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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53화 (153/281)

◈153화. 2. 비혼주의 여주와 북부 대공의 비밀 (70)

나는 순간 깨달았다. 목숨을 건 히든 퀘스트 치고는 생각보다 쉽고 간단했던 난이도. 갖춰져 있던 도구와 사람들. 그리고 순조로운 탈출까지…….

‘너무 쉬웠어.’

어쩌면 이 퀘스트의 진정한 목적은…… 나를 저 남자와 마주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새카만 공간에 서 있었다.

마지막 순간 나를 절절하게 바라보던 어린 휴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단 걸 알았다.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괜찮아, 그 사람은 다시 보게 될 테니까.

“요정, 네가 보여주고 싶은 게 이거였어?”

대답은 들리지 않았지만 익숙한 웃음이 귓가에 스쳤다.

“혹시 저 남자를 앞으로 남은 이야기에서 볼 일이 있는 거야?”

역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침묵이 긍정에 가깝다는 것을.

[요정의 특별 보너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 메인 퀘스트 ‘북부 대공 프로듀스! 계약 결혼을 완수하라!’의 제한 시간이 10일 추가됩니다. 부디 안전한 결말을 맞이하시길 ( ⁎ ᵕᴗᵕ ⁎ ) ]

눈을 다시 뜨면 나는 변함없이 내 방에 앉아 있었다.

히든 퀘스트를 시작할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메인 퀘스트의 기한이 늘어나다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메인 퀘스트를 어떻게 끝낼 자신은 있었지만 시간이 촉박하던 참이었으니까.

“……영애?”

눈 앞에는 다시 어른이 된 대공님이 있었다. 대공님은 의아하다는 듯 눈을 깜빡이는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얼굴로 염려가 스몄다.

“대답이 없으셔서, 혹시 아프신 건가요?”

“아, 아뇨. 아니에요. 잠시 생각하느라…….”

그렇다고 시간이 늘었다고 해서 끝을 천천히 봐야겠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빠르게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어린 시절 그에게 인사조차 하지 못한 것이 떠오르는 한편 이대로는 위험하단 위기감이 살짝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 이야기를 위해서라도 여기 오래 있을 수는 없어.’

아쉬운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정말로 끝을 낼 때였다.

“얘기해주신 것 덕분에…… 대공님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아요. 어려운 얘기셨을 텐데 감사해요.”

“아, 아니에요. 아프진 않으신 거죠?”

“네. 대공님 그런데 혹시 조심스럽게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대답하고 싶지 않으시면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네. 뭐든 대답해드릴게요. 뭔가요, 영애?”

대공님이 질문만으로 기쁘다는 듯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혹시 대공님께서는 어린 시절에 탑에 갇히신 적이 있나요?”

“…….”

순간 대공님의 얼굴이 잠시 사색이 되었다. 이내 표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 이야기해준 모양이네요, 네. 맞아요. 영애. 내 나약함 때문에 나는 거기 갇혔었어요.”

“그건 가둔 사람이 문제지 대공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고마워요, 영애.”

내가 얼른 손을 잡고 부정하자, 대공님이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말간 미소였다.

“그런데 혹시 그 탑에서는 어떻게 나오게 되었나요? 대공님이 직접 탈출했다거나…….”

“네? 아뇨. 당시에 바란타를 비롯해서 몇몇 장로 귀족들이 나서서 내 탈출을 도모했던 것 같지만 실패했어요. 거의 내게 도착했었다는데 아주 강력한 기사가 나타나 막았다고 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부친이 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죽은 뒤로 탑에서 나와 대공의 자리에 올랐고요.”

“아하 그렇군요…….”

이 얘기는 여기까지면 됐다 싶어 마무리하려 했다. 대공님에게 썩 좋은 기억도 아닌 것 같으니.

“그런데 이상하네요. 어쩐지 그때, 내게 나가자고 직접 말해준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대공님이 입술에 손을 얹고 고민했다.

“왜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건지.”

* * *

며칠 뒤.

나는 거대한 장서관에 서 있었다.

이곳은 체단 대공 가의 도서관으로 북부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었다.

“흐음, 역시 없나…….”

나는 이곳에서 몇 가지 정보를 알아보려 했다.

일단 첫 번째로 먼 옛날 둑스가 만났다던 다른 세상에서 온 ‘친구’의 존재.

두 번째로 30년 전 분수대가 무너졌을 때의 기록과 대공님이 어렸을 적의 일을 남겨놓은 기록.

이를 통해서 내가 히든 퀘스트에서 만났던 ‘남자’의 존재에 대해 알아보려 했다.

그 남자는 분명히 자신이 30년 전부터 이 세계를 망쳐온 존재이며, 주인공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 했다.

그렇다는 건 즉, 그 또한 ‘원작’과 주인공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는 존재.

동시에 이 세계의 원형이 되는 원작을 해치고자 하는 의지가 엄청나게 강한 존재다.

‘나와 같은 ‘빙의자’인가?’

가능성 있었다. 그럼 그 사람도 나처럼 요정의 통제를 받는 건가?

아니면 혹시 그 사람 같이 원작의 세계를 망치고 주인공을 죽이려 드는 ‘오류’가 나타났기 때문에 다음 빙의자들은 요정의 통제를 받기 시작한 걸까?

혹은 그 오류를 상대하기 위해서 부른 존재가 나라면…… 요정들은 나만 통제 가능하다는 소릴일 테고.

‘만약 저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를 부른 거면 짜증나지만 요정이 매번 하던 ‘본인은 적이 아니란 말’도 이해가 가는데.’

물론 머리로 이해하는 거지, 가슴으로 이해한 건 아니다.

여전히 그놈은 내 목숨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질 나쁜 존재에 불과했으니까.

‘둑스, 생각나는 게 없다고 했지?’

-그렇다, 인간. 나는 지금 힘을 잃은 상태다! 컁!

둑스가 만났다던 다른 세계에서 온 존재에 대한 단서가 있다면 조사해서 세계의 오류라던 남자나 나와 연관된 게 없을까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둑스는 기억하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애초에 둑스는 인간을 전체의 종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개개인은 자세히 기억을 못 한단다.

거기다 힘을 잃은 상태라 기억도 불안정하다나?

-그냥, 인간 네게서 내 친구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영혼의 느낌이다, 컁!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 수도 있을까?’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럼 세상에는 좋지 않을 것 같다. 컁! 정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존재가 많으면 이 몸 같은 관리자에겐 힘들다!

다행스럽게도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메인 퀘스트의 기간이 늘어서 도서관에서 이런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유일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조언자인 둑스에게 나에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덕분에 유용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여기까지 해야 할 성싶었다.

‘요정과 이 세계에 대한 비밀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지체할 수는 없으니까.’

마침 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대공님이 성큼 들어왔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를 향해 생긋 웃어주려 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내 입가에서 삽시간에 웃음이 가셨다.

“……영애, 큰일. 하아, 큰일 났습니다.”

그가 가져온 소식 때문이었다.

* * *

“제, 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요?”

응접실, 거대한 공간은 침묵에 잠겨 있었다.

이곳에 나와 대공님을 비롯해 덩치가 큰 친위대 특무단원들과 린과 아스까지 있었음에도.

나는 당혹을 숨기지 못했다.

부친이 병에 걸렸다고 한다. 근데, 그 병이…… 당장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다고.

“그리고, 그 병이 제가 이전에 앓았던 병과 비슷하다고요…….”

“네, 그렇다고 하네요…….”

나는 집에서 온 편지를 몇 번이고 읽다가 곧 입술을 깨물었다.

결단은 빨랐다.

“정말 죄송한데, 대공님…… 집에 다녀와야겠어요.”

부친이 빠르면 3일 내로 사망할 수 있다는 말,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부친이 밤낮으로 딸의 이름을 부르짖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 병이라니…….’

나는 달린이 앓았다는 병에 대해서 잘은 알지 못했다.

그저 불치병에 가까우며, 내가 눈을 떴을 때 이 몸이 거의 죽음에 이를 정도로 쇠약했다는 것만 알 뿐. 무엇을 해도 차차 쇠약해지는 병이었다.

어째서 내 부친은 이렇게 갑작스럽게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과거 달린도 이렇게 쓰러진 적이 많았다고 했다.

“허락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아무튼 간에 부친이 죽음을 목전에 둔 채 나를 찾고 있다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니, 지금도 갈등하고 있지만, 어쩌면 부친의 병을 악화시킨 건 딸을 염려하는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었으니까.

‘나는 한 달 안에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계속 걱정했을 테니까.’

내 탓이 없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죄책감이 들었다.

“혹시 제가 빠르게 집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문제는 내가 저택에서 이 북부 영지까지 도착하는 데는 수많은 일자가 걸렸다는 점이었다.

이걸 해결해야 했다. 부친의 상태를 고려하면 적어도 3일, 이 안으로 저택으로 돌아가야 한다.

“부탁이에요, 대공님…….”

내가 추가로 얻은 일자는 10일, 이 중 이틀을 소모했으니, 최소 6일 내로 우리 집에 다녀온다면 메인 퀘스트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다.

사실 메인 퀘스트를 해결하고 가고 싶었지만, 지금 이 당혹스럽고 놀란 상태로는 쉽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해결해야 하는 클라이막스는 그가 폭주하지 않게끔 섬세하게 제어해야 하고, 그 결과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손끝이 떨렸다. 이상했다.

첫 번째 메인 퀘스트 때는 최대한 생존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움직였던 것 같은데.

난 어느새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던 가족을 마찬가지로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물론 래빗을 위해 목숨을 걸었을 때도 있었지만 내 생존을 늘 생각해왔던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나도 살고 래빗도 살리고 싶었으니까.

그랬다.

이제 난 이 세계에서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내가 간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영애.”

내 손으로 따뜻한 손이 올라왔다.

“이미 난 말씀드렸어요, 당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드리고 해주겠노라고요.”

“……대공님.”

“충분히 갈 수 있어요. 3일 내로요.”

말간 얼굴에 떠오른 차분함이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 남자의 눈물을 너무 많이 본 탓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 든든한 기분이었다.

“이 편지를 보면 끝에 3일 내로 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겠다고 적혀 있죠?”

“네. 하지만 어떤 수단인지는 적혀 있지 않아서…….”

“내 영지로 연락이 왔어요. 황실에서 말이죠.”

대공님이 눈을 살짝 깔았다.

“황실에서 도구를 제공하겠다네요. 장거리 순간이동 마법 도구를요.”

황실.

누가 돕겠다고 나선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도구만으로는 부족해요, 장거리 이동 마법에는 아주 많은 마력이 필요한데…… 북부에 있는 마법사만으로는 그 마력을 충당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 문제마저 해결된 것 같아요.”

“……어떻게요?”

“대마법사.”

나는 눈을 깜빡였다.

“대마법사 발데르가 협조하겠다고 나섰다네요. 영애, 혹시 이 자와도 친분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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