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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73화 (73/281)

◈73화. 1. 육아물은 그래도 쉬울 줄 알았지 (67)

“네가 뭐든 내 알 바 아니댜. 너냐? 내 공갼에 침투한 것이.”

“아아, 과연 듣던 대로 나이답지 않은 언사, 영민한 말씀.”

남자, 로알이 가슴 앞으로 손을 모으고 성호를 그었다.

“모든 것이 그분의 은혜로군요!”

아니, 댁들이 아는 그 기적은 이 안에 로아타란 위대한 전생의 인격이 있어서인데. 로아타 황제님의 힘을 신성력으로 착각한 거라고.

나는 삐뚜름한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보며 사람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훑었다.

‘너무 많아.’

만약 이 공간을 만드는데 사람이 필요한 거였다면, 이해가 될 만한 숫자였다.

황실에서 이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폭군과 오빠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인간들이 아니야.

저들은 황실이 나타나기 전에 속전속결로 나서려는 게 아닐까?

“황녀님! 듣지 마세요! 쟤들 속셈은 빠르게 해치우려는 거예요! 뭐가 됐든!”

“알고 이써.”

쾅!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이렇게 큰 소리에도 황녀의 거처든 황성이든, 누군가 움직이는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하는 이도 없었다.

딸랑이에서 길게 뻗어 나간 검기가 새하얀 막에 가로막혔다.

“이런, 위대한 힘을 이은 분께서 성질이 급하시군요. 이 또한 경이롭습니다. 아아, 그분의 은총의 한계란 어디까지인지!”

[스킬 ‘빙의(lv.3)’가 활성화됩니다!]

[기사 ‘엠버넷’(B급 영혼-능력치 조정 상태)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2분간 사용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01:58]

내 손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번쩍이는 하얀 빛을 모두 쳐냈다. 로알이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런, 위대한 분 옆에 대단한 자가 있었군요? 그 나이에 이 정도 성취라니, 놀랍습니다.”

뭐라는 거야, 이 느끼하게 생긴 놈이! 염색약으로 버터라도 쓴 듯 진한 노란 머리 색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 신전에 귀의할 생각은 없습니까?”

“댁의 면상을 스무 대만 때리게 해 주면 생각해 보죠.”

나는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내 손이 절로 움직여 다시 날아오는 빛의 화살들을 쳐냈다. 상대가 당황하는 기색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참고로 한 대당 이빨 하나씩이에요.”

알겠냐? 이 수상쩍은 인간들아.

나는 순식간에 날아가 무릎으로 가장 가까운 신관의 얼굴을 가격한 뒤, 그대로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빠악! 뻗은 검날로 시원한 타격감이 느껴졌다.

붕 휘두른 검에 네 명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어째 움직이기 더 편한데? 열심히 올린 건강 수치 덕분인가.’

래빗을 홀로 두었지만 걱정은 없었다. 나보다 더 잘 싸우고 계시니.

우리 황녀님은 그야말로 펄펄 날아다니셨다. 솔직히 내가 없어도 충분해 보였달까.

아니, 로아타 황제님 능력 너무 사기 아닙니까?

이미 내가 해치운 수의 곱절이 저쪽에 널려 있었다.

싱글싱글 웃던 로알의 표정이 살짝 굳는 것이 보였다.

“……이런.”

“빨리 끝내고 싶겠지만 소용없어. 댁은 곧 황실 기사단에게 질질 끌려갈걸.”

나는 남은 스킬 시간을 확인하며 돌아선 동시에 검 손잡이로 막 덤비던 남자를 걷어냈다. 뒤로 숨어서 다가오던 남자가 함께 나가떨어졌다.

하아, 숨조차 몰아쉴 틈 없이 남은 숫자를 셌다.

‘다섯.’

남은 스킬 지속 시간은 1분.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저 대신관인가 뭔가 하는 작자가 아직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았단 건데.

‘제발 2황자님, 아니 황태자든 누구든 빨리 오라고요!’

“하하하! 하, 이것 참…… 놀랍군요. 대화할 시간조차 주지 않을 줄이야.”

로알은 굳은 얼굴로 웃고는 래빗을 향했다.

“위대한 힘을 계승한 분이시여, 다시 여쭙습니다. 저희와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거절한댜.”

“흐응, 뭐 좋습니다. 부드러운 말로 당신을 모시기엔, 이미 악랄한 황제 아래 길이 들어 버린 것 같군요.”

래빗의 얼굴이 정말, 정말로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죽고 싶냐는 티가 역력했다.

음, 황제랑 친하다는 말이 그렇게 듣기 싫으시구나…….

“누갸, 어느 놈의 길이 들어?”

나는 다가오는 여자를 쳐내며, 래빗의 옆으로 다가가려 했다.

“곱게 돌려보내진 않겠댜.”

“흡, 장족의 발전…….”

우리 황녀님이 죽이겠단 소리를 안 하셨어!

나는 현재 처한 상황도 잊고 감격하며 앞을 가로막는 놈을 좀 덜 아프게 때려 주었다.

남은 시간은 30초.

“아, 그런데 이 말씀은 꼭 드리고 싶군요. 시간이 촉박하단 건 저쪽의 재능 있는 아가씨가 어떻게 잘 아신 것 같은데 말이지요.”

굳었다고 생각했던 로알의 얼굴이 자애로운 척 풀어졌다.

불길한 느낌이 가중되었다.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시선. 아니, 시선이 아니다. 귓가로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동시에 로알이 뒤로 감추고 있던 본모습을 드러냈다.

[서브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서브) - ‘위기의 아기 황녀님!’

눈앞에 예상치 못한 적이 나타났습니다!

세상에, 그 사람은 바로 이 원작의 강력한 악역 대신관 ‘로알’!

그는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으리라 판단했습니다. 신전의 모든 능력을 동원해 납치를 시도합니다!

원활한 진행을 위해 아기 황녀님과 함께 납치당합시다.

※참고: 당신의 선택으로 인해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아졌습니다. 퀘스트 진행 도중 ‘주인공’의 치명적인 부상을 필요로 합니다! 최악의 상황엔 죽을지도 모릅니다!

내용: ‘주인공(아기 황녀)’와 함께 악당들의 손에 납치당하자.

보상: 건강 수치 13, ‘주인공(아기 황녀)’의 ‘황제(폭군)’을 향한 호감도 대폭 상승, ‘주인공(아기 황녀)’의 이상증세와 관련한 주요한 단서, 아이템 ‘사이렌 오더’ 강화 주문서

기한: 없음

※본 퀘스트는 ‘엑스트라 악역의 계획을 저지하자!’, ‘뭐야, 돌려줘요, 내 목숨!’과 연계되는 퀘스트입니다! ]

뭐? 납치 당하라고?

그런데 퀘스트 도중 래빗은 반드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다. 이 문장이 눈에 박혀 떨어지질 않았다.

스킬에 따라 몸은 저절로 착실히 움직였다.

“싫어!”

입이 절로 뱉었다. 아니, 내 의지였다.

이딴 퀘스트 안 해. 안 한다고!

이미 순조롭게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보상에 ‘황제를 향한 호감도 대폭 상승’이라는 옵션이 있지만 이게 아니더라도 남은 시일 동안 차근차근 진행하다 보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거다.

굳이 납치당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단 말이다!

[요정이 빙의자 님을 향해 방긋 웃어요!]

그 순간 다시 한번 오싹함이 찾아왔다. 나를 향한 신관들의 공격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황녀님!”

이상한 원에 갇힌 래빗이 보였다. 래빗은 찌푸리며 검을 휘두르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그만 몸의 움직임이 덜컥 멈췄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흐음, 혹시라도 미쳐 버릴까 싶어 이런 수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군요.”

언제나 당당했던 그 조그만 손이 빛으로 만들어진 밧줄에 묶였다.

“위대한 힘을 계승하신 황녀 전하. 잠깐 주무실 시간이에요. ”

“……단 3분이어땨. ……그때 신관이 날 더러 ‘잠깐 주무실 시간입니다’라고 속샥이더구나.”

심장이 쿵쿵 뛰었다. 언제나 커다랗고 선명했던 눈꺼풀이 차차 덮이고, 래빗의 위를 덮치는 불길한 검은 안개를 보았다.

“그건 기분이 이샹했어. 그 순간 뎡말로 졸리묜서……그 말초롬 잠꺈 잠둔 건가 싶었는데, 동시에 눈앞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떤, 내 제국의 마지먁이 떠올랐우니까.”

안 돼!

본능적으로 저걸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엠버넷 씨, 막아요! 저거 막아야 돼!

내 청을 들은 엠버넷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스킬 종료까지 남은 시간: 00:05]

검은 안개를 쥐고 있던 첫 번째 신관이 쓰러졌다. 곧바로 팔꿈치를 휘둘러 두 번째, 휙 돌아 발을 걷어차며 세 번째.

그리고…….

[기사 ‘엠버넷’(B급 영혼-능력치 조정 상태)의 특수능력 ‘파훼’를 발현합니다!]

[‘영혼’의 강력한 의지로 스킬 시간이 5초 증가합니다!]

[건강 수치가 떨어집니다!]

네 번째, 다시 다섯 번째. 남은 것은 셋. 동시에 검을 뻗었을 때.

[스킬이 종료되었습니다!]

나는 탄식했다.

[경고! 스킬의 지나친 과부하가 빙의자 님의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상태 이상 [발작]에 돌입해요! Σ(゜ロ゜;) ※남은 시간: 05:00]

털썩, 내 무릎이 바닥에 내리꽂히는 동시에 나는 가파른 숨을 토했다. 숨쉬기 괴로웠다. 그러나 이는 잠시뿐이었다.

[스킬 ‘몸에 나쁜 각성제(lv.1)’가 활성화됩니다!]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스킬 지속시간이 대폭 증가합니다! ※남은 시간 3:00:00]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나는 내 옆에서 색색 잠들어 있는 아이를 꽉 끌어안았다.

“흐읍, 황녀님…….”

아이의 몸은 차가웠고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였다. 찡그려진 얼굴은 괴로움으로 일그러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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