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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48화 (148/281)

◈148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65)

“어, 네. 뭐든지요.”

“그 혹시 앞으로 제 말에 답변으로 △△△하고…… △△△를!”

“네? 영애? 잘 들리지 않아요.”

나는 목이 메었다.

막 말을 이어가려는 도중에 목 안쪽에서 따끔한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애써 고통을 참고 이야기하려 했지만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흐음, 쉽게 가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이거지?’

대공님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것처럼 이것 또한 미리 짜고 움직일 순 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이거까지 가능했다면 퀘스트가 너무 쉬워지긴 하지.

그렇다면 나는 요정이 보여주었던 ‘환상’에서 어떤 것에 주목해야 할까?

퀘스트는 ‘클라이막스’를 연출하란 말과 대사가 나와야 한다는 말 외에 다른 지시사항이 없었다.

대공님에게 그 환상 속처럼 움직이게 하는 건 내 몫이었다.

그렇다면 그 환상 속에서처럼 분노하게 해야 할까? 분노하면서 대사를 하게 만들어야 하는 거야? 아니면 대사만 같아도 되는 건가?

대사만이라면…….

<계약이 끝났으니 난 가겠어요.>

<그 계약은 무효야.>

이 두 대사가 핵심인데 말이지.

‘이걸 잘 모르겠단 말이지.’

모든 사실을 그대로 밝히려 들면 요정이 개입한다.

따라서 내가 뱉을 말의 진위를 대공님에게 명확히 밝힐 수 없는 상황이니 나는 어떻게든 조리있게 상황을 연출해야 한단 말이지.

다만 아직 폭주의 위험이 남은 상황에서 대뜸 계약 끝이란 말을 올릴 수는 없다.

온건히 말하더라도 이 대공님이 온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끝이니까.

‘이제 와서 마지막 폭주를 일으키게 할 수는 없지.’

최종 폭주인 만큼 그때는 어쩌면 내 목소리조차 그에게 가닿지 않을, 최악의 경우도 가정해야 했다.

앞선 폭주처럼 쉽지 않을지도 모른단 가정 말이다.

‘쉬운가 싶으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단 말이지.’

이렇게 된 이상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조사해보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이 사람의 폭주를 막으면서도 내가 원하는 장면을 연출하려면 나는 이 사람에 대해 더 알아야 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간다는 건 그만큼 상대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할 텐데.

대체 이 퀘스트는 뭘 위해서 만들어진 걸까?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대공님, 전에 전 대공님께서 지금 이런 모습인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 드렸잖아요. 사실 지금도…… 그 마음엔 변함없어요.”

조금 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자.

첫 번째 이야기에서 래빗을 위해 원작에 접근하는 방식을 바꿨던 때처럼.

이 모든 것이 북부 대공이 전형적인 클리셰 속 ‘북부 대공’같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 비틀어짐, 이라고 가정해보자.

“뜬금없지만, 대공님은 어린 시절에 어떤 아이였나요?”

“네……?”

나는 그의 옆에 나란히 앉은 채로 살짝 미소했다.

“대공님께서 제게 마음을 고백해주신 만큼 저도 대공님이 궁금해졌어요. 그 마음에 답변을 드리기 위해서는 저도 대공님에 대해서 더 알고 생각해보고 싶어서요.”

진심이었다. 정말 마음이 없어서 거절한다 한들 이렇게 애틋한 진심으로 부딪쳐온 사람인만큼 성의 없이 거절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대공님은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눈물이 많으셨나요?”

나는 살짝 웃으며 내 눈가를 톡톡 두드렸다.

어느새 영문은 모르겠지만 대공님의 눈에 물기가 어려 있었으니까.

“……이름을. 이름을 불러주시면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애.”

그가 내 손을 가져와 제 뺨에 살짝 가져다 대며 시선을 내렸다. 긴 속눈썹이 내려와 그림자가 그려졌다.

처연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 이런 빌어먹을 취향 같으니. 너무도 내 취향이라 곤란했다.

더불어 ‘눈치는 약에 쓰자’ 스킬은 그를 향한 호감을 제한하거나 둔하게 만들 뿐…… 이런 성적 긴장감은 별개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그래요, 휴고. 궁금해요.”

“……어렸을 때에도 눈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부친에게도 자주 혼이 나는 아이였죠.”

휴고가 천천히 제 입을 열었다. 뺨의 열기가 더 뜨거워지는 게 손끝에서 느껴졌다.

“항상 저는 북부인답지 않은 아이였으며, 북부의 후계자답지 못한 아이였어요.”

“…….”

“눈물은 사람을 약하게만 만드는 것이라며…… 내 아버지는 매도 아끼지 않았던 것 같네요.”

항상 내 앞에서는 조심스러운 말투를 쓰던 휴고가 지금만큼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눈물을 흘릴 때마다 밥을 주지 않았고 서쪽 탑에 가둬지기도 했어요.”

“그건…….”

“학대일지도 모르지만 북부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죠. 북부의 후계자는 강해야 하니까. 결점이 없어야 하니까.”

“…….”

“아마 부친이 30년 전 분수대가 부서진 날에 입은 상처가 더욱 악화되어서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부친의 염원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겠죠. 지금 이 자리에 그 사람이 추구했던 모습의 대공이 서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로판 속 남자주인공은 대체로 불우한 가정사를 가졌다. 그 안에 학대는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활자로만 읽는 것과 경험담을 직접 듣는 것의 무게는 다르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그 순간이었다.

[히든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퀘스트(히든) - ‘진실이 알고 싶은 당신! 판돈을 걸어라!’

세상에! 놀랍게도 당신은 두 번째 이야기에서 비틀어진 진정한 ‘원인’에 다가서려 합니다!

사실 이것은 반드시 당신이 알아야만 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진실을 알고 싶나요?

만약 이 진실에 다가선다면 당신은 세 번째 이야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합니다.

내용: 지령을 완료하세요.

성공 시: 두 번째 이야기의 비틀어짐에 대한 진실, 세 번째 이야기에 대한 단서, ‘요정’에 대한 단서

실패 시: 북부 대공(남자주인공)의 최종 폭주, 사망

기한: 30분]

[본 퀘스트는 거절이 가능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이건……. 첫 번째 이야기에서 마주한 적 있는 형태의 퀘스트였다.

히든 퀘스트.

목숨을 걸고서 하는 퀘스트였다.

[요정의 꿀팁 재방송! 히든 퀘스트는 아주 특별한 상황에만 발생해요! ( •⌄• ू )✧]

거기다 지금 요정에 대한 단서라고 했지?

지금 이놈은 스스로에 대한 단서를 주겠다고 나선 건가? 나는 눈을 찡그렸다.

[요정은 요정이 알고 싶은 호기심에 기꺼이 응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두 번째 메인 퀘스트를 실패하면 요정과도 마지막이에요. o(╥﹏╥)]

이건 제안인 동시에 경고였다.

목숨을 걸고서 이 퀘스트에 응하면 진실을 알 수 있겠지만 실패하면 거의 마무리에 다다른 퀘스트도 끝. 그리고 나도 죽게 될 것이라는 경고.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이내 입술을 끌어올렸다.

‘수락해.’

언제는 생명이 위태롭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어차피 모든 메인 퀘스트가 내 목숨을 내걸고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위험이 하나 더 추가되어봐야 이제 간지럽지도 않았다.

건강 수치가 떨어지는 방식도 아니고, 한번 해보겠어.

거기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이야기도 남아있는 지금, 요정이란 존재에 대해서도 더 알아야만 한다.

‘단서나 힌트라도 좋아.’

계속 아무것도 모른 채로 정체도 모르는 존재에게 휘둘리기만 할 순 없으니까!

“아버지가 죽던 날, 영애. 나는 참 우습게도 슬픔이나 분노가 아닌…… 해방감을 느꼈어요.”

[히든 퀘스트에 따른 보너스 스테이지가 열립니다!]

대공님의 목소리가 차차 멀어지는가 싶더니 눈이 그대로 감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허공에 둥실 떠 있었다.

발아래로 거대한 영지가 보였다.

“쫓아내라! 여기서부터는 민간인이 사는 마을이다! 절대 내어줄 수 없어!”

“우리의 가족과 동료를 지켜라!”

그 아래로는 병장기를 든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보였다. 말을 탄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무언가를 등진 채로 필사적으로 보호하고 있었다.

‘……분수대?’

분명 둑스의 분수대였다.

거기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는…… 땅을 새까맣게 채운 몬스터들이 있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생긴 것도 제각각인 몬스터들의 흉흉함이 기가 질리게 만들었으니까.

‘거기다 저건 뭐야?’

게다가 몬스터들의 가장 가운데에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거대한 괴물이 있었다.

검은 뱀의 형태를 한 괴물. 보기만 해도 몸이 파르르 떨렸다.

괴물의 눈이 이쪽을 향하지 않았음에도 본능적으로 불길함이 느껴졌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에게는 위대한 짐승께서 함께 하신다!”

인간들 중 가장 앞에서 거대한 흑마에 올라탄 사람이 외쳤다.

그와 동시에 분수대에서 눈부시도록 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저건, 전에 나도 분수대에서 봤던 빛이잖아? 저 빛을 맞은 뒤로 둑스를 처음 만났었지?

-끼잉, 이건 과거의 일이구나.

‘둑스!’

어느새 내 옆에는 아기 여우가 둥실 떠 있었다.

과거? 그럼 설마 저 흑마에 올라탄 사람은……. 다시 보니 새카만 머리카락과 붉은색 눈동자.

어딜 봐도 휴고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물론 조금 더 유약한 인상이긴 했다.

‘휴고의 부친인가?’

미남이었으나, 아이를 학대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상이었다.

전투는 몹시도 치열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 곧 전투의 결말이 보였다.

둑스에게 뭐라도 묻고 싶었지만 아기 여우는 한눈에 봐도 괴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리한 건 인간이었지만, 남은 건 처절하게 부서진 분수대. 그리고 거대한 뱀의 엄니를 어깨에 맞은 휴고의 부친의 모습. 수없이 많이 죽어 쓰러진 사람들과 몬스터들의 사체뿐이었다. 남은 몬스터들과 상처 입은 거대한 뱀 괴물은 하얀 빛에 휩싸여 사라졌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한참을 바라보던 둑스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시 봐도 이상했다, 컁.

“뭐가 말이야?”

-나는 이때 저, 신수 ‘요르문간드’를 쫓아보내고 이 땅를 지켰다, 컁. 하지만 오염된 땅을 돌리기 위해서 많은 힘을 사용해야 했고 많은 힘을 잃었다, 컁. 지금도 왜 저놈이 이 땅을 공격했는지 모르겠다.

“저 거대한 뱀 말이지? 원래는 부딪칠 일이 없었어?”

-그렇다, 컁. 어쩌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도…… 부딪칠 일이 없는데, 저렇게 오염된 상태로 나타나서 이상했으니까. 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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