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26)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막 쫓아나가려는 또 다른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안 돼, 얘들아. 내가 가 볼게. 거기 제일 큰 친구, 이름이 뭐야?”
“레, 레나요!”
“그래, 레나. 너는 여기 아이들이 더는 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어 줘. 언니가 얼른 데려올게.”
“하지만!”
“괜찮아. 그리고 언니가 이 검 좀 빌릴게!”
언니가 이래 보여도 간헐적으로 강해지거든.
나는 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얼른 달려갔다.
다행스럽게도 아까까지 시큰거렸던 발목의 고통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심하게 삐진 않은 모양이네.’
다행히 달려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디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르……!”
물론 몬스터와 함께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지만.
저게 코볼트인가?
코요테처럼 생긴 얼굴에 인간처럼 직립보행을 하고 손에는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으, 흡, 흑, 흐엉!”
제 몸집에 맞는 조그만 철검을 겨눈 채로 디마가 덜덜 떨고 있었다.
내가 나서기도 전에 코볼트가 던진 나무 의자가 디마를 스쳤다. 디마는 뒤로 넘어지며 그대로 꼬로록 쓰러졌다.
차라리 다행이랄지, 기절한 것 같았다.
[스킬 ‘빙의(lv.4)’가 활성화됩니다!]
[기사 ‘엠버넷’(A급 영혼)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5분간 사용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04:58]
쾅!
코볼트의 몽둥이와 내 검이 부딪쳤다.
힘겨루기는 잠깐, 코볼트의 몽둥이가 썩둑 베어졌다. 잘린 몽둥이 파편이 휘리릭 옆으로 날아갔다.
나는 바로 자리를 피했다. 쾅! 내가 있던 자리에 몽둥이가 내려쳐졌다.
“캬아아아악!”
또 다른 코볼트였다.
-달린, 주의해요! 몬스터의 수준이 달라요.
전투 중에는 좀처럼 말을 하지 않던 엠버넷 씨가 조용히 말했다.
-제가 알던 코볼트의 생김새와 다르고…… 마나가 느껴져요.
“더 강하단 소리예요?”
-네.
나는 얼른 몸을 옆으로 돌렸다.
팔이 저절로 움직였다.
푸욱, 생경한 감각과 함께 끼에에엑! 검에 찔린 코볼트가 비명을 질렀다.
‘숫자는 둘?’
아니야.
-조심해요!
엠버넷 씨의 경고에 나는 황급히 상체를 숙였다. 부웅 살벌한 소리와 함께 코볼트의 발이 언뜻 시야에 비쳤다.
나는 공중을 날아 코볼트의 이마에 검을 꽂았다.
투툭, 뜨거운 무언가가 뺨에 튀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큰일 났다.’
코볼트를 둘이나 해치웠음에도 낭패감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새 주변이 크르르르 울부짖는 몬스터로 가득했다.
포위된 거였다.
“엠버넷 씨, 우리 저 아이를 지켜야 해요.”
몬스터들 뒤로 일렁거리는 검은 블랙홀 같은 것이 보였다. 막 저기서 튀어나오는 또 다른 코볼트의 모습도.
‘아스가 마나홀은 한번에 산발적으로 생긴다고 했지?’
운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거기다 나는 뒤에 쓰러져 있는 디마를 지켜야 하는 상황.
“으음, 어떡한다. 이거 아이를 지키면서 5분 안에 다 해치울 수 있을까요?”
-달린, 그건 무리예요…….
하긴 숫자가 너무 많았다. 이거 어떡하지.
[스킬 지속시간 종료 후, 건강 수치가 소모되어요!]
상황은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이 몬스터들을 해치우는데 5분이란 시간은 너무나 촉박했고, 내 건강 수치마저 끌어다 써야 하는 순간이 왔다.
문제는 저 마나홀에서 몬스터가 계속 쏟아질 것 같다는 거고.
기사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단 점이었다.
‘혹시 성문 쪽에 무슨 문제가 생기기라도 한 건가?’
아니, 난 분명히 북부에 남자주인공 호감도를 올리러 온 건데 왜 갑자기 이런 전투를 치르게 된 건지 의문이었지만.
어차피 이건 육아물 때도 마찬가지였지, 뭐…….
“하아, 하아……. 큰일인데요.”
-이대론 끝이 없겠어요, 달린.
[현재 스킬 ‘빙의’ 지속을 위해 건강 수치를 소모 중입니다! 남은 건강 수치: 70]
막 한 마리를 더 해치우는 순간, 무시무시한 기분이 들었다.
황급히 뒤로 피하자,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손이 내가 있던 자리로 파고들었다.
“뭐, 뭐야!”
어느새 눈앞에 보통 코볼트보다 더욱 큰 크기의 몬스터가 서 있었다.
“캬아아아아악!”
쩌렁쩌렁한 소리가 고막을 찢을 듯 푹 찔러 들어왔다 .
-코볼트 킹이에요, 달린!
보스 몹 같은 거야? 아니, 왜 난 이런 것까지 마주하는 건데!
야, 요정! 이 XX야!
억울함이 치솟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엠버넷의 능력으로 저것들을 모두 해치울 수 있을까?
사실 이미 스스로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분명 대단한 엠버넷은 기사였지만 그녀는 대군을 이끄는 데 능한 장수에 가까웠다.
지금은 이보다는 더욱 폭발적인 힘이 필요해……. 이렇게 건강 수치만 소모할 수는 없는데!
그 순간이었다.
-달린!
잠시 방심한 사이 이미 거대한 몽둥이가 피할 수도 없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피하면 뒤의 아이가 위험하다!
한 번에, 한 번에 부술 수 있어야 하는데……!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빙의(lv.4)’와 연계됩니다!]
[과거의 초월자(레전드리) ‘유엘 래빗 비센’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뭐?
갑자기 온몸에서 활기가 차올랐다. 아니, 뜨거웠다.
활기가 차오르다 못해 몸이 팔팔 끓는 것만 같았다. 아파, 아파!
[경고! 현재 빙의자 님이 받아들일 수 없는 힘입니다!]
[스킬 지속을 위해 건강 수치를 소모합니다! 남은 건강 수치: 30]
뭐야? 잠깐, 잠깐!
콰아아앙!
몸속에서 끓어 넘치듯 활활 타오르던 기운이 일시에 밖으로 빠져나갔다.
절로 기침이 튀어나왔다. 무언가 입에서 툭 흘러나온 것 같았지만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서 커다란 체격의 여성이 쉿 하고 검지에 손을 얹으며 웃는다.
마치 자신에게 맡기라는 듯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 삽화로 본 적 있는 사람이다.
로아타 황제.
로아타라면 래빗의 힘인데, 어째서 내가?
“신성한 힘을 사용해따. 넌 내가 처움이자 마지막으로 치료한 사람이댜!”
‘래빗이 나를 치료한 것 때문인가? 아니면 이 ‘나만의 로판의 기능’ 때문? 아니면 둘 다?’
[요정은 둘 다라고 대답해요!]
요정의 대꾸에도 무어라 답변할 수 없었다. 말할 힘도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며, 숨쉬기가 점차 어려워졌다.
“대체…….”
주변을 보니, 모든 것이 초토화된 상태였다. 코볼트 사체만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게 무슨…… 밸런스 파괴적인 힘이냐…….”
[스킬이 종료되었습니다!]
[경고! 스킬의 지나친 과부하가 빙의자 님의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상태 이상 [열병]에 돌입해요! Σ(゜ロ゜;) ※남은 시간: 01:00]
나는 비틀거리며 겨우 벽을 짚고 섰다.
다행히 뒤쪽의 아이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세상이 노래지는 것만 같았다.
[지나친 피로를 느낍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대폭 떨어지고 말았어요! ˚‧º·(˚ ˃̣̣̥⌓˂̣̣̥ )‧º·˚ 현재 건강 수치: 30]
뭐? 30? 야, 잠깐만! 잠깐만! 내가 어떻게 올린 건강 수치인데! 야, 미친!
요정, 어떻게 된 건데, 이 미친X아!
폐를 압박하는 고통이 느껴졌다. 마치 한계 이상으로 달린 뒤 쓰러져 피로가 온몸을 뒤덮고 있는 것 같았다.
멀리서 함성과 환호가 들렸다. 어디선가 또 상황이 끝난 걸까?
[스킬 ‘몸에 나쁜 각성제(lv.2)’가 활성화됩니다!]
[지나친 과부하로 스킬 ‘몸에 나쁜 각성제(lv.2)’의 지속시간이 대폭 줄어듭니다! ※남은 시간: 03:00]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발소리가 들렸다. 꽤 멀다. 아니다, 가까운 건가?
곧 눈앞에 낯설지 않은 인영이 등장했다.
“너, 너 뭐야……!”
어, 저 사람은 칼리? 퀘스트 대상자인 칼리였다.
저쪽도 한창 싸우다 온 듯 온몸에 검은 피가 덕지덕지 묻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곳들도 전투가 치열했나 보네.
‘북부…… 살기 너무 힘든 것 아니냐…….’
그리고 내 퀘스트도 너무 하드한 것 아닌가요?
“카, 칼리 경…….”
그저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칼리가 멈칫하더니 주춤 물러났다.
이내 주변을 둘러보더니 시선에 적의가 어렸다.
“이 몬스터들은 대체…….”
“아, 그건…….”
“역시 사술을 쓴 것이지! 이, 이, 갓 태어난 눈표범처럼 연약한 꼴로…… 모두를 현혹했던 거구나!”
아오, 피곤해 죽겠는데 저 멋진 언니는 무슨 헛소릴 하는 거야…….
“따로 데려온 세력이 있었나? 아니, 역시 흑마법사였던 거구나. 이 일은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 내가 널 주시할 거다!”
“……지켜봐 주시면, 감사한데…… 일단 사람 좀…… 그리고 여기 아이를, 봐 주세요…….”
나는 힘없이 고갯짓했다.
“다쳤을까 봐…… 상처를 한 번만…… 이 애부터…….”
칼리의 표정이 묘해졌다.
“꼭 아이, 치료…….”
그리고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던 마지막 말이었다.
[상태 이상 [열병]에 돌입합니다! ゜・.(iДi)。:゚]
아, 맞다, 대공님.
제발 기절한 동안에 대공님 광증만 일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
살려 줘,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