3황자(셋째 오빠)’에게 가진 호감도가 5 오릅니다!]
래빗, 너도 좀 귀엽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호감도가 오른 거지?
“왜 대답이 없어?”
이미 도와주기로 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잠시도 기다리기 힘들었나 보다.
“지금 나 무시했어? 어?”
“아뇨, 아뇨아뇨.”
“그럼 뭐야, 왜 대답 안 해?”
“아, 아뇨 제겐 어렵지 않은데, 황자님께선 괜찮으실까 했죠. 그도 그럴 게 중간이름은 특별하잖아요……?”
“불러!”
“예.”
묘한 박력에 나는 고개를 일단 끄덕이고 봤다. 그러자 노아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끌어 올려졌다.
“영애, 영애도 불러 줘? 이름이 뭐랬지? 롤린?”
“달린입니다.”
“근데 왜 쟨 롤린이라 그래?”
그러게요.
“애칭인 거지? 그럼 나도 그렇게 부를게.”
……아닌데요.
“일단 잘 들어 봐. 네가 쟤랑, 그, 그러니까 내 동생이랑 같이 놀 수 있게 도와주기로 했잖아. 그럼 빨리 뭐라도 좀 해 봐.”
노아가 으름장을 놓았다. 내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면서.
누가 들으면 두 사람을 친해지게 만들지 못하면 나를 사형시키겠다는 황명이라도 내려온 줄 알겠다.
난 속으로 웃음을 꾹 참았다. 그도 그럴 게, 일단 말은 세게 했지만 마지막에는 슬쩍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듣고 있지, 영애?”
“네에.”
“고,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야!”
“앗 깜짝이야. 네?”
래빗이 세 걸음 다가올 즈음 노아가 소리를 높였다.
“넌 너무 약하니까 앞으로 내가 지켜 주겠다고! 겨우 암살자 몇 명 상대했다고 피까지 토하고 기절하는 걸 보면, 움직이는 게 몸에 안 맞는 거야, 그렇지?”
뭐, 그렇긴 하지? 원래 활발히 움직이던 몸이 아니니까.
그런데 암살자 여럿을 상대로 내가 버텼던 건 ‘겨우 한 일’ 정도로 퉁치는 거야? 힘을 빌려준 엠버넷 씨가 울겠네.
“너는 갓 태어난 카나리아 같은 거지, 잘 알았다! 이 몸이 도와주는 대가로 잘 지켜주겠어.”
아니, 이 남매는 왜 갓 태어난 존재를 이렇게 좋아하는 거지.
“롤린.”
“아, 황녀님, 고르셨어요?”
래빗이 푸른 공단 리본을 건네면서 끄덕였다. 푸른 바다처럼 청명한 색이었다. 좋다. 우리 황녀님은 뭘 가져다 대도 잘 어울릴 거야. 어느새 난 육아물 속 극성맞은 유모의 심정이 되어 고개를 주억였다.
“제 앞에 앉으세요, 바로 묶어 드릴게요. 오, 빗까지 가져오셨네요?”
“무순 얘기했어, 쟤랑?”
래빗이 나와 노아 황자를 번갈아 보았다. 이미 들었을 텐데 굳이 물어보는 걸 보면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아, 노아 황자님이 작은 부탁을 하나 하셨는데, 제가 들어드리면 대신 저를 지켜 주신대요.”
“흐응?”
래빗의 말간 눈이 노아를 향했다.
[‘주인공(아기 황녀)’이 ‘3황자(셋째 오빠)’에게 가진 호감도가 5 오릅니다!]
“무슨 부탁을 했눈뎨?”
“뭐? 그건 비……!”
“아, 중간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하셨어요.”
“……밀 콜록! 콜록, 크흠흠, 맞아!”
“같이 차를 마셨더니 저를 친근하게 여겨 주셨나 봐요,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사근사근 웃으며 말했다. 사실 내가 도와주기로 한 거지만 래빗도 들었을 테니 괜찮다.
“그걸 부탁이라 했다고? 지켜 주는 게 더 큰 대가 같운데.”
“그, 그건! 롤린 저 영애가 너무 약해서다! 어렸을 때 길렀던 카나리아보다도 약하던데!”
……저, 노아 황자님. 당신은 지금도 어리신데요?
“그건 옳은 먈이꾼.”
“그렇지?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지? 심지어 나 가르치러 온 마탑의 영감네 뽀삐보다 약해.”
“뽀삐는 모지?”
“10년 된 노견이야.”
“의견이 일치하눈군. 너 좀 마움에 드눈데.”
[‘주인공(아기 황녀)’이 ‘3황자(셋째 오빠)’에게 가진 호감도가 5 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