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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17화 (117/281)

◈117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34)

나는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수줍음 가득한 얼굴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영애, 어땠나요. 알려주세요. 더 냉정해져야 할까요?”

“그…….”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아니, 저기요. 대답 좀 하게 그만 속삭이세요. 간지럽다고…….

“이제 돼, 됐으니까 귀에 대고 말씀하시는 건 그만하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이만 내려 주셔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 붙어 있지 않으면 영애가 추우실까 봐요…….”

“대공님이 힘드실까 봐 걱정이 되는걸요. 아니면 사람을 바꿔서 제타르 경이 절 업…….”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의 광증 수치가 올랐어요! (+1) 현재 광증 수치: 19]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 호감도가 내려갑니다! (-4) 현재 호감도: 87]

“아니, 아니, 아니! 대공님의 품이 좋아요!”

나는 멱살이라도 잡듯이 그의 옷자락을 콱 움켜쥐었다.

“……네, 영애가 원하신다면…… 저택까지 안아드려도 될까요?”

“……네, 부탁드려요.”

숨을 참으며 태연하게 답했다. 대공님은 부끄럽다는 듯 발그레 뺨을 물들였다.

가까이에 있던 영지민들이 그 모습을 보고 수군거린 건 물론이었다.

“오오, 금슬이 좋으십니다, 전하!”

“보기 좋습니다, 전하!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금슬이고 나발이고 저 광증 수치부터 해결해 주세요, 젠장! 수치 내려 줘, 더 내려 달란 말이야!

나는 그렇게 대공님에게 안긴 채로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사이 얼마나 모인 건지, 이 근처 모든 사람들…… 아니, 과장해서 이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여기 모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사람이 많았다. 당연히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대공님의 폭주도 없었고, 광증 수치가 엄청 오르지도 않았다.

‘그래, 일단은 좋은 게 좋은 거겠지…….’

거기다 퀘스트 보상으로 나쁜 소문도 가라앉다 못해…… 이제 더 생겨날 분위기도 아닌 듯하다.

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아주 좋은 일이었다.

마음이 조금 놓이자 절로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랬다. 건강 수치를 왕창 잃은 탓에 나는 다시 개복치 신세였다.

“빨리 방에 가고 싶다…….”

상황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나는 잠이 오는 한편 그야말로 얼떨떨한 심정이었다.

우선 분수대를 정말 고칠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 복구된 것도 놀라웠고, 사람들의 반응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란 것에 더 크게 놀랐다.

‘난 그냥 소문만 벗어나면 충분했는데……?’

심지어 환호하는 이들 사이에는 제타르 경과 요르마 경, 데생트 경도 있었다.

내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대공님이 유려하게 웃고 있었다.

“왜 웃으세요?”

“아, 여, 영애의 어리둥절한 얼굴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으음…… 그, 그렇군요. 아, 그런데 대공님 저를 언제까지 안고 계실 예정이실까요?”

“글쎄요, 영애의 방에 도착할 때까지?”

그랬다. 나는 여전히 현재 대공님의 품에 꼼짝없이 공주님 안기로 안겨 있었다.

조금 전이야 체온이 떨어져 어쩔 수 없었지만, 내려달라고 할 타이밍을 놓친 것 같다.

그 사이 사람들의 소리가 더욱 커졌다.

“영애, 저길 봐요.”

“……영지민들이 좋아하네요.”

난 숨을 살짝 참았다.

“대공비님 만세!”

“만세!!”

“부인이야말로 고대 짐승의 화신이셨다! 흑마법사라 말한 새끼 누구야, 나와!”

“이 슈타르의 명예를 걸고 앞으로 저분에 대한 모욕은 곧 나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한다!!”

……아니,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퀘스트를 진행한 거긴 한데.

사실 분수대가 복구된 것만 해도 그저 무슨 기적이 일어나서 분수대가 원래대로 돌아왔나 싶어 좀 놀랍고 신기한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에겐 의미가 전혀 달랐던 모양이었다.

“다들 무릎 꿇어! 꿇으라고!”

“오오, 둑스시여! 죽기 전에 저 분수대를 다시 보게 되다니!”

나는 그냥 호감만 얻으러 나왔는데,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거의 숭배하는 분위기였다. 부담스러웠다, 매우!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1) 현재 호감도: 88]

이 와중에 대공님 호감도가 착실히 오르기까지! 아, 이건 반갑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신 ‘둑스’의 분수대는 빙의자 님의 능력치로 깨어났어요! ヾ(๑ㆁᗜㆁ๑)ノ”]

그게 무슨 말인데, 내 능력치라니? 어느 능력치? 어떤 능력?

그러나 요정은 언제나처럼 제멋대로 대답한 뒤에 더는 말이 없었다.

뭐야, 똥 싸다 끊긴 것처럼.

“영애, 아무래도 마차를 불러야겠어요. 영애의 몸이 심하게 떨리고 있어요.”

“아, 네……. 좋아요.”

사양할 때가 아니었으므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까지야 대공님 체온이 워낙 따뜻하고, 또 너무 놀라서 잊고 있었지만 조금식 한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다행히 슬쩍 다가온 데생트가 마법으로 내 주변에 따뜻한 바람이 불게 해 줘서 조금 살 만해졌다.

“왜 황녀님께서 자꾸 보약을 먹이라고 하시는지, 이해가 가요.”

“네?”

……왜 보약이 여기서 나와?

“아, 황녀님께서 편지에 덧붙이시는 말이에요. 매번 ‘보약’을 강조하시던데……. 아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래빗, 내 귀여운 황녀님이 정말 걱정이 많았나 보다.

보약. 그 두 글자에 덩달아 누군가의 얼굴이 함께 떠올랐다.

‘말했지만 구해 오는 것은 나고, 먹는 것은 영애다.’

푸르른 하늘을 닮은 머리카락과 더욱 짙고 짙던 푸른 눈동자. 귀를 파고들던 낮은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 것만 같았다.

라이칸은 지금쯤 머나먼 국경 지대에 있을까?

아마 여동생의 말이라면 껌뻑 죽는 남자니, 고생고생하면서 몬스터를 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염려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아프냐고 묻는 대공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서요.”

“사람이요…….”

“네. 황녀님도 생각나고 가족들도 생각이 나네요.”

나는 작게 웃었다. 그 황자님이 어디 계신진 몰라도 다치지나 않으셨으면 좋겠네.

뭐 일단은 어쨌거나 한 달 뒤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 남 걱정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렇군요. 황녀님께서 영애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 하셨지만…… 그 말씀이 아니어도 눈을 뗄 수가 없는 사람이에요, 영애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대공님이 입을 열었다. 여전히 염려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귀가 토마토처럼 빨갰다.

“그런가요?”

“네. 영애, 혹시나 아프면 이야기해 주세요.”

“아, 지금은 괜찮아요. 조금 서늘하긴 한데.”

몸이 절로 파르르 떨렸다.

“영애! 많이 추우신가요?”

“아, 아뇨. 아니…… 네. 따뜻한 바람이 있는데도 조금 춥네요…….”

말을 하다 말고 옆에 있던 제타르 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놀란 표정이었다.

“헉, 영애, 추우시단 말입니까? 이런, 전하께서도 그렇고 영애께서 푹 젖으신 걸 간과했습니다. 우선 제 망토라도!”

그가 얼른 제 털망토를 벗어 내게 건네려 했다.

염치 불고하고 받으려 했는데…… 그보다 먼저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타르, 치워.”

“…….”

나는 손을 내밀다 말고 멈칫했다.

음? 대공님을 올려다보니 그저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어라, 방금 살벌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영애, 많이 추우신가요? 급한 대로 여성 영주민에게 물건을 사오게 할게요.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 네네.”

“요르마.”

“넷!”

요르마 경이 얼른 달려나갔다. 데생트와 아스도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들은 금방 손에 뭔갈 한 아름 든 채로 돌아왔다.

“……하하하, 여, 여기! 지나가던 인심 좋은 부인이 망토를 빌려주었습니다, 전하!”

“전하, 저는 신발을 받았습니다.”

“저는 목도리를!”

데생트 경과 아스, 요르마 경이 차례로 무언가를 내민 통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사실 체온이 떨어지니 사고 속도도 떨어지기도 했고. 으으, 이제는 그만 방에 가서 쉬고 싶다.

“……춥다.”

내 중얼거림을 용케 들었는지, 마차로 가는 대공님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곧 우리가 탄 마차가 출발했다.

분명 조용히 나왔건만 돌아가는 길은 아주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대공님이 영지로 돌아왔을 때의 인파만큼은 아니어도 환호만큼은 거의 비슷한 정도였으니까.

행운은 겹쳐 들어오는 건지 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희한한 경험도 했다.

[인물 ‘제1마법사(리바)’의 신뢰도가 대폭 올랐어요! -10/50]

[인물 ‘제1마법사(리바)’의 신뢰도가 대폭 올랐어요! -1/50]

[인물 ‘제1마법사(리바)’의 신뢰도가 대폭 올랐어요! 10/50]

미친 듯이 오르네.

‘내가 분수대를 고쳤다는 소문이 벌써 영주성까지 퍼진 거야?’

대체 이 영지는 소문이 얼마나 빠른 거야? 실시간 검색어 수준이라고 해도 믿겠다.

나는 축 처져서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인물 ‘제1마법사(리바)’의 신뢰도가 대폭 올랐어요! 20/50]

쭉쭉 잘도 오르네, 그래. 이렇게 된 거 퀘스트나 빨리 달성했으면 좋겠다.

눈을 감으려는데 또 다른 창이 보였다.

[인물 ‘내성 수비대장(칼리)’의 신뢰도가 내려갑니다! -31/50]

오오, 칼리 그 언니의 신뢰도도 오르는 건가 싶어 가만히 지켜보던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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