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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43화 (43/281)

◈43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37)

솔직히 3황자를 달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래빗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문제지.

그리고 사실 이제 많이 건강해진 상태라 퀘스트 한 번쯤 실패해도 큰 상관은 없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는 태어나 실컷 울어 본 적이 있을까?

그래서 억지란 걸 알면서도 나는 울상을 지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저는 황녀님의 유모여서 다른 아이까지 달래주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이대로 황자님이 돌아가셔서 저에 대해 나쁘게 고하면…… 음, 최악의 경우엔 잘릴지도…….”

“엥, 누구 맘댸로!”

“하지만 황제 폐하의 명령은 절대적이니까…… 걱정이에요.”

귀를 웽웽 울리는 울음소리는 우렁찼다. 래빗이 나를 빤히 보더니 내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울기만 하묜 돼?”

나는 울상을 한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냔 저놈처럼 울어본 뎍이 없어.”

“폐하, 황녀로서도 곧 제왕학을 배우실 테지요. 제왕학의 목적은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고, 이를 위해 제왕은 먼저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알아야 하니, 자유자재로 눈물을 흘리는 정도야 껌, 아니, 빵 씹는 것만큼 쉽지 않겠어요?”

[스킬 ‘사기꾼의 혀(lv.1)’가 활성화됩니다!]

“좀 친해졌긴 해도 사실 셋째 오라버니가 성가시고 왜 저러는지 이해도 안 되죠?”

“…….”

“어쩌면 말 잘 듣는 부하로 만들 기회일 수도 있어요. 제 말대로 한번 해 보세요. 저쪽이 꼼짝없이 항복할 주문을 알려 드릴게요.”

[스킬 ‘사기꾼의 혀(lv.1)’의 레벨이 올랐어요! lv.1 -> lv.2]

“너 지굼 사기꾼 같다.”

조금 전 꺾였던 손목이 지그시 아팠지만, 꾹 눌러 참으며 활짝 웃었다.

래빗이 고개를 돌리더니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그대로 내 옷자락을 꾹 쥔 채로 노아 쪽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눈에서 핑 눈물이 돌기 시작했다. 절로 래빗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흐끅.”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감탄했다.

자세히 보면 눈을 오래 감지 않아 생리작용으로 눈물이 도는 것 같았지만 얼핏 봐서는 그럴싸했기 때문이었다.

래빗은 더욱 얼굴을 찡그리더니, 마침내 마지막까지 품고 있던 망설임마저 버렸다.

그 순간 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래빗의 얼굴이 정말 처음으로, 100퍼센트 아기의 표정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주 서러운 아기처럼 보였다.

“흡.”

찹쌀떡 같은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흐어어어어엉!”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니 새로 산 아이스크림을 막 바닥에 떨어트린 아이처럼 하얗게 질려 사색이 된 노아의 얼굴이 보였다. 어느새 울음도 그친 채였다.

“왜, 왜, 뭐, 넌 왜 우는데!”

“3황자님 때문이에요……. 황자님께서는 약자를 존중한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황녀님 눈물만 뺄 순 없지, 나는 함께 눈물을 그렁그렁한 얼굴로 노아 황자를 쳐다봤다.

“황녀님께서는 황자님 때문에 제가 다쳤다고 생각해서 우시는 거예요…….”

그렇지! 본래 육아물의 주인공은 눈물로 인간과 세상을 조종한다고 했나? 여기선 유모가 같이 울어 주겠다 이거야!

“흐흡, 거기다 황녀님께선 본인도 아프시다고…… 흑!”

손바닥에 얼굴을 묻으며 슬쩍 손가락 사이로 3황자의 반응을 훑었다. 이렇게 된 거 저 황자님 버릇도 좀 고쳐 드려야지. 사람을 그렇게 쉽게 때리면 쓰나.

그렇게 방 안 가득 어른 하나와 아기 하나의 울음이 겹쳤다.

그런데 웬걸, 그 순간 아주 가냘픈 소리가 들렸다. 마치 처음 어리광을 부리는 것처럼 아주 어설프고 어색한 투정이었다.

“너, 싫타.”

“아…… 아니, 난…….”

“싫타고!”

래빗의 울음 섞인 외침에 노아가 세상을 다 잃은 듯 충격 받은 표정을 지었다.

“나가!”

노아 황자의 표정에 더욱 큰 충격과 균열이 일었다. 그가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시, 싫어. 싫어. 내,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나는 슬쩍 눈물을 멈추고서 슬그머니 나섰다.

“미안해애. 끅, 싫어, 나 쫓아내지마, 흡! 흐허어엉엉!”

“황자님……. 잘못하셨죠?”

노아 황자가 울먹이면서 마구 끄덕였다.

“마법으로 사람 때리면 돼요, 안 돼요?”

“흡, 아, 안 돼!”

“또…… 그러실 거예요?”

“아, 아니, 끕, 흐엉, 안 할게!”

“앞으로 황녀님 말씀 잘 들으실 거예요?”

“들을게, 다 들을게! 쫓아내지 마, 흐끅. 흐어어엉.”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의도한 바이긴 했지만 노아가 정말 서럽게 운 탓에 더 뭐라 하기도 애매했다.

“황녀님, 그렇다는데 어쩔까요?”

여기서 래빗이 계속 싫다고 하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지.

래빗은 망설이더니 내 옷자락을 놓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

“말 잘 둘울 고냐?”

노아가 눈물을 잔뜩 머금고 마구 끄덕였다.

“끕, 끄흡, 내 마, 마나에도 걸게! 어기면 마나 몽땅 잃을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빛이 흘러나왔고, 노아 황자는 이후에야 조금씩 눈물을 그치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그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이뎨 그만 그쳐라. 귀 아파.”

“응, 응, 나, 안 미워할 거지?”

노아가 꿇어앉은 채 눈물범벅인 얼굴로 울먹였다. 래빗은 천천히 끄덕였다.

그런데 문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래빗이 아직도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단 점이었다.

“롤린, 이댱하다. 왜, 이게 왜 안 그쳐지눈 고지?”

그러게요. 왜 아직 울고 계신 거죠?

사실 나는 래빗이 억지로 우는 것보다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게 더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난 래빗을 가만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가끔은 우세요. 그게 더 좋을 때도 있어요.”

내 말에 당황으로 일그러지는 래빗의 얼굴을 보는 건 생각보다 퍽 유쾌했다.

“그냥 울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잖아요?”

“난…….”

내 눈을 툭툭 두드리며 말하자 래빗이 입을 꾹 다물었다.

‘태어나고 3년간은 이렇게 운 적이 없겠지.’

생각을 숨기며 생긋 웃었다. 그리고 래빗을 향해 팔을 뻗었다.

“황자님의 행동이 이해 안 되셨죠?”

“…….”

“어린아이란 존재가 그래요. 어른과는 달라요. 가끔은 이해할 수도 없고.”

래빗이 내게 이끌려왔다.

“지금 황녀님이 그런 존재인 거예요.”

조그만 아기의 몸은 따끈따끈했다.

이어서 나는 아직도 마찬가지로 히끅거리는 노아 황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노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가오며 “나, 나도 안아줘.” 하고 작게 속삭였다.

“약해 보인댜.”

“네. 어쩔 수 없이 미숙하지만 이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말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또 사랑스럽죠.”

마치 울음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표정같이 말이다. 당신이라고 서러움이 없었을까.

커다란 두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떨어진다. 래빗은 날 노려보면서도 끝내 울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처움부터 요기까지 생각한 고냐?”

“설마요.”

나는 이것으로 래빗이 이번 생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으며, 이제 두 걸음쯤 뗐다고 느꼈다.

아니라고 했음에도 래빗은 계속 나를 노려봤다.

“……너눈 영악해.”

“감사합니다. 유능한 부하죠.”

난 함께 안긴 노아 황자를 흘끗 보고서 말했다.

“친한 오빠가 생기셔도 가장 좋아하는 부하 0위는 저 시켜 주셔야 해요.”

래빗은 대답 없이 내 품에서 고개를 문질렀다.

“진짜로 미안해…….”

이어서 나온 노아 황자의 사과에 래빗은 마찬가지로 대답 없이 3황자의 옷자락을 한 번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

[빙의자 님이 ‘히든 피스’를 찾았습니다!]

[세상에, 요정은 놀라고 말았어요! (」゜ロ゜)」]

뭐?

[※히든 피스 1. 황녀의 눈물

달성 조건 - 1. 클리셰 1건 달성 2. ‘주인공(아기 황녀)’의 빙의자를 향한 호감도 1회에 50 이상 상승]

[빙의자 님은 보상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ꇴ╹̆˵)◜‧*・

1. 퀘스트(메인) 조건 일부 충족 - 3황자 호감도 달성하기 (90 이상)

2. 건강 수치 +15 증가 ]

이건 말할 것도 없이 1번이지. 메인 퀘스트에는 시간제한이 있다. 건강 수치는 내 노력에 따라 올릴 수 있어.

‘1번을 고르겠어.’

[‘주인공(아기 황녀)’의 ‘3황자(셋째 오빠)’를 향한 호감도가 90을 넘었습니다!]

[퀘스트(메인) - ‘아기 황녀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자!’ 의 조건 달성! (현재 달성도 25%)]

[세계가 원작에 한 발짝 다가갑니다!]

[축하합니다!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오릅니다! 현재 건강 수치: 31]

“흐어…….”

나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드디어! 4분의 1까지 온 건가.

‘히든 피스라.’

이런 게 있었단 말이야? 이걸 이용하면 퀘스트를 더욱 쉽게 깰 수 있단 건데…….

집에 가서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다.

일단은 내 품에서 유치원에 처음 간 아이들처럼 엉엉 우는 아기님들이 울음을 멈추길 기다리자.

* * *

“간댜고?”

어느덧 석양이 뉘엿뉘엿 질 무렵, 나는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네, 이제 돌아가려구요.”

집에 가기 30분 전부터 래빗은 외출하는 주인을 따라다니는 강아지처럼 내 꽁무니를 졸졸 쫓았다. 노아 황자 역시 자기 거처로 돌아가지 않고 쭉 함께였다.

울음을 그친 뒤로는 서로 잘 어울려 놀았다. 노아가 마법으로 로켓 같은 걸 쏘면서 나무를 부수면 래빗이 흥미롭게 쳐다봤다.

그걸 과연 놀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건강 수치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된 거지.

“그으, 롤린.”

“네에. 저는 달린이지만, 네.”

“꼭 가야겠찌?”

“네, 가야 할 것 같은데, 왜요? 여기 더 있을까요?”

“……아니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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