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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52화 (152/281)

◈152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69)

“그건 잘 모르겠어. 이 뒤엔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거든.”

나는 더는 나아가는 것을 멈춘 채 휴고에게 물었다. 되도록 앙상한 그의 팔목과 다리를 보지 않으려 애쓰면서.

“혹시 돌아가고 싶어?”

“…….”

“널 거기 다시 가두게 만들겠단 건 아니야. 거기 있더라도 아마…… 널 데리러 갈 사람이 나타날 것 같으니까. 그 사람과 가도 돼.”

바란타나 그녀의 세력이 도착할 것 같은데.

휴고가 이대로는 불안하다고 말한다면 말이다.

음, 이렇게 되면 좀 힘들긴 하겠지만 바란타와 합류해서 함께 가면 되겠지.

“내, 내가 귀찮게 했어?”

“아니? 전혀.”

“그, 그럼 그대로 갈래……. 그냥 너랑 계속, 같이 있나 궁금해서.”

“궁금할 수 있지. 네 일이잖아.”

난 그렇게 말하며 이번엔 날 대신해서 둑스를 바닥 아래로 내려보냈다. 둑스를 오른쪽으로 보냈으니 난 왼쪽으로 가야겠다.

“너, 너랑 계속 같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그럼, 보통, 어떤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으면 어떡해야 해……?”

“글쎄. 친구가 되거나, 가족이 되거나?”

아이답게 속이 환히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바깥 소리에 집중하느라 유심히 대꾸하지 못했다. 휴고가 “가족…….”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 있어, 휴고.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올게.”

“있잖아, 넌, 이름이 뭐야?”

우리의 말이 겹쳤다. 아니,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컸다. 나는 휴고를 빤히 보다가 씩 웃었다.

“미안, 그거야말로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아. 못 알려줘.”

이와 동시에 바닥으로 향했다. 둑스 쪽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둑스가 갔던 방향과는 반대편을 쭉 살폈다. 좋아, 이상 무. 휴고를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했다.

그러나 너무 쉽게 생각했던 탓일까,

막 모퉁이를 돌았을 무렵 이쪽을 향해 무섭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검은 기사 단복, 휴고의 적이었다.

“이런, 공자님이 밖으로 나왔다!”

황급히 휴고를 숨게 하려 했지만 이미 저쪽에서 휴고를 발견한 뒤였다.

“휴고, 뛰어!”

나는 휴고 옆에서 날아오르는 동시에 상황을 살폈다.

‘이런, 바란타 쪽은 보이지 않는데!’

두 세력이 싸우는 틈을 타 내려가려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애석하게도 휴고의 뜀박질은 금세 따라잡혔다. 힘과 검술은 뛰어났지만 신체가 아직 아이의 것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공자님! 그만 방으로 돌아가 주셔야겠습니다.”

휴고는 겁을 먹은 채로 나를 흘끗 보았다. 그러더니 곧 울먹이는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시, 싫어!”

“공자님. 이런 식이면 대공 전하께서도 실망하실 겁니다.”

“…….”

휴고가 주춤 물러나며 검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무, 물러나지 않으면 너흴 모, 몬스터 취급할 거야.”

“공자님께서 말입니까? 하지만 저희 모두를 쓰러트릴 수는 없을 텐데요.”

그 사이 나는 뒤로 몰래 날아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나무 막대를 주웠다.

실험해봤는데 휴고 외에는 나를 볼 수 없는 모양이지만 어떤 방법을 쓰면 저쪽에 물리력은 행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움 횟수를 쓰면 말이지.’

남은 횟수는 한번. 신중하게 써야 한다.

전투가 불리해질 시, 참여할 생각으로 나무 막대를 들어 올렸다.

‘둑스 신호하면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가능하다, 컁! 하지만 현재 이 몸으론 많은 도움을 줄 수 없다!

‘알았어.’

“셋을 셀 동안 그 검을 내리지 않으면 당신을 제압하겠습니다.”

대표로 서 있던 기사가 으르릉거리듯 말했다.

“셋.”

“으랴아아아!”

그 순간 검은 기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빠져나와 말을 하던 대장 격 기사의 뒷통수를 노렸다. 대장 기사는 황급히 몸을 돌려 공격을 막아냈다.

“이딴 광경은 못 보겠네, 진짜!”

“가르카!”

검은 기사들 사이에서 낯익은 남자가 소리쳤다. 그와 함께 보초를 서던 선배라는 남자였다. 선배는 몹시 경악한 표정이었다.

“당장 그 검 내리지 못해? 무슨 짓인가! 이들은 대공 전하의 친위대다!”

“하지만 선배! 이건 아닌 것 같아요, 공자님이 이렇게까지 어리단 말은 안 했잖아! 젠장, 진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인다고! 당신들이 무슨 짓을 한지 자각이나 해?”

가르카가 울분을 토했다.

“대체 애한테 몇 명이나 덤비는 거야!”

기분이 묘했다.

현재의 가르카는 그야말로 강인함을 숭상하는 전형적인 북부 사람 같았는데?

그저 어린아이를 공격하고 괴롭혔단 이유만으로 대공의 친위대에게 칼을 겨누다니. 본인도 충동적인 행동이었던 듯 그의 얼굴엔 혼란이 가득했다.

“얼굴은 처음 봤지만 그간 공자님께 무슨 짓을 했는지는 나도 다 들었어요! 후계자도 중요하지만, 아니 엄청 중요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지금도 충분히 강하시다면서!”

“그게 무슨 상관이지? 대공의 후계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자라야 한다! 이 강인함에는 그 어떤 일에도 흔들림 없는 냉정한 성정도 포함된 법이다!”

“몰라, 으아아, 강하시다며! 그럼 그만이지! 난 그딴 거 모르고 살 거야!”

가르카가 휴고를 보호하듯 등지고 검을 들어 올렸다.

“이봐요, 공자님. 여긴 내가 맡을 테니까 얼른 가요! 얼른! 밑에는 바란카가 있어요. 그 사람을 찾으세요!”

“…….”

“에라이, 감옥에 갇히면 아버지가 꺼내 주겠지 뭐!”

[‘조력자’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뭐? 이거 설마 도움 횟수로 치는 건 아니겠지?

[‘조력자’는 빙의자님과 별개의 존재로 ‘도움’횟수로 카운트하지 않습니다.]

나는 휴고를 재촉했다.

“얼른 가자, 휴고!”

“으응.”

휴고는 가르카의 등을 한번 유심히 보더니 이내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달려갔다.

다행히 복도가 좁아 덩치가 큰 가르카가 막고 있는 동안에 쫓아오는 이는 없었다. 다수와 전투를 하게 된 가르카에게도 잘된 일이었다.

등 뒤로 병장기 소리가 멀어진다.

‘좋았어, 여기서부터는 내가 아는 경로다!’

탑 내에서 보았던 리바의 모습. 그가 관리하던 길이었다.

리바가 직접 함정을 설치하면서 중얼중얼 설명에 가까운 말들을 중얼거렸기에 곳곳에 숨겨진 함정도 쉽사리 피할 수 있었다.

“휴고, 여기서부터는 검은 발판만 디뎌!”

거기다 이 길로 가면 쪽문을 통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단 걸 확인했으니, 지름길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우리 앞으로 조그만 문이 보였다.

‘좋아, 저기로 휴고를 내보내기만 하면 이 퀘스트는 여기서 끝이야!’

탈출이 목전이었다.

“거기 서라!”

그러나 불운하게도 문은 잠겨있었다.

휴고가 문을 파괴하려는데, 어디선가 단검이 매섭게 날아왔다. 휴고가 빠르게 단검을 피했다.

돌아보면 조금 전과는 다른 검은 기사 무리가 잔뜩 서 있었다.

“휴고 그 문을 부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두꺼운, 철인 것 같아. 오, 오 분!”

“그래? 알았어. 그럼 내가 앞을 맡을 테니까 문을 부숴.”

“네, 네가?”

“응. 내가.”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을 당신의 능력으로 돕겠습니까? (1/2)]

나는 걱정이 가득한 휴고에게 씩 웃어주었다.

“나 좀 강하거든.”

[스킬 ‘소환(lv.1)’가 활성화됩니다!]

[스킬 ‘빙의(lv.5)’가 활성화됩니다!]

[소환 대상 ‘신 둑스’ (S급 영혼)의 힘을 받아들였어요!]

[5분간 사용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04:58]

내가 쥔 나뭇가지로 둑스의 힘, 주황빛 기운이 어른거렸다.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2/2)]

[스킬 종료 후 더는 ‘남자주인공(북부 대공)’을 도울 수 없습니다!]

고개를 들면 시야가 더욱 또렷하고 자세하게 보였다.

짐승의 눈과도 같은 시야. 나는 곧 바닥을 박차고 움직이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을 제압했다.

“뭐, 뭐야, 나, 나무 막대가 홀로 움직인다!”

“젠장, 마법사가 돕는 건가?! 막아!”

사람 숫자가 꽤 많았지만 제압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몸이 더 가벼웠달까.

‘힘을 쓰면서 더욱 익숙해지는 기분이네.’

-당연하다, 인간! 네 신체가 적응한 거니까 컁!

흐음, 쓸수록 더 잘 움직일 수 있단 말이지. 이러다 스킬 없이도 기사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이런 헛된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마침내 마지막 기사를 제압해 기절시킨 동시에 캉! 거대한 소리와 함께 휴고 또한 자신의 일을 완수했다.

휘이이잉, 세찬 바람이 불었다.

겨울을 품은 아주 시린 바람이었지만 어쩐지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깥을 바라보는 아이의 옆모습이, 호기심과 기쁨으로 가득한 얼굴이 어쩐지 홀로 봄볕같이 느껴졌으니까.

“나가자, 휴고!”

“으응.”

나는 휴고의 손을 잡고서 바깥으로 향했다.

마침내 우리가 바깥으로 발을 디뎠을 때, 놀랍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퀘스트는 완료된 게 아닌가?

휴고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보았다.

“……고마워. 이렇게 밖을 본 건 아주 오랜만이야…….”

“아, 어. 아니야.”

“근데 정말, 알려줄 수 없는 거야? 네 이름.”

휴고가 마치 래빗처럼 내 옷자락을 꼬옥 잡았다. 난감하게 입술을 깨무는 순간이었다.

“이런, 한 발짝 늦은 건가?”

난 고개를 훽 돌렸다.

그곳에는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가 보였다.

심상치 않은 덩치에 나는 아직 스킬이 채 꺼지지 않은 상황임을 떠올리고 나무 막대를 들어 올렸다.

‘뭐지? 저 덩치는 휴고의 부친인가?’

로브 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 사실을 남자도 아는 듯 천천히 로브 자락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짐승과도 같은 눈이 번쩍였다.

“이런, ‘주인공’은 아직 여기서 빠져나오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뭐, 상관없나.”

……뭐?

마침내 벗겨진 로브 자락 아래로 나는 흩날리는 긴 갈색 머리를 보았다. 어쩐지 익숙한 인상이라 생각한 순간이었다.

남자가 정확히 내가 서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 거기 그쪽은 나랑 같은 처지인가?”

“……넌 뭐야?”

“나?”

어른스러운 미소.

“글쎄, 한 30년 전부터 이 세계를 망쳐온 사람?”

그 말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가 머릿속을 스쳤다.

누군가 오염시켰다는 거대한 뱀 괴물. 분수대가 부서진 전투. 원작과는 다르게 이르게 상처 후유증으로 일찍 죽고 말았다는 휴고의 부친 또한.

“이것만으로 설명이 부족하려나.”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아, 그렇지.’ 하고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권태와 함께 묘한 장난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이 세계의 주인공을 죽일 수 있는 사람?”

그와 동시에 땅이 흔들렸다.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 세계의 진정한 ‘오류’와 조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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