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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26화 (126/281)

◈126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43)

“흐음? 르볼로 약초로구먼. 이 여우가 가져온 건가?”

“네. 둑스 님의 전령이라 그런지 아주 똑똑한 친구예요.”

내가 머리를 쓰다듬자, 둑스가 자지러지듯 웃으며 캉캉! 울었다.

“흐음, 붉은 여우라니……. 확실히 이 늙은이 인생에 다시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존재구려.”

“귀엽죠?”

“귀엽기보다는 신성하지. 북부인이라면 다들 그리 생각할 것이오. 그렇다 보니 오히려 누군가는 이 모든 게 거짓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

의미심장한 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가씨가 귀한 약초도 주었으니 내 약초값만큼 조언을 하나 할까 하는데 말이야. 아, 물론 아가씨를 이렇게 보고 있으려니…… 그리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말이야. 내 감이지.”

“흐음, 감이라. 확실히 북부 분들은 감을 중시하시는 것 같네요.”

“맞아.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지. 도시 안에서는 물론 심지어 영주성 안에서도 몬스터가 갑작스레 나타나는 곳이니까.”

나는 마나홀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가 말하길, 때로 영주성 안에서도 마나홀이 나타나곤 해 중요한 장소에는 강력한 보호 마법을 걸어 두었다고 했다.

“혹시 아가씨는 이 북부가, 혹은 이 영주성이 어떤 세력으로 나뉘어 있는지 알고 있나?”

“음, 짧게 들은 적 있어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쉽겠군.”

제타르 경이 설명해 준 적 있었지.

그때를 떠올리며 할머니를 바라보자, 그녀가 피식 웃었다.

“그럼 두 가지만 기억하면 되겠어. 아가씨를 따르거나 따르기 시작한 자들, 그리고 아가씨를 증오하다 못해 아예 세상에서 지우려는 자들.”

“……역시 제가 누군지 알고 계셨군요?”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나. 그 머리색은 우리 북부에 없다네.”

하기야. 내 머리색이 여기서 많이 튀긴 하지.

내가 대공님의 약혼자인 줄 알면서도 반말을 고수하는 모습.

거기다 미묘하게 나오는 박력까지.

나 또한 이미 이 할머니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눈치챈 상황이었다. 모르는 게 이상하지.

“따르는 자들이야 굳이 알 필요 없겠지만…… 아가씨를 증오해 세상에서 지우려는 이들에 대해서는 알아 둬야 하지 않겠어? 특히나 속이 음흉한 여기 행정관 놈들은 말이지.”

나는 잠깐 침묵하다 물었다.

“행정관, 아니면 총관 말인가요?”

“음흉한 자는…… 총관과 서기관입니다. 성의 경영과 재무를 돕는 자들이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인간들입니다. 무관이 득세한 곳에선 머리를 뱀같이 굴리는 자들을 특히 주의해야 하실 겁니다.”

제타르 경의 설명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할머니의 미소가 짙어졌다.

“설명한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아주 잘 알려 주었나 보네. 맞아. 그중에서 총관이 참 음흉하고 뱀 같은 놈이지. 이전부터 이상한 소문을 잘도 굴려 먹는 놈이었으니. 그 덕에 총명한 무관들이 골로 간 경우를 많이 봤어, 아주 많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달린 에스테 흑마법사설’은 그럼 총관의 작품이었던 건가.

나는 손에 잡힌 범인의 정체에 헛웃음을 삼켰다.

“감히 대공 전하의 머리 위에서 놀려는 꼴이 같잖아서 그대로 머리통을 쥐어 터트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말이야, 떼잉.”

적나라한 말에 나는 할머니를 살피는 것에 집중했다.

혼잣말하듯 툭툭 내뱉는 말들이었지만 내게 이런 것들을 알려 주려는 의도가 선명했다.

“감사해요. 좋은 조언이 된 것 같아요, 할머니.”

경고였다. 총관을 조심하라는.

“그런데 저, 이런 얘기를 해 주시는 이유가 뭔가요?”

“글쎄, 본래는 얼굴이나 한번 구경하러 온 거긴 한데……. 아가씨를 보니 이 늙은이가 호기심이 들어서 말이지. 혹시 아가씨는 주군과 가신의 관계에서 가신의 역할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어, 음. 보좌하는 역할 아닐까요?”

“이곳 북부에서 가신은 곧 대공 전하의 검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

“휘두르는 건 대공님이 되어야지, 검이 주인을 휘두르려고 해서야 되겠어?”

그러니까 이 여론 몰이의 범인인 총관이 하는 짓이 꼴 보기 싫었다는 건가.

“아, 물론 주인이 누가 봐도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목숨을 걸고 막아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내 보기에…… 아가씬 그리 나쁜 인간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음, 잠깐 보았을 뿐인데 어떻게 아세요? 사실 제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요.”

“진짜 음흉한 놈들은 그렇게 말 안 해. 그리고 이 늙은이의 감을 믿는 거지.”

둑스를 고쳐 안는 동안에 잠시지만 할머니에게서 한기가 느껴졌다.

웃고 있지만 결코 호락호락하게 보이지 않았다.

“정녕 해가 될 인물이었다면…… 이 늙은이도 아가씰 쫓아내는 쪽으로 돌아섰겠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으니, 일단 지켜보는 쪽으로 가기로 했네.”

“하하, 감사합니다…….”

내 직감이지만 어째 이 할머니를 적으로 두면 굉장히 골치가 아플 것 같다. 차라리 적도 아군도 아닌 게 다행이었다.

“뭐, 그래도 아쉬운 건 아가씨가 기사였다면, 아니 그쪽으로 조금이라도 실력이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그런가요? 기사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서……. 유감스럽네요.”

어쨌거나 내겐 고마운 사람이었다.

줄곧 찾고 있던 소문을 퍼트린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 주었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정보까지 주었으니까.

‘날 증오하다 못해 제거하고 싶어 하는 세력이라.’

나 참. 첫 번째 육아물보다 쉽다고 한 건 완전 취소다.

어쩌면 또 목숨을 위협받을 수도 있단 소리잖아?

“그래도 제 존재가 절대 대공님께 해가 되진 않을 거예요.”

에휴, 속으로 한숨을 살짝 쉬는 순간이었다.

휘이잉!

거대한 바람이 불었다.

둑스가 내 품에서 뛰어내려 귀를 쫑긋 세우더니 이빨을 드러냈다.

컁!

‘둑스?’

눈앞으로 거대한 빛이 쏟아진다. 공간을 쭉 찢어 버린 듯한 구멍이 보였다.

전에 한 번 보았던 구멍이었다.

‘마나홀!’

캉! 둑스가 정신 차리라는 듯 짖었다.

황급히 앞으로 나서려 하자, 누군가 내 손목을 강하게 붙들었다.

“아가씨, 뒤로 물러나!”

할머니였다. 나는 할머니를 한 번 쳐다보고서는 뺨을 긁적였다. 행동과 다르게 마음이 급했다.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뭐?”

“다리를 저시는 분을 두고 저만 도망갈 수는 없잖아요.”

“무슨 소리야, 난 다치지 않았어!”

“네. 그럼 다리는 왜 저시는 거죠?”

“…….”

둑스는 이 사람이 다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절뚝이는 모습은 연기라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같이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잠시만 물러나 주세요!”

나는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급히 바닥에서 굴러다니던 나뭇가지를 하나 주웠다.

‘끙, 큰일이다.’

이번엔 사람을 부르는 것도 애매한데. 저기 이미 몬스터가 길을 막았으니…….’

캬아아악!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어째서 마나홀 발생을 방지하는 마법이 걸린 이 정원에 저게 나타난 건진 알 수 없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나홀의 크기가 코볼트 킹이 나타났던 구멍보다는 훨씬 작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타난 몬스터의 숫자도 현저히 적었다.

‘일단 친위대들이 달려올 때까지만 시간을 벌자.’

이윽고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이 크게 포효했다.

크와아아악!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는 성인 남성보다 1.5배는 큰 덩치에 곰의 몸통과 독수리 얼굴, 비대칭인 날개를 가진 몬스터였다.

‘날개?!’

날개가 있는 걸 보고 놀랐지만 잠시 지켜보니 장식일 뿐 날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그리핀이다! 목을 찌르거나 정수리에 있는 흰 반점을 찔러!”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속으로 둑스를 불렀다.

‘둑스!’

그리핀은 딱 세 마리뿐이란 말이지. 둑스의 힘을 시험해 보기 좋은 상황이었다.

[스킬 ‘소환(lv.1)’가 활성화됩니다!]

[스킬 ‘빙의(lv.4)’가 활성화됩니다!]

(-1행)

[소환 대상 ‘신 둑스’(S급 영혼)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5분간 사용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04:59]

온몸에서 활기가 느껴졌다. 엠버넷의 힘을 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저 높은 곳까지 뛰어오르는 것도!

-인간! 힘에 취하면 안 된다! 컁!

‘알았어!’

최대한 한 번에 가자.

본능적으로 느꼈다. 둑스의 힘 또한 오래 써서 결코 좋을 게 없다는 걸. 마치 한계까지 물을 채운 컵을 들고 있는 기분이랄지.

푸욱. 첫 번째 몬스터의 목을 찌른 동시에 발을 굴렀다.

캬아악!

두 번째 몬스터의 앞발이 내가 있던 자리를 스쳤다.

“할머니!”

젠장! 놈은 나를 잡지 못하자 방향을 바꿔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채앵!

곰의 앞발과 할머니가 든 단검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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