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52)
북부 영지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엠버넷은 내게 북부 기사들 하나하나가 몹시 강하다고 했다.
칼리를 보면서 자신조차도 당해 내기 쉽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지만…….
난 그녀의 겸손이라 생각했다.
[스킬 ‘빙의(lv.4)’가 활성화됩니다!]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사 ‘엠버넷’(A급 영혼)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10분간 사용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09:58]
내 안엔 래빗의 힘과 둑스의 힘을 사용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처음 엠버넷 씨가 내 몸을 썼을 때와 다르게 이번에는 좀 더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일종의 치트키를 획득한 엠버넷 씨라 이거야.’
거기다 마법으로 치료를 받은 받은 데다 보약까지 먹어서인지 컨디션이 매우 좋았다.
지지 않으리란 생각이 가득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밀리더라도 둑스의 힘이 있고, 최악의 경우엔 래빗의 힘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어.
‘그래, 인생 뭐 있나.’
살아남기만 하면 그만이지!
다만, 속풀이는 좀 해야겠다!
챙!
나뭇가지로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칼리는 검을 맞대며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검기?”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생긋 웃었다.
“칼리 경,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는데, 너무 크게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
“힘 조절이 될지 모르겠거든요.”
아무래도 난 요정 그놈 때문에 성격을 좀 버린 게 분명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그로의 장인이 되어버렸잖아!
말하고서 잠깐 아차 싶었지만 이미 칼리, 이 언니의 눈에 분노가 가득했다.
무시당했다고 여긴 것 같았다.
“사악한 흑마법사 따위에게 질 정도로 약하지 않다! 그딴 나뭇가지로!”
아니, 검기를 보여 줘도 이런 소리라니. 역시 바닥에 한 번 눕혀 드려야 믿을 건가 봐.
나는 허리를 숙였다.
내 머리가 있던 자리로 거대한 검이 날아들어 공기를 갈랐다.
체격이 있어서인지 칼리는 꽤 커다란 검을 사용했다.
저런 검은 보통 무게가 있어 양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속도를 다소 포기하는 대신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그 위력이 상당하다.
‘엠버넷 씨가 누구보다 잘 알 테고.’
기력이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은 끄떡없었다.
‘엠버넷 씨, 너무 겸손하셨던 거 아니에요?’
그러자 내 몸에 빙의한 엠버넷 씨가 피식 작게 웃었다.
이를 본 칼리의 눈썹이 올라가더니 더욱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채앵!
곧 칼리의 검에서도 붉은 검기가 흘러나왔다.
‘미친, 검기가 뭐 저렇게 커?’
확실히 젊어 보이는 나이에도 내성 수비대장을 맡은 이유가 여기 있었다.
-인간, 잘 싸운다! 컁!
그러나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말했듯 엠버넷 씨는 더 오래 살았으며 동시에 본연의 힘 이상을 낼 수 있단 점이었다.
웃음기 어린 나직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달린, 몸이 가볍네요. 아주 가벼워요.
쾅! 나뭇가지를 휘두른 동시에 칼리가 뒤로 밀려 났다.
“큽……. 허?”
힘 싸움에서 밀린 그녀가 믿기지 않는단 표정을 지었다.
“어, 어떻게 이런 힘이……. 거기다 그 검술…….”
“전 거짓을 말하지 않았어요, 칼리 경.”
나는 손을 길게 뻗었다.
칼리의 날카로운 낯으로 혼란이 스친다.
[인물 ‘내성 수비대장(칼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45/50]
이도 잠시, 칼리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그래, 이해했다. 적어도 그 검엔 거짓은 없는 모양이군.”
칼리가 검을 고쳐 쥐었다.
[인물 ‘내성 수비대장(칼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43/50]
“의문스러운 점이 아직도 많지만……. 그래, 그 검이 진짜라는 건 알겠어.”
그녀의 표정에서 지금까지 보이던 번민이 사라진 것 같았다.
“하지만 나 또한 검을 든 이상 절대 물러날 수 없다.”
그 순간 칼리에게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그제야 생각났다.
‘……북부 사람들은 겨루는 것에 있어서는 뭐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고 했지.’
특히나 검과 결투에 관련해서는 말이다. 나는 숨을 꿀꺽 삼켰다.
-달린, 조심해야 해요.
‘네, 나도 느꼈어요.’
칼리의 검에서 세찬 검기가 흘러나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사람, 자신의 필살기라도 쓰려는 모양이구나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제타르 경이 북부 사람들은 대련으로 모든 걸 해결하며 가끔 죽는 사람도 있다고 했을 때 그냥 넘기지 말걸.
‘아니, 그냥 내가 오해해서 미안했다! 이 한마디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화가 났고, 칼리 저 언니를 때려서라도 설득하려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저 언니 생각은 다른 것 같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었다.
저 언니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이고.
‘엠버넷 씨, 우린 기절! 기절로 갑시다! 최대 기절이에요! 네?’
-으음……. 노력해 볼게요.
더는 대화를 주고받을 시간이 없었다. 칼리가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칼리의 검이 땅을 갈랐다. 자욱한 흙먼지가 일었다. 커다란 실루엣이 하늘로 오르는 것 같았다.
실루엣을 좇는다. 고개를 들자, 햇빛이 반짝거리며 위협한다. 엠버넷은 속지 않았다.
‘뒤!’
본능적인 감각에 내맡겨 팔을 휘둘렀다. 그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내 나뭇가지가 칼리의 목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아, 안 돼, 안 돼! 스톱!
이대로 가면 나는 상처 하나 없이 이기겠지만, 칼리는 죽을지도 몰랐다!
난 필사적으로 팔을 멈추면서 자세가 흐트러졌다. 흐트러지는 것과 작은 고통이 느껴진다. 검이 허벅지를 스쳤다.
“흐윽!”
나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끝내 나뭇가지를 놓지 않았다.
그 덕에 나뭇가지는 허공을 갈랐고 아무것도 베지 않은 채 바닥으로 향했다.
“하아, 하아.”
나는 숨을 내쉬었다.
[스킬이 종료되었습니다!]
[경고! 스킬의 지나친 과부하가 빙의자님의 몸에 영향을 미칩니다!]
[상태 이상 ‘무통’에 돌입해요! 。・゚・(ノД`)・゚・。]
[스킬 ‘몸에 나쁜 각성제(lv.2)’가 활성화됩니다!]
[스킬 레벨이 올랐어요!]
칼리가 놀라다 못해 경악 어린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 아니, 당신.”
칼리의 입술이 떨어졌다.
“나를 죽일 수도 있었을, 텐데……?”
“아니, 죽여서 뭐해요!”
이 사람이 지금 장난하나. 이런 순간까지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상처를 보니 더욱 아파 왔다.
‘으윽, 생각보다 더 많이 베였어.’
“말했죠, 나는 칼리 경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오히려 경 같은 사람 좋아해요. 하지만 너무 완고한 그 점은 마음에 안 들어요!”
나는 고개를 들어 진지한 얼굴로 칼리를 응시했다.
“대체가 그냥 말로 하면, 대화 좀 진솔하게 나누면 어디가 덧나요?”
“…….”
그래 말! 말! 토킹 어바웃! 좋은 수단이 있잖아! 울분이 터져 나왔다.
어? 이봐요, 언니. 내 취향으로 생기시면 다냐고요!
“난 처음부터 결백했어요. 내가 왜 의심받은 건지 이해는 하지만…….”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진정, 진정하자, 달린아. 후, 내쉬는 숨과 함께 분노가 가라앉았다.
“경도 봤겠지만 이 힘은 내 거예요. 나는 이 힘으로 북부의 아이를 지켰고 분수대를 고쳤어요.”
“…….”
“인정해요, 칼리 경.”
시선이 마주쳤다.
“난 당신보다 강해.”
“…….”
북부에서는 강한 놈이 법이라고? 그럼 오늘부터 이 언니의 법은 내가 되겠다.
“제가 북부인이 가진 자긍심까지 의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칼리, 이 언니가 잠시 아래를 보더니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그간 오해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녀의 검이 바닥에 꽂혔다.
“한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착각했습니다. 또한 편협한 사고에 갇혔음을, 진정으로 깨달았습니다.”
내 상처를 본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모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검을 맞았단 걸.
“…….”
“아울러 저를 살리기 위해 배려해 주신 점,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공격 궤적은 칼리 눈에도 잘 보였겠지. 그러니 왜 자길 죽이지 않았나 운운했을 거다.
그래도 끝까지 완고한 사람은 아니었다.
[인물 ‘내성 수비대장(칼리)’의 신뢰도가 올라갑니다! -38/50]
[신뢰도가 빠른 속도로 상승한 탓에 산정에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결투 신청이라도 할 걸 그랬다.
‘나 참, 실력 행사를 하고 나서야 믿는다니.’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결국 인정할 거면서 대체 왜 그렇게까지 의심을 한 거예요.”
진짜 억울해 죽는 줄 알았네.
“……이 북부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기꾼이 오갔습니다. 자신들의 종교를 강요하는 신관들, 타국에서 상인인 체 나타나 몬스터의 부산물을 빼돌리는 적국의 간자들. 그리고…… 오래전 나타나 마법사인 척 땅을 오염시킨 흑마법사들까지.”
칼리, 이 언니가 조금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 내 취향의 얼굴이라 외면하기 힘들었다. 내가 언제부터 그렇게 얼빠였다고! 그래, 나 얼빠였지!
“지나친 의심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라리 그 독을 삼키는 게 나았던 역사를 지나왔습니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