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41)
[와, 요정이 그렇다고 대답해요! ೕ(•̀ㅂ•́ )]
“내가 찾은 것 말고도 조각이 더 있는 거고, 어쩌면 원작 이야기마다 있는 거겠지?”
[요정이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해요.]
와 씨, 질문은 한 번에 하나씩만 하라는 거지?
“내가 찾은 것 말고도 조각이 더 있지?”
[요정이 그렇다고 대답해요!]
“원작마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요정이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⁰▿⁰)◜✧˖°]
“히든 피스에 대한 힌트는?”
요정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요정은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대답해요! ✺◟(∗❛ัᴗ❛ั∗)◞✺ ]
오, 알려 주기 싫다는 소리를 아주 해맑고 짜증나게 대답하는 재주가 있네.
“그럼 됐어.”
일단 히든 피스라는 좋은 정보를 얻은 걸로 됐다.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는 조건은 복잡한 대신 가치가 크다.’
그렇다면 어떡하면 앞으로도 이 히든 피스를 얻을 수 있는 걸까? 주요 인물과의 극적인 관계 변화가 있으면 되는 걸까?
나는 고민하며 글자를 꾹꾹 눌러썼다. 어차피 한글이라 알아볼 사람도 없겠지만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난 뒤엔 없앨 생각이었다.
“다음은…… 이거. ‘나만의 로판’.”
이건 2황자가 내게 ‘내 거처로 가지.’라고 말한 뒤에 뜬 알림창이다.
“새로운 루트는 뭐고, 나만의 로판은 뭐야?”
혹시 이제 이 세계가 내게 작가 노릇까지 시키려는 건가?
이런 미친 세계 같으니. ……하고 욕하고 싶지만, 욕을 하기엔 아직 일러.
“요정, 새로운 루트는 뭐야?”
[요정은 엔딩이 아닌 엔딩을 말한다고 대답해요! ( •⌄• ू )✧]
“엔딩이 아닌 엔딩……. 기존과는 다른 엔딩을 말하는 거야?”
[요정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대답해요!]
즉, 대답해 주기 싫다 이거군.
“그럼 ‘나만의 로판’은 뭔데?”
그 순간 푸른빛이던 요정의 창이 붉게 물들었다.
흠칫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켰을 만큼 불길한 색이었다.
파지직. 붉어진 창에서 똑같은 색의 스파크가 튀었다.
[경고, 빙의자 님에게는 아직 접근 권한이 없는 정보입니다.]
나는 그 문구를 빤히 쳐다보다 “알았어.” 하고 대답하며 얌전히 양손을 들었다.
물론 진짜 승복한 건 아니었다. 전략상 일보 후퇴지.
‘이건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요정의 창은 내가 양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 선언을 한 즉시 푸른색으로 돌아온 뒤였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너흰, 요정은 뭐 하는 존재야?”
어쩌면 이 물음에 또다시 스파크가 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빙의자 님을 돕는 존재, 그리고 당신이 살아남기를 바라는 존재예요.]
[요정은 당신이 생존하길 바라요.]
그 순간 나지막한 웃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오래오래.]
순순히 나온 대답. 그러나 모두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기엔 지금까지 오죽 수상했어야 말이지.
그 후로 이리저리 요정의 창을 붙잡고 여러 질문을 해 봤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다.
확실한 결론은 하나.
앞으로는 히든 피스를 좀 더 열심히 얻어 보자.
* * *
그리고, 다음 날 오전.
언제나처럼 조금 늦게 일어나 황성으로 갈 준비를 하는데, 눈앞으로 경악할 만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주인공(아기 황녀)’의 ‘2황자(둘째 오빠)’를 향한 호감도가 90을 넘었습니다!]
[퀘스트(메인) - ‘아기 황녀님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자!’ 의 조건 달성! (현재 달성도 50%)]
[세계가 원작에 한 발짝 다가갑니다!]
[축하합니다!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오릅니다! 현재 건강 수치: 37]
뭐야, 뭔데. 뭔데!
나는 하녀의 손에 리본을 내맡기다 말고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파드득 떨었다.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가씨? 무슨 일이세요?”
“아, 베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베키가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레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이 없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베키를 향해 억지로 웃어 보였다. 속으론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었지만.
뭐야, 도대체 오전부터 무슨 일이 있었길래 2황자의 호감도도 90이 넘은 건데?
물론 2황자도 달성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긴 했다. 그러나 9씩이나 남았었기에 조금 더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고민해 봐야 뭘 하겠어. 직접 가서 알아봐야지.
“다녀올게.”
“앗 약이요, 아가씨!”
나는 가기 전 하녀들이 일상처럼 내미는 약을 받아서 먹어야 했다. 아니, 이제 아프지 않은데 안 먹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러나 의사가 꼭 먹으라 했다면서 베키가 울먹이며 쳐다보는 통에 이전 날들처럼 알록달록한 약을 한 움큼 삼켜야 했다.
참 이상하네. 아프지 않은데 왜 이렇게 많은 약을 먹어야 하는 건지.
거기다 여전히 알약 중 몇 개는 색이 영 께름칙한 빨간색이었다. 살짝 구역질이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다녀오세요, 아가씨!”
“아프시면 꼭, 꼬옥 돌아오셔야 해요!”
나는 하녀들의 배웅을 받아 파올로와 함께 저택을 나섰다.
“래빗 황녀님!”
황성에 도착하기 무섭게 파올로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래빗의 거처로 달려갔다. 머릿속엔 진상을 확인해야 한단 생각뿐.
“아니, 왜 이로케 뛰어오는 건갸!”
래빗은 저 멀리에서부터 뛰어오는 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난 걸로 모자라 역정을 냈다. 덕분에 숨을 몰아쉬다 말고 세 살 아기에게 혼났다.
“몸 섕각은 안 하눈 고냐! 그러다 넘어지묜!”
“흐, 헉, 헤엑, 황녀님……. 저,”
“시꾸롭다! 대꾸 금지댜!”
[갑작스런 오래달리기로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떨어지고 말았어요! Σ(゜ロ゜;)!! 현재 건강 수치: 36]
아니, 이 정도면 무리한 것도 아닌데 염병, 건강 수치는 왜 떨어지는 건데?
래빗에게 혼나며 눈을 삐죽 세웠다가 더욱 크게 혼났다.
“뇨기 앉아라!”
“앗,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앉자서 혼나랴!”
“아앗.”
결국 숨을 고르게 쉴 때까지 오래도록 래빗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 내용인즉 이러했다.
“너눈 넘오지면 남둘처럼 무뤂이 까지눈 게 아니다.”
“저, 저도 무릎이…….”
“무릎이 부소져!”
“제 무릎은 블록이 아니에요, 황녀님…….”
“뾰가 또각 부러진다고!”
“각목도 아니에요…….”
도대체 이 황녀님은 내게서 무얼 보았길래 이토록 툭 치면 부서지는 존재로 여기는 건지.
래빗의 말만 듣고 있으면 과자 웨0스나 쿠크0스도 나보다는 견고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야단이 끝나갈 즈음……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래빗이 내 손을 보게 되었는데. 장갑을 낀 손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아니, 정확히는 ‘냄새’를 맡은 것이다.
“약초 냄새?”
윽, 파올로가 느꼈으니 래빗도 눈치챌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진짜 개코이시네요, 황녀님…….
나는 얼른 파올로와 계단에서 장난을 치다 다쳤다고 변명했다.
이 때문에 파올로는 지극히 연약한 여동생을 두고 위험한 장난이나 치는 파렴치한 오빠가 돼버렸지만.
‘미안하다, 파올로. 그렇게 됐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알겠나? 앞으로눈.”
“뛰지 않겠습니다. 빨리 걷는 것도 주의하고 어, 뭐였더라. 제자리 뛰기도 하지 말라셨나요?”
“계댠도!”
“조심할게요!”
“너의 그 오빠 뇸은 한 본 데려오거라.”
“네! 아니, 네?”
“어똔 놈인지 한 본 봐야게따.”
아니, 그렇게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보시면 파올로에게 조금 미안해지는데요.
아니, 그렇게 딸랑이까지 위협적으로 흔드시면 더 미안해지는데…….
미안하다, 파올로야, 그렇게 됐다…….
“하하하, 황실 기사라 바빠서요, 그으, 시간 보고 데려올게요!”
그러나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중간에 노아 황자가 슬며시 나타났는데, 사정을 듣고선 여동생을 따라서 잔소리를 시작하지 뭔가.
그런 몸을 가지고 그렇게 행동하면 못 쓴다느니, 툭 치면 날아갈 것 같다느니.
래빗에게 이런 걸 배우면 안 되는데, 조금 울고 싶어졌다.
그렇게 2차 잔소리 폭격이 끝나고 나서야 겨우 묻고 싶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황녀님 혹시 2황자님과 무슨 일 있으셨어요?”
“2황자? 그뇸, 랴이칸?”
“와, 언제 이름까지 부르는 사이가 되셨어요?”
“뭐야, 너! 내 이름은? 나는 왜 안 불러줘!”
“그로케 됐댜.”
래빗은 입술을 삐죽였다.
“아뮤튼 오늘 오젼에 그뇸을 만났냐고 무렀는데, 마따. 만나따.”
“무슨 얘기 하셨어요?”
“그곤…….”
나는 처음으로 래빗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모습을 봤다. 물론 삐질삐질 천장을 보는 모습도 아주 사랑스러웠지만…….
“안 알려줄 고다.”
“앗 왜요! 저는 수하인데!”
“슈하한테 모둔 걸 공유하진 안아.”
“하지만 특별한 수하잖아요!”
다급해지니 우리의 말다툼이 조금 유치한 양상을 띠는 것도 같았지만 나는 너무 궁금하단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분명 나와 관련 있는 일일 거야!’
2황자는 말했다.
“애가 그러더군. 그대가 아니었다면 평생 나와는 말을 섞지 않았을 것이라고.”
2황자와 황녀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면 황태자와 폭군 황제, 이 두 사람에게도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