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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39화 (139/281)

◈139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56)

“이미 칼리 경은 제게 많은 걸 고백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자백할 일이 더 있을 거예요. 아마 대공님께도 직접 이야기할 거예요.”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이 세력엔 그간 그토록 충성해 온 가신들이 섞여 있어 대공님이 이들을 직접 처벌을 내리게 됐지만.

‘그것까진 내가 어찌할 순 없겠지.’

그렇다고 그들을 그대로 두고, 내가 죽어 줄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칼리의 처벌은 잠시 유보되었다.

어디까지나 유보였을 뿐 처벌을 피할 길은 요원해 보였다.

나 또한 이것까지 막진 않았다.

‘이 언니가 얻어터지고 마음을 바꿔서 그렇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위험해졌겠지.’

그 후 응접실로 들어가, 칼리는 ‘거대 마나홀’을 끌어오는 도구를 언급했다. 이걸 이용해 나를 죽이려 했단 걸 자백했다.

물론 여기선 대공님과 래빗, 라이칸을 포함해 분노를 터트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의 대화 끝에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사실 회의가 끝난 건 아니지만 시시각각 피로해지는 내 얼굴을 기민하게 눈치챈 세 사람이 나를 돌려보낸 것이다.

“롤린, 괜찮느냐?”

그리고 돌아온 내 옆엔 래빗이 함께였다.

“네, 괜찮아요. 사실 아까 거긴 너무 시끄럽기도 해서…….”

내 친위대인 특무대 3대대 단원들이 어찌나 울분을 토하던지.

너무나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내 부친을 자처하는 사람이 2n명쯤 되니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아니, 좋아해 주는 건 감사한데 전 이미 부친이 있다고요…….

“어쨌거나 한동안 그놈이 다시 눈깔이 돌아 버릴 일운 없다눈 거지?”

“네, 아마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난 짐작했다.

그들이 나를 돌려보낸 이유가 단지 내가 피로해 보이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아마도 날 죽이려던 세력을 직접 불러 문초할 텐데…….

‘그걸 나한텐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라이칸이 래빗을 방으로 돌려보낸 것도 그런 맥락일 터였다.

“‘아마도’눈 확실한 게 아니지 않누냐.”

“저도 확실하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라 그래요.”

이제 퀘스트에 표시된 폭주 위험은 단 한 번.

‘최종 발작.’

그건 일어날 수도 있고, 이전의 경우처럼 일어나기 전에 내가 막아 낼 수도 있다.

지금 같은 상황을 봐서는 일어나기 전에 막을 가능성이 더 컸다.

“대공님은 제 위험에 반응해서 폭주하시는 것 같아요. 처음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지만…… 지금은 확실해요.”

“괘씸한 놈 같우니.”

음?

어울리지 않는 대답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감히 롤린에게 검울 들이댔다. 그놈운 그것만으로 죄인이나 마찬가지야.”

아! 그래. 나는 박수를 쳤다. 막 생각났다는 듯이.

“아,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엔 화를 내지 않으셔서 저도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장난스럽게 덧붙이자 래빗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곧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네게 검울 둘이댄 걸로 누군가룰 머라고 할 순 없어.”

“왜요?”

“……내겐 자격이 없눈골. 나도 널 다치게 했우니까.”

“아.”

전에 신관의 세뇌를 받아 나를 찔렀던 일을 말하는 거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

“중요한 건, 절 좋아해 주시는 거죠. 아주아주 많이.”

나는 시무룩해하는 래빗을 안아 주고는 근처에 있던 둑스를 들어다 안겨 주었다.

사랑스러운 아기가 아기 여우를 어설프게 안고는 눈을 깜빡였다.

“저 그런 거 다 잊었어요. 거기다 그건 황녀님도 세뇌를 당하셨던 거잖아요? 제가 괜찮으면 됐죠.”

살아남기만 하면 된다.

‘처음엔 이랬었는데 말이지.’

그러나 나는 어느새 첫 번째 이야기에서 래빗이 행복해지길 바랐던 것처럼 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만난 대공님도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나는 래빗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고는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음, 역시 한바탕 피바다가…… 되려나?’

창문 밖으로 특무대 단원들에게 잡혀서 질질 끌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누군가는 마구 항의하며 버둥거렸고 누군가는 체념한 듯이 잡혀갔다.

하도 소리가 커서 가끔 ‘악녀’니, ‘간악한 흑마법사 X’니 하는 원색적인 욕도 들렸다.

‘……저 사람은 정말 살아남기 어렵겠는데.’

나는 아래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눈을 지그시 감았다.

‘대공님의 호감도가 현재 98이었지?’

생각한 순간이었다.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1) 현재 호감도: 99]

[인물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의 광증 수치가 내려갔어요! (-1) 현재 광증 수치: 16]

이 사람은 떨어져서도 내 생각을 하는 중인가?

나는 요정의 창을 한참이나 보았다.

“롤린, 왜 그러누냐?”

“으음, 음…….”

“고민이 많운 표정이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고민이 전혀 없는 건 아닌데…….

이걸 무어라 표현할지 참 애매했다.

[스킬 ‘몸에 나쁜 건 날아가라!(lv.1)’가 활성화 중입니다!]

[스킬 효과가 지속 중입니다. (효과: 모든 패시브 스킬 해제)]

* * *

그날 저녁.

창문 밖에서는 온종일 비명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래빗은 나와 함께 내내 있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잠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도망쳤다고요?”

“네. 몇몇은, 특히나 주요 인물 하나가 산맥으로 도망쳤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난 방을 찾아온 대공님과 대화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 막 추격대가 붙잡았단 보고를 받았어요. 이들은 아마 내일 볼 수 있을 거예요.”

“아하…….”

칼리가 말해 준 세력중에서 가장 우두머리 격인 총관 아르테반을 제외하고 몇몇 문관 귀족이 도망쳤다고 한다.

그에 반해 무관들은 대부분 반항 없이 잡혀 와 조사를 받았다고.

그리고 나를 성 밖에 내다 버린 마법사는 잡힌 뒤 얼마 가지 않아 모든 걸 털어놨다고 한다.

‘이 모든 게 반나절 만에 이루어졌단 말이지…….’

나는 새삼스럽게 대공님을 바라봤다.

이 모든 걸 한 번에 해치워 버린 대공님도, 명령이 떨어지고 하루 만에 완벽히 수행한 특무대와 기사들도 대단했다.

어쩐지 황실에서 북부 세력을 견제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리고 웃긴 일이 있었다.

코미디라면 코미디인데, 어째서인지 잡혀 온 귀족들이 하나같이 아르테반의 관여를 부정했다.

그 탓에 아르테반을 잡아 두고는 있으나, 물증은커녕 증언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단 하나, 칼리의 강력한 주장 외에는 말이다.

“칼리 경이 오늘 잡혀 온 귀족들에게 욕을 먹었다고요…….”

이전까지 광신도에 가까웠던 칼리의 모습으로 추측해보면.

오늘 잡혀 온 이들은 광신을 뛰어넘는 삐뚤어진 충정이 더욱 강할 테다. 아르테반마저 잡히면 안 된다 생각한 거겠지.

‘진짜, 징하네.’

얘네 처단하라는 퀘스트는 안 뜨냐?

떴으면 아주 적극적으로 나섰을 텐데 말이지.

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문을 응시했다. 곧 저녁 시간이었다.

대공님은 이 모든 상황을 이야기해 준 뒤 함께 식사하기를 권했고, 거절할 이유가 없는지라 함께했다.

물론 식당엔 현재 대공님을 제외하고 이 성을 방문한 손님, 래빗과 라이칸도 함께였다.

세로로 긴 테이블에 소수의 인원만이 앉은 식사는 솔직히…….

불편했다.

‘와, 이렇게 불편한 식사는 처음이야.’

어째서인지 식사 자리에서 라이칸과 대공님은 단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표정이라도 평안하면 모를까, 아니, 기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심상치 않은 기운이 오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컁, 인간, 저 인간 남성체 둘은 곧 싸우는 거냐?

심지어 둑스까지 이렇게 말하며 꼬리를 세우니 말 다 했지.

어째 하는 행동은 둘이 무언가 이야기라도 주고받은 분위기인데…….

정확한 내용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다만 각기 특유의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는 건 분명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어찌 된 노릇인지, 이전까지 그냥 넘어간 것들이 수두룩 떠오른 탓에 나는 이 분위기를 더욱 예민하게 느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엄마……. 듣고 계신가요?

제 눈치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저…… 인생의, 인기 절정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은데요…….

래빗을 한 번 보았다.

우리 황녀님은 역시나 내 편이었다.

괜찮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기에 어색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살려 달라는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든든하게도 행동에 나서기까지 했다.

물론, 냅다 일어나 라이칸을 걷어차는 건 예상 못 한 일이었지만.

“식샤하러 왔우묜 식사룰 해라! 체할 것 같댜!”

“……그러지.”

이에 대공님이 나를 흘끗 바라봤다.

‘우리 지금은 식사해요, 식사.’

포크를 살짝 흔들자, 대공님도 혼난 강아지처럼 시무룩해서는 고개를 내렸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대공님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제타르 경의 보고에 먼저 자리를 비웠다.

그가 방까지 데려다주는 바람에 일단은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망토를 챙겨 입었다.

‘으으, 조금 걸어야지.’

체한 건 아니었지만 조금 걸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가슴엔 둑스를 안은 채로 자박자박 걸어 나왔다.

“와, 그새 눈이 내렸네.”

하얗게 쌓인 세상은 머릿속마저 깨끗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눈을 보며 감탄하고 있으려니, 함께 나온 린이 재잘재잘 설명해 주었다.

이곳엔 시시각각 눈이 오는데, 어떨 땐 잠깐 사이에 이렇게 쌓이기도 한다나.

낮의 풍경을 생각하면 확실히 색달랐다.

빛과 그림자가 섞인 이 풍경이 싫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 더 걸었을까, 정자가 보였다.

이곳 또한 지붕에 눈이 쌓여 낮과는 다른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

나는 고개를 들다 멈칫했다. 정자엔 선객이 있었으니까.

“영애?”

라이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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