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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13화 (113/281)

◈113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30)

* * *

[강한 추위를 느낍니다! 빙의자 님의 건강 수치가 떨어지고 말았어요! Σ(゜ロ゜;)!!  현재 건강 수치 : 28]

으으, 왜 그저께 아스랑 린이 북부 치고는 날이 좋았다고 한지 알겠다. 그날이 정말 따뜻한 거였어!

분명 해가 쨍쨍한데, 어쩜 이렇게 추운 건지. 나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떨었다.

“영애, 혹시 추운가요?”

떨리기 무섭게 살며시 커다란 모피가 내 어깨에 덮였다.

커다란 털옷은 감사하지만, 몸이 이렇게 휘청거려서야……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대공님?

“괜찮아요, 대…… 아니, 단.”

내게 열심히 망토를 감아 주던 남자가 뺨을 발그레 물들였다.

“한 번만 더 불러주세요……. 달린.”

“단?”

“네.”

그의 얼굴이 살짝 더 붉어졌다. 슬쩍 보이는 귀도 붉었다. 그 얼굴은 쓰고 있는 망토 모자에 가려 나에게만 살짝 보였지만.

“망토 모자는 불편하지 않으세요?”

“괜찮아요, 벗으면 마법이 사라진다고 하니까요.”

그랬다. 내게 열심히 털옷을 입혀 주려고 시도 중인 대공님은 현재 변장 마법을 쓴 상태였다.

정확히는 남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모자 달린 망토도 쓰고 무려 마법으로 모습까지 변장한 대공님이었다.

‘심지어 들키지 않게 호칭까지 ‘단’이라고 지었지.’

휴고의 휴는 사람들이 알아볼 거라며, ‘체단’에서 따온 이름이다.

상황은 약 30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밖으로요? 저도 함께 갈게요.”

“예? 바쁘시다고…….”

“안 바빠요.”

산책을 허락받기 위해 대공님을 찾았는데, 그가 먼저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것도 또 누굴 잡고 계셨던 건지, 뺨에는 피가 튀어 있었지만 나는 슬쩍 모른 척했다.

다행히 칼리의 신뢰도가 더 떨어지지 않은 걸 봐서 그 언니는 아닌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마법사인 리바도 아닌 것 같았고.

대공님이 함께 나서는 건 좋았는데, 내가 가려던 곳이 영지 중심이다 보니, 본래 모습으로는 어려웠다.

대공님은 여기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는 망토를 쓰고 덩치를 가리기 위해 마법까지 써야 했다.

의외로 마법사 쪽에서 나선 사람이 매우 협조적이었다.

“안녕하세요, 예비 대공비 전하! 대공가 마법사단 소속 데생트입니다!”

군기가 바짝 들어 인사를 건네는 마법사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맨 처음 정문에서 봤을 때 대공님이 살리니 죽이니 했던 당사자였으니까.

젊은 마법사 데생트는 존경 어린 시선이라고 해야 할지…….

과할 정도로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대공 전하께서는 마법이 잘 듣지 않기 때문에 망토에 마법을 걸고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제가 함께 나서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대공님은 변장 마법이 잘 듣지 않는다며, 자신이 어떻게든 해 주겠다며 따라나서기까지 했다. 그 덕에 현재 일행이 처음 예정보다 꽤 늘어났다.

“데생트 님이 이렇게 협조적인 건 처음 보는군요.”

“하하, 제타르 경. 경도 한번 죽었다가 살아나 보시면 제 마음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음, 이해합니다…….”

그렇게 함께 나선 인물은 제타르 경과 3사단 단원이자 디마의 아버지 요르마, 시녀인 아스와 데생트, 그리고 대공님이었다.

본래 제타르 경과 아스, 단 셋이 나가려 했는데 말이지.

“이쪽으로 쭉 가면 분수대가 나타난다구요?”

“네, 영애. 위대한 짐승 ‘둑스’를 모시는 신성한 분수가 도시 중앙에 있어요.”

내가 찾는 것은 둑스를 모시는 곳 중에서도 바깥에 있으며 가장 대중적인 장소였다.

이건 의외로 제타르 경이 쉽게 꼽아 주었다.

영지 한가운데에 둑스를 모신 분수대가 있는데, 아침이고 밤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는 곳이라 항시 붐빈다고.

‘이미지를 바꾸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네.’

“그곳은 30년 전 심각한 마나홀의 등장으로 손상된 뒤로 복구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때 무수히 많은 몬스터와 더불어 산맥의 왕인 요르문간드까지 나타났었거든요. 하지만 당시 도시를 지켜주었던 신성한 영험함은 남아 있다고 다들 믿고 있지만요.”

“아하, 아주 중요한 분수대네요.”

“네. 이전엔 저절로 깨끗한 물이 솟아 북부의 주요 수원지 중 하나이기도 했어요.”

모든 것이 얼어붙는 설산의 땅. 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식수 확보는 매우 중요했다.

펌프를 설치해도 얼기 일쑤였고 지상을 흐르는 물은 말할 것도 없었다.

30년 전에는 분수대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고.

“아, 그거. 제 스승님과 스승님의 스승님은 물론 온갖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덤벼들었지만 결국 고치지 못했죠……. 신성한 분수대라 그런지 마법으로도 복구가 안 됩니다.”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린 마법사 데생트가 설명을 이었다.

이후 북부에서는 각고의 노력을 들여 분수대를 원래대로 살리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때문에 분수대 복구는 지금도 마법사단 최대의 숙제라고 했다.

심지어 돌을 다시 쌓는 것도 안 된단다.

기사들이 열심히 무너진 부분을 보수하기 위해 돌을 쌓아도 다음 날이면 무너져 있다나.

‘진짜 뭔가 있는 곳이긴 한가 보네.’

소문의 이미지를 바꿔 보기 위해 그곳을 찾는 나로서는 작은 정보 하나도 귀중했기에 하나도 빠짐없이 새겨들었다.

“저곳만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식수 공급이 좀 더 원활해질 텐데 말이에요…….”

“음, 정말 중요한 곳이겠네요.”

“네. 그리고 현재 마법사단이 깨끗한 식수 공급을 주요 업무로 삼고 있어서 전력 손실이 크니까요. 분수가 원래대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몬스터 소탕에 더 힘쓸 수 있겠지요.”

그렇게 말한 것은 대공님이었다.

나도 모르게 대공님을 보았다.

“아쉬운 일이에요.”

무구하고 태연한 얼굴이지만, 어쩐지 진짜 ‘대공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당연한 건데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좀 더 영지민들과 가신들도 편해질 수 있을 텐데.”

자신의 영지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문득 래빗에게 애교를 가르쳐야 하나 고민했던 때와 같은, 아니, 비슷한 고민이 스쳤다.

지금도 충분히 대공다운 그에게 내가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고 요청할 자격이 있나?

“아, 그러고 보니 영애.”

“네?”

나는 잠시 놀랐다.

잠깐이었지만 무섭도록 진지했던 얼굴이 나를 보자마자 느슨하게 풀어졌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러운 모습인데도 왜인지 한참을 쳐다보았다.

“영애께서는 음…… 으음.”

“편히 말씀해 주세요. 무슨 일이세요?”

“영애께서는 황녀님과 많이 가까운, 사이이셨지요?”

“네? 네, 아무래도 그렇죠. 저는 황녀님의 유모였으니까요.”

마치 고무줄이라도 되는 듯 팽팽하게 당겨져 사나웠던 눈꼬리가 순식간에 내려가는 모습은 볼 때마다 신기했다.

그나저나 우리 래빗은 왜?

“황녀님은 갑자기 왜요? 혹시 여쭈신 까닭이 있을까요?”

“아, 그게 황녀 전하께서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고 계세요.”

“네?”

“음, 오늘로 스무 통째가 되었네요.”

“…….”

“내용은 대체로 이런 편이에요. 오늘 영애가 무엇을 먹었는지, 잠은 몇 시간이나 잤는지, 몸과 주변을 따뜻하게는 하고 있는지, 장작은 몇 개나 쓰는지…….”

“…….”

“아, 뼈는 부러지지 않았는지도요……? 영애는 벽에 부딪히기만 해도 금이 간다면서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입을 벌렸다.

저기, 래빗? 대체 너 뭘 보낸 거야.

“음, 황녀님께서 제 걱정을 조금 과하게 하실 때가 있으시죠, 하하…….”

“……영애, 지금 쓰시는 방의 벽을 모피로 둘러 드릴까요?”

“아니요!”

이놈의 갓 태어난 토끼 취급!

내가 째릿 쳐다보자 그가 움찔했다.

아차 싶었다. 그는 이미 시무룩한 표정을 지은 뒤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그건 과해요. 대공님. 저희 집도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다구요.”

“하지만 여긴 북부라 곳곳이 얼어붙기도 하고, 추위를 막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다람쥐 몬스터를 조금만 더 잡으면…….”

“아뇨, 그 다람쥐들은 더 좋은 곳에 쓰였으면 좋겠어요…….”

……대체 벽을 다람쥐 몬스터 털로 덮으려면 얼마나 잡아야 하는 건데.

아예 씨를 말리는 건가?

내가 입을 뻐끔거리는 사이 제타르 경과 아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람되지만 전, 아니 단 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영애. 영애의 건강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맞아요, 아가씨. 아가씨의 건강만큼 중요한 건 없습니다.”

“아뇨, 아뇨. 다들 진정하세요. 저는 정말 괜찮…… 으아!”

“영애!”

바삐 지나가던 행인 하나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

하필 돌로 뒤덮여 울퉁불퉁한 길을 걷고 있었던 터라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대로 휘청거렸다.

다행히 바로 옆에 있던 대공님이 붙잡아 주어서 험한 꼴은 면했다.

으으, 빙판길에 넘어졌더라면 건강 수치가 또 떨어졌겠지!

분명 건강 부자였건만! 이제 와서 또 거지같은 병약 섬에 떨어지다니! 수치를 생각해야 할 알거지 신세라니! 억울하다, 억울해!

“감사합니다, 단. 매번 신세를 지네요.”

“…….”

“단?”

성 밖에서 부르기로 했던 그의 호칭을 불렀지만 답이 없었다. 고개를 올리면 대공님이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기요? 잠시만요? 왜 감이 좋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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