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23)
이것들은 모두 리제의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었다.
그 보고서엔 주요 가신들의 외양이 묘사되진 않았지만 그 외의 정보는 있었다.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지.
들키면 정말 목이 달아날 것 같은 그런 정보들 말이야.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긋 웃었다.
아이바타라는 북부에서도 자연환경이 혹독하기로 악명 높은 곳으로 이곳 사람들은 모두가 훌륭한 사냥꾼의 후예였다.
이 지역에서 훌륭한 사냥꾼이란 곧 뛰어난 전사란 소리기도 했다.
거기다가 본인들의 출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해, 이들의 호감을 얻고 싶으면 반드시 고향 얘기를 꺼내는 것이 좋았다.
특히나 이들의 토속신앙에서 신으로 모시는 ‘위대한 짐승 둑스’를 찬양할 것.
“훌륭한 전사님을 뵙게 된 건 다 둑스 신의 축복 덕분이겠지요.”
[인물 ‘외성 수비대장(가르카)’의 신뢰도가 대폭 올랐어요! 50/50 ]
[인물 ‘외성 수비대장(가르카)’의 신뢰도가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MAX/50]
[퀘스트(서브) - ‘친해지길 바라, 안 친해지면 쟤가 죽음!’의 조건 달성! (현재 달성도: 30%)]
보았느냐. 아는 것이 힘이라면, 그 힘을 제때 이용하는 것이 진짜 능력이지.
[축하합니다! 퀘스트 초과 달성으로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그나저나 특별 보상은 또 뭐야?
[쉿, 아직은 공개되지 않아요! 곧 공개됩니다! 짜라라란! ((o(´∀`)o))]
‘곧 공개’ 같은 소리하네. 야, 요정. 갈수록 제멋대로다, 어?
“오오, 중앙에서 오신 분이 위대한 신의 참된 이름을 아오? 이것 참, 중앙인들에 대한 편견이 모두 깨지겠군. 하하하!”
북부에서는 신전의 영향력이 매우 미약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북부인들은 외부에 대한 배척이 무척이나 심하다.
신전 입장에서도 있는 거라곤 몬스터와 마수 뿐인 오지에 사람을 파견해 얻는 이익이 많지 않다 판단하여 최소한의 인원만 보내 간신히 명맥만 잇는 정도라나.
그 탓에 이곳은 중앙과 다르게 사람들의 9할 이상이 토속 신앙을 믿었다.
바로 위대한 짐승의 신, 「둑스」.
어떤 짐승인지는 리제의 보고서에도 적혀 있지 않던데.
“둑스에 대해 아시다니 놀랐습니다, 영애.”
제타르 경도 다소 놀란 얼굴로 말했다.
사실 가르카를 상대로 이런 대처를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제타르 경의 공로도 컸다.
요주의 인물의 성향과 직업, 특히나 외양을 미리 설명해 준 덕분이었으니까.
“이곳에 살기 위해 내려온 건데, 어찌 모른 채로 올 수 있겠어요. 그리고 대공님께서 설명을 너무 잘 해 주셨구요.”
[인물 ‘외성 수비대장(가르카)’의 신뢰도가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MAX/50]
[인물 ‘외성 수비대장(가르카)’의 신뢰도가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MAX/50]
[인물 ‘외성 수비대장(가르카)’의 신뢰도가 한계치를 넘어섭니다! MAX/50]
“오오오!”
아니, 저기 가르카 아저씨? 저…… 호감도인지 신뢰도인지 그만 올려 주셔도 되는데요.
지금 한계치를 넘어서 숫자로 표시도 안 되는 거 아니야? 왜 오르는 건데.
“이런 기특한 크흠, 아니 훌륭한 태도와 마음가짐이라니! 이 가르카 몹시도 감동했소. 나는 앞으로 예비 대공비 전하를 열렬히 지지하겠소!”
가르카가 이젠 작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말했다. 워낙 커다란 덩치다 보니 한걸음만 다가와도 은근히 압박이 되긴 했다.
“입 발린 소리 더럽게 해대네. 가르카, 전사의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나?”
그 순간 허스키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시선을 돌리니, 줄곧 침묵하던 세 번째 사람이었다. 그래, 가르카에게 가려졌던 사람인데…….
키가 큰 여성이었다.
거기다가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체격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겼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그리고 어깨에 걸친 검은 곰 가죽.
검은 곰 가죽?
“저 비리비리한 영애를 두고 잘도 대화 같은 걸 해대는군.”
“칼리.”
또 다른 퀘스트 대상이었다.
“로브를 걸친 자와 검은색 곰 가죽을 어깨에 걸친 내성 수비대장을 조심하십시오. 이 중 마법사들은 적당히 마이페이스들이라 상관없을 것이나 내성 수비대장은 특히나 심각한 과잉 충성도입니다.”
제타르 경이 미리 경고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검은 곰 가죽이라길래 자연스럽게 덩치가 커다란 아저씨를 떠올렸는데…….
가르카 같은 사람이 뒤집어쓰고 있을 줄 알았지. 반성합니다, 나.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칼리는 몹시도 날카로운 눈매의 여성이었다.
그랬다. 날카로운 눈매, 거기다 성격이 몹시도 더러워 보이는 미인……!
“와…….”
언니, 제 취향이시네요!
그러했다. 나는 남녀 가리지 않고 취향이 비슷했다. 흡, 성질 더러워 보이는 캐릭터가 좋은 걸 어떡해?
그 덕에 누가 들어도 적의 어린 목소리를 듣고도 나도 모르게 손을 겹쳐 잡고 눈이 절로 초롱초롱해졌다.
“젠장, 뭘 쳐다보는 거야?”
“칼리! 무례하다!”
“커흠, 그래, 칼리. 지금 예비 대공비 전하께, 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자고.”
아뇨, 언니는 계속 무례하셔도 돼요. 제가 그만큼 예의 차리는 걸로 합시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나는 손을 모은 채로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그러자 칼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내가 한 걸음 더 다가가자 표정이 변했다. 너 뭐 하냐는 듯이.
“안녕하세요, 저는 달린 에스테예요. 내성 수비대장님 맞으시죠?”
언니, 안녕하세요. 한 번만 성질부려 주시면 안 될까요?
“하, 나에 대해서도 조사를 했다? 영애에겐 내 호칭을 허락하지 않았어.”
“그럼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부르지 마.”
“칼리!”
지금 내겐 마치 이 세계에서 2황자 라이칸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전율이 일고 있었다. 그분도 참 까칠하셨지.
암요, 언니처럼 미인은 까칠해도 되죠. 암!
“이런 말 외람되지만…… 정말 멋있으시네요, 칼리 경.”
“뭐?”
칼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더니, 곧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인물 ‘내성 수비대장(칼리)’의 신뢰도가 대폭 내려갑니다! -30/50]
뭐? 뭐요?
‘안 돼!’
나는 놀라 시스템을 응시하고는 입을 헙 다물었다.
이런, 잠시 정신줄을 놨다고 이러기야?
사람이 감상도 못 해? 멋진 언니를 보고도 감탄도 못 하냐고!
하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뒤였다.
“허,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건가? 병든 새끼 눈표범처럼 생겨서는!”
칼리는 내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건지, 살벌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 가르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르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영애를 옹호하고 앞에서 아양까지 떠는지 모르겠다만, 내겐 통하지 않을 거다. 제타르 너도 마찬가지야. 특무단의 체통을 버린 놈 같으니!”
칼리는 제타르 경과 가르카를 향해 꾸짖듯 소리를 높였다.
허스키한 목소리 덕에 절로 위압감이 실렸다.
“우리가 언제부터 외지인을 반겼지? 외지에서 온 인간이 단 한 번이라도 도움이 된 적 있더냐?”
“야야, 칼리, 진정해. 네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나도 이해는 하는데, 너도 봤으면 달랐을 거라니까, 어? 우리 전하께서 진정을 하셨다고.”
“웃기지 마. 난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건 믿지 않아.”
칼리의 날카로운 눈매가 나를 향했다.
사실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지만 칼리의 눈빛에는 상대를 절로 움찔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으음, 화를 내도 멋있으시네, 이 언니.
[인물 ‘내성 수비대장(칼리)’의 신뢰도가 내려갑니다! -32/50]
……이건 별로 좋지 않지만.
“설사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사술을 썼을지 어떻게 알아?”
칼리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난 사술사와는 말을 섞지 않는다. 그게 내 긍지다.”
그렇게 말한 칼리가 휙 등을 돌려서 가 버렸다.
가르카는 나와 칼리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커다란 덩치가 무색하게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날 달래듯 입을 떼었다.
“크흠, 내 대신 사과하겠소, 예비 대공비 전하. 저 친구가 우리 중에 유달리 꽉 막혀서 말이야. 내 가서 잘 말해 보겠소!”
어, 느낌이지만 아저씨는 나서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은데…….
하지만 가르카는 이미 저 커다란 몸으로 쿵쿵거리며 칼리를 쫓아간 뒤였다.
그 뒤로 두 사람은 한동안 무어라 실랑이를 벌이는 듯하더니 칼을 들었다.
잠깐, 칼?
“제, 제타르 경! 저 두 분 다투시는 것 같은데요?”
“아, 신경 쓰지 마십시오. 매번 저럽니다.”
“진검인데요?”
“그럼 검 말고 뭘로 싸운단 말입니까?”
아니, 그렇기는 한데…….
근데 여긴 이런 곳에서 막 싸운단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