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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11화 (111/281)

◈111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28)

“호위 기사라니요?”

“그딴 소문이 영애의 귀에도 들어갔단 말인가요……?”

“대공님?”

“죄송해요, 영애. 잠시 자리를 좀 비울게요…….”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의 광증 수치가 올랐어요! (+2) 현재 광증 수치: 20]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 호감도가 내려갑니다! (-6) 현재 호감도: 76]

[경고!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의 광증 수치가 20을 돌파했습니다! 폭주 위험도가 상승했어요! (+30%)]

악, 안 돼!

“아니, 아니요! 잠시만요!”

나는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았다.

“가지 마세요!”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아 몸을 움직였는데, 세상이 핑글핑글 돌았다.

“영애!”

폭, 뭔가 부딪히는 소리에 정신 차려 보니 잘생긴 얼굴이 바로 앞에 있었다. 그는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기회다 싶어 일단 그의 어깨를 꾹 잡았다. 그가 멈칫했다.

“가지 마세요, 네? 잠시만요…….”

또 가서 누굴 잡으려고 그러세요, 대공님아. 잠시만 참자. 참아 보자.

“아, 안 갈게요. 안 갈 테니…….”

“아, 죄송해요. 놓을까요?”

“놓지도 마, 마세요!”

“어…… 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차리고 보니 안기다시피 한 자세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일단 대공님이 가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이제 막 눈을 뜬 참이라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몰라서 그런데…… 괜찮으시면 제게 차근차근 이야기해 주세요, ”

“네. 그전에 영애, 아프신 곳은 정말 없는 건가요?”

“네, 괜찮아요. 아, 그전에 잠깐만요.”

가까워진 김에 나는 손을 뻗어 이불 쪽에 떨어진 물수건을 잡았다.

아마 아까 아스가 놀라 떨어트린 것 같은데, 잠깐 써도 괜찮겠지.

“실례가 안 된다면 여기 피가 묻은 것 같아서요…….”

나는 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대공님 뺨을 닦았다. 보이는 김에 그의 장갑도 살살 닦아 주었다.

“영애는…… 언제나 손, 대도 돼요. 언제든…….”

“…….”

대공님이 얼굴을 발그레 붉히더니 이내 살며시 내 손으로 자신의 뺨을 기대왔다.

그러면서도 내 눈치를 보았다.

“영애 거니까…….”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음, 살짝 놀랐다.

이렇게 직설적인 한마디라니.

취향인 얼굴 덕에 심장엔 그리 좋지 않은 상황. 더 심각한 사안이 없었다면 나도 모르게 말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말씀해 주세요. 호위 기사라니요?”

일단 제타르 경과 아스가 하지 않은 이야기부터 들어야겠다.

그게 뭐길래 겨우 낮춰 놓은 광증 수치가 또 오르냐. 억울해 죽겠네.

“혹시, 쓰러지기 전까지 모든 상황을 기억하나요?”

“네, 기억해요.”

이야기를 시작한 건 좋았는데, 이 대공님 뺨에서 손을 뗄 타이밍을 놓쳤다.

그래서 그의 뺨을 계속 닦으면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영애가 쓰러지는 걸 최초로 목격한 건 가신 ‘칼리’예요. 내성 수비대장이지요.”

“아, 기억해요. 이야기도 나눈 적 있어요, 칼리 경과.”

“칼리가 본 그대로 증언했어요.”

손 아래에서 목울대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왜인지 내 손도 저절로 느릿해졌다.

“영애 주위로 무수히 많은 코볼트가 죽어 있었으며, 그 사이에는 코볼트 킹도 있었다. 거기다 영애는 목검을 한 자루 어설프게 쥐고 있다가 곧 그마저 힘이 빠져 그대로 쓰러졌다고도요……. 그러니, 영애의 주변에 분명 조용히 따라다닌 호위 기사가 있었을 거라고 하더군요.”

말을 할수록 대공님의 목소리가 조금 딱딱해지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칼리, 그 멋진 언니가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걱정했는데.

‘코볼트 킹이 쓰러지고 난 뒤에야 봤다면 내가 활약하는 건 전혀 보지 못했다는 거네.’

만약 봤다면 내가 검술의 귀재라는 소문까지 났을 테니까 말이다.

“곧 이어서 도착했던 특무대가 증언하고 나 또한 현장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어요. 물론 이 와중에 흑마법이니 뭐니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건 곧 조용해질 거예요, 영애.”

으음, 어떻게 조용해지는지는 듣고 싶으면서도 듣고 싶지가 않네요.

입술만 달싹이고 있는데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질문이 던져졌다.

“영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어요. 영애 주변엔 정말…… 호위 기사가 있었던 건가요?”

자, 여기서 진실을 말할 것이냐. 아니면 대충 둘러대고 넘어갈 것이냐.

나는 숨을 살짝 삼켰다.

역시 이건…….

“그건.”

“그 호위는 남자인가요?”

“바로 제가 해치…… 네?”

“정말 남자인가요? 정말로?”

“……아닐걸요?”

전데요?

어쩐지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조금 위험한 빛이 어린 것 같았다.

‘위험하다.’

이러다간 광증 수치 상승으로 이어질 것 같단 예감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대공님! 저 좀 보세요. 그거 저예요, 저라구요!”

“네, 영애의 호위 기사겠지요……?”

“아니, 시무룩해하지 마시구요! 제가 해치웠다는 소리예요!”

그러자 추욱 처진 눈꼬리에 의문이 스쳤다.

와, 배신감 든다. 이 대공님이 이런 표정을 지을 줄은 몰랐는데.

흡사 ‘영애, 아직도 많이 아픈가요?’ 하고 묻는 듯한 시선이었다.

물론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

고작 추위에 벌벌 떠는 사람이 그 많은 코볼트 떼에 보스 몬스터까지 해치웠다니! 나라도 안 믿겠다.

하지만 사실이고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예요. 제가 해치운 게 맞아요.”

하지만 나는 어설프게 무마하기보다는 진실을 고하는 쪽을 선택했다.

감이지만 이 사람에게 어설픈 거짓은 통하지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으니까.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스킬 ‘눈치는 약에 쓰자’가 발동 중입니다.]

아니다, 오히려 그랬다간 더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제가 구한 아이가 있을 텐데요, 디마라고. 그 아이가 제가 나타났을 땐 혼자였다고 증언하지 않던가요?”

“맞아요……. 하지만 금방 기절했다고 하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은 기절한 뒤에 나타났을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니에요. 제가 한 거예요, 대공님.”

나는 그의 뺨에서 손을 내렸다. 그러고는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제 옆에 있었다면 이곳에 오는 동안 대공님께서 모르실 수가 없어요.”

“…….”

“무엇보다 대공님께서는 그 자리에 계신 만큼 타인의 거짓말은 어느 정도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황태자가 사람을 믿지 못해 거짓을 판별하는 마법 도구를 들고 다녔던 걸 떠올렸다.

이 대공님에게 그런 장치는 없지 않을까 싶지만.

“저희 3사단은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다 보니 특히나 감이 좋습니다.”

제타르 경도 그렇고 아스나 가르카까지, 감을 운운하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거였다.

무엇보다 이 대공님이 가상의 남자를 만들어 질투와 의심을 느끼다가 광증 수치가 쭉쭉 오르는 일만은 피해야 한다!

“저희 가문이 비록 지금은 별 볼 일 없는 백작 가문이지만, 제게는 저 하나 겨우 지킬 만큼의 힘은 있어요.”

래빗의 힘이 겨우 나 하나 지킬 힘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 축소하는 것쯤은 괜찮겠지.

“위급할 때 이런 힘을 발휘할 수는 있지만 대신 저는 그 반발로 크게 앓아요. 쉽게 말하면 건강을 잃는 것이죠.”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스킬의 대가로 이렇게 골골대고 있는 거니까.

“이 힘을 쓰는 데에는 이처럼 대가도 필요하고 자주 쓸 수도 없어요.”

“혹시 에스테가 황실의 정원을 관리하는 것과 관계된 건가요?”

“…….”

“……알았어요.”

대공에겐 미안하지만 대답할 수 없는 것은 적당히 침묵을 유지했다. 우리 집이 왜 그런 정원을 관리하게 된 건지 그건 나도 모르니까.

대공님이 평소의 무구한 표정으로 돌아와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확실히 호위 기사가 했다기엔 정황상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어요.”

“…….”

“호위 기사가 했다고 말했더라도 영애가 내게 거짓말을 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동시에 내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만약 여기서 거짓말을 했었다면…… 이 대공님의 반응이 어땠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칼리는 영애에게 호위가 있었다는 것 외에도 그 호위가 분명 흑마법에 의해 조종되는 전투 병기라 주장했어요. 그에 동조하는 가신들도 있었으나 더는 입을 열지 못했지만요.”

그놈의 흑마법은 왜 이리 시도 때도 없이 나와 엮이는 건지.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해했다.

“칼리 경이 저를 의심하는 것도 이해해요.”

솔직히 그 언니 입장에선 그 광경이 뭔가 싶었겠지.

누가 봐도 연약해 빠진, 그녀의 주장으로는 갓 태어난 토끼만도 못한 영애가 코볼트 떼 무덤 한가운데 서 있는 꼴이었을 거 아니야.

나라도 저 사람 연약한 척하는 거다, 내지는 뭐가 있다 의심하겠다.

“……그전에 칼리 경께서는 살아 계시죠?”

“네. 살아 있어요, 영애.”

정말 다행이다. 멋진 언니, 제발 죽지 말아요…….

“일리가 있다 주장하는 가신들이 꽤 많았으니…….”

“아, 그건 제가 직접 말이라도.”

“한 번에 쓸어버릴까 해서요.”

그게 그렇게 해사하게 웃으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요?

나는 속으로 숨을 참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말씀 드렸듯이 칼리 경이 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기에 충분히 이해해요. 그리고 이건 제 추측이지만 제가 있는 곳을 알린 건 칼리 경이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렇기에 아직은 멀쩡하지만요…….”

“네. 그거예요, 대공님. 사실 보다시피 제겐 위험 부담이 너무 큰 힘이라 정말 위급할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데…… 오히려 칼리 경이 제때 저를 발견해 주지 않았다면 저는 더 위험했을 거예요.”

사실 난 정말로 칼리에게 유감이 없다. 그녀가 기사들을 데려와 준 거라면 더욱더.

눈 속에 쓰러졌다면 건강 수치가 빠르게 떨어졌을 거야. 진짜 위험했을지도.

“이건 진심이에요. 그분이 아니었다면 전 얼어 죽었을 수도 있어요. 다들 마나홀로 바쁘시던 참이었잖아요.”

대공님의 표정이 마구 찡그려졌다.

나는 움찔했다. 그는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잔뜩 흐트러진 얼굴이었다.

“왜, 죽는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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