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판을 모르면 죽습니다-162화 (162/281)

◈162화. 3. 대마법사와 악녀 메이커 (1)

수도로 돌아가는 여정은 일사천리로 꾸려졌다.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수도로 올라가는 날이 되었다.

영주민들의 혼란을 고려하여서 나는 이들에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나기로 하였다.

그 탓에 내가 떠나는 날엔 영주성 사람들만 모여서 나를 배웅했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남아 있네.’

아스테반을 따르는 세력이 모조리 숙청된 탓에 가신들이 꽤 줄어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기 나온 숫자를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게다가 정돈된 사람들에게서 정갈함과 강인함이 느껴졌다.

북부의 저력이 무섭긴 무섭구나.

‘돌아가는 길은 장거리 이동 마법을 사용할 수 있댔지?’

본래 부친이 위독하다는 얘길 듣고 황실 쪽이 제공하고 대마법사가 도와주기로 했던 장거리 이동 포탈은, 기왕 준비한 김에 철수하지 않고 지금 타고 가기로 했다.

그 덕에 마차로 옆 도시까지만 가면 됐다. 이미 그 포탈을 타고 넘어온 에스테 쪽 기사들이 나를 데리러 왔고 말이다.

‘아, 저기 온다.’

정문 앞에 서 있으려니, 저 멀리서 새하얀 마차가 보였다.

마차 위쪽에 달린 깃발은 아주 익숙하고 그리운 에스테 가문의 문양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옆에는 마치 세상이 멸망한 듯 풀죽은 표정의 커다란 남자가 있었다.

“대공님.”

“……이름, 이름을 불러주세요, 영애.”

“……휴고.”

정정된 부름에야 비로소 휴고가 눈을 돌렸다.

“마지막……이잖아요.”

그렁그렁한 눈을 보고 있으려니 어째 좀 찔렸다.

‘왜, 북부에 커다란 강아지 하나를 유기하는 기분이 드냐.’

어떻게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현재 북부에서 일어난 여러 일들 때문에 휴고는 도저히 이 영주성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특히나 거대 마나홀이 터진 뒤에는 높은 확률로 크고 작은 잔여 마나홀이 터지기도 한다니, 한차례 도시가 엉망이 된 지금 더욱 자리를 비우기 어려울 터였다.

본인이 이를 제일 잘 알다 보니 굉장히 울상이었다.

‘날 데려다주기라도 하고 싶다고 계속 말했었으니까…….’

나는 조금 난감한 마음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휴고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보면서 그대로 내게 안기려다 말고 멈칫했다. 대신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휴고와 내 모습을 주변 가신들이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으음, 나 수도에 돌아가고 나서 파혼이 알려지면…… 저 눈이 원수 보는 눈으로 변하는 거 아니야?’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이들이 휴고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지 너무 잘 지켜봐왔지 않나.

그렇게 생각할 즈음, 띠리링 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눈앞에 요정의 창이 떠올랐다.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세 번째 인물이 추가됩니다!]

[요정의 창 오류! 오류! 기능끼리 충돌했어요!]

순간 창이 빨갛게 물들었다. 그것도 잠시, 원래의 푸른색으로 돌아왔다.

[‘나만의 로판’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세 번째 인물이 추가됩니다!

단, 스킬 ‘눈치는 약에 쓰자’의 영향으로 정보가 제한됩니다.

-세 번째 인물 ‘휴고’

-인물의 역할: 주인공 ‘달린’의 ????

-칭호: 북부의 주인(노말), 대륙 제일의 패자(유니크), 이적을 압도하는 자(유니크), 악을 베어내는 최강의 검(레전드리)

-달린을 향한 호감도: 100(+α) /100 ※단, 호감도가 집착도로 변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래빗, 라이칸에 이어 휴고 또한 나만의 로판 인물에 등록되었다.

나는 이 창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래빗과 라이칸, 그리고 휴고.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각자 어떤 원작의 주연들이다. 그러나 이를 넘어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메인 퀘스트 진행 동안 나랑 거의 붙어 다닌 사람들이지.’

다른 말로는 나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할 수 있겠다.

그럼 세 번째, 네 번째 이야기에서도 이런 인물이 나만의 로판에 등록된다는 건가?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나만의 로판’은 어디에 이용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요정이 다음 이야기부터 나만의 로판 기능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고 한 거 같은데, 맞나?’

[맞습니다!]

웬일로 이놈이 대답을 했다. 나는 눈을 찡그렸다.

이놈이 순순히 대답했을 때 치고 좋은 징조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의심의 눈초리가 깊어진 순간 눈앞으로 마차가 도착했다.

이곳을 떠날 시간이었다.

“그럼 대공님, 아니, 휴고. 이만 가볼게요.”

“…….”

나는 그를 향해 치마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길다면 길었던 두 번째 메인 퀘스트, 그리고 그 퀘스트 과정에서 겪은 순간들이 수없이 스쳐 지나간다.

저 멀리 뒤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들, 친위대, 아스와 린, 가르카, 칼리……. 이미 한차례 인사를 거친 이들이다.

모든 얼굴을 지나 휴고를 향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진심으로요. 잊지 못할 거예요.”

“……기억의 편린으로만 남아 있을까요?”

“…….”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안타깝게도 휴고가 바라는 것은 내가 줄 수 없었으니까.

대신 그저, 고마움을 담아서 행복하길 바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그런 마음으로 꺼냈을 뿐인데…….

“영원히 수도에 올라오지 않는 건 아니실 테죠. 그때 인사드릴 일이 있다면 좋겠네요. 건강하세요, 휴고.”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휴고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그러더니 일순간에 변했다.

마치 어둠 속을 걷던 사람이 마침내 한 줄기 희망을, 빛을 발견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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